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으음...음..."
해가 지평선에 살짝 걸친 새벽 시간 쯤에 눈이 떠졌다. 다친 곳은 아직 다 낫지 않은 듯 찌뿌둥한 것이 여전했지만, 그래도 눈을 뜨지 못하는 것보단 훨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몸을 살짝 일으켰다.


뜨자마자 가장 먼저 확인한 건 이오리의 상태.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이오리는 아직 눈을 뜨지 못한 채, 내 가슴팍에 고개를 깊숙이 파묻고 새근새근 자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다할 문제 없이 잘 자고 있는 모습에 안심이 됐지만, 이미 마음 속 깊게 박혀버린 안타까움은 그런 이오리의 모습을 봤음에도 쉽사리 없어지지를 않았다.


피로가 어찌나 쌓였기에 이리 깨어날 기미도 없이 곤히 눈을 붙이고 있는 것일까.

날 꽉 쥔 이 자그마한 손들이, 이오리에게는 얼마나 큰 걱정과 근심의 표시였을까.


그런 생각들을 하니, 이오리에게 괜한 걱정을 시킨 내 자신이 너무 바보 같았고 미안하기만 하였다.


"....미안하구나, 이오리."

지금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남아있는 한 손으로 이오리의 머리를 가볍게 쓸어넘겨 주는 것.

뒤척임에 괜히 깨지 않게끔, 자세를 고쳐 이오리를 다시 품에 품어주는 것 외에는 당장 할 수 있던 것이 없었다.


"으으..응... 선...생님..."

그러는 동안에 다행히 깨지는 않았지만, 자는 와중에도 내 이름을 부르짖으며 손을 쭉 뻗어다는 것은 여전하였다, 마치 한시라도 떨어지기 싫다는 듯.


그나마 한숨 덜었던 점은, 아까는 불안에 빠져있던 표정으로 하염없이 나를 찾았더라면, 이번에는 은은한 미소를 얼굴에 피운 채 나를 느슨하게 부르고 있다는 것.


...무슨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는 몰라도, 날 부르며 미소를 짓고 있다니, 꿈 속의 나는 이오리와 함께 뭘 하고 있는 것일까 사뭇 궁금해졌다.


"무슨 꿈을 꾸고 있을 지.. 궁금하네.. 선생님도.."

꿈 속의 나는 분명 미소를 짓고 있겠지. 그야, 이오리와 함께 하는 순간인데 어떻게 미소를 잊을 수가 있겠어.

아깝네, 나도 그 꿈 속으로 들어갈 수만 있었다면, 너와 함께 꿈 속에서 이것저것 많은 것들을 하며 미소를 지었을 텐데.


뭐 그래도, 이오리가 행복하면 그만이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조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난 이오리가 이 미소를 쭉 잃지 않은 채로 잠에서 깼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그래야, 꿈 속의 또다른 내가 바라본 그 미소 섞인 표정을, 현실의 나도 직접 두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니까.

꿈 속에서 그리던 꿈을, 현실에서 이룰 수 있게 되니까.


....그런 소소한 바램같은 것들을 가슴 한 켠에 간직하고, 나의 그러한 바램이 꿈에서도 전달될 수 있게끔, 이오리를 꼭 끌어안은 채로, 나는 곧 다시 잠에 들었다.

.
.
.

눈을 붙인 후 약 2시간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 무렵에 다시금 눈을 떴다.

해가 저 위로 올라간 것, 지저귀는 샛소리가 밖에서 살짝 들려오는 것 외에는 딱히 변한 게 없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을 때쯤에.


내 품 안에서 얄팍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잘.. 잤어..? 선생님..?"


이오리의 그 목소리가 얼마나 듣고 싶었는지. 하루를 계속 곁에 있어도, 안심이 되지 않았단다. 계속 보고 있었음에도, 또 계속 보고 싶었을 뿐이었단다.


고개를 내리니, 보이는 것은 날 빤히 올려다보는 이오리였다. 아쉽게도 바램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날 바라보는 이오리의 생기 가득한 붉은색의 눈이, 연분홍으로 살짝 물들인 두 볼들이, 그 미소를 대신해 주었다.


