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요."


그녀가 내게 말한다.

지긋지긋한 나날이었다.


특별히 인기가 많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사람 하나는 좋았다는 말을 종종 들었기에 주변 평가는 나쁘지 않았다. 간간히 호구 잡히는 일도 종종 있었지만, 내 주위에는 좋은 사람들이 많았고 그들은 나의 조언자이자, 친구가 되어 주었다.

그리고


그 중에는 나의 동반자가 될 '뻔한' 그녀도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초점 없는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영원히 사랑할 거예요, 떨어지지 않을 거예요. '어떤 모습'이라도 좋으니까.."


소름이 끼쳤다.

나는 자신이 없다.

더 이상 그녀를 사랑할 자신도, 사랑하고 싶지도 않다.


단지 그저, 이 순간이 지나갔으면

지나가고 아무 일도 없었으면.


"아무 말도 하지 않네요?"


그녀는 나를 무척이나 사랑했다.

못생기고, 가족으로부터 버려진 그녀에게 사회는 냉정했다.

주변 사람들은 그녀를 차갑게 대했지만, 그녀는 항상 웃는 활기차고 얼굴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그래, 자신의 마음이 깨어지든 말든, 진심이 아님에도 그려진듯한 얼굴을 언제나 입꼬리를 말아올리며 초점이 없는 눈동자로.

항상 사람들에게 내쳐지고 채이는 와중에서도 그녀는 밝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 모습에 끌렸던 탓일까?

나 역시도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다. 삶에 지쳤기에 외모보다는 마음을 보고 싶었다.


그리고 관계는 머지 않아 파국으로 이어졌다.

그녀가 가진 마음의 상처는 상상 이상이었고 나는 그녀를 품어줄만한 그릇이 아니었다.


그리고 오판에 대한 결과는


"이러지 마, 제발."


"싫어요,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면.."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결국 내가 한 대답은.


"미안해."


"그렇군요."


그와 동시에 절벽에서 그녀가 추락한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절벽에서 내가 본 그녀의 마지막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콰쾅!


"아악!"


번개가 머리위로 내려친다.

짜릿한 감각이 몸 안을 파고든다.

그리고

나는 그 자리에서 의식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선생님?"


"아.."


키보토스에서 깨어난 지 그로부터 며칠이 지났다.

흥미가 돋아서 시작한 게임에 들어와 있는 건 아직도 실감이 안 난다.

그래도 지금은.


"조금은 자각이라는 걸 해주시면 안 될까요?"


"후후, 미안해."


내가 미소짓는다.

그 미소에 유우카는.


"모, 몰라요 정말. 그렇게 뻔히 바라봐도.."


부끄러운듯 미소짓는다.

그 수줍은 미소에 나는 그녀에게 대답하는 대신 미소로 돌려주었다.

비록 전생에서는 안 좋게 죽었지만, 후생에서는 나에게도 기회가 있는 건 아닐까?


그렇게 생각했다.

점심에 먹을 햄버그 스테이크를 미리 머릿속에 그리며.

나는 그렇게 일상을 살아간다.


***


"좋아, 낙승!"


발키리 학생 중 하나가 쾌재를 부른다.

평범한 발키리의 학생 중 하나인 그녀가 마지막 남은 스케반 중 하나를 쓰러뜨렸다.


"정말이지.. 그렇게 나쁜 짓을 안 하면 어디가 덧나는 걸까?"


"그래도 일이 정말 쉽게 끝났지?"


쓰러진 스케반들을 아랑곳 하지 않은 채 재잘거리는 그녀들.

그 중에는 초점 없는 눈동자의 포니테일 스케반도 하나 끼어 있었다.


"어째...서.."


그를 만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만날 수 없었다.

'그 능력'을 가진 존재로 태어나고도.


"안녕!"


팔을 흔들며 인사하는 선생님, 아니다.

분명 저 사람은.


'그리운... 목소리...'


"어, 선생님이다! 안녕하세요!"


"항상 고생이 많아, 오늘도 수고하렴!"


'선생...님이라고?'


