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스크 아카데미 2학년.

나이는 올해로 21살.

특기는 남들에게 오해받기다.


#


금발 머리에 태닝한 피부.


운동을 좋아해서 커다란 덩치와 타고난 날카로운 눈매.


어디 삼류 만화에나 나올법한 생김새의 양아치.


나의 부모님은 어머니 쪽은 러시아 계열 백인, 아버지는 토종 한국인이다.


둘 사이에 나온 아들이 나다.


피부를 제외한 모든 게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다.


태닝은 조금이라도 한국사람들과 비슷해지려다보니 지나쳐버렸다.


이런 외모적 특성탓에 오해도 자주 받는다.


“거, 건들지마...! 내 여자친구란 말이야!”

“흐, 흑. 절대로 안 넘어갈거니까.”


난데없이 커플과 부딪쳤을 때,  일어난 일이다.


나는 눈살 한 번 찌푸렸는데 커플은 온갖 오버를 떨며 소란을 피워댔다.


결말은 경찰서 엔딩.


뭐, 간단한 훈계만 받고 돌아왔지만, 기분이 썩 좋진 않았다.


그래도 이 정도면 나름 양호한 편이라 생각한다.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발생한 일이고 나와는 전혀 관계없는 사람들이니.


진짜 문제는 어느 정도 일면식이 있으면서 평판이 좋은 상대방과 엮였을 때다.


“학생회장님, 전 아무것도 못 봤습니다.”

“가,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오면 어떡해요!? 그보다 진짜 아무것도 못 본거 맞죠?”


눈물을 찔끔 흘리면서 날 쳐다보는 회장님.


팔방미인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사람으로 아카데미에서 유명하다.


지금도 옷이 흐트러져 있음에도 올 곧은 자세를 유지하고 있지 않은가.


그 와중에 학생회를 상징하는 뱃지와 3학년 뱃지가 빛난다.


“일단, 옷부터 제대로 여미세요.”

“여, 역시 전부 본 거죠? 제가 학생회실에서 몰래 즐기는 취미를...!”

“...취미가 남들 몰래 자기 몸 사진 찍는걸 말씀하시는 건가요?”

“이이익...! 역시 전부 들켰어. 이제 내 아카데미 생활은...”


이젠 거의 울고 있는 상태의 학생회장이다.


“그냥 못 본척 해드릴게요.”

“아악! 내 평화로운 일상이 끝나고 금발 양아치한테 협박이나 받으면서 평생 노예로...”

“아니, 그냥 나갈게요.”

“흐윽, 거짓말 하지마세요. 방금 그걸보고 그냥 못 본척한걸 믿으라고요?”


뭔가 이전에도 이런 비슷한 상황이 있었던 것 같다.


난 아무것도 안했는데 울고 있는 여자탓에 범죄자로 몰린 기억이...


일단, 이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해보면.


여전히 옷이 흐트러져 있는 상태로 울먹이는 학생회장과 양아치 처럼보이는 금발 학생의 조합이다.


그리고 상대는 아카데미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학생회장.


누군가에게 들키기라도 한다면 내 아카데미 생활은 끝장이다.


좋아, 상황파악이 끝났으면 행동으로.


-철컥.


“왜, 왜 문을 잠그는거죠?”

“이래야, 누구한테 들킬리 없으니까.”


신뢰의 목소리는 낮은 중저음이라고 한다.


여기에 어려서부터 칭찬받아온(부모님한정) 회심의 미소로 화답까지.


“꺄, 꺄아아아악!”

“모, 목소리 좀 줄이세요.”

“누가, 밖에 아무도...으읍읍.”


아무리 문을 잠궜다 하더라도 임시방편일 뿐이다.


최대한 조용하게 회장과 대화로 풀어나갈 필요가 있다.


어쩔 수 없이 강제로 회장의 입을 막긴했지만.


아무튼, 이 모든 건 전부 평온한 나의 아카데미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다.


“잠시 오해가 있는 거 같은데 우리 천천히 이야기 좀 해볼까요?”

