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본 글 - https://arca.live/b/yandere/6750435



기사단 연무장에서 어김없이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탁! 퍽! 목검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소리가 화려하게 울려퍼졌고, 점점 박자를 높이더니 이제는 간격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속도로 휘몰아쳤다.


어느새 연무장에는 많은 인파들이 모여 대련을 응원하고 있었다. 비단 기사들뿐만 아니라 기사단 막사에서 일하는 하녀들, 인부들, 종자들까지. 한 마음 한 뜻으로 한 기사를 응원했다. 기사는 맹렬하게 일격을 가하며 그들에게 날카로운 시선을 보냈다.


그만 좀 꽥꽥거려. 집중이 안 되잖아.


기사는 거침없이 대련 상대의 어깨를 향해 일격을 날렸다. 하지만 상대는 가뿐히 공격을 흘리고 검을 치켜올려 그녀의 목을 노렸다. 기사는 재빠르게 몸을 비틀어 검을 휘두르며 그의 공격을 튕겨냈다. 하지만 상대는 그 반동을 이용해 몸을 크게 돌렸다. 사뿐한 발구르기. 그 다음 동작은 기사의 허리를 향했다.


여기까진 예상하고 있었다고.


기사는 검자루를 내리찍어 그의 칼날을 막아냈다. 그리고 다시 검을 들어올려 그의 머리를 노렸다. 그는 이 상황에서 절대로 검을 들어 받아칠 수도 없고, 뒤로 물러나 공격을 피할 수도 없을 것이다. 기사가 속으로 쾌재를 울렸다.


됐어, 됐어! 이번에야말로!


하지만 찰나의 순간, 그녀는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상대는 짓궂은 웃음을 짓고 있었던 것이다.


"검으로 내려치는 게 아니라 다리로 올려찼어야지."


그는 몸을 숙여 굴렀고, 그녀의 일격은 허무한 헛손질로 끝나 버렸다. 그리고 잠시 후 발목이 휘감기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녀는 이를 바득 갈았다. 다리를 걸었구나! 그녀는 발목에 힘을 주어 버티려 했으나, 이미 무게 중심이 앞으로 쏠린 탓에 그대로 넘어질 수밖에 없었다.


풀썩, 모래사장에 진한 키스를 한 기사는 거칠게 머리를 흔들었다. 그녀의 머리카락으로부터 사방에 모래가 튀겼고, 구경꾼들은 환호를 보내거나 아쉬운 듯 한탄을 보냈다. 대련 상대는 여전히 짓궂은 웃음을 띄우며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일어나십쇼, 아가씨."


기사는 그의 손을 거칠게 뿌리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갑옷에 묻은 모래를 털어냈다. 그리고 그를 노려보며 으르렁거렸다.

그녀의 대련 상대, 얀붕이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모래사장에 목검으로 뭔가를 적었다. 곧 숫자 하나가 적혔다. 0. 그 다음에 기호 : 가 쓰였고, 그리고 그 뒤로 숫자가 적힐 때, 기사 얀순이는 이성을 잃고 그에게 목검을 휘두를 뻔했다.


"자, 오늘 대련까지 해서 0 : 32……."


그 말까지 듣자 결국 얀순이는 참지 못하고 얀붕이를 향해 목검을 휘둘렀다.


**********


"져, 졌습니다."


또 한 명의 대련 상대를 굴복시킨 얀순이의 기분은 이상하게도 개운하지 않았다. 오히려 찝찝하고 불쾌한 기분이었다. 그녀는 대련 상대에게 고개 한 번 돌리지 않고 그대로 연무장을 빠져나왔다.


상대는 기사단의 유망주. 짧은 시간 동안 엄청난 성장을 이루었고, 소문으론 동쪽 산에서 기승을 부리던 산적 떼도 단신으로 격파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의 상대는 되지 않았다. 그녀의 연격을 힘겹게 막던 그는 결국 틈을 보였고, 그녀는 그 틈을 향해 검을 찔렀다. 아마 진검이었다면 그 남자는 왼쪽 눈을 잃었을 것이다.


그녀는 분한 마음에 발을 동동 굴렸다. 이런 전사도 그녀는 쉽게 무너뜨릴 수 있었다. 그런데 왜, 저 남자보다 체구도 작고 비실비실해 보이는 그 얀붕이라는 한량에게는 이길 수가 없단 말인가. 얀순이는 씩씩거리며 크게 발을 굴렸다. 그 따위 평민 기사 하나 이기지 못하고 이렇게 애만 태우다니. 공작가의 명예가 용서치 않았다. 요란한 발소리를 내며 향한 곳은 얀붕이의 숙소 방이었다. 다짜고짜 문을 열어젖힌 얀순이는 얀붕이에게 소리쳤다.


"나와라!"


침대에 누워 낮잠을 자던 얀붕이는 부스스한 머리를 긁적이며 일어났다. 얀순이는 그런 얀붕이의 멱살을 끌어올리고 어깨를 잡아당겼다. 얀붕이의 땀냄새 밴 채취가 풍겼다. 얀순이는 살짝 눈썹을 찌푸리며 그대로 얀붕이를 연무장으로 끌고 갔다. 얼떨결에 얀순이의 손에 이끌려 연무장에 오게 된 얀붕이는 하품을 하며 불만을 토로했다.