"응, 이오리도 잘 잤니?"
짧고 간결하게 보낸 말이지만, 그 말에 미소를 보탠다면, 딱딱한 감정이 아닌 부드러운 감정을 함께 보낸다면, 그 한마디가 너에게 얼마나 많은 것들을 표현할 수 있는 지.

사랑을, 걱정을, 그리움을, 기다림을, 기쁨을, 안심을.


"....응.."

그 짧은 말 하나에도, 나는 너무 고마웠다.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내게 있어 신이 내려주신 은총이나 다름 없었다.



폭탄에 몸을 던졌을 때, 나는 죽음을 각오했다. 희생을 각오했다. 찾아올 지옥을 각오했다. 영원한 죗값을 각오했다. 단 하나, 이오리가 살기만을 빌면서.


머리 속엔 삶이 아닌 죽음이라는 단어만을 읊었던 어리석은 내 자신은, 홀로 남겨진 이오리의 말로를 결코 생각하지 않았다.

자기의 무모한 선택이 선생님을 죽였다는, 그런 죄책감에 평생을 시달리며 죽도록 고통스러워 할 뻔한 이오리를.

아무도 없는 옆을 공허하게 바라보며, 살았지만 사는 것 같지가 않은 그 허탈함에 점점 마음이 시들어 갈 뻔한 이오리를.


...때문에 신은, 그런 내게 자비를 내리셨다. 그 누군가의 마음은 생각하지도 않은 채 자기 멋대로 희생하려 든다면, 남을 남기고 혼자 떠나려 한다면, 홀로 남겨진 그 이의 마음은 어떤 심정이겠는가.

그런 이를 도와주지 아니하고 떠나버리는 것은, 오히려 죄목은 몸집을 키운 채 내게 다가오게 될 것이니.


그렇기에 신은 나를 구원하셨다.



"....미안해.. 선생님, 미안해... 흐윽.. 나 때문에.. 나때문에...."

..이오리는 죄책감에 사로 잡혀 있었다. 그나마 살아있기에, 이렇게 옆에 있었기에 망정이었지, 만약 내가 결국 버티지 못했더라면, 그 죄책감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불어났겠지.


혼자 남겨진 이를 두고 매정하게 도피하려 하다니, 어찌 그런 천벌 받을 짓을 할 수가 있단 말인가.

난 떠나지 않을 것이다. 이오리를 포함해서, 내겐 아직 나를 필요로 하는 이들이 곁에 있으니까.


"괜찮단다, 이오리. 미안하다는 말 하지 마렴, '나 때문에.' 라는 스스로를 죄책감에 빠뜨리게 하는 말도 하지 마렴. 선생님은 선생으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을 한 것 뿐이란다."

"내가 즐거울 때면, 그 즐거움을 학생들에게 나눠주는 것이."

"학생들이 슬퍼할 때면, 힘들어할 때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떠오를 때면, 그 고통을 나눠 갖는 것이, 그 고통 속에서 해방되는 길을 마련해주는 것이, 그러는 동안 스스로 방패를 자처해 언제까지든 막아주는 것이, 선생의 마땅한 역할이란다."

"선생이 되서 그러지 않는다면, 그걸 어떻게 선생님이라고 부를 수가 있겠니? 어떻게 학생들과 눈을 마주칠 수 있겠니?"


말은 꽤나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끼친다. 일상 생활 속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은 말이 누군가에게는 욕이 될 수가 있고, 누군가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버팀목이 되어줄 수도 있다.

말 한마디가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이 괜히 있겠는가. 그만큼 말이 가진 힘이 방대하기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자기를 생각해주는 그 따뜻한 한마디에, 힘을 낼 수 있다, 울 수도 있고, 웃을 수도 있다.


 "...선생님...."

그러니 안심해도 된단다, 이오리. 너와 함께 이렇게 있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축복이고 가호이니.

그리고, 선생이라는 책임감 하나만으로 널 구하려 했던 것만은 아니란다. 내가 이오리의 선생이 아니였더라도, 난 너를 구하는데에 목숨을 다했을 거야.


