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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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회는 다시 재개되었다. 그 소식에 병원에는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개중에는 선생이 처참히 다친 모습을 본 학생도 있었고, 선생이 다쳤다는 소식만 들은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공통점이 있었다면, 선생이 다쳤다는 소식에 크게 광분하여 어떻게든 선생의 모습을 보겠다는 일념으로 뭉쳤다는 점이었다. 그 말은 즉, 병원 앞에서 크고 작은 소요와 난동이 수없이 벌어진다는 것이 불 보듯 뻔하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다행히  정의실현부와 선도부가 힘을 합쳐 소란을 진정시켰다. 지금은 폐인이 되다시피 해 방에 틀어박혀 있는 히나 대신 이오리가 선도부의 지휘를 맡았고, 그 대가로 이오리는 선생님을 우선적으로 면회할 기회가 주어졌다.


똑똑.


세리나와 미네가 문 밖에서 대기하고, 이오리는 조심스레 문을 노크하고 방으로 들어섰다. 방 안에는 선생, 소독약 냄새, 그리고 가습기가 작동되는 소리를 제외하면 거의 아무것도 없었다. 일전에 선생이 부린 난동 탓에 대부분의 물건을 방 밖으로 빼둔 것이었지만, 이오리는 별로 알지도 못했고, 선생 외에 다른 것에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선생."


이오리는 잠들어있는 선생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약간 거칠지만 따뜻한 손. 면회를 온 만큼 선생을 깨울 수도 있었지만, 이오리는 이렇게라도 쉬고 있는 선생을 보며 생각을 갈무리했다.


"내가... 미안해..."


사실 이오리는 선생이 다쳐 기억을 잃었을 때 그의 옆에 있었다. 정신 없이 작전을 수행하느라 옆에서 날아오는 돌덩이를 보지 못했다. 차라리 자신에게 맞았다면 살짝 따끔하고 말았겠지만, 그 돌덩이는 하필 연약한 선생의 머리에 직격했고, 그 결과로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다.


이오리는 에덴 조약 때 히나 부장이 왜 자기혐오에 빠져 방으로 틀어박혔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내가 옆에 있었다면, 선생을 지킬 수 있었을까. 자신이 너무나 한심했다. 특히, 최전방에서 싸우던 히나 부장과 달리 이오리는 저격수였기에 후방에 있는 선생을 더욱 신경 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심하게도 눈 앞의 적에게 시선이 쏠린 나머지 정작 바로 옆에 있는 선생은 지키지 못했다.


이오리가 한참 상념에 빠져 있을 때, 이불이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선생이 일어나 눈을 비비고 있었다.


"아...선생님. 피곤하면 더 쉬어도 돼."


그러나, 이오리의 생각과 달리, 선생의 눈은 경악, 그리고 경외로 이미 물들고 있었다.


"여...여신님이 앞에 계신데 감히 한가롭게 잠이나 자고 있던 불경한 저의 행위를 용서해 주십시오! 여신님!"


이오리의 생각과는 달리, 선생은 이오리를 여신님이라고 부르며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머리를 다치고 행동이 조금 이상해졌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는 선생이 이상해져 봤자 선생이라며 일부러 까칠하게 반응했다. 그러나 실은 이오리는 부디 선생이 무사하기 만을 바라며 밤마다 믿지도 않는 신을 향해 기도하고 있었고, 부끄럽지만 자신의 다리를 핥아도 좋으니 선생이 멀쩡하기 만을 바랐다.


"무슨 소리야 선생님! 나야! 이오리라고!"


"아아... 이오리 여신님! 저를 처벌해주십시오! 저는 죽어 마땅합니다! 아니! 벌레 같은 저는 죽어야만 더 가치 있을 것입니다! 저의 피로 성무를! 저의 뼈로 교화를!"


"말이 안 통해..."