"아무리 그래도 하루에 3번 대련하는 건 좀 너무하지 않냐?"

"시끄럽고 검이나 잡아!"


얀순이가 얀붕이를 향해 일갈했고, 얀붕이는 허리를 돌리고 팔을 뻗어 올리며 몸을 풀고 목검을 집었다. 얀순이도 목검을 고쳐 잡고 자세를 취했다. 그녀는 얀붕이가 그녀를 향해 검을 치켜올린 것을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신속하게 돌진했다.


검은 정확히 얀붕이의 미간을 향했다. 얀붕이는 얀순이의 돌진을 그대로 받아낼 생각인 듯 처음의 자세 그대로 얀순이를 응시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그녀에게 사각은 없었다. 이번에야말로 공격을 막지 않고선 못 베길 것이다. 그리고 공격을 막는다면, 바로 연격을 꽂아내리면 버티지 못하겠지.


"하앗!"


검은 얀붕이의 미간 앞에 멈춰섰다.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얀붕이의 검이 얀순이의 명치 바로 앞에 멈춰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얀순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얀붕이와 얀붕이의 목검을 번갈아 보았다.

왜?

이번엔 도대체 어째서?


얀순이의 물음에 대답하듯 얀붕이는 목검을 던져놓고 얀순이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겼다.


"왠진 모르겠지만 네 움직임은 뻔히 보인단 말이야."


얀붕이는 킥킥 웃었다. 얀순이는 이 얄미운 남자를 잡아먹을 듯 매섭게 노려보았다. 얀붕이는 그 눈빛을 보고 장난끼가 돈 듯, 그녀를 향해 짓궂은 농담을 건넸다.


"자, 이번 승부까지 쳐서 0 대 33……. 이거 점수 늘어날수록 결혼할 나이도 늦어지는 거 아니야?"


얀순이는 명예가 실추당하자 참지 못하고 얀붕이를 향해 목검을 휘둘렀고, 얀붕이는 깔깔 웃으며 그녀의 검을 피해 재빨리 도망쳤다. 쫒고 쫒기던 둘은 어느새 연무장을 몇 바퀴째 뛰고 있는 꼴이 되었고, 교관들은 그 모습을 질렸다는 듯 바라보았다. 마치 어린아이가 술래잡기라도 하는 듯, 얀순이는 정신없이 목검을 휘두르며 얀붕이의 뒤를 쫒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얀붕이! 네 이놈, 거기 서라, 좋은 말로 할 때 서! 지금 서면 아무 짓도 안 한다! 으아아아아! 너 잡히면 죽여버릴 거야!!"


서로 모순되는 말을 지껄이며 얀붕이의 뒤를 쫒아오는 그녀를 보며, 얀붕이는 미친 듯이 연무장을 질주하며 웃었다.


**********


"도대체 뭐야."


얀순이는 빵을 우물거리며 주먹을 부들거렸다.


도대체 내가 그 놈에 비해 부족한 게 무엇이란 말인가. 그 놈은 나에 비해 출생도 비루한데다 검술 실력도 그다지 뛰어나지 않고, 물론 훈련을 열심히 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그녀가 치루고 있는 훈련보다 더 단계가 낮다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내가 도대체 왜, 그 남자에게 이기지 못한다는 것인가.


"기운 내십시오, 얀순 아가씨."


새로 온 견습 기사라는 놈이 옆에서 꼬리를 쳤다. 하찮기는. 얀순이는 분을 풀기 위해 홍차를 한 모금 들이켰다. 홍차가 목을 넘어가는 동안, 견습 기사는 그녀에게 계속해서 비위를 맞추기 위해 사탕발림을 날렸다.


"아마 요새 몸 상태가 좋지 않으셔서 그러실 겁니다. 요새 잠도 제대로 못 주무시고 훈련에만 열중하고 계시잖아요? 아마 푹 쉬시고 다시 해 보시면 압승하실 수 있을 겁니다."


얀순이는 그녀의 말에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야. 그녀의 비위를 맞추기 위한 아첨도 결국엔 현실로 다가올 것이다. 얀순이는 머지 않아 얀붕이를 굴복시킬 것이다. 그 놈이 엎드리며 패배를 선언하는 모습이 그려졌고, 얀순이는 입꼬리를 올렸다.

조만간 바닥을 설설 기게 해 주지.

속으로 중얼거리며 그녀는 다시 홍찻잔을 입에 대었다.


하지만 그녀가 찻잔을 입에 댄 순간, 차마 넘길 수 없는 말이 들려왔다.


"그 얀붕이라는 기사, 생각보다 별 거 없는 놈이더라고요. 얀순 아가씨를 이긴 것 치곤 제게 허무하게 깨져버렸으니 말입니다. 얀순 아가씨도 다음 번엔 반드시 이길 수 있을 거에요."


