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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엄의 조용하고 정돈된 세미나 부실. 그 안에서는 파란색 머리의 소녀와 순백색 머리카락을 가진 소녀가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래서, 게헨나와 트리니티의 의료 기술로는 한계에 부딪혀서,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건가요?"


세미나의 서기, 노아가 약간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미네에게 말했다. 미네는 잠깐 세리나에게 선생을 맡기고, 밀레니엄과의 교섭을 위해 출장한 참이었다.


"하지만... 곤란하군요. 물론 저도 선생님의 소식은 들어서, 도움을 드리고는 싶지만..."


노아는 곤란함을 숨길 수 없는 표정으로 미네에게 말했다.


"곤란함이 있으신가요?"


"네. 좀 많이요. 일단, 밀레니엄엔 의료에 특화된 동아리가 없거든요. 양호실은 물론 있지만, 게헨나나 트리니티처럼 큰 전투나 부상에 유의미한 기여를 할만한 동아리는 없어요."


노아는 밀레니엄의 정보가 담긴 노트를 톡톡 건드리며 말했다.


"가능하다면 세미나 자체적으로 도움을 드리고는 싶지만... 예산은 항상 모자란데다, 리오는 잠적한 지 오래고, 코유키는 반성실에 있고... 유우카는, 병원 앞에서 소요를 벌이는 모임에 동참하다가 해산되어서,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네요."


"...밀레니엄에도 구호가 필요한 상황이군요. 그리고 당신도 많이 피곤해 보이는데, 구호가 필요하겠군요."


"아하하, 마음만은 감사하지만, 이건 저희가 해결해야 할 일이라서요."


"그렇습니까. 그래도 구호가 필요하다면 불러주십시오. 구호는 언제나 어디서나 찾아가야 하는 법이니까요."


"흐음, 그렇지만 분명 구호가 필요하신 분은 선생님이실 거에요. 어떻게든 돕고 싶습니다만..."


노아가 고민에 빠진 사이, 조심스레 닫혀있던 세미나 부실의 방이 쾅 소리와 함께 열렸다. 노아과 미네가 그 소리에 뒤를 돌아보자, 그 곳에는 레일건을 등에 멘 푸른 눈의 소녀가 있었다.


"빰빠카빰! 용사 아리스! 이 곳에 등장했습니다! 유우카는 놀아줘야 합니다!"


"아, 예상치 못한 손님이 오셨네요. 미안하지만 유우카는 지금 이곳에 없어요. 아리스."


"에? 어디로 간 것입니까? 모모이와 미도리, 유즈는 선생님을 보러 가야 한다면서 저보고 부실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혼자는 심심합니다! 아리스! 부실에서 같이 놀 상대가 필요합니다!"


"흠. 노아 씨?"


무언가 떠오른 듯, 미네는 노아에게 말을 걸었다.


"왜 그러시죠? 미네 씨?"


"제게 좋은 생각이 났습니다."


미네는 노아에게 조용히 말했다. 아리스는 노아와 미네를 번갈아 보면서 의아해 했다.


"아리스! 노아 씨와 그 옆에 푸른 머리를 가진 분이 나누신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저만 빼놓고 얘기하는 건 반칙입니다!"


"별로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에요. 그보다 아리스 씨에게 할 말이 있어요."


노아는 아리스의 질문을 짧게 일축했다. 대신 할 애기가 있다는 뉘앙스를 풍기며.


"아리스 씨도 선생님을 보고 싶지 않나요?"


"물론입니다! 아리스! 선생님을 만나고 싶습니다! 게임개발부에서 저만 빼고 선생님을 보러간다니, 치사합니다!"


"그럼, 만나게 해드리죠."


질문을 한 것은 노아였지만, 대답을 한 것은 미네였다.




"빰빠카빰! 퀘스트에 성공했습니다! 아리스는 선생을 만났습니다!"


선생이 있는 병실의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아리스였다.


"아아... 또다른 여신님이시군요. 부디, 미천한 저에게 성무를 내려주십시오."


선생은 늘상 그렇듯이 아리스에게 허리를 깊게 숙여 절을 올렸다. 물론, 그 절을 받는 아리스의 표정은 의문이 가득했다.


"에? 선생님, 성무가 무엇입니까? 그리고 선생님은 보통 저를 만났을 때 쓰다듬습니다! 허리를 숙이는 것은 새로운 패턴입니다! 끄앙! 외워야 할 패턴이 늘었습니다!"


그 말에 선생은 눈빛이 변했다. 마치 자신이 큰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죄, 죄송합니다! 여신님! 평소에도 저 같은 미천한 이를 책임지신다는 중한 임무를 맡고 있는데, 제가 부담을 드리다니, 죄송합니다! 여신님! 저를 처벌해서, 이 불경함을 씻어내 주십시오!"


선생은 두 손을 모아 아리스에게 기도를 바쳤다. 그러나 정작 그 기도를 받아드는 아리스는 어리둥절한 모습이었다.


