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소재: https://arca.live/b/monmusu/8213251


쓰다보니까 순애처럼 되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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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인이 일반화된 세상. 정확하게는 인수가 평범해진 세상이다. 그들이 처음 나타났을 때는 유전자 변형이니 뭐니 말이 많았다. 하지만 그들이 가진 특유의 유전자는 도저히 지금까지 인간이 가진 데이터로는 뽑을 수 없는 그런 유전자였기에 그들을 다른 종족으로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그들은 현재 지구에 존재하는 생물뿐만 아니라 신화나 전설에서 등장한 그것들의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들면 고양이의 귀와 꼬리, 드래곤의 뿔과 날개 같은 것 말이다. 당연히 우호적인 그들에게 인간은 경계를 빠르게 허물었고 어느새 수인들은 인간과 융합되어 사는 존재가 되었다. 그들도 인간과 똑같이 생각하고 감정을 느끼는, 그런 존재였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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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얀붕에게 별 다를 것 없는 하루였다등교했다가 공부하다가 하교해서 알바를 하는 그런 평범한 날이었다원래라면 집과 학교가 멀리 떨어진 곳이라 기숙사에 들어가야 했지만 하필이면 커트라인에 걸려서 입사를 못한 그런 불운한 케이스였다다행히 그의 부모님은 이해심 많은 성격이었기에 학교 주변의 집을 하나 구해주었다투룸으로 말이다그 이유는

 

주인님아이제야 온 거에요?”

좀 늦었네미안.”

우유는요?”

까먹었다.”

 

걸레를 들고 그의 방에서 나온 그녀는 짜증난 표정으로 말했다

 

주인님아내가 사 오라고 했어요안 했어요?”

미안하다니까..”

말이나 못하면빨리 가서 사 와요.”

지금?”

그러면 지금이지 언제 가시게요?”

아니...”

 

그녀의 무언의 압박에 그는 결국 가방을 내려놓고 편의점에서 가서 우유를 사 왔다. 자신은 서울우유 안 먹고 매일우유 먹는다면서 다시 갔다 온 건 덤이었다. 그에게 자연스럽게 명령을 내리는 그녀는 얀붕의 동거인이자 메이드였다. 메이드란 말이 좀 이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더 놀랄 건 따로 있다. 그녀의 머리에는 귀가, 엉덩이 부근에는 꼬리가 달려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당연히 기겁을 하거나 코스프레라고 생각하겠지만 수인이 일반화된 이세계에서는 별거 아닌 일이었다. 수인은 그 특성상 모티프가 되는 동물의 특징을 가지고 있었고 이 건방진 아가씨는 여우 수인이었기에 풍성한 꼬리와 복슬복슬한 귀를 가지고 있었다. 물론 그녀가 수인인 것이 건방진 성격과는 관련이 없었지만 말이다

 

얀붕과 여우의 인연은 꽤 오래전부터였다. 지금으로부터 몇 년 전, 얀붕은 친구들과 PC방에서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마침 다이아로 승급한 날이었기 때문에 그의 기분은 더욱 좋았다. 그가 한창 자신의 플레이를 되새기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있자 어느새 항상 지나는 골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골목을 밝혀주는 유일한 가로등 밑에서 누군가가 쓰레기 더미를 뒤지고 있는 것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상당히 어린 체구였지만 그것보다 눈에 들어온 것은 귀와 꼬리였다


호기심을 참지 못한 얀붕은 천천히 그것에게 다가갔다. 그곳에는 갓 중학생처럼 보이는 어린 여우 소녀가 음식물 쓰레기를 뒤지고 있었다. 오랫동안 굶주렸는지 그녀의 몸은 앙상했고 걸치고 있는 옷은 여기저기 헤져있었다. 쓰레기를 뒤지느라 혈안이 되어있던 그녀는 뒤에서 인기척을 느끼고 순식간에 몸을 돌려 그르릉거렸다. 그녀가 정상적인 상태였으면 어느 정도 위협이 되었겠지만 지금 그녀의 상태로는 살기 위한 발악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얀붕은 홀린 듯이 여우에게 다가갔다

