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2화 3화


 “왜 그랬냐니... 그걸 묻고 싶어서 저 타락 마법소녀와 손을 잡은 거야?”

   

바람의 마법소녀가 잡혀온 곳은 타락 마법소녀의 아지트다.

   

게다가 타락 마법소녀의 마법 때문인지, 얀붕의 제어 때문인지 영창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상황이었다.

   

허나 바람의 마법소녀는 얀붕을 비웃고 있었다. 

   

“이유? 그건 얀붕, 당신을 잡을 때 다 말했잖아. 너희들은 이제 죽었어. 폐하가 알면 무사할 것 같아?”

   

“어디서 관리자님께 망발이야!”

   

“됐어. 이유가 정말 그 뿐이라면... 이렇게 할 수밖에 없어.”

   

얀붕은 큰 결심을 한 듯 왼손을 꽉 쥐었다.

   

“관리자님?”

   

보통 마법소녀 관리자들은 오른손으로 마법을 사용해 관리창을 띄우고, 마법소녀들의 상태를 관리하거나 제어한다.

   

악의 제국에서 얀붕의 오른팔을 자른 이유였다.

   

그가 관리자의 힘을 쓰지 못하게 하려 했으니까.

   

허나 그는 관리자의 힘을 쓸 수 없는 손으로 마법을 쓰기 위해 강제로 온 몸의 마력을 뒤틀었다. 

   

“너 같은 건... 마법소녀의 힘을 가져서는 안 돼!”

   

얀붕이 관리자의 힘을 왼손에 옮기려 하자, 그의 눈에 실핏줄이 돋아났다. 

   

얀붕 자신도 5일 전까지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악의 제국의 지구점령과 믿었던 마법소녀들의 배신에 모든 것을 포기했을 때.

   

관리자의 힘을 다시 돌려 보려는 것조차 포기하고 죽음을 맞이하려 했던 그때.

   

타락 마법소녀가 나타났다. 

   

악의 제국에 복수하려면 자신을 배신한 마법소녀들을 전부 죽여야 한다.

   

관리자의 힘을 쓴다면, 마법소녀의 힘을 전부는 아니더라도 절반은 빼앗을 수 있었으니까.

   

“쿨럭!”

   

마력 역류의 대가로 얀붕이 피를 토했다. 

   

『관!@$%자님, !#@^ 시스템에 접속하신 것을 !#^합니다.』

   

희미하게 관리자 창이 보였지만, 몰려오는 통증에 조작을 할 수가 없었다.

   

“힘내요.”

   

그녀는 얀붕의 어깨를 잡고 속삭였다. 

   

그러자 마법처럼 역류하던 마력이 잠잠해지더니, 관리자 창이 선명했다. 

   

『관리자님, 마법소녀 관리 시스템에 접속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어떤 기능을 사용하시겠습니까?』

   

얀붕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시스템에게 명령했다. 

   

“나, 관리자 얀붕은 바람의 마법소녀의 마법소녀 자격을 박탈하고 그 마법을 회수한다.”

   

그의 한 마디에 바람의 마법소녀가 발악했다. 

   

“아니야! 당신이 그 힘을 쓸 수 있을 리가 없어! 그만 해! 그만 두라고!”

   

“아유, 시끄러워라.”

   

빠악!

   

타락 마법소녀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대는 그녀의 머리를 바닥에 찍어 버렸다. 

   

『관리자님의 명령을 실행합니다.』

   

우웅-

   

관리자의 마법이 발동했고, 시스템은 바람의 마법소녀가 가진 힘을 빼앗았다.

   

얀붕의 손에 흘러들어오는 엷은 초록빛 마법.

   

바람의 힘은 그녀에게서 빠져나와 그대로 얀붕에게 고정되었다. 

   

“아아악!”

   

바람의 마법소녀가 비명을 질렀지만, 이미 마법은 회수된 뒤였다. 