이오리의 목소리는 절망적이었다. 이오리는 장난기 있으면서도, 의지할 수 있던 선생을 내심 좋아했다. 겉으로는 틱틱대면서도, 속으로는 항상 고마웠다. 1초라도 더 눈에 담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 이오리의 눈에 담기는 선생의 모습은, 아무리 봐도 미친 사람과도 같았다.


"선생님! 내 말 좀 들어봐! 응?"


"아아! 저를 어떻게 처벌하실지 미리 알려주시려는 자비는 저에게 너무나 과분합니다! 말씀 한마디 필요 없습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저에게 천벌을 내려주십시오!"


이오리는 점점 더 초조해졌다. 말을 걸면 걸 수록, 자신이 알던 선생이 아닌 것 같았다. 다시는 이전의 선생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까지 생각이 미치자, 이오리는 초조함을 넘어 공포감까지 느끼기 시작했다. 오한이 자신의 척추를 타고 오르는 것만 같았다. 초조해진 이오리의 눈에는 자신의 다리가 들어왔다.


"저, 선생님, 다리, 기억나지 않아? 선생님이랑 내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그 때, 기억 안 나?"


이오리는 초조했다. 이전 같으면 생각하지도 않았을 생각이 들었다. 과감하다 못해 미친 것 같은 방법이었지만, 이미 미친 사람을 상대로는 미친 것 같은 방법이 필요하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이오리는 그 때의 장난기 많은 선생이 그리웠다..


"예? 제가 무슨 짓을...?"


"그, 그때, 내 다리 핥았잖아? 기억나지 않아? 선생, 기억을 잃었다면서...? 내 다리라도 핥으면... 기억이 돌아오지 않을까?"


이미 이오리의 머리는 제대로 된 생각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설마... 설마... 제가... 다리를 핥았다는 말씀입니까? 여신님의...?"


"그...그래! 기억나지 않아? 응?"


"으...으아아아아아아악! 여신님! 용서해주십시오!"


이오리의 헛된 기대와는 달리, 선생은 벌떡 일어나 광적으로 날뛰었다. 이오리의 귀에는 처벌, 죽음, 교화, 지옥 같은 단어가 마구잡이로 울려댔지만, 날뛰는 선생을 막느라 정신이 없었다.


"선생! 그만! 내가 잘못했어! 응? 그만!"


"죄송합니다! 여신님 죄송합니다! 저의 피와 뼈 따위로 성무를 이행한다는 불경한 말을 제 더러운 입으로 지껄여서 죄송합니다! 역시 저 같은 쓰레기는 숨이 끊어지기 전까지 끝없는 고통을 받다가 지옥의 업화로 떨어져야만 합니다!"


"제발 그만해!"


마음이 찢어지듯 아프던 이오리는 도저히 참지 못하고 선생에게 소리 질렀다. 그러나 선생은 이오리가 말리는 것도 부질없다는 듯 날뛰었다.


"무슨 일 있으신가요!"


점점 격해지는 상황에 세리나와 미네가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선생은 이미 통제를 벗어나 날뛰고 있었다. 방방 뛰기도 하고, 그런가 하면 바닥에 엎드려 울면서 빌기도 하였다. 그런 선생을 바라보는 이오리의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되어 엉망이 되어 있었다.


"선생님이... 이상해... 내가 아는 선생이 아니야..."


이오리는 눈물을 닦으며 간신히 말했다.


"선생님. 일어나서 침대로 가세요.."


그때, 세리나의 무거운 목소리가 들렸다. 그 말에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던 선생은 움찔, 하고 멈추었다.


"명령입니다."


세리나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선생은 침대로 가 앉았다. 언제 날뛰었냐는 듯 병실은 금세 조용해졌다.


"...보셨죠?"


어안이 벙벙한 이오리를 향해 세리나는 눈웃음 지어 보였다. 다만, 그것을 평범한 웃음으로 보기는 힘들었다., 무언가 텅 비어있고 공허한 눈웃음이라고 이오리는 느꼈다. 뒤에 있는 미네 역시 담담한 표정이었다.