 

모르는 사람이 다가오자 당연히 여우 소녀는 울음소리를 더욱 크게 냈으나 그는 개의치 않았다. 어느 정도 거리가 가까워지자 그녀는 순식간에 달려들어서 공격을 시도했다. 얀붕은 갑작스러운 공격에 손을 휘저었고 여우는 그걸 놓치지 않고 그의 손을 꽉 물었다. 하지만 수인이 인간보다 강하다고 한들, 연약하고 병든 어린 소녀의 몸은 강건한 대한의 청소년을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전력을 다해서 물었지만 그렇게 아픈 정도는 아니었다. 여우는 자신이 시도한 것이 실패로 돌아갔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마지막 발악인 듯 그의 손을 놓치 않았다. 신이 그녀의 간절하다면 간절한 마음을 들어줬는지 손이 송곳니에 살짝 뚫려 피를 흘리기 시작했다. 그나마도 살짝 따끔한 정도였다. 잠시 여우가 어떻게 하나 지켜본 얀붕은 최대한 친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집 갈래?”

“....?”

 

앙앙하고 그의 손을 물던 여우는 뭔 소리를 하냐는 듯 그의 눈을 올려다봤다얀붕은 흡사 유괴범이 하듯 말을 이었다.

 

우리 집 가면 이렇게 안 살아도 되는데진짜야.”

“...안 믿어.”

 

그의 손을 입에서 뗀 여우는 살짝 멀어지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 얀붕도 바로 들으면 이상하다고 생각했기에 그녀에게 그대로 있으라는 말을 남기고 근처 편의점으로 달려갔다. 그러고는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과 물을 사서 다시 그녀에게 돌아갔다. 그 가로등 밑에는 잔뜩 경계심을 품은 여우 소녀가 얀붕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사온 것들을 그녀에게 내밀었다


아무리 그녀가 급하다고는 해도 오랜 길바닥 생활로 인해 수인 특유의 본능은 많이 죽은 상태였다. 여우가 받지 않자 얀붕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봉지를 바닥에 내려놓고 그녀 쪽으로 밀었다. 그러고는 골목을 빠져나와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그의 부모가 왜 이렇게 늦었냐는 말에는 얼버무렸다. 그런 날이 며칠 지나갔다. 오늘도 어김없이 요깃거리를 사서 골목으로 들어간 얀붕은 익숙한 형체를 발견했다

 

엄마?!”

요즘 너가 너무 늦게 들어오길래 나와 봤다손에 든 건 뭐니?”

 

얀붕은 빠르게 자신이 손에 든 것을 내보였다.

 

그냥 먹을 거야배고파서.”

얘가살이 얼마나 찔려고.”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얀붕을 쳐다본 그의 모친은 얀붕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그러던 중그와 모친은 가로등에서 예의 여우 소녀를 마주쳤다평소라면 경계하는 그녀에게 봉지를 내밀고 멀리서 지켜봤을 것이지만 오늘은 동행자가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여기서 그의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 벌어진다.

 

포옥.

 

여우 소녀가 천천히 다가오더니 그를 껴안은 것이다지금까지의 태도는 무엇이었는지 아무런 내색 없이 다가와 얀붕의 허리를 껴안았다얀붕은 당연하게도 멘탈이 나갔고 그의 어머니는 잠깐 둘을 바라보더니 여우 소녀를 떼어냈다.

 

혹시이 오빠가 너 돌봐줬니?”

 

끄덕끄덕.

 

여우는 말을 하지 않고 고개를 움직였다

 

어디 갈 데 있니이름은?”

 

도리도리

 

우리집 갈래?”

