1화 2화 3화 4화


 감금 8일차.


“그래서 어땠어요?”


“뭐가?”


얀붕은 타락 마법소녀가 선물로 준 농구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대답했다.


“뭐긴 뭐예요! 전 바람의 마법소녀 그게 땅 치면서 후회하는 모습 말이에요.”


토옹-


그는 왼손으로 농구공을 한 번 바닥에 튀겼다. 


전기가 튀듯 통증이 왼손에 흘렀다. 


억지로 마력을 역류시켜 관리자 창을 연 후유증이었다.


“으윽.”


“괜찮으세요?”


타락 마법소녀가 안절부절하며 쓰러지려는 얀붕을 침대에 앉혔다. 


‘고통스럽다.’


허나 얀붕은 후회하지 않았다. 


전 바람의 마법소녀에게 마법소녀의 힘을 가질 자격은 없었으니까.


오히려 다른 둘에게도 마법소녀의 힘을 빼앗아 복수하고 싶었다. 


‘특히 잠 그 녀석은 빨리 힘을 빼앗지 않으면...’


오늘도 타락 마법소녀는 아침 식사를 대령했다. 


그동안의 정성스러운 간호 덕분에 건강이 나아져 기름진 음식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어디서 구해왔는지 모를 떡갈비가 달콤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그래서 기분이 어떠세요? 통쾌하시나요? 가슴이 뻥 뚫리나요?”


“딱히 그렇지는 않아.”


힘을 잃은 동료를 보호하지도 않고, 위로하지도 않은 두 마법소녀.


그녀들은 전 바람의 마법소녀들을 죽일 가치도 없다는 듯 비웃으며 떠나가 버렸다. 


어쩌다 그녀들은 성격이 뒤틀리게 되었을까.


자신의 부족이라고 하기에는 설명되지 않는 점이 너무나도 많았다.


얀붕은 복잡한 심정을 정리하기 위해 복수에 정진하기로 했다. 


“다음 타깃을 정했어.”


“벌써요? 바람 그년한테 복수한지 얼마나 되었다고요? 너무 무리하시는 거 아니에요?”


“더 이상 악의 제국이 지구에서 횡포를 부리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아.”


얀붕은 왼손을 꽉 쥐었다. 


치직-


관리자 창이 튀어나오려다 말았다. 


아직 마력 사용이 불안정하다는 의미였다. 


원래 관리자 창을 사용했던 오른손이 잘리고, 갑자기 손을 바꾸려 하니 당연했다. 


‘마법소녀의 힘을 빼앗는 것도 앞으로 두 번에서 세 번이 한계야.’


얀붕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겨우 살고 싶다고 결심했는데, 능력이 따라주지를 않는다니.


“왜 이렇게 우울해 하세요. 안 되겠다. 정의의 마법소녀의 힘을 빼앗으신다면 제가 소원 들어 드릴게요!”


“소원?”


갑작스러운 제안에 얀붕이 되물었다.


악의 제국의 승리로 인간들은 마족들의 마력 충전기가 되거나, 험지로 쫓겨난 상황. 


지금 그가 누리는 모든 것들.


따뜻한 아침밥도 편안한 침대도 분에 넘는 호사였다. 


얀붕은 조심스럽게 타락 마법소녀의 머리를 쓸어내렸다. 


지금 해 줄 수 있는 것이 이것밖에 없었다. 


“어어? 가, 갑자기 왜 머리를...”


그녀가 얼굴이 새빨개진 채로 말을 더듬었다. 


처음 봤을 때는 피도 눈물도 없는 악당인 줄 알았는데.


그는 문득 타락 마법소녀의 사정이 궁금해졌다. 


도대체 무슨 일을 겪었길래 타락 마법소녀의 길을 선택했을까.


‘신의 저주를 받은 존재’라 불릴 정도로 미움 받는 이가 타락 마법소녀인데.


“고맙다.”


“고맙긴요! 제겐 얀붕 관리자님이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한데요. 그래서 소원 생각해 보셨나요?”


그녀의 사연을 알고 싶다.


왜 죽기 직전의 자신을 도왔는지, 왜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려고 하는지.


얀붕은 천천히 입을 뗐다.


“네 이름이 알고 싶어.”


“이름이요? 그건 얼마든지 말해줄 수 있는데요?”


“마법소녀들한테는 민감한 정보 아니야?”


얀붕이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전 바람의 마법소녀처럼 인플루언서나 연예인의 길을 택하지 않는 한, 마법소녀들은 자신의 정체를 밝히기를 극히 꺼린다.


마법소녀로서도 유명한데 다른 모습까지 까발려져 버린다면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이었다.


얀붕은 그래서 소원으로 이름을 알려달라고 했다. 


마법소녀 협회가 멸망하기 전까지 마법소녀들은 자신의 개인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다.


특히 그가 관리했던 잠의 마법소녀는 정체가 밝혀질 때까지 대중은 물론 얀붕에게까지도 진짜 이름을 숨기려 했다.


‘아무리 타락 마법소녀라도 프라이버시는 중요할 텐데.’


그가 걱정스러운 듯 농구공을 만지작대고 있었다.


“E018이에요.”


타락 마법소녀는 얀붕의 불안을 금방이라도 풀어주고 싶다는 듯이 한 번에 이름을 말해 버렸다.


“뭐?”


이렇게 쉽게 알려줄 줄은 몰랐는데.


E018은 마법소녀들 사이에서 유명한 이름이었다. 


마법소녀 협회가 박살나기 전 갑자기 실종되었는데 타락 마법소녀가 되었을 줄이야.


자신을 좋아하는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다. 


그녀가 실종되기 전.


얀붕은 타락 마법소녀, E018과 인사 정도는 하는 사이였으니까.