내가 그러고 싶었으니, 그저 널 구하고 싶었으니, 너를 소중히 여기는 이가 슬피 우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으니 말이야.

 
"...흐흐읍...흐으아아앙.... 선생님... 선생님....."

울고 싶으면 마음껏 울어도 된단다. 아까도 말했듯이, 학생의 슬픔을 나눠갖는 것은 선생의 마땅한 역할이니까.


이오리가 울지 않을 때까지 곁에 있어주는 것이, 선생이 아닌 또다른 내가 스스로 맡은 역할이기도 하니까. 

.
.

계속 이렇게 선생님과 함께 있고 싶었어. 이 따뜻함을, 이 편안함을 그 잘못 하나로 영원히 못 느낄 뻔 했다고 생각하니 더더욱.


여전히 내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선생님을 보며, 눈물만 흘릴 뿐이었어. 이렇게 날 생각해주는 그 이를, 나를 위해 자기 몸 따윈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던지는 그 이를.. 나는 계속.. 그렇게...


..난생 처음으로 선생님을 꽉 끌어 안았어. 환자에게 폐를 끼치는 몰상식한 행동임에도, 선생님은 불편한 기색 하나 없이 미소를 띄운 채로 내 머릴 조심스럽게 쓸어넘겨 주었어.


..선생님의 손은 더할 나위 없이 부드럽고, 기분 좋았어. 하나 밖에 남지 않은 팔임에도, 그 남은 팔 하나 마저 내게 이리도 쉽게 내어주다니, 어째서 선생님은.. 자기 목숨을 끊을 뻔한 원수에게도.. 이렇게 친절할 수가 있는 거야?


내 잘못이 아니라 말하는 선생님이지만, 학생을 위해 헌신하는 건 당연한 것이라 말하는 선생님이지만, 그런 선생님의 따스한 말 하나하나가 내게는 너무나도 아리게만 다가왔어.


겉모습만 어른이라고 매도하던 그 때의 내 자신을, 죽으라는 말을, 그에 준하는 욕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그에게 내뱉은 내 자신을, 선생님의 말에 불만을 품고, 나 혼자 독단으로 행동하던 그 때의 내 자신을.

저주하고 싶었어, 가차없이 뺨을 때리고 싶었어, 그러는 내 자신을 스스로 매도하고 싶었어.


하지만 그럴 순간에도, 선생님은 날 막아주겠지.

너무 자기를 몰아 세우지 말아야 한다는 말을 했음에도, 또 바보같이 말을 안 듣고 자학하기 시작하는 나를, 또 다시 막아주겠지, 또 다시 지켜주겠지.



*똑똑..*   *끼이익...*


"아, 선생님 잠깐만 실례하겠습니다."


"이오리 씨, 죄송하지만 이제 이오리 씨 병실로 돌아가셔야 합니다, 아직 이행되지 않은 치료도 많거니와, 이 곳은 선생님을 위해 마련한 개인 환자실입니다."


"여기 있고 싶으면 계속 있어도 된단다, 아니면 갔다가 또 언제든지 찾아와도 되니까, 이오리."



...미움받아 마땅한 나를, 그대가 나를 밟던, 욕하던, 머리를 뜯던, 뭘 하던 간에 아무 말도 내뱉을 권리 조차도 없는 나를, 그저 따스히 품어주는 당신을.



"..선생님, 죄송합니다만.. 선생님이 괜찮다고 하셔도 여기에 이오리씨를 그대로 두고 갈 수는 없습니다. 개인마다 배정된 환자실이 있기도 하고, 혹시나 모를 감염 위험도 있을 수 있기에 철저한 원칙에 따라 행동해야 합니다."


"...아, 미안.. 그럼 이오리, 나중에 치료가 다 끝나고 만나야ㄱ"



"....싫어... 싫어싫어싫어... 떨어지고 싶지 않아.. 선생님.. 제발... 나.. 나... 선생님이 곁에 없으면..."



"...이오리..?"



좋아해서, 좋아하고 죄스러워서, 죄스럽고 동경해서, 동경하고 사모해서.