 

그 소리에 여우 소녀는 냉큼 얀붕의 모친의 손을 잡았다그 모습을 본 얀붕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지만 어찌됐든 그녀를 안전한 곳에 데려갈 수 있다는 것에 만족했다그렇게 한집에 살게 된 여우 소녀는 아랑이라는 이름을 얻고 그의 모친에게 이것저것 배우게 되었다돈을 벌어오지 못하니 집안일이라도 해야겠다는 그녀의 선포에 의한 것이었다당연히 그 선포는 받아들여졌으며 자연스럽게 집안일의 대부분은 그녀가 맡게 되었다그렇게 몇 년이 흘렀을까

 

처음 왔을 때 초등학생 정도였던 아랑은 어느새 고등학생 정도의 나이가 되었다작고 연약했던 여우 소녀는 어디 가고 여우 수인 특유의 매혹적인 미모와 분위기를 내뿜었다그녀의 더러웠던 금발은 영롱한 금빛을 은은히 품었으며 미래를 잃어버렸던 금색의 눈은 어느새 생기를 가득 품어 싱그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앙상하게 말랐던 몸은 글래머러스하게 자랐다다만 몸이 커지면서 머리도 자란 탓일까아랑의 소심하고 차가웠던 성격은 건방지게 변했다특히 얀붕에게 말이다그의 부모에게는 갖은 애교와 아양을 부리면서 귀여움을 받았지만 그에게는 국물도 없었다말만 메이드지 하는 짓은 상전이나 다름이 없었다

 

승진하면서 출장이 잦아진 부친과 그를 뒷바라지 하겠다면 모친이 집을 비울 때가 많아졌고 둘만 남았을 때 아랑의 돌봄을 빙자한 괴롭힘은 더욱 심해졌다예를 들자면,

 

주인님아내가 옷 벗어놓으면 무조건 세탁 바구니에 넣어 놓으라고 했어요안 했어요?”

아니 나 그거 1시간도 안 입어서 내일도 입을려고..”

됐고방 안에 옷 좀 놓지 마요내가 몇 번이나 말했는데도 말을 안 들으시네.”

 

그러고는 가사의 고통을 알라면서 얀붕의 머리에 꿀밤을 한 대평범한 인간이 때려도 아픈데 인외의 존재가 때린 꿀밤은 흡사 새끼 발가락을 찧은 고통과 맞먹었다그가 아파서 뒹굴거리고 있을 때 엄살 피우지 말라며 꼬리로 툭툭 치기까지 했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

 

아니 노크는 하고..!”

주인님아또 딸쳐요부끄럽지도 않아요내가 문이라도 잠가놓으면 모르겠어.”

그래도 노크는 하고 들어와야지이건 네가

됐고빨리 가려요정말 꼴 사나워서는..”

 

이런 식으로 얀붕의 방에 노크도 없이 들어와서는 적반하장 식으로 화를 낸 적도 많았다이런 것이 계속되자 상당히 피곤해진 얀붕은 집에서 나갈 궁리를 했고 멀리 떨어진 대학을 가는 것이었다그 덕에 아랑과 떨어질 수 있다고 좋아했지만.

 

너 기숙사 떨어졌던데.”

“......?”

 

기숙사가 떨어지면서 전부 무용지물이 되버렸다물론 그 혼자 나갈 수도 있었다하지만 그의 부모가 아랑에게 부탁하기도 했고 그녀도 얀붕의 뒷바라지를 하겠다고 직접 나섰다그 결과아랑에게서 떨어질 수 없는 그런 생활이 이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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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붕은 늦은 시간에 편의점을 두 번이나 갔다 온 탓인지 아니면 아랑의 갈굼 때문인지 훨씬 더 피곤한 몸을 끌고 침대에 드러누웠다이불에서는 뽀송뽀송한 느낌이 났다아랑은 말로는 그를 갈궈도 집안일은 완벽하게 했다그 탓에 제대로 그녀를 혼내지 못한 것도 있다저번에 살짝 뭐라고 한 것 가지고 파업을 했는데 상당히 불편했기에이미 아랑은 얀붕의 세상 속에 깊숙이 침투해버린 지 오래였다그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한숨을 살짝 내쉬었다

 

어쩌다 이런 꼴이 되버린 거지.’

