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이하준

나이는 28세다.

전역하고 바로 이 업계에 발을 들였으니 연차로 따지면 베테랑이라 할 수 있는 8년 차다.

 

“운이 좋았지.”

 

낡지만 아직 쌩쌩한 경차의 핸들을 돌리며 첫날을 생각했다.

갑작스레 돌아가신 부모님과 억 단위 빚.

아직 어리기만한 두 동생.

한순간에 가장이 된 두 어깨는 무겁게만 느껴졌다.

 

“동생들 대학도 보냈고 이제 나만 잘하면 되는 건가…”

 

빨간 불에 핸들을 잠시 놓고 휴대폰을 봤다.

직업이 직업이기에 짬이 날때마다 즐겨찾기한 연예 뉴스을 눌렀다.

그리고 내 눈은 더 없을 만큼 커졌다.

 

『최고의 스타 배우 김예진. KIH 엔터테인먼트의 품으로!』

『김예진이 여태 무소속을 고집한 이유는?』

『김예진의 차기 작품 「내 품속의 너」는 무슨 작품일까?』

 

파란불로 바뀌자 얼른 휴대폰을 놓았다.

엑셀을 밟고 떠오른 생각에 눈이 잠겼다.

 

“그래서 대표님이…”

 

리듬에 맞춰 손가락을 핸들에 딱딱 맞춘다.

잠시 후 아현동 위치한 사옥에 도착했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경비원에게 인사하며 널찍하고 깔끔한 입구 안으로 발을 들였다.

안은 바깥에서 본 것 마냥 크고 넓었으며 대리석으로 돼 깨끗했다.

 

‘적응이 안 되네. 그 자그마한 회사가 벌써 이렇게 커지다니.’

 

7년 전만 하더라도 사옥이라 하기 민망할 정도로 누추했다.

이사한 지 1년도 지나지 않아서 적응이 덜 됐다.

안내 데스크로 걸어가자 밝은 미소의 여직원이 고개를 숙였다.

 

“하준 씨 어서 오세요. 대표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알고 계시죠?”

“아 네.”

 

사람들 사이에 부대껴 10층을 누르자 잠깐 시선이 주목됐다.

9층까지 오르자 모두 내렸고 나 혼자만 남았다.

 

-10층입니다.

 

엘리베이터에 내리자 여러 문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보였다.

 

「대표실」

 

비싸보이는 손잡이를 잡으며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와.

 

끼익.

문을 열자 넓은 사무실을 홀로 사용하고 있는 남자가 보였다.

고급스러운 중역 의자에 몸을 기댄 그는 살아남기 힘든 틈바구니에서 한순간에 업계 톱으로 올라선 이 회사의 창립자 김인혁 대표다.

40대지만 실제로 보는 느낌은 더 건강하고 젊어보였다.

 

“자리에 앉지.”

“예.”

 

김인혁은 오른쪽에 놓인 쇼파 가운데 자리에 앉았다.

나는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옆쪽 사이에 앉았다.

 

“휴가는 잘 보냈어? 인상이 확 좋아졌는데.”

“신경 써주신 덕분에 잘 보냈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니야. 내가 더 고맙지. 이 회사가 커지는데 자네 덕도 크잖아.”

“아닙니다. 대표님께서…”

“하준 씨.”

 

김인혁은 내 말을 끊고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나는 묵묵히 곧 나올 말에 귀를 기울였다.

 

“동생들 뒷바라지하고 대학 보냈지? 그거 아무나 못해. 자기 몸 챙기지도 못하는 사람이 수두룩 태반이야. 아니 그것도 못하는 사람도 많지.”

“….”

“이번 매니저 일만 맡아주면 매니징팀 팀장으로 올려줄게. 어때? 해줄 수 있겠어?

 

가슴이 두근두근거렸다.

그 은근한 말이 드디어 내 능력과 성과를 인정받은 것 같아 뿌듯했다.