“으읍읍, 읍읍, 으으읍읍!!”

“음...그러니까 오늘일은 없던일로 하겠다. 서로 모르는척 지내자?”

“읍읍! 읍! 으으으읍!”

“이제 돌아가라. 다시는 학생회실에...아악! 왜 깨물고 그러세요!?”


진심으로 깜짝 놀랐다.


그 품행단정의 대명사인 학생회장님이 나를 깨물다니.


“이, 미친놈아! 그냥 입마개 풀어달라는 의미 밖에 없었어!”

“거참. 그런거라면 진작에 말씀해주시지.”

“니가 입을 막고 있는데 어떻게 말해?”


어느 새, 회장의 말투가 반말에 호전적으로 변했다.


이 변화는 과연 긍정적인 변화일까?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멋대로 사람을 오해하는 부류 중 대부분이 호전적인 경향을 띤다.


내 말을 들으려 하지도 않고 자기의 생각이 우선이다.


이럴때는 상하관계를 똑똑히 가르쳐야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지 내 말을 조금이라도 들을테니까.


“회장님, 여기 저희 둘 밖에 없다는 거 까먹으셨나요?”

“...으읏! 그, 그렇지.”


우선, 상대방보다 물리적인 우위에 있다는 사실을 머리에 각인시킨다.


“하아...그리고 지금이 무슨 상황인지 이해는 하고 있으세요? 이해하고 있다면 그 입으로 말해보세요.”

“으, 으극. 내 입으로?”

“네. 지금당장.”


다음으로 객관적으로 상황파악을 하게 만든다.


보통 이 정도까지하면 오해는 대부분 풀리게 된다.


회장은 우물쭈물 하면서도 작게 또박또박 말했다.


“그으...내 입으로 말하긴 좀 부끄러운데.”

“뭐가 부끄럽습니까?”


회장이 적어도 부끄럼을 느끼는 사람이라 다행이다.


나도 악마는 아니기에 이쯤에서 멈춰야겠다.


근데 왜 그런 엄청난 표정을...?


마치 뭔가 큰 결심을 한 얼굴의 학생회장이다.


회장의 입이 열리는 순간, 상황이 더 복잡해질거라는 직감이 왔다.


빨리 저 입을 다물게 해야...


“말할게요! 태닝한 금발양아치남이 순진한 학생회장을 협박해서 덮치기 직전이에요!”

“...”


혹시나 오해할까봐 말하지만, 난 그런 추잡한 생각따위 전혀 하지 않았다.


“여기 학생회실엔 cctv가 있으니까, 허튼짓하지 마세요.”

“그러면 회장님은 cctv가 있는 장소에서 가슴 사진을 찍은건가요?”

“앗! 그게 제가 있던곳은 사각지대라서...”


정말 대단하다.


저 똑똑한 머리로 cctv 사각지대가 어딘지 찾기나 하고.


“왜 그런 눈으로 보세요?”

“그냥 고결한 학생회장님의 다양한 모습이 참 보기 좋아서요.”

“그런 이상한 별명은 도대체 누가 붙이는 건가요?”

“지금 그게 중요한게 아니잖아요. 아무튼, 정말로 못 본걸로 할테니까 오늘일은 서로 잊고 지내죠”

“...정말인가요? 좀 안 믿기는데.”


여전히 회장은 나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이래서야 대화는 계속해서 평행선을 달릴테고 그러면 답이 없다.


무언가, 회장이 납득할만한 증거를 제시해야한다.


아,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기브 앤 테이크.


회장에게 무언가 대가를 받는 대신 비밀을 지켜준다.


겉모습은 태닝 양아치지만, 성적은 교내 탑을 달리는 나다운 명쾌한 해답이다.


“우리 거래를 하나하죠.”

“거래요?”

“네. 일주일 동안 저랑 같이 점심먹어 주세요. 대신 여기서 본 건 비밀로 해드리죠.”