 

얀붕은 자신이 주워온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것에 큰 일조를 했으니 조금은 친절하게 대해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 기대를 비웃기라도 하듯, 아랑은 훨씬 더 그를 괴롭혔다. 특히 조별 과제 때문에 늦게 들어온 날이면 그 정도가 더욱 심해졌다. 이상한 냄새가 난다면서 그를 강제적으로 욕실로 밀어넣었다. 그런 괴롭힘을 받는 일상이 계속되자 얀붕은 서서히 지쳐가기 시작했다


한번은 부모에게 자신은 이제 괜찮으니 아랑을 돌려보내고 싶다는 말을 했지만 거절당했고 또 그걸 어떻게 알았는지 그녀는 삐져서 유사 파업을 강행했다. 저번에 일어난 파업을 계기로 그녀에 대한 의존도를 낮춰가기 시작한 얀붕이었지만 아직 완벽하지는 않았기에 불편한 건 마찬가지였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잠든 그는 누군가가 툭툭치는 감각에 눈을 떴다

 

언제 잠든 거지.’

주인님아언제까지 쳐 잘 건데요빨리 밥 쳐 먹고 학교 가요.”

 

그의 옆에 의자를 가져다 놓고 앉은 아랑이 발로 그의 몸을 건드리고 있었다얀붕은 실로 기분이 나빴다차라리 손을 대기 싫으면 그냥 목소리를 크게 하거나 그러던가발이 뭔가 발이어느새 몸을 지나 얼굴까지 올라온 발을 밀어낸 얀붕은 한숨을 쉬며 침대에서 일어났다그가 천천히 몸을 일으키자 아랑이 비웃는 어투로 말했다.

 

주인님아달팽이도 이것보다 빠르겠네요.”

그래시발아존나 느리겠지.”

 

순간 울컥한 얀붕은 아랑에게 한 마디 쏘아붙이고는 욕실로 들어갔다빠르게 씻고 나온 그의 앞에는 차가운 표정의 아랑이 서 있었다.

 

주인님아아까 뭐라고 했어요?”

“...남이사.”

주인님.”

 

한층 더 차가워진 그녀의 목소리를 뒤로 얀붕은 집을 나왔다그는 평소같이 학교생활을 했지만 한구석에서는 그가 했던 말이 걸렸다분명 욕을 쓰지 않기로 약속했지만 해버린 까닭이었다아까 당했던 꼴을 잊은 건지 뭔가 미안해진 그는 가는 길에 아랑이 좋아하는 디저트를 사서 가기로 했다그날따라 가게에는 사람이 많았다한참이나 걸려서 디저트를 공수한 얀붕은 집으로 서둘러 돌아갔다현관에 들어서 신발을 벗는 그의 앞에는 냉랭한 표정을 지은 아랑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주인님아침에뭐라고 했죠?”

“..미안하다.”

미안하면 다에요?”

“...이거 받고 기분 좀 풀어줬으면 하는데내가 잘못했어.”

 

얀붕은 조심스럽게 디저트가 든 상자를 내밀었다하지만 아랑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상자를 든 그의 손을 탁 쳤다순간 힘이 빠진 그는 상자를 놓쳤고 상자는 둔탁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부딪혔다아랑은 전혀 개의치 않고 그를 쏘아붙였다.

 

주인님내가 약속한 건 지키는 시늉이라도 하랬죠근데 이렇게 당사자 앞에서 그걸 깨버리시네요혹시 머리가 어떻게 되신 건가요?”

 

계속되는 그녀의 폭언신발도 채 제대로 벗지 못한 얀붕은 불꺼진 현관에서 계속 그녀의 말을 들었다

 

내가 뭐라고 했어요제 말 안 들으면 후회할 거랬죠그러니까 최소한의...”

그래 엄청 후회해근데 내가 지금 가장 후회되는 게 뭔지 알아너 주워온 게 가장 큰 후회야알기나 해?”