나는 아침에 본 기사를 떠올렸다.

 

“김예진 씨 말씀하시는 거죠? 대표님.”

“응. 이번에 겨우겨우 설득해서 체결했어. 하준 씨도 업계 소문 들어서 알잖아.”

“네. 엄청 까다롭고 성깔이 장난이 아니라고…”

“그거 감당해줄 사람이 우리 회사에 하준씨 말고 어딨겠어? 하하하!”

 

김인혁은 내 손을 잡고 두드렸다.

 

“이번만 고생해줘. 자넬 믿고 김예진 데려온 거니깐.”

“알겠습니다. 대표님.”

“대답 시원해서 좋네! 이만 들어가 봐. 하준 씨.”

“예.”

 

나는 인사를 하고 방을 나왔다.

문이 닫히자 김인혁은 쇼파에 머리를 묻었다.

 

“순진해서 써먹기 참 좋아. 능력도 어느 정도 있고.”

“하지만 내 사람을 밀어놓고 쓸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매니징팀 팀장엔 이미 자신의 친척 동생 김윤재가 있다.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다.

 

“아깝지만 여기까지 써먹어야지. 매니저 10년 동안 승진도 없이 박봉에 남을 리도 없을 테고.”

 

김인혁은 위스키를 꺼내 컵에 한 잔 따라 들이켰다.

그리고 바닥이 드러난 위스키를 깔짝거리며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하단 말이지… 그 까다로운 배우들이 개가 매니징만 하면 잡음이 없어지니… 참 아까워.”

 

그리고 잔에 남은 몇 방울을 입안에 탈탈 털어놓았다.

자린고비였던 그에게 낭비란 없다.

뼛속까지 빨아먹는 것이 그의 장기이자 특기였다.

 

 

 

 

* * * * *

 

 

 

‘드디어 승진이구나.’

 

3층에 멈춘 엘리베이터를 나오며 설렘이 멈추지 않았다.

사실 이직 고민도 많이 했다.

더 좋은 회사에서 좋은 제의도 많이 왔었다.

 

‘참길 잘했지. 잘했어.’

 

업계에 첫발을 들인 자신을 받아준 김인혁과의 의리.

자신의 회사가 커가는 것을 보며 느꼈던 애사심 등이 옮기는 걸 주저하게 만들었다.

매니징팀 사무실 문을 열며 작고 누추한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웬일이야? 싱글벙글 미소나 짓고.”

“어? 그랬어?”

 

옆자리에 3년 후배지만 나이가 같아 말을 놓은 오규민이 말을 걸었다.

머리에는 스트레스성 탈모가 마음을 아프게 했다.

 

“기분 좋은 일 있으면 공유하고 그러자. 난 요새 힘들어 죽겠다.”

 

난 피식 웃었다.

 

“언젠 배우 전향한 아이돌 맡아서 그렇게 좋아했으면서.”

“애도 그럴 줄 몰랐다. 눈에 씐 콩깍지 다 떨어짐. 지가 공주인 줄 알아.”

“그래. 그런 일 많지.”

 

대중에게 비치는 이미지와 완전히 다른 연예인들이 많다.

매니저 일을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그 사람의 본성을 알게 된다.

오규민은 미안하단 듯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너만 하겠냐. 처음엔 괴팍하기로 악명이 자자한 서시은, 위아래 개념 없기로 유명한 유설아에다가…”

 

오규민이 다가와 속닥였다.

 

-이번에 계약한 김예진도 너한테 맡기는 거 아니야?

 

나는 조용히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오규민이 경악했다.

 

“미쳤네! 대표님이 널 왜 그렇게 싫어하신다냐? 이쯤 되면 나가라는 거 아니야?”

“규민아.”

 

나는 아무도 들리지 않게 속닥였다.

 

-이번까지만 맡으면 팀장으로 올려주신대. 약속했어.

“뭐?! 진짜?”

