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전국시대의 얀순이가 보고싶다 1편

춘추전국시대의 얀순이가 보고싶다 2편

춘추전국시대의 얀순이가 보고싶다 3편


봄이 되자 양군은 평원에 진을 치고 서로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었다.


'공자를 어떻게 해서든 잡아야 한다. 그 정도의 능력을 가진 자가 초나라에 있다니 안될 말이지.

그자가 있으면 중원의 패자가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닐 터.'


자신에게 크나큰 패배를 안겨준 남자.

초연은 규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를 내 걸로 만들거야. 정치적으로도 염나라의 귀족가문과 결혼하는 것보다는 아예 다른 나라와

결혼하는 것이 왕권에도 도움이 될거고, 그리고 또....'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저번 포위전때 규가 자신에게 했던 말을 생각해보았다.


'남자에게 안겨본 적이 없다......안기면 그렇게 기분이 좋은 것인가? 도원향이 보일 정도로?

확실히 나는 남자를 모른다. 남자 몸은 글로만 배운 지라.'


성적인 모욕을 당했지만 초연은 불쾌하기 보다는 오히려 궁금했다.

그리고는 잠시 규에게 안긴 자신을 상상하며 헤실헤실 웃기 시작했다.



그때 정탐병이 들어와 보고했다.

"보고! 초군이 진격준비를 마쳤습니다."

"크흠!! 알겠다. 전군에게 출격준비를 내려라."


상처를 회복한 왕수 장군이 초연에게 보고했다.

"전하! 준비를 마쳤습니다."

"적의 규모는 어찌되는가."

"저번의 패배로 우리 군이 위축되긴 했으나 여전히 우리 군은 적의 2배정도 많습니다.

우리가 초나라에 비해 보병이 열세하나 우리도 장창병으로 무장해 버티기만 해도 자연히 적을 포위 가능합니다. 게다가 저번 첫 전투로 초군 역시 정예를 많이 잃어 절반이 농민병입니다."

초연은 잠시 생각하다 명령했다.


"학익진을 펼쳐라. 저들을 둘러싸서 조금씩 포위해 들어간다면 농민들은 알아서 무너질 것이다.

주력부대를 양익 끝에 배치하여 보강하고 적을 맞이할 준비를 해라."


한편 규 역시 보고를 듣고 있었다.

"알립니다! 적의 수는 우리의 2배입니다. 저들 역시 우리같이 장창으로 무장했습니다."

규는 잠시 생각하다 전군에 명했다.


"양익에 농민병을 배치하고 우리 주력은 가운데에 배치시킨다. 훈련한 대로 하면 능히 2배를 이길 수 있다."

"공자! 그러면 필히 양익이 무너지고 주력이 고립되게 됩니다!"

"시간이 없으니 잘 들어라! 내 계책을 말해줄터이니 다들 따르라!"


양군은 각기 세 개의 부대로 나뉜채 진격했고 마침내 서로 400보 앞으로 다가왔다.

초연이 말했다.

"양익은 저들을 완전히 포위할 때까지 싸우지 마라! 싸우지 않아도 저들은 자연히 무너질 것이다!"


규가 말했다.

"좌우, 그리고 중앙은 각자 진을 펼쳐라!!!"



초연은 진형을 보고 말했다.

"대단하군..."


왕장군이 말했다.

" 궁병이 화살을 쏘다 기병이나 보병이 접근하면 사각 방진 안으로 후퇴하고

창병과 검병이 그들을 보호하는군요. 대단한 전술입니다."


"게다가 사각 방진 끝에 궁병이 있으니 '서로의 사각을 보완해주면서 사격을 한다'라.... 멋지군.

하지만 저들의 탄약이 빠졌을 때 두 배의 숫자로 한번에 몰아치면 그만이다."



규는 초연의 의도를 간파했다.

"'싸우지 않고 우리의 탄약을 뺀 후 한번에 포위 섬멸한다.'라.... 학익진을 펼치겠다는 거군."

초나라 부장이 겁을 먹고 규에게 말했다.

"저들은 우리보다 두배가 많으니 무한히 버틸 수는 없습니다. 

게다가 대부분 보병이 농민군이니 곧 싸우지도 않고 도망갈 것입니다."

"겁먹지 마라. 우리군은 도망치지 않을 것이다. 학익진을 쓴다는 발상은 좋았으나 거기까지도 예상한 바이다."