짧은 인사를 남기고 지나가는 '선생님.'

그의 모습이 사라지자, 그의 목소리에 움직일 리 없는 스케반의 다리가 멋대로 움직여, 일어난다.

그리고


"세상에, 저 녀석.. 다시 일어났어!"


"사, 살려... 다리가... 멋대로..."


"뭐라고?"


스케반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마치 자신의 몸이 자신의 것이 아닌 양, 흐물흐물, 좀비처럼 움직이던 그녀는


웁!

가까이로 간 발키리의 학원생에게 입을 포갠다.

그리고 입 안에 약간의 '액체'가 흘러든다.


"꺄악! 너 이게 무슨 짓이야!"


발키리 여학생은 깜짝 놀라서 스케반을 떨쳐낸다. 그리고


"으윽, 머리가.."


"괜찮아?"


"응, 난 괜찮아."


두통을 호소하던 기색은 온데간데 없이 다른 여학생에게 미소짓는다.

마치 그려진 듯이, 그리고.


"남은 아이들은, 먼저 수고해줄래? 나, 선생님에게 볼일이 있어서."


"알았어. 아니 잠깐만!"


그리고 그녀는 초점 없는 눈을 한 채 선생님에게 걸어간다.

한 줄기의 비명과 좀비처럼 일어난 스케반들에게 덮쳐지는 그녀를 홀로 둔 채.


***


부타부타 돈까스 본점은 오늘도 어김없이 사람들로 북적인다.


"어서옵쇼!"


오늘도 어김없이 손님을 맞이하는 돼지 얼굴의 주인장.

돼지가 돼지를 튀기다니 정말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지만, 이곳이 키보토스인 만큼 그걸로 모든 걸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고 오늘도 수고 많으십니다!"


주인장이 선생님에게 넉살 좋은 인사를 건넨다.


"몇 사람입니까? 아, 혼자 오시지 참."


"거, 혼자 왓다고 그렇게 강조하진 마십쇼, 슬퍼집니다."


"하하, 농담입니다. 그래도 양손에 꽃다발 아닙니까? 왜 학생들하고 안 오시고."


"제가 원래 좀 고독한 늑대라서요."


"고독한 늑대는 무슨! 진짜 고독한 애인 없는 늑대를 눈앞에 두고 뭐하는 겁니까?"


당신은 눈 앞에 있는 돼지잖아요, 라는 말이 순간 생각났지만, 선생은 참기로 했다.


"늘 먹던 걸로 하나, 그리고 500cc 한 잔."


"이 사람보게 선생이라는 사람이 낮부터 술을?"


"짜피 걸리지만 않으면 그만이긴 합니다."


"하하, 뭐 저야 좋지만, 그래도 조심하십쇼. 이곳은 학생들이 많이 들리는 곳은 아니지만, 가끔 미식을 좋아하는 분들이 오긴 오니까요. 자칫, 다른 학생에게 보이기라도 했다간."


"듣기로는 분점 하나 날려먹었다고 하는데 괜찮습니까?"


"어우 말도 마요! 그 미식 아가씨들 보통이 아니더이다."


이런저런 시시껄렁한 말을 섞는 도중에 띠링, 소리가 들리고 발키리 학생 중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크, 호랑이도 제말하면 온다더니."


"에이 텼다 텼어. 사장님 술은 물려주세요."


"유감이구만."


술을 마실 수 없다는 마음에 선생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래도 다음에 올 때는 챙길 수 있겠지.

근데.


"안녕하세요, 선생님. 자주 뵙네요."


어느 새 옆자리에 앉은 학생이 말을 걸어온다.

마치 예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다는 듯이.


"제니구나, 좀 전에 인사했었지? 뭐라도 하나 사줄까?"


"그것도 좋겠네요. 하지만, 그 전에 선생님. 뭐 하나 잊어버린 거 없으세요?"


"잊어버린 거라니?"


"예를 들면.. 옛 애인이라든지."


그려진듯한 미소를 짓는 제니.

음영이 짙게 드리운 얼굴 아래에 있는 눈에는 한 줌의 초점조차 맺혀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