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 설마 결계의 보수작업을 하던 도중에 당신이 휘말리게 될줄은 몰랐어.'


자신을 요괴들의 현자라고 자칭한 경계의 요괴는, 사소한 실수로 인해 나를 이 세계로 불러왔다고 했다.


현세의 사람들에게는 잊혀진 요괴들과 신들로 가득한 환상향.


이곳에서 나고자란 인간은 그나마 무녀의 보호를 받는다곤 하지만.


나같은 외부에서 흘러들어온 인간은 무녀조차 신경쓰지않는, 그야말로 요괴들의 먹잇감에 불과하였으니.


그런 위험한 세계로 오게만든 실수를 책임지기 위해서였을까.


'대신이라고 하기에는 뭐하지만... 당분간은 내 집에서 머무르는건 어떨까?'


한동안 나의 신변을 보호해주고, 살 거처를 마련해주겠다고 그녀는 말했다.


야쿠모 유카리, 경계의 요괴, 요괴들의 현자.


수많은 이름을 지닌 그녀의 모든 이름에서 한가지 변하지 않는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그녀가 환상향의 요괴들중에서도 상당히 강한축에 속한다는 것이었다.


그런 그녀가 다른 사람을 실수로 이쪽세계에 소환할 수는 있으면서, 다시 돌려보낼 방법은 없다라는 설득력 없는 말을.


나는 믿지않았다.


그래, 나는 처음부터 그녀를 믿지않았다.


처음에는 그저 나를 장난감, 혹은 실험용으로 불렀을거라는게 훨씬 더 타당하다고 생각했었고.


이후로 시간이 흘러 오해가 풀리고 그녀와의 마음이 점점 더 커져가게 되어 연인이 되었음에도.


그녀를 처음 보았을때의 어딘가 꺼림칙한 기분이 가시질 않아.


그녀에게 한가지 약속을 해달라고 부탁했었다.


우리들의 혼약이 이어지는 한.


내가 인간으로서 죽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처음에는 그녀가 분노할까봐 조금 걱정하였으나, 그정도는 당연히 들어줄 수 있다며 약조해주는 그녀의 모습에.


마음을 빼앗기고.


모든 불신을 잊으며.


차마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조차 못한채로, 그녀와의 사랑에 몰두할 수 있었다.


나의 수명이 다하기 직전까지말이다.













*     *     *



시야에 소복히 쌓인 눈이 들어왔다.


앞으로 몇번이나 이 풍경을 다시 감상할 수 있을까.


이미 체력이 떨어질대로 떨어진 몸으로는 눈밭을 뒹구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사치스러운 것이었다.


나에게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젊은 인간 아이들과 요괴들이 눈밭에서 노는것을 지켜보는 일뿐.


다소 아쉬운 감정을 뒤로한채로, 그녀와 처음 만났을때의 일을 떠올렸다.


그것은, 마치 지금처럼 눈이 잔뜩 내리던 겨울날.


"내가 당신을 환상향에서 처음으로 만나게 된 운명적인 날이었지."


"... 유카리씨."


"잠깐 옆에 앉아도 될까?"


뭐라 대답하기도전에 마루바닥에 걸터앉은 그녀는, 나의 얼굴을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부드러운 살결과 따뜻한 체온.


그것은 나이를 먹을수록 신체가 무감각해지는 나에게, 아직 살아있다는것을 깨닫게 해주는 행위였다.


"몸이 차갑네. 이러다가는 감기라도 걸려버리겠어."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공간과 공간을 잇는 통로, 스키마를 사용하여 따뜻한 차를 꺼냈다.


"지금의 당신의 나이에 감기라도 걸렸다가는 위험할수도 있으니깐.


... 아 그래도 너무 뜨거운것도 좋진않으니깐 조금은 식혀주는 편이 좋으려나?"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차를 식히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이 봤다면 그저 사이가 좋은 연인관계라고 생각할것이고, 과거의 나또한 그렇게 생각했었지만.


