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데리고 나의 거처로 돌아왔다


그리 가까운 거리는 아니였기에 결국 지쳐 잠들어 버린 그녀를 업어서 데려왔다


붉은 색의 강물이 흐르고, 죽은 흙이 가득한 산


뿌리내린 고목들은 고요하게 죽어가고 있다


이끼를 먹은 비석들이 여기저기 박힌채로 더이상 이름 불러줄 사람도 남지 않은 자들이 쉬고 있는 곳


"오랜만이구만"


늘 강자를 찾아 다녔기에 거처라곤 하지만 찾아온 것은 오랜만이였다


시산혈해(屍山血海)의 마경


이제는 하나의 무덤만 더 생기면 완성될 것이다












거처는 공기가 좀 탁한것을 빼면 모두 멀쩡했다 아마 마지막으로 걸려있던 유지마법이 아직 유효한듯 했다


하나뿐인 침대에 그녀를 눕히고 누더기나 다름없는 갑옷을 벗겨냈다


갑옷은 더이상 재기불능이지만 다행히 그만큼 본신의 상처는 그리 깊어보이진 않았다


"가호는 전부 벗겨졌고, 성검은 더이상 작동하지 않는건가"


성검은 막대한 성능을 가진만큼 제약도 크다


아마 마왕을 베어낸 시점에서 점점 다시 봉인되어 갔던걸테지


가호는 아마 성녀의 짓일 것이다


성녀가 가진 권한중엔 이단을 파문시키는 것도 있다 적당한 타이밍에 그녀를 파문해 버린것일거다


뒷감당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 말그대로 그녀를 전심전력으로 배제하려고 한 것일거다


선반에 있는 약들을 꺼내 그녀에게 사용했다


아무리 가호를 잃고 성검도 잃었다고 해도 한때는 용사라는 업을 가졌던 그녀다


평범한 인간과는 그릇 자체가 다르다, 지금은 비어버렸지만 금방 채워 나갈것이다


그녀를 용사로 택한건 그녀의 운명이였다고 해도, 결국 그길을 걸어 마왕살해라는 업을 달성한건 그녀의 선택이다


여전히 그 혼을 가지고 있다면, 오히려 예전보다 더 강해지며 일어날 것이다


창밖에 보이는 주인없는 무덤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일어났는가 와서 한숟가락 들게나"


"으음....응..."


그녀가 일어난건 해가 거의 저물어갈 무렵이였다


식탁위엔 스테이크와 흰빵, 과일 같은것들이 잔뜩 올려져 있었다


"....직접..차린거야?"


"내 요리를 먹었다간 도로 저기 누워야 할걸세"


"이 식탁보는 만찬회라고 하는 기물일세, 재료를 미리 저장해두면 언제든 최고급 요리를 내놓는다네"


식탁에 진수성찬을 눈앞에 두고 망설이는 그녀를 다시 재촉했다


"어서들게, 먹어야 힘을 쓸테니"


"....잘..먹겠습니다"


그제서야 재촉을 못이긴 그녀는 음식을 입에 가져다대기 시작했다


"흐음!"


잠시지만 머리카락까지 솟아오른 듯한 리액션을 보인 그녀는 이내 다급하게 음식들을 입에 가져가기 시작했다


만찬회라는 이름답게 이 음식들은 개인의 취향에 맞는 맛을 보여준다


당연히 굶주린 상태에서 그런것들을 맛본다면 저리될것이다




















식사를 마치고 그녀를 다시 침대에 눕혔다


"너의 몸은 지금 텅빈 그릇일테지만, 균열이 가있다 당분간은 회복에 전념하거라"


"....나..아무것도 안했어....쉬어.?"


"아무것도 안하긴, 마왕을 베었던건 누구인게냐, 충분히 잘했다"


"......진짜?"


쉬라니깐 쉬지는 않고 쉰소리만 하는 그녀의 머리를 손으로 푹 눌러 쓰다듬어 주었다


"진짜다"


"......알겠어..."