염나라의 보병 1열은 방패를 들고 초나라 궁병의 화살을 비교적 성공적으로 방어해 내고 있었으니 초연은 미소를 지었다.

"이것 뿐입니까 공자? 이렇게 쉽게 지면 재미가 없습니다."


드디어 포위망이 완성되자 염나라군은 점차 원형을 이루며 초군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그때 때를 기다리던 규가 소리쳤다.

"중앙군은 대형을 풀고 적의 중앙을 공격해라!!"

그와 동시에 사각방진이 풀리더니 맨 안쪽의 병사들이 뛰어나왔다.


초연은 당황했다.

"방진을 풀어? 왜지?"


안쪽의 투창병들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고 뛰어나오더니 투창을 하기 시작했고 염나라 1열의 방패병들은 투창에 맞고 쓰러지거나 방패에 무거운 창이 꽂혀 방패를 제대로 들지 못했다.

방패병이 무너지자 곧이어 규는 정예 창병부대에게 명령했다.


"모두 적에게 돌격해라!!! 궁병대는 방패없는 창병들을 노려라!!!"

양군의 장창병이 맞부딪히자 곧 규의 노림대로 되었다.


염군이 포위를 하기 위해 길게 늘어서니 비교적 전선이 얇아질 수밖에 없었고 규는 그것을 간파한 뒤

중앙의 초연 쪽을 향해 일점 돌파를 시도한 것이다.


염나라의 장창병이 최대한 방진을 짰으나 이를 초나라 창병들 사이에서 튀어나온 방패와 검으로 무장한 검병이 창날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서 창자루를 검으로 자르고 적 방진으로 침투하기 시작하자 금새 염나라 중앙이 와해되기 시작했다.

애초에 양 끝에 주력병이 있는 염군은 정작 왕이 있는 곳이 초에 비해 병력 질이 열세였으니 병력 수준의 차이로 초연이 있는 중앙이 순식간에 뚫리고 있었다.


이를 본 염의 좌익과 우익이 당황한 사이 초나라의 나머지 부대들은 초연에게 지원을 가지 못하게 악착같이 적에게 달라붙기 시작했다.

"공자가 중앙을 뚫을 때 까지 버텨야 한다!! 그러면 우리가 이긴다!! 저들이 움직이지 못하게 막아라!!!"

결국 염나라의 중앙이 뚫리는 것을 본 염군은 싸울 의지를 잃었고 곧 버티지 못해 도망가기 시작했다.


왕장군이 초연을 피난시키며 말했다.

"주군을 지켜라!!! 퇴각!!!"



"염나라 왕을 잡아라!!! 저들을 놓치지 마라!!!"

초연이 다가오는 병사들을 보고 창을 들고 말했다.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지? 내가 쉽게 잡힐 것 같으냐!!!"

그리고는 달려드는 적을 척살하기 시작하니 초군이 주춤거리며 감히 그녀를 잡지 못했다.


규는 그 모습을 보고 감탄했다.

"과연 전장의 귀신이라는 별명이 괜히 붙은 것은 아니구나. 쉽게 잡기는 어렵고 곧 저들의 지원이 올 것이다. 하지만 그냥 보내지는 않겠다."

말을 마친 규는 활시위를 당겨 초연을 겨눴고 그녀를 향해 화살을 당겼다.


휘익!


"퍼억!!!"


"꺄악!!!"


바람을 가르고 날아간 화살은 그녀의 투구를 맞췄고 그 충격으로 투구가 벗겨진 초연은 휘청거리면서

긴 머리카락을 휘날렸다.


"주군!!!!"

"피하십시오!! 여기는 제가 버티겠습니다!!!"

염나라의 장군들이 결사적으로 버티며 그녀를 호위했고 그녀는 안전한 후방으로 빠져나갈 수 있었다.


초군은 얼마동안 추격을 하다 더 이상의 추격은 무리라고 판단하고 군을 물려 진영으로 돌아왔다.


패잔병을 수습한 초연은 막사 안에서 허탈하게 주저앉아 있었다.

"내가... 내가 이런 치욕을 당하다니... 어떻게 이렇게 허무하게...."

초연의 얼굴에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분해!! 분하다고!!! 그자는 나를 상회하는구나!! 나는 그에게 이길 수 없는 것인가?"