아카데미 내에서 회장의 평판은 어마무시하게 좋다.


그런사람이 매일 나랑 밥을 먹는다?


그러면 나에 대한 평판도 조금은 좋아지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회장은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눈썹을 팔자로 찡그리고 고민하고 있다.


솔직히 이 정도 제안이면 덥썩 물어야하는거 아닌가.


“이게 고민할 정도 인가요?”

“그게 좀 비밀로 해주는 것치고는 약해서...”

“아니면, 뭐. 비밀의 대가로 가슴이라도 만질까요?”

“...읏! 역시 제 몸이 목적이죠!? 점심을 먹자는 것도 전부 저를 속이려고...!”


농담 한 번 잘못던졌다가 이야기가 원점으로 되돌아 가버렸다.


회장이 몸의 주요부위를 손으로 가리고 한 발자국 물러났다.


“하아...아무튼, 내일부터 점심에 학생회실에 찾아올게요. 전 갑니다.”


-달칵.


문 손잡이에 손을 대자, 뒤에서 회장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린다.


“어, 엇. 잠깐. 진짜 갈거에요?”

“네.”

“이대로 간다고요? 딱 봐도 매일 여자 바꿔가며 잠을 잘 것 같은 양아치가 이런 기회를 차버리고?”

“그런 편견은 좋지 않습니다. 그리고 전 여자에 발정난 놈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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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험악한 인상으로 주위의 무서움을 사는 얼굴을 난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단 한 가지.


이런 겉모습이 좋다고 느낄때가 종종 있다.


-너네집 좀 산다면서? 돈이나 좀 내놔봐.

-저번처럼 뒤지다가 나오면 10원에 싸대기 1대야.

-지, 진짜로 없어. 흐윽, 엄마가 요즘 돈 너무 쓴다고 머라하셨단 말이야.


아카데미 뒷편의 으슥한 골목길.


이곳은 흔히 일진이라 불리는 찐 양아치들이 자주 출몰하는 지역이다.


요새들어 잠잠하나 싶었더니, 또 이런 짓거리를 하는  인간들이 있다.


나름 뒷골목 청소를 한다고 했는데도 이 모양이다.


“거기, 같이 공부하는 학우를 괴롭히면 되나? 그것도 남자 둘이 여자하나 둘러싸서 말이야.”


흠, 근데 좀 이상하다. 어째서 여학생 명찰을 달고 있는 거지?


세 명 모두 아카데미 1학년을 상징하는 병아리 뱃지와 분홍색 이름표를 달고 있다,


“하...씨발. 어떤 새끼가...”

“자, 잠깐. 저 사람 뒷골목 금태남 아냐?”

“뭐? 그게 뭔데?”

“그, 왜 있잖아! 뒷골목에서 양아치 서열정리하는 게 취미라는 미친 놈.”


뒷골목 금태남.


며 칠전, 담배피우다 걸린 놈도 똑같은 소릴 했었는데.


누가 붙였는 지 몰라도 작명센스는 꽝이다.


“아니, 그보다 우리보고 남자라고 했냐? 우린 엄.연.히 여자다.”


우락부락하게 생긴 여학생이 나에게 삿대질을 갈겼다.


감히 하늘같은 선배에게 존경은 못할망정 반말이나 찍찍뱉고 삿대질까지.


이 놈들은 오늘 제대로 교육시켜야겠다.


겉모습을 살려서 선배로서 위엄을 보이려던 찰나, 친구로 보이는 여학생이 바로 무릎을 꿇고 빌었다.


“죄, 죄송합니다!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야, 야. 갑자기 왜 그래. 덩치만 산만한 새끼가 머가 무섭다고.”

“아이고오. 선배님, 죄송합니다. 제 친구가 아직 뭘 몰라서 그랬습니다. 당장 너도 사과박아!”


친구의 권유에 덩달아 대들던 여학생도 고개를 박았다.


뭐, 여전히 납득이 가지 않는 얼굴이긴 했다만.


이렇게 상대방이 저자세로 나오면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다.