애초에 몸속은 범인이면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엉망이였다 그녀정도 되니 다시 검을 잡을 수준이 되는거다


잠시뒤, 그녀가 잠든걸 확인한뒤 검을 들고 집을 나섰다


아무래도 부나방들이 꼬인듯 하니깐






















젠장! 젠장! 어쩌다가 일이 이렇게 되어버린거지? 마경 수색일 뿐이였는데!


다죽어가는 년 하나 잡아오면 된다고 하더니! 괴물이 있잖아!


이번 수색에 참여한건 죄다 어느 마경을 가도 수색뿐만 아니라 공략까지 해낼수 있을 최상급 인원들이였다


한팀을 고용하는 금액만 해도 왠만한 소영지의 기사단 운영자금이 부럽지 않을 금액이였다


그런 팀만 무려 넷, 심지어 보조를 위해서 붙은 팀이 다섯이니 총 인원이 50명은 넘어가는 규모였다


그 괴물이 검을 뽑자마자 전부 목과 머리를 이별시켰지만!


"어?"


계속 달려 도망치던중 시야가 갑작스럽게 고꾸라졌다


당황한채로 다리는 방금 발을 디뎠던 땅위에 그대로 서있었다


다리가 잘렸다


잘린 이순간, 잘린걸 보고 있는데도 잘렸다는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깔끔하게 다시 가져다 대면 붙지 않을까란 착각조차 들었다


그리고 그뒤에서 검붉은 검을 든 괴물이 다가왔다


"물어볼게 있다고만 했는데 그리 열심히 도망치면 어쩌나"


"잘리지 않았어도 될 다리까지 잘리고 말일세"


그것은 진심으로 안타깝다는 듯한 말투로 말하며 내게 다가왔다


"어디 대화할 준비는 좀 되었는가?"


"네! 네! 무엇이든지! 답하겠습니다!"


"의욕 넘치는게 보기 좋구만"


살기위해 고개를 미친듯이 끄덕였다 그러자 그것은 만족스러운 듯이 웃었다


가까이서 보니 알수 있었다 저것은 검이 아니다 검의 형상을 한 죽음이였다 저런 것에 죽는다면 죽을수 있을리가 없다


"자, 누가 보냈는가?"


"윗선! 윗선이라고 들었는데, 그러니깐 본적은 없는데 황국의 거물이라고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렇구만, 여기는 왜 온게지?"


"어떤 다죽어 가는 소녀 하나를 잡아오라고 했는데! 가지고 있는건 회수하고 시체라도 상관없다고!"


"아아 이제 되었네 대충 알겠구만"


그것은 내말을 다 듣고 뭔가가 생각났는지 미묘한 웃음을 보였다


"저,저는 이제 가도 될까요?"


"음? 아, 가보게나"


"네!"


그것은 검을 도로 검집에 넣었다


살았다는 안도감이 차오르려던 찰나


"자네는 편하게 보내주겠네"


"네?"


그것이 특이한 손동작을 한채 휘둘렀고


세상이 뒤집어졌다












"용사를 잡는다가 아니라 소녀라는게지"


아무래도 이 토사구팽 건은 공식적이진 않은 듯 했다


세간에는 그녀의 얼굴은 알려지지 않았었다 늘 투구로 가린채였으니깐, 그녀의 얼굴을 아는건 고위층이나 얼굴을 보고도 살수 있는 실력자일테지


그런 생각을 하며 누위있는 그녀에게 다가가 상태를 살폈다


"으...으음.."


그녀는 자고 있었지만 상처 때문인지 그리 편안해 보이진 않았다


그런 그녀를 가만히 지켜보다 머리위에 손을 얹어 쓰다듬어 주었다


이런 소녀를 용사라고 치켜 세우며 막대한 업을 지게 하더니, 이제는 해악 취급하고 있다


'넌 결국 처참히 실패할것이다'


'우린 더 나은 사람이 될수 있다'


세상은 무엇하나 바뀐것이 없다


그렇기에 그녀가 아니면 안된다, 내 목을 베어줄 상대로는 그녀가 적임자다


그것을 위해서라면, 한동안은 육아를 해야할 것 같다


그녀의 얼굴은, 한결 편해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