"선생님은... 안타깝지만 정신이 많이... 아프셔요. 그래서, 거리낌 없이 우리가 명령을 내려야만 움직이십니다. ...똑똑한 이오리 씨라면, 어떻게 해야 할 지 아시겠죠?"


"...알겠어."


상황이 진정되자, 세리나와 미네는 다시 문을 닫고 천천히 나갔다. 이오리는 천천히 심호흡했다. 생각을 갈무리하고, 각오를 다지며, 마음을 굳혔다. 하나 문제가 있다면, 이오리가 마음을 굳힌 방향이 많이 뒤틀려 있었다는 점일 것이었다.


"선생님."


"네. 여신님."


"...핥아. 명령이야."


이오리는 선생을 향해 자신의 다리를 내밀었다. 선생을 바라보는 눈은 분명 무언가 뒤틀려있었다. 끝없이 깊은 심연과도 같은 눈이 선생을 주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여신님께... 감히...? 저는... 명령을..."


날뛰느라 지친 것인지, 아니면 심연 같은 이오리의 눈에 겁먹은 것인지, 선생의 목소리는 확연히 주눅 들고 지친 듯 했다. 그러나 이오리는 아랑곳 않고 다리를 더 가까이 내밀었다.


"하? 뭔가 착각하고 있네. 이건 처벌이야. 불경한 당신을 벌하기 위한 성무이자, 여신으로서 내리는 벌이라고."


이오리의 말이 떨어지자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 선생은 이오리의 다리를 천천히 핥기 시작했다.


"읏...!"


선생의 따뜻한 혀가 다리에 닿자 이오리는 약한 신음을 뱉었다. 열심히 다리를 핥는 선생의 모습이 왠지 갸륵했는지, 이오리는 손이 저절로 나가 선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좋아. 잘했어. 이런 성무를 하면 할 수록, 당신은... 천국으로 갈 수 있을 거야."


"아아... 여신님의 그런 깊은 뜻을 모르고! 죄송합니다 여신님. 한심한 저는 여신님의 뜻을 몰라 뵈었습니다."


"선생님. 혀가 멈췄어."


그 말에 다시 선생은 이오리의 다리를 핥았다. 그리고 이오리는 선생의 머리를 계속 쓰다듬으며 칭찬해주었다. 선생이 이오리의 다리를 열심히 핥을수록, 이오리의 몸은 점점 뜨거워졌다.


'아아... 그래... 선생님...'


선생이 멀쩡한 상태에서 이렇게 다리를 핥았다면 분명 미쳤냐면서 선생을 마구 때렸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이오리 자신이 자진해서 이렇게 다리를 핥게 시키고 있었다. 어쩌면, 이오리 자신은 처음부터 이렇게 되길 원하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아니, 분명 그랬음이 틀림없었다.


한참의 '처벌' 시간이 끝나자 면회 시간은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이오리는 조금 축축해진 다리를 휴지로 닦아내었다.


"...선생님."


"네. 여신님."


"앞으로도 이런 처벌을 계속 내릴거야. 알겠어?"


"알겠습니다. 여신님."


"이 처벌의 끝에는, 분명 당신을 위한 구원만이 있을테니까. 알겠지?"


"네. 여신님. 여신님을 위해서라면, 불구덩이라도 기꺼이 뛰어들겠습니다."


이오리는 선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선생이 멀쩡할 때에는 선생이 이오리를 자주 쓰다듬었었다. 그때마다 이오리는 선생의 손을 머리에서 떼어내면서 틱틱댔지만, 사실 1초라도 더 쓰다듬어지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은 자신이 선생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오직 나만이, 나여야만 이 한심한 남자를 구원해줄 수 있을 테니까.'


이오리는 선생이 핥았던 자신의 다리를 어루만지며 그렇게 생각했다. 이오리는 이제서야 이해했다. 잠깐 보았던 세리나의 눈이, 왜 그렇게 칠흑처럼 검고 탁했는지, 이해해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