“만약 다시 괴롭히는 게 눈에 띄면 각오하는 게 좋을거야.”

“감사합니다! 예지야, 가자!”


두 여학생은 뒤도 안 돌아보고 급히 떠나갔다.


가끔은 이런 겉모습도 쓸모 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아니었다면, 한 바탕 치고박고 있었겠지.


“거기, 너. 괜찮아? 오늘은 내가 막아주긴 했는데. 내일은 어찌될지 모르겠네.”


난 방금 도망친 애들이 괴롭힘을 멈출거라 생각치 않는다.


어차피 내 눈에만 안 띄면 되니까.


어쩌면 오늘 일로 괴롭힘이 더 심해질 수도 있었다.


그래도 눈에 뜬 이상 가만히 볼 순 없지 않는가?


“으으...그게.”


괴롭힘 당하던 여학생은 비뚤어진 안경을 고쳐쓰고 덥수룩한 긴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 나와 눈이 마주치고서.


“으, 으...으.”

“으?”

“으아아아악.”


-타타닥.


앞선 여학생들과 마찬가지로 도망쳐버렸다.


“하아...”


딱히 감사인사를 바라고 한 건 아닌데, 영 기분이 찝찝하다.


그래도 별 수 있는가. 태어나길 이렇게 태었났는데.


-타닥.


돌아가려던 그 때. 누군가 한 명 더 뛰는 소리가 들렸다.


“음, 착각인가?”


확인한 자리엔 학생회 뱃지만 덩그러니 남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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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의 유명인이라 하면 빠질 수 없는 인물.


얀스크 아카데미 3학년이자, 압도적 지지를 받아 학생회장이 된 유하나다.


그녀는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넘쳤다.


그 이유 중 가장 큰게 뛰어난 자제심이라 생각했다.


평소에도 온갖 에로물을 섭렵한 끝에 학생회 업무와 야한 망상을 동시에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데도! 전혀 티를 내지않고 항상 올바르고 차분한 겉모습을 유지했다.


그런데 그것도 오늘로서 끝장나게 생겼다.


학생회실에서 복장이라는 억압에서 벗어나 한 껏 해방하던 중 그를 만났다.


그도 마찬가지로 아카데미에 다니는 사람이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다.


본명은 김현우.


별명도 다양하다.


금태양, 침대 마스터, ntr 마스터 등등.


그런데 오늘 만나고 지금까지 들었던 별명은 그냥 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까지는.


-철컥.


유하나는 조용히 방문을 걸어잠궜다.


“하나야, 공부할거니?”

“아, 네.”

“쉬엄쉬엄해. 어제도 공부한다고 늦게까지 일어나 있던데.”

“아하하, 요즘에 공부가 재밌어서요.”

“그래? 오호홍. 역시 우리 딸.”


그녀의 엄마는 대화내내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거실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을 딸에게 방해되지 않게 tv볼륨을 줄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엄마의 이런 전적인 신뢰를 유하는 간단히 배신했다.


과연, 그녀의 엄마는 유하나가 방문을 잠그고 무엇을 하는 지, 알고 있을까?


유하나는 열심히 에로망가를 탐독하며 스트레스 발산을 하고 있었다.


“요즘에 나오는 금태남은 죄다 NTR물이네. 그런 것치고 오늘 만난 김현우는 여자를 뺏진 않을 거 같은데.”


몰래 미행도 했는데 결과는 허탕이었다.


여학생을 구해주는 대가로 몸이라도 요구하나 기대했건만, 별 일 없었다.


“으음...뭔가 아쉽네.”


말은 이렇게 해도 유하나는 김현우한테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내일 밥먹으면서 좀 알아봐야 겠네.”


그녀는 몰랐을 것이다.


이런 사소한 관심으로 김현우한테 푹 빠져서 따라한답시고 금태녀가 될 줄은.


그것도 사귀기 위한 작전의 일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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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 때는 나름 재밌었는데 다른 사람한테는 어떨지 모르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