"에? 잘 모르겠습니다. 끄앙! 신규 패턴이 잔뜩 나오고 있습니다! 큰일입니다! 그래도 선생님의 새로운 패턴이라면 얼마든지 환영입니다!"


아리스의 반응에 이번에는 선생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새로운... 패턴? 그러니까... 패턴이 늘어나면 여신님께 부담이 되는 것입니까? 그런데 환영이라니... 여신님, 미천하고 아둔한 저는 여신님의 뜻을 잘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주제넘고 불경한 짓입니다만, 그 패턴이라는 게 무엇인지, 가르쳐주실 수 있습니까?"


선생의 말에 아리스는 두 손을 허리에 갖다 대고 아주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선생님은 병원에서 많은 것을 잊어버리신것 같습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지금까지 아리스는 선생님께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선생님에게서 많은 것을 배운 지금의 저라면, 분명 선생님을 가르칠 수 있을 것입니다!"


"부디. 여신님의 뜻대로."


선생은 두 손을 모아 기도하며 아리스를 향해 목례했다. 그 모습에 아리스는 선생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그 모습은 마치 세례를 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음! 일단 패턴이라는 것은, 선생님이 보여주는 모습입니다! 선생님이 다양한 패턴을 보여주면, 아리스도 그 패턴에 대응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아리스가 고개를 숙이면 선생님은 항상 저를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선생님을 쓰다듬는 겁니다! 빰빠카빰! 아리스는 선생님의의 패턴을 공략했다!"


아리스는 신난 목소리로 말했다. 그에 따라 선생님의 표정 또한 밝아지는 게 눈에 띄었다.


"그, 그러면 여신님! 미천한 저의 행동, 아니, 패턴을 전부 공략하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그러면 퀘스트를 완료할 수 있습니다! 퀘스트를 완료하고 세계에 평화를 가져다 주면, 용사 아리스의 모험이 성공하는 것입니다!"


"그, 그렇다면 여신님! 저를 공략해주십시오!"


"에? 하지만 선생님이 움직이는 것을 제가 공략해야 합니다! 아리스, 지금은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그러면 여신님! 저에게, 명령을! 여신님의 명령은 티끌같은 것이라도 따르겠습니다!"


선생의 눈은 희망에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다른 누군가가 보면 광기라고 할 모양새였다.


"흠... 알겠습니다! 선생님! 아리스를 쓰다듬어 주십시오!"


"네, 여신님!"


선생은 아리스의 머리를 조심스레, 부드럽게, 따뜻하게 쓰다듬어 주었다.


"이렇게 하면 됩니까, 여신님?"


"네! 선생님의 손은 여전히 따뜻합니다! 빰빠카빰! 선생님이 쓰다듬을 때, 쓰다듬어지는 것으로 패턴을 공략했습니다!"


"네 여신님! 또 무엇이든지 시켜주십시오!"


"그러면 이제, 아리스의 손을 잡아주십시오!"


그 말에, 선생은 즉시 머리를 쓰다듬는 것을 멈추고 아리스의 손을 잡았다.


"끄앙! 틀렸습니다!"


아리스의 말에 선생은 바로 쥐죽은 듯이 엎드려 아리스를 향해 사죄했다.


"죄,죄,죄,죄, 죄송합니다 여신님! 미천한 죄가 불경하고 아둔하여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부디 자비를! 아니, 자비도 저에게는 과분합니다! 차라리 저에게 죽음을 선사하시고, 남은 피와 뼈로 성무와 교화를!"


"에? 선생님이 또 이상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패턴은 공략하기 어렵습니다! 이럴 때는 세이브 로드를 쓰는 겁니다! 선생님! 다시 머리를 쓰다듬는 패턴부터 시작해주십시오! 그리고,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제 손을 잡으면 공략 성공입니다!"


"네...? 세이브 로드...? 그러면, 저의 행위를 용서해주시는 것입니까?"


"아리스! 지금은 크레딧이 무한대입니다! 프리 플레이입니다!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아리스의 말에 선생은 천천히 정신을 차렸다. 


"...네. 제게 기회를 주셨을 때, 그 기회를 버리는 것 또한 언어도단. 다시 한번 저를 주시해주십시오."


선생은 그 말을 끝으로 다시 조용히 아리스를 쓰다듬으며 아리스의 손을 잡았다.


"아리스, 왠지 인조 단백질 신체가 뜨거워집니다. 아리스, 무슨 패턴인지 모르겠지만, 패턴 공략에 실패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선생이 아리스의 손을 잡는 것, 머리를 쓰다듬는 것은 게임개발부에 선생이 놀러왔을 때 자주 하던 일이었다. 그러나, 그때는 반쯤 장난 치듯이 하던 일이었다. 그런 일이 병원이라는 조용한 공간에서, 말 한마디 없이, 동시에 이루어지자, 왠지 모르게 평소와는 분위기가 바뀐 듯 했다. 아리스가 기대한 것은 평소의 일상에서 느끼는 선생의 손길이었지만, 이번엔 느낌이 사뭇 달랐다. 그러나 싫지는 않았다. 오히려 더 느끼고 싶었다. 훨씬.