   

마법소녀의 힘을 빼앗기자, 그녀는 변신 전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타락 마법소녀가 자신의 머리를 누른 발을 치우자 거울 앞으로 엉금엉금 기어갔다. 

   

“아니야, 아니야...”

   

검은 머리카락과 밋밋한 이목구비.

   

자신이 그토록 혐오하던 평범한 모습이었다. 

   

타락 마법소녀는 절규하는 그녀를 흘낏 쳐다보고 얀붕에게 물었다. 

   

“관리자님, 저 쓰레기 년을 어떻게 할까요? 죽일까요? 아니면 토막을 낼까요?”

   

그녀는 순식간에 식칼을 꺼내 왔다.

   

얀붕이 명령만 하면 금방 전 바람의 마법소녀를 찔러 죽일 기세였다. 

   

허나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를 악의 제국 귀족 주거지 어딘가에 데려다 줘. 저 아이는 그걸로 충분해.”

   

“네에?”

   

얀붕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바람의 마법소녀를 난도질하려 했던 타락 마법소녀가 화들짝 놀랐다. 

   

그는 잠시 바람의 마법소녀를 지그시 바라본 후 입을 열었다.

   

“...나는 그 편이 더 행복해.”

   

행복. 

   

그 한 단어가 들리자, 타락 마법소녀는 살기를 거두고 식칼을 등 뒤에 감췄다. 

   

“이해해요. 죽음보다 괴로운 삶이 있는 법이죠. 그럼 이렇게 해요!”

   

타락 마법소녀는 식칼을 넣어 두었던 서랍을 뒤져 기계 하나를 꺼내 왔다. 

   

“재산 절반을 탈탈 털어 산 위치추적기랍니다! 자, 꿀꺽 삼켜요!”

   

그녀는 위치추적기를 전 바람의 마법소녀의 입에 집어넣고 그 입을 막아 버렸다. 

   

“우윽!”

   

“옳지, 옳지. 잘했어요.”

   

타락 마법소녀는 전 바람의 마법소녀를 개 취급하며 뺨을 툭툭 두드렸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타락 마법소녀는 전 바람의 마법소녀가 위치추적기를 삼킨 것을 확인하고 그녀를 대충 들었다. 

   

“저 년이 살아서 고통받는 모습을 꼭 보자고요!”

   

말을 마친 그녀는 금세 밤하늘 속으로 사라졌다. 

   

□□□□□

   

 감금 7일차.

   

“싫어. 이런 건 싫어...”

   

전 바람의 마법소녀의 집.

   

그녀는 제국 경비대에 발견되어 간단한 응급처치를 받고 귀가했다. 

   

상처는 치유 마법 한 번에 없앨 수 있었지만, 회수된 마법소녀의 힘은 돌아오지 않았다. 

   

마법소녀의 빼앗는 것도, 돌려주는 것도 관리자만이 할 수 있었기에.

   

그녀는 하루 종일 방에 처박혀 있다가 잠들었다. 

   

『띠링-』

   

“허억!”

   

SNS 알람이 울리자, 전 바람의 마법소녀는 눈을 떴다. 

   

“아니야. 아니어야 해.”

   

그녀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스마트폰으로 가져갔다. 

   

“제발. 제발...”

   

『바람의 마법소녀 힘 뺏겼다 카더라』

(기절해서 길바닥에 누워 있는 전 바람의 마법소녀 사진)

『인간 출신 주제에 인기몰이 하는 거 ㅈ같았는데 잘 됐다ㅋㅋㅋㅋㅋ』

   

-누구세요?

-못생겼는데 어딜 봐서?

-마력 충전기 하나 귀족 주거지에 데려와서 거짓말하네

-옛날 라방에서 변신 풀린 모습이랑 똑같은데?

-@windy_magical 해명 좀

-@windy_magical 진짜 마법 뺏김?