분에 못이겨 눈물을 흘리며 씩씩거리던 그녀에게 왕장군이 다가와 말했다.

"전하, 저에게 계책이 있습니다."

"뭐?"

"싸우지 않고도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는 서신을 건내주었다.



-염왕 초연에게-


그대의 무용과 지혜가 높으나 우리나라 서자놈 하나를 이기지 못하니 아쉽게 되었소.

그러면 그 놈 하나만 처리하면 되겠구려.


서자 놈이 내 자리를 위협하는 건 나에 대한 도전이니

나 역시 이런 짓은 하고 싶지 않았지만...


내가 그놈을 꺾게 도와 드리리다.

그 대가로 우리 서로 평화롭게 지내는 건 어떻소?


-초 왕세자 정-



초연은 편지를 읽고 아무 말도 없었다.

한참을 침묵하던 초연은 이내 주변을 모두 물린 후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다 결국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

초연이 한동안 미친 듯이 웃었다.



"하하하하하!!! 멍청한 놈!! 자기나라 군대와 지휘관을 팔아넘겨? 그렇게도 왕이 되고 싶은 거였나? 

나라 꼴이 참 잘 돌아가는구나!! 공자가 초를 지탱하는 대들보인지도 모르는 것인가?

그런 썩어 빠진 나라를 구하기 위해 노력한 공자가 너무나도 불쌍하구나! 불쌍해!"


웃음을 그친 초연은 미소를 지으며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며 얼굴을 붉혔다.

그러더니 품 안에서 어떤 병을 꺼내서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대는 내 곁에 있으면 됩니다. 내 것이 되세요. 공자"




한편 규는 그런 상황을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이번에는 세자께서 지원군을 보낸다고 하는구나. 본인은 뒤에서 보급을 도와주시겠다고!

그래. 이 얼마나 좋으냐! 나라의 위기에는 서로 도와야 하는 것이 맞는 것이다."


얼마 뒤 서신이 규에게 도착했다.


'네가 적을 유인하면 내가 지원군을 이끌고 뒤에서 기습을 하겠다.

그러면 능히 염왕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규가 지도를 펼쳐들고 미소를 지었다.

"저하께서 발전하셨구나. 그래 여기로 염왕을 유인하여 앞뒤로 공격하면 우리가 필히 이길 수 있다.

제장들은 곧바로 출진 준비를 해라! 적을 맞이할 준비를 하자!"


이 계획은 당연히 초연이 알고 있었다. 당연하지만 그 전술이 어리석은 세자의 머리에서 나올 리가 없었으니

곧 초연이 원하는 대로 되었다.

"그래요, 좋습니다! 내가 장단을 맞춰드리지요. 과연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공자가 어떤 표정을 지을지.

아아~ 너무나도 기대가 되는군요."


곧 정색을 한 초연은 왕장군에게 명령했다.

"장군은 기병을 이끌고 초군의 뒤를 공격할 준비를 하시오. 절대로 늦으면 아니될 겁니다."

"예 전하!"



며칠 뒤 두 군대는 서로 난전을 펼치고 있었다.

"퇴각하라!!! 전군은 대열을 갖춰 뒤로 물러나라!!!"

규는 적이 함부로 추격하지 못하도록 질서정연하게 군을 통솔해 뒤로 물러났다.


"참... 대단하군."

초연이 감탄했다.

"저정도로 군을 통솔할 수 있다니. 대단합니다."


말을 마친 초연은 전군에게 명령했다.

"전군!! 적을 쫒되 교전을 금한다! 저들을 추격해라!!"


한편 규 옆에 있던 대장군 성신이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적이 우리를 쫒기만 하지 공격하지 않습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규 역시 의아했다.

"과연... 우리가 물러남에도 기세가 꺾이지 않았음을 눈치 챈 것이로군. 하지만 저들이 추격을 멈추지 않으니

오히려 교전으로 인한 손실이 없는 편이 우리에게는 이득이다. 

힘을 비축해 두었다가 앞뒤로 포위섬멸하면 그만."


한참을 퇴각하던 규는 약속지점에 도착했다.

"전군!! 다시 공격해라!! 적을 묶어라!!!"

초군은 다시 대열을 갖추어 적에게 돌격했다.


"강하구나! 왕장군이 올 때까지 막아야한다!"