타락 마법소녀가 E018이었을 때 나눈 이야기를 생각하니 얼굴이 화끈하게 타 버릴 것만 같았다.


이름을 들은 기억을 지워 버릴 수도 없고.


그녀는 홍당무처럼 붉어진 얀붕의 얼굴을 보며 생글생글 웃었다.


“통 좀 크게 써 봐요. 저에 대해 많이 궁금하신 것 같은데.”


“그럼... 타락 마법소녀가 된 이유를 알려 줘.”


“으음.”


타락 마법소녀는 고민된다는 듯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좋아요!”


하지만 그녀의 대답은 ‘YES’였다. 


타락 마법소녀의 애정은 얀붕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컸기 때문이었다.


“진짜 들어준다고 할 줄 몰랐는데.”


“이 정도 소원은 들어줘야 의욕적으로 복수를 하실 거 아니에요?


아직 정의의 마법소녀를 해치운 것도 아니시면서 왜 이렇게 김칫국을 마셔요?”


그녀는 자신의 어깨 위 허공에서 손을 휘적거렸다. 


타락 마법소녀는 얀붕의 어깨를 두드리고 싶었지만, 그가 악의 제국에 잡혀간 뒤로 혹독한 고문 때문에 신체 접촉에 트라우마가 생겨서 자제하고 있었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는 것도 큰 발전이니까!’


“푸흡.”


“왜, 왜 웃어요?”


“고맙다. 정말 고마워.”


얀붕은 8일 전보다 부드러워진 태도로 감사를 전했다. 


타락 마법소녀는 탈옥 후 처음으로 보인 순수한 미소에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쳤다.


“몰라요! 전 악의 제국에 붙은 배신자 마법소녀나 더 잡으러 갈 거니까 복수 계획 잘 짜 두시라고요!”


탕!


아지트 문이 거세게 닫혔다. 


얀붕은 무심코 거울을 보았다.


흐뭇한 미소를 짓는 자신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나, 웃었구나.”


□□□□□


 스윽- 스윽-


정의의 마법소녀는 마력이 담긴 천으로 레이피어을 닦고 있었다. 


대악당 얀붕이 살아 있다. 


전날 마법소녀의 힘을 빼앗긴 전 바람의 마법소녀를 보고 확신한 바였다. 


‘황제 선거까지 며칠도 남지 않았는데 이런 불상사가 생길 줄이야.’


마법소녀 협회가 만들어 낸 적폐이자 불의.


그것이 정의의 마법소녀가 평가한 관리자 얀붕이었다. 


아무리 자신을 마법소녀로 만들어 줬다 해도 평가는 공정해야 했으니까.

 

‘잘 됐어. 나야말로 놈에게 복수하고 싶었으니까.’


그녀는 반짝거릴 정도로 닦은 레이피어를 가지고 훈련장으로 갔다. 


힘을 유명해지기 위해서만 데만 써 왔던 전 바람의 마법소녀와 황제 선거 때문에 바쁜 잠의 마법소녀와 달리,


그녀는 정진에 소홀하지 않았다.


약하면 도태된다.


약하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


약하면 정의를 이룰 수 없다.


마법소녀가 되기 전까지 ‘마법소녀를 모함한 거짓 피해자’라고 불려 왔던 그녀가 처절하게 깨달았던 진리였다.


그녀가 10살 때 일어났던 사고.


마인 출현 신고를 받은 마법소녀가 괴인이 정의의 마법소녀 가족을 공격한 사건이었다. 


마인 대신 정의의 마법소녀 가족을 공격하고 아버지를 살해한 이유는 어이없을 정도로 하찮았다. 


그 마법소녀는 아버지가 대학 시절 고백을 받아주지 않아서 복수했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하필이면 그 마법소녀가 S급 마법소녀라 사건은 은폐되었고, 


얀붕이 아니었다면 그녀에게 제대로 된 벌을 받게 할 수조차 없었을 것이었다.


더 이상 자신 같은 피해자가 나와서는 안 됐다.


정의의 마법소녀의 ‘정의’는 그렇게 고정되었다.


마법소녀는 더 이상 탄생하면 안 되고,


마법소녀를 만들어 내는 관리자는 그 직책을 내려놓게 만들거나 죽여야 했다. 


아무리 자신의 은인인 얀붕도 그 대상이었다. 


그래서 관리자들을 몰살하기 전 최대한 설득하려 했다. 


마법소녀 관리자를 그만두고 넷이서 악의 제국에 투항한다면 마법소녀가 존재하지 않는 이상향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고.


결국 그녀는 얀붕을 배신할 수밖에 없었다.  


정의의 집행에 예외를 둘 수는 없었으니까.


그래서 S급 마법소녀가 된 지금도 그 정의를 지키기 위해 수행하고 있었다. 


지이잉-


한참 땀을 흘리며 수련하던 그때, 그녀의 폴더폰이 울렸다.


정의의 마법소녀는 수련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흔하디흔한 스마트폰 하나 장만하지 않았다.


“잠인가.”


『수신자 : 불명』

『(정의의 마법소녀가 수련하는 모습을 몰래 찍은 사진)


오늘도 피해자 코스프레 열심히 하시네요((´∀`*))ㅗ』


“쓰레기 같은 년이.”


정의의 마법소녀는 이를 갈았다.


이것은 명백한 도발이었다. 


아마 얀붕에게 협력한다는 타락 마법소녀일 것이었다.


그녀는 결심했다.


두 대악당을 전부 죽여 정의를 실현하겠다고.





배신자 마법소녀들 이름 ㅊㅊ좀


공지에 소설 말미에 쓰는 건 괜찮다고 해서 적긴 하는데 문제되면 삭제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