"안됩니다.. 저도 이러기는 싫지만... 환자실 규범 상 어쩔 수 없습니다. 두 분의 안위를 위해서 이러는 것이니.. 부디.."


"힘을 빼셔야 합니다, 그래야 제가 이오리 씨를 개인 병실로 빠르게 이동시킬 수 있고, 혹여나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가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힘 빼세요. 이오리 씨."


"이..이오리.. 이럴 때는 어쩔 수 없이..."


"....돌아가셔야.. 한다구요...!!! 이오리 씨..!!! 계속 이렇게 나오시면.. 선생님도.. 이오리 씨의 몸도 위험해지는 수가 있다고요!!!"



"싫어... 싫어.. 싫어싫어싫어!!! 이거 놔!!! 놓으란 말이야!!! 선생님!!!!! 선생님!!!!!!!!!! 떠나지 말아줘!!!!!! 안돼..!! 안돼안돼안돼..!!!! 이거.. 이거 놔.. 이거 놓으란 말이야아아아...!!!!!!!!"
 


"잠깐!!! 이오리씨!!! 진정하세요!!! 진정하시라구요!!!!!! 이거 놓으란 말ㅇ... 끼야아아악!!!!!!!"


"이오리..!? 이오리..!!! 잠깐..잠깐 진정해...!!!!!"


*우탕탕탕!!!!!*    *탁탁탁..!!*



당신 곁에서 늘 사죄할 날만을 그리며, 그대가 내게 무슨 짓을 하던, 다만 그것이 나를 고통에 몸무림 치게 하더라도, 내가 그대에게 했던 추악한 짓거리에는 발끝에도 못 미치기에.



"으으읏..."


"OO!? 괜찮아!?"



"선생님...선생님선생님선생님선생님...."



"아..아으으... 괜찮습니다, 살짝 넘어진 것 뿐이에요."


"...하아, 그보다... 이오리씨의 상태가.. 좋지는 않아 보이네요... 아무래도, 그 때의 기억이 계속 떠오르나 봅니다."


"...일단은 선생님 옆에서 계속 경과를 지켜봐야할 것 같습니다. 지금 당장은 뭘 하기엔 많이 위험한 것 같아요."


"...어쩔 수 없네, 진정되기 전까지는.. 계속 같이 있을 수 밖에.."


"...하아...선생님, 죄송하지만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응? 어떤 부탁?"


"...불편하실 수도 있겠지만, 뭘 하던 간에 이오리 씨를 항상 곁에 두셨으면은 합니다."


"방금, 선생님하고 강제로 떨어뜨리려 했을 때 이오리 씨의 표정은.. 여태껏 제가 응급의학부 생활을 살면서 처음 보는 표정이었습니다."


"공포와 절망감, 그리고 그 외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들이 한 되 뒤섞여 표출된 표정.."


"...죽음을 가까이 둔 존재에게서도... 그런 표정을 보지 못했습니다."


"왠지.. 굉장히 불길하고, 위험하다... 라고만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니야, 어쩔 수 없지, 솔직히 말해서, 이오리랑 계속 같이 있는 것이 나나 이오리한테나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으니, 난 오히려 괜찮아."


"...죄송합니다, 선생님. 괜한 부탁을 청해서.."


"아냐아냐, 난 진짜 괜찮으니까. 얼른 가서 일 봐, 바쁜 와중에 찾아와 줘서 고마워."


"...이오리 씨를 잘 부탁드립니다, 선생님. 주기적으로 상태를 체크하러 올 테니, 따로 뭔가가 있기 전까지는, 이렇게 계속 이오리 씨 곁에 있어주십시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응, 고마워, 나중에 또 봐."



".....이오리..."



"미안하구나... 정말....."



..그럼에도 송구할 따름이니, 그대의 앞이던, 뒤던, 그림자의 끝자락이던 무엇이던 상관 없으니, 그저 곁에서 영원토록 머무를 수 있게 하소서.


그대의 존재 곁이 아니면, 난 살 명분도 없는 무가치한 존재임을 스스로도 알고 있나니.




"선생님선생님선생님선생님선생님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