“야, 목소리가 너무…”

 

그때 가운데 넓은 자리를 차지한 뚱뚱한 30대 남자 김윤재 몸을 일으켰다.

 

“야! 오규민! 조용히 안 해?!”

 

오규민은 헉 하는 표정을 짓고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팀장님.”

“여기 너만 쓰는 공간이야?”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이하준. 너 일로 와봐.”

 

반말을 찍찍 내뱉는 이 남자.

이름도 못 들어본 회사의 경력을 인정받아 운 좋게 이곳 팀장으로 들어왔다.

내가 다가오자 김윤재는 인상을 찌푸렸다.

 

“대표님께서 휴가까지 내줬는데 오랜만에 들어왔으면서 인사도 없이 그렇게 실실 웃냐?”

 

…보고 있었나?

하지만 동료들과의 사이는 원만하다.

그 누구도 하는 일도 없이 유튜브만 보면서 월급을 축내는 이 상사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조금만 참자. 저 자리가 내 자리가 될 거니깐. 대표님이 그걸 염두해두고 저 사람을 내치려고 하는 거겠지.’

“죄송합니다. 인사를 드리려 했는데 늦었습니다.”

 

김윤재는 혀를 찼다.

 

“회사 생활 그 따위로 하지마. 자리로 돌아가.”

“…예.”

 

속이 부글부글했지만 얼굴은 무표정했다.

사람을 다루는 직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표정관리다.

자리로 돌아오자 오규민이 미안해하며 소곤거렸다.

 

“야 미안하다. 나 때문에…”

“괜찮아. 그것보다 안 늦었어?”

 

오규민이 손목시계를 봤다.

시간은 9시를 넘어갔다.

 

“말 안해줬으면 늦을 뻔했네. 그럼 나 공주님 스케쥴 데리러 간다. 그 말 진짜지?”

“물론이지. 조심히 가.”

“팀장 되면 더도 말고 나 최하나에게 꽂아줘. 응?”

 

최하나는 사글사글하기로 유명하다.

상급자,하급자 할 것 없이 친절하고 예의가 깊어 우리들끼리 ‘천사’로 통용되고 있다.

 

“자리 비면 하는 거 봐서.”

“오케이~”

 

오규민은 신난 발걸음으로 사무실을 나갔다.

 

‘시켜준다는 말도 아닌데 신났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때마침 내 휴대폰이 울렸다.

 

010-81XX-XXXX : 1시에 스케쥴 생겼어요. 내 집으로 와요.

 

대표실을 나오고 비서에게 김예진의 개인정보를 받았다.

번호가 일치한 걸 확인하고 저장했다.

 

<나> :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김예진> : 늦지 않게 와요.

<나> : 예.

 

‘성격이 대체 얼마나 깐깐한 걸까.’

 

지금까지 그런 여배우들을 도맡으며 케어해왔다.

하지만 최고의 인기 스타는 이번에 처음 맡는 것이다.

자신감과 걱정 두 가지를 느끼며 나는 사무실을 나갔다.

 

 

 

* * * * *

 

 

 

-늦었네요. 빨리 오라고 했을 텐데요?

“예?”

 

으리으리한 개인 저택의 호출벨을 누르자 스피커에서 들린 소리가 이거였다.

 

‘문자 받자마자 바로 차 타고 왔는데… 이 사람은 내가 슈퍼맨인 줄 아나?’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 됐어요. 차 앞에서 기다려요.

 

대문이 열리고 나는 쭈뼛쭈볏 안으로 들어왔다.

안은 정원처럼 잘 다듬어져 있었다.

나는 그것을 신기하게 구경했다.

 

‘회당 몇 억을 받으면 이 정도 집에서 살 수 있구나. 대단하네.’

 

차 앞에서 기다리라는 말은 곧 나온다는 뜻이다.

하지만 1시간이 지나도 현관문은 열리지 않았다.

 

‘…좀만 더 기다려보자.’

 

잠시 후 현관문이 열렸다.