 

얀붕은 결국 참지 못하고 폭발했다그걸 기점으로 지금까지 참아왔던 화가 화산이 폭발하듯 한꺼번에 터져나왔다.

 

그냥 그때 너 내버려 둘 걸 그랬어그러면 이렇게 서로 얼굴 붉힐 일도 없었을 텐데그치그냥 지금이라도 확.”

 

계속 말을 하던 얀붕은 어느 순간부터 자신이 선을 넘었다는 것을 깨닫고는 말을 멈췄다그는 살짝 고래를 돌려 앞을 보았다그곳에는,

 

아니야.. 아닐 거야.. ... 이건 꿈 일거야... 제발...”

 

아랑이 주저앉아 무서운 표정으로 중얼거리고 있었다방금 전까지 지었던 차가운 표정은 거짓말인 듯 그녀의 표정은 절망에 잠겨 시시각각 변하고 있었다뭔가 이상한 아랑의 상태에 어찌할지 모르던 얀붕은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아랑아..?”

제발버리지말아주세요제가전부잘못했어요그러니까한번만용서해주세요다시는안그럴게요한번만기회를다시주세요주인님없이는바로죽어버리고말거에요그러니까제발요주인님-”

 

그가 말을 걸자 아랑은 무척이나 떨리는 목소리로 빠르게 말하면서 그의 다리에 달라붙었다머리를 늘어뜨린 그녀가 기어오는 장면은 심히 공포스러웠기 때문에 얀붕은 본능적으로 몇 걸음 물러났다하지만 뒤는 문으로 막혀있었고 아랑은 그녀의 자랑이던 금발이 바닥에 쓸리는 것도 신경쓰지 않은 채 오직 얀붕만을 향해 나아갔다

 

주인님... 제가제가 잘못했어요... 그러니까...”

 

그의 다리에 매달린 아랑은 지금까지 그가 보지 못했던 표정과 목소리를 하며 애원을 했다그가 아무런 반응이 없자 그녀의 눈에 살짝 고여있던 눈물은 진해져 흘러내리기 시작했다또 그녀의 애원하는 목소리에도 흐느낌이 스며 들어갔다얀붕은 지금 일생일대의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여기서 뭐라고 하면 폭발할 것 같았고 그냥 내버려 둬도 폭발할 것 같았다그는 어떻게 해야할 지 빠르게 머리를 굴렸으나 나오는 답은 없었다그럴수록 아랑의 흐느낌은 더욱 심해져서 서글픈 울음으로 변해가고 있었다얀붕은 떨어지지 않는 입을 열어 겨우 말했다.

 

아랑아이것 좀 놓고....”

...인님.. 제발... 흐윽.. 버리지 마세요... 으읏...”

 

아랑의 패닉이 점점 심해져 가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얀붕은 일단 그녀를 진정시키기 시작했다

 

아랑아잠깐만 애기 좀 하자.”

 

몸을 낮춰서 한참을 토닥거린 다음에야 그녀의 울음을 어느 정도 멈출 수 있었다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제대로 일어서지 못하는 그녀를 들어서 소파에 내려놓은 얀붕은 훌쩍거리는 아랑을 잠깐 쳐다보고ᅟᅳᆫ 한숨을 쉬었다그걸 안 좋은 의미로 해석한 그녀가 또 달라붙었다심하게 달라붙는 그녀를 겨우 진정시키고 나서야 얀붕은 그녀에게 떨어질 수 있었다부엌에서 물을 한 잔 가지고 나온 얀붕은 자신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는 그녀에게 건넸다조심스럽게 잔을 받아든 아랑은 그의 눈치를 보면서 물을 마셨다아까와는 정반대의 태도에 얀붕은 어떻게 태도를 취해야 할지 고민했다.

 

아랑아.”

“......”

아까 한 것 말인데왜 그랬는지 얘기 좀 해줄 수 있을까?”