-@windy_magical 저번에 라방 난입한 타락 마법소녀냐?ㅋㅋㅋㅋ

-@windy_magical 타락 마법소녀 하나 못 이기네 역시 인간 출신은 답이 없다

   

“아아아악!”

   

길바닥에 쓰러져 있는 ‘마력 충전기’가 자신이 아니라고 해명해보라는 댓글.

   

인간 주제에 어디서 귀족이 되려고 했냐는 댓글.

   

빠악-

   

결국 전 바람의 마법소녀는 휴대폰을 던져 버렸다. 

   

허나 액정만 깨졌을 뿐, 스마트폰 기체가 부서진 게 아니라 알람은 계속 울리고 있었다.

   

“얀붕이 그럴 리가 없었는데!”

   

전 바람의 마법소녀는 얀붕과의 기억을 떠올렸다. 

   

벌레 하나 잡아 죽이지 못할 것 같은 행동들.

   

더 강한 소질을 가진 마법소녀 후보가 등장하면 어김없이 마법을 빼앗아 버리는 관리자들과 달리 성장세가 줄어도 절대 회수라는 수단은 선택하지 않았던 얀붕.

   

그런 그가 마법소녀의 힘을 회수하다니.

   

그녀는 믿을 수 없었다. 

   

“이건 꿈이야. 꿈이라고!”

   

열한 살.

   

얀붕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마법소녀가 아닌 적이 없었다. 

   

“바람의 정령이여!”

   

그녀는 목이 터져라 변신 주문을 외쳤지만, 어떤 변화도 없었다. 

   

‘전’ 바람의 마법소녀는 받아들여야 했다. 

   

자신이 평범한 인간이 되었다는 것을.

   

‘이럴 수는 없어.

   

마법소녀의 힘을 사용해서 악의 제국의 고위직까지 올랐는데?

   

어떻게 하지? 들키면 죽어! 죽을 거라고!’

   

그녀는 신경질적으로 손톱을 뜯었다. 

   

너무 강하게 물어뜯어서 피가 흘러나왔다.

   

이럴 때 얀붕이라면 함부로 몸을 상하게 하지 말라는 말과 함께 반창고를 붙여 주었을 텐데.

   

‘그래, 얀붕은... 얀붕 관리자님은 이런 사람이었어.’

   

자신이 마법소녀의 힘을 잃자마자 등을 돌린 악의 제국민들과 달리 얀붕은 한결같이 애정을 주었다. 

   

그를 떠올린 전 바람의 마법소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녀는 자신이 던져 버린 휴대폰을 들었다. 

   

스윽- 스윽-

   

전 바람의 마법소녀는 전화번호부에서 얀붕의 이름을 찾았다. 

   

하지만 그를 배신하기로 마음먹으며 전화번호를 삭제한 지 오래.

   

그녀는 얀붕과 다시 연락할 방법도 잃어버리고 말았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전 바람의 마법소녀는 계속 울려대는 휴대폰을 잡고 사과했다. 

   

그래봤자 타락 마법소녀의 아지트에 있는 얀붕이가 그녀의 사과를 들을 수 있을 리 없었지만.

   

‘용서 받야야 해. 반드시 용서받아야 해!’

   

그녀가 얀붕에게 사과를 전하고 용서받을 것을 결심하는 순간.

   

똑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싫어! 오지 마!”

   

그녀의 발악에도 불구하고, 야속하게도 문은 열리고 말았다. 

   

전 바람의 마법소녀 앞에 두 마법소녀가 나타났다. 

   

정의의 마법소녀와 잠의 마법소녀.

   

한때 동기였던 마법소녀들이었다. 

   

기사 제복을 변형한 마법소녀 드레스를 입고 머리를 하나로 높게 올려 묶은 정의의 마법소녀가 일갈했다.

   

“한심하군. 그러고도 네가 제국의 귀족인가?”