긴 흑발에 롱을 준 여자는 먼 발치의 느낌만으로 스타란 존재감을 느끼게했다.

 

‘확실히 다르다. 내가 여태 맡았던 여배우들과는…’

 

김예진은 천천히 다가오며 툭하고 차열쇠를 내게 던졌다.

명중률은 형편 없어 내 앞에 데구르르 굴렀다.

난 그걸 허리로 숙여주웠다.

 

“강남역 테헤란 빌딩으로 가줘요.” 

‘늦었단 사과는 없는 건가.’

“알겠습니다.”

 

엄청 비싸보이는 검은색 SUV의 운전석에 올라탔다.

김예진이 멀뚱히 바깥에서 나를 쳐다봤다.

 

“뭐 하는 거예요? 문 안 열어줘요?”

‘…….’

“예. 죄송합니다.”

 

나는 자리에서 내려 뒷좌석의 문을 열어줬다.

김예진은 머리를 뒤로 넘기며 올라탔다.

다시 돌아와 운전석에 앉자 김예진이 말했다.

 

“처음이니깐 봐주는 거예요. 두 번 말하게 하지 마요.”

“예.”

 

나는 차를 조심히 몰았다.

이런 사람들은 지형 때문에 덜컹거리는 것조차 분명 나를 탓하고 욕할 것이기 때문이다.

 

‘쉽지 않겠는 걸.’

 

아무리 억울하고 부글거려도 티를 안내야 한다.

나는 무표정을 유지하고 차를 몰며 카페로 향했다.

다행히 김예진은 나에게 관심을 두지 않고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종종 인상을 찡그리거나 푸는 게 관찰하는 재미가 있었다.

휙.

김예진이 갑자기 고개를 들고 쳐다봐 바로 고개를 돌렸다.

 

“방금 나 쳐다봤죠?”

“…안전 벨트를 매지 않아서 말할까 하다가…”

“흥. 당신이 운전을 똑바로 하면 사고 날 일도 없겠죠?”

 

그 까칠한 태도와 차가움은 확실히 다르다.

난이도가.

 

“…예. 조심하겠습니다.”

 

그렇게 스케쥴이 있는 장소인 테헤란 빌딩에 도착했다.

빌딩 앞에 차를 대고 고개를 조심스레 돌렸다.

 

“도착했습니다.”

 

김예진은 그제야 휴대폰에 눈을 떼 옆을 돌아봤다.

그리고 지갑을 꺼내 카드를 내게 내밀었다.

 

“편의점 가서 바나나 우유, 커피, 빵 종류별로 몇 개 사와요.”

 

나는 시간을 확인했다.

12시 58분이었다.

 

“스케쥴이….”

 

김예진은 눈썹을 찡그렸다.

 

“내 말에 말대답 하지마요. 알았어요?”

“…예. 알겠습니다.”

 

카드를 받아들고 멀리 떨어져 있는 편의점으로 뛰었다.

거기서 시킨 대로 봉투에 잔뜩 담아와 다시 차로 뛰어갔다.

 

‘이거 뭐 빵셔틀도 아니고…’

“헉헉….”

 

호흡을 가다듬으며 김예진에게 봉투를 내밀었다.

김예진은 봉투에 든 내용물을 확인하고 말했다.

 

“빨대.”

“…예? 헉… 헉…”

“빨대 없으면 나 못 먹어요. 사오라고 시켰으면 가져오는 건 기본 아니예요? 참나.”

“…죄송합니다. 지금 가져오겠습니다.”

“됐어요. 일 못하는 매니저님 붙여준 회사 잘못이죠. 그만 들어가죠.”

 

김예진은 준비한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꼈다.

그리고 가만히 있었다.

 

‘내, 내가 문을 열어줘야 되는구나!’

 

드르륵.

서둘러 문을 열자 김예진이 당연하단 듯 일어서 나오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 뒤를 쫄래쫄래 쫓아가며 마음속 깊이 한숨을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