 

아랑은 그의 질문에 흠칫 몸을 떨었다하지만이미 답이 없다는 듯 그녀는 힘없는 목소리로 입을 열기 시작했다그녀가 한 말을 대충 요약해보자면 이랬다.

 

 

아랑은 고아였고 누구도 자신을 받아들여 주지 않았다고 했다그렇게 차가운 세상에서 겨우 버티고 있을 때 처음으로 관심을 가져준 사람이 얀붕이었다처음에는 경계했지만 며칠 동안이나 상냥한 태도로 자신을 대해준 그가 점점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하지만 그가 처음에 한 제안을 거절했기에 어떻게 해야할 지 전전긍긍하다가 그의 어머니가 온 것을 핑계로 같이 살기 시작했다집에 같이 살기 시작했어도 얀붕의 태도는 변함이 없었고 그녀의 몸과 기분은 점점 달아오르기 시작했다그녀가 아직 소심했을 때 몇 번 대쉬를 한 적이 있었다하지만 얀붕은 자신을 끌어안은 그녀의 머리를 몇 번 쓰다듬어주고 끝냈을 뿐이다

 

아랑은 그런 그의 태도에 심술이 났고 자신을 받아들여 주지 않은 그를 조금 골려주기로 했다하지만 그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미안하다고 하는 것을 본 순간새로운 쾌감이 그녀를 덮쳤고 그것에 이끌려 계속해서 그를 괴롭혔던 것이다물론그것과는 별개로 아랑이 그에게 가진 사랑의 감정은 점점 커져갔다괴롭히는 것에서 얻는 쾌감보다 그를 애정하는 마음이 커져갔지만 이제껏 취한 태도를 쉽게 바꿀 수 없었던 그녀는 억지로라도 얀붕을 괴롭힌 것이었다그리고 감정을 숨겨야 할수록 괴롭히는 강도가 심해졌고 결국은 이렇게 된 것이었다조금이라도 감정의 편린을 보여줄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아랑은 여우 수인속마음과 행동을 감추는 데 능숙했고 얀붕은 전혀 그런 기색을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다

 


얀붕은 그녀가 하는 말을 듣고 잠깐 벙쪄있었다

 

그러면나 좋아해서 계속 괴롭힌 거라고?”

“..네에.”

너가 무슨 초딩이냐.”

죄송해요...”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이면서 웅얼거렸다손을 이마에 가져다 댄 얀붕은 한숨을 작게 쉬었다.

 

내가 너를 어떡하면 좋니.”

정말.. 버리지..말아주세요주인님.. 제발...”

 

한 짓에 대한 자각은 있는지 아랑은 비장의 수단인 안겨들기도 못하고 그저 눈물을 뚝뚝 흘릴 뿐이었다다른 사람들 같았으면 지금이 기회다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지만주변 사람들에게도 흐구 취급을 받던 얀붕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그녀의 울음을 들으며 얀붕은 생각에 잠겼다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그는 감았던 눈을 뜨고 아랑을 바라보았다그녀는 하도 울어서 퉁퉁부은 금색의 눈으로 얀붕을 불안하게 쳐다보고 있었다잠시 아랑을 지켜보던 그는 손을 들어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

그 아랑아너가 핑계로 말한 건지 진심인지는 모르겠는데괴롭히는 건 좀 그만해주라내가 막 맞아서 흥분하고 그런 취향은 아니거든.”

네에...”

그러니까 음.. 그냥 평범하게 대해주라부모님께 하는 것까진 아니어도 그렇게만 해주라부탁할게.”

 

울면서 애원했던 그녀에게서 연약했던 모습의 어린 아랑이 겹쳐보였던 얀붕은 그녀를 상대로 화를 낼 수 없었다그저자신의 바람을 조심스럽게 말할 뿐이었다실로 호구 중의 호구였다

 

.. 버리시는 거죠..?”

안 버려.”

진짜로요...?”

.”

미안해요.. 주인님...”