얀순이는 차마 차를 마시지 못하고 찻잔을 내려놓았다. 견습 기사는 흠칫 놀라며 살짝 뒤로 물러났다. 그녀에게서 형용할 수 없는 기백이 느껴졌다. 살기에 가까웠다.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마치 맹수가 사냥감을 노리듯 기사를 바라보았다. 곧 그녀의 손이 떨리며 찻잔 손잡이가 부서졌다.


그녀는 납득할 수 없었다.

네가 이겼다고? 얀붕이를?

그것도 아주 가볍게 쓰러뜨렸다고? 얀붕이를?

나도 지금까지 한 번도 이기지 못한 얀붕이를?

네가 감히?


얀순이는 거칠게 의자를 젖히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반동 때문에 의자가 바닥에 요란한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견습 기사는 "히익!" 불쌍한 비명을 지르며 한 발짝 더 뒤로 물러났다. 얀순이가 그녀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한 걸음 가까워질 때마다 견습 기사는 얀순이에게서 흐르는 살기에 압도되어 눈물을 글썽거렸다.


얀순이가 그녀와 눈을 맞췄다. 어느새 그들의 거리는 주먹 하나만큼까지 좁혀졌고, 얀순이가 그녀를 노려보며 어깨를 끌었다.


"따라와라."


그녀는 얀순이의 팔에 이끌려 연무장까지 끌려오다시피 했고, 결국 연무장에 도착하자 얀순이는 그녀의 팔을 거칠게 뿌리쳤다. 그녀가 눈물을 그렁거리며 손을 매만지는 동안, 그녀의 발치에 무언가가 떨어졌다. 연습용 목검이었다. 얀순이는 기사를 노려보며 차갑게 말했다.


"집어라."

"네…… 네?"

"집으라 말했다."


얀순이는 차갑게 대꾸하고 검을 고쳐 잡았다. 기사가 우물쭈물대며 조심스럽게 검을 집어들었다. 얀순이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그녀가 검을 집는 순간, 얀순이의 일격이 그녀의 어깨를 강타했다. 기사는 비명을 지르며 땅에 쓰러졌다. 억울하다는 듯 기사는 얀순이를 향해 고개를 돌렸지만, 그녀는 비웃음 섞인 냉소를 보내며 말했다.


"다시 집어라."

"제…… 제가 뭘 잘못한 겁니까?"

"잘못?"


얀순이가 웃었다.


"아니, 네가 잘못한 건 없다. 네가 얀붕이를 이겼다고? 그것도 아주 가볍게? 그럼 네 실력이라면 나 정도의 검사는 쉽게 물리칠 수 있겠지?"


그 말을 듣고 나서야 기사는 그녀의 말실수를 후회했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얀순이는 이제 그녀가 검을 집는 걸 기다려주지 않았다. 그녀는 매서운 찌르기로 그녀의 관자놀이를 노렸다. 기사는 몸을 굴려 그 공격을 피했으나, 그 탓에 검을 놓치고 말았다. 얀순이는 그녀를 향해 맹렬하게 돌진했고, 곧 일방적인 구타가 이어졌다.


허리, 가슴, 배, 이마, 어깨, 그녀의 내려찍기가 계속해서 그녀의 몸에 꽂혔다. 기사는 몸을 둘러싸며 소리쳤다.


"죄, 죄송합니다! 얀순 아가씨! 제가 잘못했어요! 제발 자비를!"


하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얀순이는 기사를 향해 몇십 번의 일방적인 폭력을 가했고, 곧 그녀가 실신하여 정신을 잃기 전에 목검을 치켜올려 내리찍을 준비를 했다. 기사의 눈이 흔들리며 눈물을 쏟았다. 목검의 힘이 점점 아래를 향했고, 단두대처럼 그녀의 미간을 향했다.


"꺄아아아악!!"


기사가 비명을 질렀다. 검이 내리찍혔다. 쩍! 둔탁한 소리가 났다. 얀순이는 조용히 검을 거두었다.


기사는 눈을 뜬 채로 기절하고 말았다. 그녀의 머리 옆엔 음푹 패인 구멍이 생겼다. 얀순이는 그녀를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다, 그녀가 쥐고 있던 목검을 그녀의 가슴 위로 집어던졌다. 벌벌 떨리던 그녀의 몸이 목검과 부딪히자 위로 크게 들썩였다. 얀순이는 기사를 그대로 방치한 채 연무장을 떠났다. 얀붕이의 숙소를 향해.


얀순이는 얀붕이를 호적수로 인정하고 있었다.

얀순이가 인정한 호적수를 모욕하는 놈들은, 얀순이를 모욕하는 것과 같았다.

얀순이는 얀붕이를 이길 것이다. 그 전까진 그 누구도, 얀순이에게서 그 영광스런 승리를 가로챌 순 없다.

이것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




원작자가 윾동이라 아직 얀챈에 있는지 확인하기가 거시기하고 대회 기간도 거의 끝나가길래 올렸음 미안

시간 없어서 두 편으로 나눠서 올릴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