생각보다 강한 공격에 초연이 살짝 당황했으나 곧 뒤에서 왕수의 기병대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공자!! 큰일났습니다!! 뒤에서 염나라 기병대가!"

"뭐라고! 전군!! 다시 방진을 형성해라!! 지원군이 올 때까지 버텨야 한다!!!"

빠르게 방진을 형성했으나 염나라 기병대가 쇄도하여 좌익을 공격하자 그만 좌익이 무너지고 말았다.


"큰일이다! 지원이 왜 오지 않는 것인가? 어째서?"


그때 왕수가 크게 웃더니 규에게 말했다.

"공자 규는 듣거라!!!"

왕장군이 창으로 규를 가리키며 말했다.

"너희의 세자가 너희를 팔아넘겼다! 그 작전이 과연 어리석은 세자에게서 나왔다고 생각하느냐! 

우리 왕께서는 다 알고 계시니 이젠 끝이다! 무의미한 저항을 끝내고 항복해라!"

규는 그제야 상황파악이 되기 시작했다.


"그...그럼 우린 배신 당했다는 건가? 아군에게? 어째서 이럴수가 있느냐! 

어머니가 다르다고 해서, 왕위를 경쟁하는 사이라고 해서 우리 군을 이렇게 쉽게 적에게 내준다고! 

아아...초나라는 결국 망하려는가!"


그럼에도 규는 포기하지 않았다.

"전군!! 우리는 여기서 죽더라도 한 놈이라도 더 죽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염나라가 그대들의 가족을

죽이고 부녀자를 겁탈하겠지!! 그런 최후를 맞지 않으려면 지금 여기서 적에게 최대한 피해를 주어야 한다. 

알겠느냐!"

이에 초나라 군사들이 처절하게 저항을 시작했고 쉽게 무너지지 않자 초연 역시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병사들의 피해가 커지는군... 이를 어찌한단 말인가?"

그때 왕장군이 초연에게 도착하여 말했다.

"한쪽의 포위를 풀고 일부러 달아나게 두십시오."

"그러면 공자를 놓치지 않을까?"

"아닙니다. 곧 공자를 잡을 수 있습니다. 두고 보시지요."


한쪽의 포위가 느슨해짐을 발견한 성신이 규에게 말했다.

"공자!! 저쪽으로 도망가시지요!"

"무슨 소리요! 그럼 이 병사들은 어찌하고!"

"일단 우리부터 살아야 하지 않습니까!!"

"장군만 가시오! 나는 여기서 죽겠다!!! 이들과 함께 명예롭게 초나라인으로 죽겠다!"

그러자 휘하의 병사들이 눈물을 흘리며 규에게 말했다.


"공자는 어서 가십시오!"

"그러지 마라! 무엇을 하는 것이냐!"

규를 탈출시키려고 노력하며 초나라 병사들이 달려드는 염나라 군을 막아섰다.


"공자! 어서 가십시오! 천하는 일개 병사들보다 공자를 필요로 합니다! 어서요! 

저희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하십시오! 저희의 복수를 해주십시오!"

"크윽!!! 절대 그대들을 잊지 않겠다!"

처절하게 길을 뚫으며 죽어가는 병사들의 비명소리를 뒤로 한 채 규는 피눈물을 흘리고 탈출했다.


겨우 탈출한 규와 성신, 그리고 성신 휘하의 10명의 기병이 동굴에 머무르기 위해 들어갔다.

"이럴수가... 우리는 본국에게 버림받은 건가?"

"......공자"

"장군... 이제 어쩐단 말인가?"

말을 마친 규가 잠시 목을 축이기 위해 개울가로 나가자 성신이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다가 휘하 병사에게 눈짓을 보냈다.


"공자! 미안하오!"

"무..무슨 짓이냐!! 이거 놓지 못할까!"

"어짜피 우린 끝이오! 돌아갈 곳도 없단 말이오! 

당신을 염왕에게 바치면 나..나는 살려주지 않을까? 오..오히려 상을 내릴지도 몰라."

성신이 비열하게 웃으며 규에게 말했다.


"이 배신자 놈!! 네놈이 그러고도 초나라 사람이냐!"

"닥..닥쳐!! 난 죽고 싶지 않아!!"

그리고는 규를 포박하여 염나라 진영으로 투항해버렸다.



"공자를 모셔오거라."

초연이 군영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규를 보기 위해 나왔다.