 

아랑은 훌쩍거리면서 몸을 스르르 그에게 기댔다얀붕의 품에 머리를 박은 그녀는 잠시 그 상태로 있다가 아까 그가 한 말을 떠올리고는 고개를 들어 얀붕을 올려다보았다.

 

저기주인님아.”

.”

아까 핑계인지 아닌지라고 하셨죠?”

근데 뭐.”

“.......”

 

아랑은 그 말을 곱씹더니 짜게 식은 눈으로 얀붕을 쳐다보았다

 

“...제 말을 다 들으시고서 그 말 하신 거죠?”

아니솔직히 생각해 봐좋아해서 괴롭혔대그것도 고딩씩이나 된 여자애가말이 돼초딩도 아니고.”

 

그렇다얀붕 이 병신 새끼는 그냥 핑계로 알아들은 것이다그 말에 자신의 처음으로 모든 속내를 밝혔는데 이 주인님 새끼는 말귀도 못 알아 처먹는다고 생각한 아랑은 확실하게 보여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제가 아까 한 말이 전부 혼나기 싫어서 말한 거였다는 거죠...?”

좋아했다고 해도 바로 이해되는 건 아니..?!”

 

아랑은 더는 듣기 싫다는 듯 얀붕의 입술을 덮쳤다얀붕은 그녀를 떼어놓으려고 했지만 어색했지만 열정적으로 감겨오는 혀놀림과 그를 폭신하게 감싸는 꼬리 때문에 그녀에게서 벗어날 수 없었다.

 

츄웁... 츄릅...

 

하아.. 하아....”

...!”

 

얀붕은 갑작스럽게 변한 그녀에게 따지려고 했지만 자신을 무섭게 노려보는 아랑에게 쫄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주인님아뭐요핑계요제 마음이 전부 핑계란 소리인가요빨리 대답해보세요주인님아빨리.”

아니몇 년 넘게 계속 괴롭혔는데 그걸 좋아한다는 표식으로 받아들이면 그게 더 이상하지..으읍?!”

시끄러워요!”

 

말하래서 말했지만 그것마저도 아랑의 꼬리에 막힌 얀붕이었다무언가 항변하려는 그의 뒷목을 잡고 침실로 들어간 그녀는 그를 침대 위에 던져놓고는 그를 깔고 앉았다

 

아랑아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닌 것 같아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건...”

“..아직도 그러시구나.”

 

그런 그의 태도에 아랑은 입을 살짝 삐죽이고는 능숙하게 그의 옷을 벗기고 자신도 입었던 것을 벗어 모두 던져버렸다그러고는 천천히 얀붕의 몸을 애무해나가기 시작했다둘 다 몸이 어느 정도 달아오르자 아랑은 몸을 일으켜 천천히 삽입을 시도했다그 모습에 기겁한 얀붕이 소리쳤다.

 

아랑아적어도 콘돔만은!”

“..소녀의 순정을 농락한 벌이에요주인님아.”

소녀의 순정을 개뿔농락은 내가 당했지 네가 당했냐!”

 

빠직.

 

시끄러워요!!!”

으아아아아아악?!”

 

그대로 주저앉은 아랑은 격렬하게 허리를 흔들었고 얀붕은 그런 그녀에게 몸을 맡길 수 밖에 없었다.

 

후일담을 전해 듣자면그렇게 질펀하고 뜨거운 밥을 보내고 난 다음날그의 모친이 기습방문을 했고 함께 늘어진 두 명을 보고는 쪽지를 하나 남기고 나갔다고 한다

 

-이 엄마는 손녀가 좋겠구나~

 

기를 한껏 빨려 초췌해진 모습으로 이걸 본 얀붕은 그대로 굳었으며, 어제를 기점으로 태도가 완전히 변한 아랑은 부모공인이라며 기뻐했다. 그러고는 다시 이어진 관계. 모친의 말을 잘 따르던 아랑은 이번에도 그녀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고, 얀붕과 아랑은 아랑을 꼭 닮은 아이를 한 명 키우며 그렇게 살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