"아뇨. 이만 방에 들어가서 몸을 댑히는 편이 좋을것 같습니다."


"사양할 필요는 없어. 이불도 들고왔으니깐 둘이 덮고있으면 충분히 따뜻할거야."


지금은 그저 그녀가 불편할 따름이었다.


일찍이 그녀에게 부탁했던 '인간으로서 죽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 라는 약조.


처음에는 그저 그녀가 나를 실험체나 장난감으로서 생을 마감하게 만들지 않기 위해 한 약속이었으나.


지금에 와서는 우리들의 사이가 서먹해진 원인이 되었다.


그녀의 지극정성으로 천수를 누렸다고는하나, 인간의 수명에는 분명한 한계가 존재했고.


언젠가는 이별하게 될 운명이었으나.


"앞으로 천년만년 영원히 이런 날이 지속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녀는 그것을 원치 않았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당신?"


얼마전부터 나에게 영원한 삶을 강요하기 시작했다.


말이 좋아 영원한 삶이었지, 그것은 나에게 인간이기를 포기하라는것과 같았고.


아무리 그녀를 사랑하더라도, 그것은 쉽사리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나는 그녀를 설득하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기울였었다.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무한한 수명을 얻는것은 분명히 자연의 이치를 어긋난 행위이며.


저승에 가서는 씻을 수 없는 중죄로 재판받게 될것이었기에.


'우리의 혼약은 제가 인간으로서 최후를 맞이 할 수 있다는 가정으로 이루어진것이니.


유카리씨께서는 지금 혼약을 깨트리겠다는 말씀이신겁니까?'


그렇게 강하게 반협박에 가까운 설득을 해보았지만.


'닥쳐.


두번다시, 두번다시 혼약을 깨겠다는 말을 입에 올리지마!


... 만약 한번더 그랬다가는, 나도 당신에게 무슨짓을 할지 모르겠으니깐.'


그것은 마치, 손가락 하나로 나를 찢어죽일 수 있을정도의 위압감이었으니.


그녀와 만난 이후로 한번도 보지 못했던, 그녀의 요괴로서의 모습에 나는 두려워했으며


그날 이후로 그녀와의 관계는 어색해져버리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계속되는 권유는 끊이질 않았고.


만약, 그녀가 인간으로서의 삶을 포기하기를 계속해서 강요한다면.


아마도 나는 그녀와...


"생각이 많네 당신."


"... 유카리씨."


"요괴의 현자가, 당신을 행복하게 해주지 못할것같아?"


인간으로서의 삶을 포기하더라도 반드시 행복하게 만들어주겠다는 그녀의 말은 아마 진심일것이다.


그녀는 불행하게도, 지나치리만큼 나를 사랑했고.


내가 그것을 거부할 방법은 없었으니.


어쩌면 결국은 그녀의 방법을 따르게 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지금의 내가 취하는 태도는, 그저 시간을 벌기 위한 행동일뿐.


그것마저도 나의 수명이 임종에 다다를 즈음에는, 그녀가 물불을 가리지 않을것이기에 통하지 않겠지.


다른 변수라도 있지 않는한 말이다.


"이해가 안되네.


환상향에서 가장 강한 요괴가 당신의 편인데.


당신이 저승에서 재판받는 일은 일어나지도 않을텐데, 무엇이 그렇게 두려운걸까나."


네가 가장 무섭다는 말을 차마 입에 담지 못한채로.


"오늘 중으로는 답변을 해줬으면 좋겠어 당신."


나에게 건네주는 찻잔을 받으며.


"나는 결계의 보수를 하러 가볼테니깐, 무슨일이 있으면 나의 식신에게 말하도록하세요."


유유히 떠나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그저 지켜볼수밖에 없었다.


여전히 화상을 입을정도로 뜨거운 차를 손에 쥔채로.


그리고.


그녀가 떠난 직후, 새롭게 생겨나 시야에 들어온 결계의 균열을.


그 너머에 과거 자신이 살던 방의 풍경을 홀린듯이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