"참 안타깝게 되었소이다. 공자"

초연이 비릿하게 웃으며 말했다.

"......"

규가 입술을 깨물었다.


잠시뒤 포박된 채로 끌려온 성신이 버둥대며 외쳤다.

"제..제가 공자를 잡아온 공이 있으니 저..저는 살려주시지요!"


고개를 돌린 초연이 성신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그대의 공이 크니 내가 너를...."

그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뱉던 성신에게 초연이 말했다.




"살려둘 줄 알았느냐? 배신자 놈."

그리고는 단칼에 성신의 목을 베었다.


성신의 목이 힘없이 툭 떨어지고 초연이 그 시신에 침을 뱉으며 말했다.

"난 배신자에게 관대하지 않아. 주인을 한번 배신한 개새끼는 또 다시 배신하는 습성이 있거든...

안 그렇소 공자?"


혐오스럽게 시체를 바라보던 초연은 회자수(처형인)에게 말했다.

"여봐라, 주인을 배신한 나머지 10명도 모두 거열형에 처하고 이놈을 포함해 그 시신들을

군영에 걸어놓거라."


회자수가 시신을 끌고 나가자 표정을 바꿔 미소를 띄며 초연은 규에게 다가갔다.

"말이라도 해보시지요. 제가 이 날을 참 오래 기다렸습니다."


초연을 노려보며 마침내 규가 말했다.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건 그때의 만남 이후로 처음이군요. 공주"

"그렇군요 공자."

"그때의 공주는 사라지고 내 앞에는 오직 피로 물든 잔인한 여인 하나만 보일 뿐이오."


옆에서 장군들이 일갈했다.

"네 이놈! 전하께 무례하다! 다시 그 입을 놀린다면 몸 어디 한 군데를 불구로 만들어 주겠다!"


"다 조용히 해... 나 대신 말하지 말도록."

초연이 장군들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러자 장군들은 다 입을 다물고 조용히 규를 노려볼 뿐이었다.


"패장인 이상 무슨 말을 하겠느냐! 어서 죽이거라!"

"죽여? 내가? 왜?"

"닥치고 죽여라! 더 이상 나를 욕보이지 마라!"

초연이 품에서 서신을 꺼내 규의 눈앞에 들이댔다.


"초나라 세자란 놈이 보낸 편지요. 한번 잘 보시구려."


편지를 읽은 규는 분노로 몸을 떨었다.

"처음부터 세자는 나를 죽일 생각이었구나. 원통하다! 

내가 죽어서도 귀신이 되어 세자 네놈이 곱게 죽게 두지는 않겠다!"


초연이 서신을 찢어버리고는 규에게 말했다.

"공자, 이런 썩은 나라를 위해서 분골쇄신한 보람이 없지 않습니까.

나는 공자의 재능이 이렇게 사그라드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내 말을 잘 들으시지요."

초연은 규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염나라로 오십시오. 우리가 함께라면 중원의 지배자가 될 수 있습니다."

"거절한다. 나는 죽더라도 초나라의 귀신이 되겠다."

한숨을 쉰 초연은 부하 장수에게 질문했다.


"우리가 잡은 초나라 병사가 몇 명인가?"

"약 6000명 정도 됩니다."

"두 번 말하는 것은 내 성미에 안 맞습니다. 공자는 내 사람이 되세요."

"병사들에게 무슨 짓을 하려는 거요!"


초연이 정색하면서 말했다.

"내 말에나 대답해! 아니면 그들 모두를 죽일 거야! 당신 눈앞에서 일일이 한 명씩 찢어 죽이겠어!"

"그들은 죄가 없소! 그냥 나를 죽이거라! 초의 백성들은 살려줘!"

"말을 못 알아 듣는군. 주위는 듣거라!!! 저들 모두 죽...."



"그만!!! 항복하겠소!! 그러니 제발 저들을 죽이지 마시오!"


규는 고개를 떨구고 눈물을 흘렸다.

"크...크흑... 이런 치욕을..."

초연이 이제야 만족한 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제야 말이 통하는군요. 공자를 모시고 나가거라."


"포로들은 어찌할까요? 우리 군의 보급이 모자라 저들을 데리고 갈 수는 없습니다."

"속옷만 남기고 모두 벗긴 후 풀어주어라. 저들은 이제 필요 없다."

병사들이 규를 끌고 나갔고 초연은 군을 철수할 준비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