   

그녀와 함께 찾아온 후줄근한 옷에 마녀 모자를 쓴 잠의 마법소녀는 전 바람의 마법소녀를 보지도 않고 하품을 해 댔다. 

   

“하암... 잠이나 더 자고 싶었는데... 무슨 일이라니...”

   

“얘, 얘들아. 우리 큰일 났어. 얀붕, 얀붕 관리자님이 살아 계신다고! 너희들 다 그분을 좋아했잖아! 용서 받아야 해! 최대한 빨리...”

   

그녀가 정의의 마법소녀의 전 치맛자락을 붙잡고 빌었다. 

   

촤악-

   

허나 정의의 마법소녀는 레이피어를 뽑아 전 바람의 마법소녀의 목을 겨눴다.

   

“닥쳐. 그는 정의에 대항하는 악당이야. 

   

악당의 밑으로 들어가겠다니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내 마법을 뺏은 사람, 얀붕이야! 

   

그리고 소외당하던 우리, 누가 챙겨 줬는지 잊었어?

   

친구니까 특별히 말해 주는 거야! 빨리 용서 빌자. 그 타락 마법소녀 년에게서 구해주면 용서해 주실 거야!”

   

“바람이가 오랜만에 맞는 말을 하네...”

   

콰악!

   

잠의 마법소녀가 그녀의 말에 동의하자, 정의의 마법소녀가 검의 손잡이로 전 바람의 마법소녀의 머리를 내려찍었다.

   

“쳐 맞는 말이지.”

   

“어우, 정의야... 왜 그래... 쳐 맞는 말이 아니라 맞는 말이라고... 그런데 말이야...”

   

잠의 마법소녀가 졸음 때문에 반쯤 감겨 있던 눈을 떴다.

   

그리고 마법 무기에 맞아 고통스러워하는 전 바람의 마법소녀의 앞머리를 쥐어 챘다. 

   

잠의 마법소녀의 금색 눈동자가 그녀의 수수한 갈색 눈동자에 비쳤다.

   

“내가 관리자님을 악의 제국에 바치자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동조한 년은 너잖아?

   

박쥐야, 이중인격이야? 일관성 있게 살아, 좀.”

   

파악-

   

잠의 마법소녀는 자기 할 말만 마치고 피곤하다는 듯 다시 눈을 감았다. 

   

“잘래...”

   

“그 전에 저 녀석은 어떻게 할 거지? 

   

제국에서 마법을 못 쓰는 자는 의회에서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해. 

   

저 쓸모없는 년을 처리할 방법을 정해야 한다.”

   

“푸흡...”

   

정의의 마법소녀가 묻자, 잠의 마법소녀는 웃음을 흘렸다. 

   

그녀는 문을 열고 대답했다. 

   

“정의 네 말대로 쓸모없는 년을 어디다 써? 그냥 내버려 둬. 

   

우리가 가만히 있어도 안티들이 죽이러 올 텐데.

   

바람이는 유명인이라 집주소도 다 까졌잖아?”

   

“너, 가만 안 둬!”

   

전 바람의 마법소녀가 도를 넘는 조롱에 잠의 마법소녀에게 달려들었다. 

   

퍽!

   

허나 그녀는 정의의 마법소녀의 발길질 한 번에 제압되었다.

   

“쓸모도 없는 게 어디서 달려들어.”

   

“너 바람이한테 왜 그래... 불쌍하니까 그러지 말자...”

   

“그렇게 하도록 하지.”

   

“그럼 바람아, 잘 가... 저승에서 그렇게 좋아하는 얀붕 오빠랑 잘 놀고 있어...”

   

두 마법소녀는 전 바람의 마법소녀를 비웃으며 돌아갔다. 

   

“아하하하!”

   

그리고 그녀를 비웃는 이들은 두 마법소녀 뿐만이 아니었다. 

   

지붕 위에 앉은 얀붕과 타락 마법소녀가 낡은 노트북을 통해 전 바람의 마법소녀가 버림받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