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오셨지요?

 저는 얀순 미술관의 큐레이터 얀진 이라고 합니다!

 입장에 앞서, 저희 미술관은 행위 예술도 전시하고 있으니, 귀중품이나 파손되기 쉬운 물건은 미술관에서 운영하는 보관함에 맡기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또한, 연인이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릴 것 같으신 분들은, 이동 간 입구에서 나눠드린 안대를 연인분께 미리 씌우시길 바랍니다.


 입장하실 땐 오른쪽 통로를 이용해 주시고, 전시품과 1m 떨어져서 관람해 주시길 바랍니다.

 가끔 연인 분들이 "어떤 전시품"을 보고 미쳐 날뛰는 경우가 있는데, 각자의 무기를 사용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저희 미술관 직원은 모두 특수한 훈련을 거쳐, 도망치는 연인분을 아주 쉽게 되찾아 드릴 수 있으니, 근처 직원에게 문의하신다면 15분 안에 분실물 보관 센터에서 찾아가실 수 있습니다. 추가로, 분실물 보관 센터는 미아 보호소도 겸하고 있습니다.

 저희 미술관은 실종자, 분실물 포함 그 어떠한 물건도 장기 보관품이 없는 걸로 유명하니 그 점에 관해선 안심하시길 바랍니다.

 그럼 사전 설명도 충분하겠지요? 첫 번째 테마로 입장합니다!


각자의 추모

 첫 테마는 "추모"입니다.

 저희가 천년만년 서로를 사랑하지만, 그렇다고 천년만년 살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런 현실적인 문제에 대하여 각자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를 보여주는 전시관입니다.


 허물

 맨 처음 보이는 이 작품은 카세트테이프와 CD, USB가 쌓여 있죠? 카세트테이프에 묻혀 못 볼 수 있는데, 밑의 초석은 CD로, 꼭대기엔 USB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개인적으론 크리스마스 트리 같아서 조금 귀엽네요. 이 작품은 카세트테이프 187개, CD 18장, USB 256GB 두 개, 10TB 한 개 해서 총 208개로 이루어진 기록 미술품입니다.

 기존 얀데레 기준에 반하는 다다이즘 작품으로써, 현재까지도 수없이 많은 테러를 받았으나 단 한 개의 데이터 손실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굉장하죠? 8년 전에 출품되어 현재까지도 수많은 화제를 불러 모은 문제아기도 합니다.

 테이프 안엔 서로가 어렸을 적 찍었던 영상들과, 사랑하게 된 계기가 담겨 있고 CD안엔 경쟁자를 밀쳐내고 고백하기까지의 과정을 담았으며, USB안에는 결혼 이후 생활이 담겨있는 고전적인 작품입니다.

 사실, 이 작품의 출품자도 제작자 분의 연인분이십니다. 그 때문에 다다이즘이기도 하죠. 우리는 이 작품 출품 이후 "방목형 얀데레"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창설했습니다. 그 정도로 포스트모더니즘의 거두시기도 하죠.

 사실 거두라 해도, 첫 작품의 인상이 너무 강렬해서 그렇지 대외에 전시된 작품은 이 작품과 마지막 작품 딱 두 개밖에 없으십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아쉽긴 해요.

 네? 네 맞습니다. 마지막 작품은 성지 중 하나인 대구 외곽 순환 도로 옆 명당에 위치한 동반 봉분입니다. 많이들 알고 계시네요.

 그러면 자유로운 감상 즐겨주시길 바랍니다. 전시물에는 직접 손 대실 수는 없지만, 작품 옆의 디스플레이 안에 영상과 사진들을 시간 순으로 정리해 두었습니다.


우리

 두 번째 작품은 꽤나 직설적인 작품입니다. 보관고와 인큐베이터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과학자 얀순 분께서 직접 제작한 작품입니다. 첫 번째 열에는 작가분과 그 연인분의 클론세포가, 그 밑열에는 29세에 자신의 난소에서 모든 생식세포를 뽑아내어 모두 연인의 정자로 만든 수정란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클론세포는 각 8쌍씩 있으며 수정란은 총 381개가 있습니다. 고전적인 형태의 문학을 과학으로 실현시킨 작품으로써, 낭만주의 기조를 풍기는 예술품입니다.

 별 다른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해석의 여지가 없다는 게 이 작품의 단점이지만, 오히려 해석의 여지가 없다는 게 장점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해설사들이 싫어하지만, 일반인들이 좋아하는 작품들 중 하나죠.


아무도 잠들지 못한다

  세 번째 작품입니다. 약간 아리송한 분들도 있을 테고 눈치 빠른 분들은 알아 봤을텐데, 이 작품은 유명한 오페라의 패러디 작품입니다. 네순 도르마라고 하죠? 이 작품은 저희가 수습하여 전후사정을 파악하여 붙인 작품명입니다.

 이 작품에 얽힌 사연은 이렇습니다.

 구애하던 얀순이가 하나 있었다. 그녀는 부모의 반대라던지, 신분의 차이 등 여러 장애물을 헤치고 얀붕이의 사랑을 얻는 데 성공했지만, 사랑을 성취한 얀붕이는 얀순이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았다. 그래서 얀순이는 얀붕이를 얻기 전처럼 정열적인 사랑을 하기 위해 얀붕이 앞에서 타 죽었다.

 감동적인 사연이죠?  그래서 이 작품은 저희 미술관에서 절대로 팔지 않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저희 미술관이 가진 철학 중 하나이기도 하죠. 저희는 이 작품을 소개할 때 마다 자칫 소외받을 수 있었던 작은 이야기를 밝힐 수 있어 기쁩니다. 저희가 이 업무에 자부심을 느끼는 이유 중 하나기도 합니다.


회랑


밝은 별

 다음 테마로 향하는 회랑이 나왔네요. 다들 천장을 올려다 봐 주세요. 천장화가 매우 아름답죠? 이 작품은 현재는 하늘의 별이 되신 유명 화가 정상이님께서 만든 작품입니다. 그림을 만든 물감이 특별한데, 바로 작가님과 그 연인분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은행나무의 색깔이 조금 탁하죠? 저 부분은 작가 얀순님의 쓸개로 칠했고, 중앙에 있는 가장 큰 단풍은 작가분과 그 연인분의 피를 섞어 만든 물감이라고 합니다. 특수 도화지에 그리고 삼중코팅으로 처리하여 추후 3000년간 풍화되지 않을 것이라 예상합니다.

 참고로 그림은 작품의 소재가 되신 얀붕님과 얀순님이 여름방학이 끝나는 날 서로 불러내어 동시에 고백한 모습을 관찰자 시점으로 그려낸 것입니다.

 네, 질문 있으신가요? 네네, 아까 손 드신 분. 정상이님과 얀순님의 관계가 어떻게 되냐구요?

 좋은 질문입니다. 정상이님은 얀데레 사회와는 전혀 상관없는 분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 작품의 작가분들이신 얀순님과 얀붕님의 소꿉친구기도 합니다. 동시에 어릴 적에 얀순님께 얀붕님을 양보하신 둘도 없는 친구 사이입니다.

 정상이님의 평범한 작품은 알지만 친구관계는 모르시는 분들이 많으셔서 잘 알려지지 못한 작품이기도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