"...아리스, 한 번 새로운 패턴을 시험해보고 싶습니다. 선생님, 아리스를 끌어안아 주십시오. 손을 멈추지 않는 고난이도의 패턴입니다."


"여신님이 말하는 것이라면 고난이도와 같은 무엇이던 기꺼이."


선생은 아리스를 끌어안았다. 그러면서도 아리스를 잡은 손은 놓지 않았고, 아리스를 쓰다듬었다. 서로의 숨결이 가까이 닿았고, 서로의 온도가 몸에 전해졌다. 평소의 명랑한 아리스 대신 몸이 뜨거워지고 깊은 숨을 내쉬는 아리스가 있었다.


"아리스, 이 패턴은 어렵습니다... 대응하기 쉽지 않습니다."


"죄, 죄송합니다! 여신님께서 말씀해주신 세이브 로드를 하겠습니다!"


선생은 아리스의 말에 놀라 황급히 손을 떼려 했다.


"계속하십시오!!!!"


아리스는 자기도 모르게 선생을 향해 소리 질렀다.


"아리스, ...회로가 고열에 의해 손상된 것 같습니다. 소리 질러서 죄송합니다. 선생님."


"괜찮습니다. 여신님의 의중을 헤아리지 못한 제 불찰입니다. 제 힘이 다할 때까지, 시간이 허락할 때까지 여신님을 위해 봉사하겠습니다."


아리스의 머릿속은 이미 뒤죽박죽인데다 녹아내린 상태였다. 연상장치, 회로를 비롯한 아리스의 모든 것이 망가진 것만 같았다. 선생을 만날 때마다 가끔 저릿거리는 느낌은 있었지만, 이렇게 엄청난 감정은 아리스로선 처음이었다.


"어려운 패턴일수록 공략하는 재미가 있는 법입니다. 선생님의 끌어안기 패턴은 분명 어렵지만, 공략이 너무나 즐겁습니다. 평생 이 패턴만 공략하고 싶습니다."


"아리스 여신님..."


선생은 그대로 아리스를 끌어안고 손을 잡은 채 계속 아리스의 인조 단백질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아리스는 눈을 감은 채 그 느낌을 만끽하고 있었다.


"아리스, 최강의 패턴을 공략하고 싶습니다."


"네. 여신님. 말씀만 해주십시오."


"아리스에게, 그, 볼에 뽀뽀를 해주십시오."


충동이었다. 아리스는 기계였다. 분명 명령과 계산에 따라 움직이는 기계였다. 그런데, 알 수 없는 충동이 아리스를 휘감았다. 아리스가 선생에게 명령을 내리는 게 아니었다. 이성과 회로와 논리, 연산장치 같은 쓰잘데기 없는 것들은 충동과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빨려들어가고, 분명 아리스에게 없을, 아니, 없었을, 본능과 충동이라는 것이 아리스에게 명령을 내리고 있는 것이었다.


쪽.


병실에는 선생이 아리스의 볼에 키스하는 소리가 울렸다. 


"...윽!"


그러자 아리스의 얼굴에는 열이 오르는 것이 분명히 보였다. 아리스가 선생으로부터 키스를 받자, 헤롱헤롱한 채 정신을 붙잡지 못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오류... 오류... 아리스, 오버클럭 되었습니다. 패턴 공략 실패입니다..."


그 말을 남기고. 아리스는 선생의 품에서 작동을 정지하고선 잠에 들었다.




"아리스! 다음번엔 반드시 패턴 공략에 성공하는 것입니다! 그때까지 기다려 주십시오!"


면회 시간이 끝나자, 아리스는 평소의 발랄하고 명랑한 모습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아리스는 다시 자신의 레일건을 치켜들고 자신만만하게 말하고선, 병원에서 빠져나왔다.




선생이 있는 병실의 문이 닫히고, 선생을 바라보던 미네의 뒤로 노아가 다가왔다.


"아리스가 그렇게 적극적일 줄은. 의외의 면모가 있네요."


노아는 쿡쿡 웃으며 말했다.


"네. 하지만 저로서도 의외입니다. 지금까지 이정도로 침착하게 선생님의 광증을 제어한 학생은 지금까지 없었거든요."


"생각보다 효과적이었다, 는 말씀인가요?"


"네. 그렇다고 할 수 있겠죠."


그 말이 떨어지자 노아는, 아리스와 선생의 밀회를 기록해둔 노트에 한 줄을 더 적었다.


'아리스의 힘은 가능성이 있음. 다만 아직 미지수.'





                                            

약간 무자각 얀데레 느낌이 나게 하려고 했는데, 잘 됐을지는 모르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