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놈 소전잘모름 주의

--


새하얗게 뒤덮힌 북방 민간거주구역의 밤은 생각보다 추운편이다. 



"후우,,,"



두껍게 두른 옷 덕에 추위가 그리 강하게 느껴지진 않았으나


벙어리 장갑을 낀 손을 비벼대며 추위와 맞서려는 노력을 보인다.


답지 않게 입은 밝은 코트-

아니 이제는 이런 옷이 '나 다운 것'이겠지


해가 잠들가며 새하얗게 싸인 눈위에 그림자가 덮어씌워지자

마침 기대있던 가로등의 빛이 내 머리위로 쏟아졌다.



한산한 거리에서 가로등에 기대 서있는 남자라.


눈에 뛸까? 순간 망설이며 가로등의 빛 밖으로 

나가 어둠 속에 숨어들까 고민했으나


이내 가로등에 기대있는 것보다 어둠 속에 홀로 서있는 것이

더 수상해 보인다 생각하여 뒤바뀐 얼굴을 믿고 그대로 있기로 했다.


두르고 있던 목도리를 끌어올려 입을 가리며 고개를 숙이고 있자


문득 멀리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반사적으로 코트 속 벨트에 꽂아 넣어둔 리볼버로 손이 옮겨지려는걸 멈추며


익숙하게 느껴지는 인기척을 향해 슬쩍 고개를 돌리자.


거리 멀리서 한 전술인형이 북방에 

어울리는 두꺼운 복장을 한 체로 걸어오고 있었다.



'...어디서 부터 샌거지?'



아니 애초에 벗어날수 있다고 생각한 것 자체가 오만이었을지도.


광채를 머금은 갈빛 머리카락과 외소한 체격

노란 빛을 품고 있는 눈과 왼쪽 눈에 새겨진 자상

그리고 품에 안고 있는 개조형 기관단총.


404 소대의 ump45. 전술인형 하나가

저벅 저벅 인도를 타고 내가 있는 방향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이쪽으로 향해 있는 갈색의 눈동자가 

가로등의 빛을 받아 번뜩 거릴 때마다.


기름이 끓듯 지글 거리는 불쾌한 감각이 

목구멍 깊숙히 울려 펴졌으나


나는 이내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훑어 본 뒤

이내 다시 고개를 돌려 검게 얼어붙은 도로를 바라보았다.


'전술 인형을 본 민간인들의 반응'이자

'토미 슬라토'라는 북방의 공무원이 보일 반응이다.



-터벅 터벅



부츠가 눈을 짓이기며 

다가오는 소리가 점차 가까워 졌으나

나는 그저 고향으로 향하는 개인 셔틀이 도착하는걸 기다릴-


시선.



'...'



익숙하고도 섬뜩한 그리고 질척이는 시선이 몸을 훑어내는걸 

느끼자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켜 가로등 뒤편의 

골목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이성적이지 않았다.'


이성적이지 않은 선택이었으나.

나는 순간적으로 내 등을 떠민 직감을 믿기로 했다.


낡아 쩍쩍 금이간 콘크리트 벽이 늘어선 골목길의 안쪽을 걷다

뒤를 슬쩍 돌아보자


노란빛을 휘감은 갈색 눈동자가 

저 멀리 가로등의 밑에서 이쪽을 주시하며 번뜩이다

이내 시선을 돌리고 골목길을 지나쳐 가는게 보였다.


약간의 안도감이 몸에 맴돌았으나 내색하지 읺고 잠시 몸을 피할곳을 찾아

골목의 안쪽으로 향했다.


자신을 피하듯 골목 안쪽에 잠시 숨던 남자?


누군가를 찾고있는 그녀로써는 매우 수상할 것이고

다시 거기서 기다리다 마주한다면 말이라도 걸어올까 싶었다.



"후우.."



차가운 한기에 숨결이 녹아들며 연기를 피우고 

오른쪽으로 꺽인 골목길에서 몸을 돌리자


작은 성당이 눈에 들어왔다.


버려진듯 벽에 칠해진 낙서들과 

깨진 유리들이 곳곳에 보였으나


셔틀이 오기 전까지 몸을 숨길 장소를 찾고 있었기에

안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바닥에 늘어진 쓰레기들을 넘어 갈적색의

문을 잡아당기자.


-끼이익...


스테인드 글라스가 깨지고 천장에도 구멍이 난덕인지 

달빛이 내리쬐며 생각보다 밝은 성당의 내부와


고요히 서있는 밝은 갈빛의 머리카락을 가진 소녀가 보였다.



제 언니와는 다르게 약간 밝은색을 양쪽으로 묶어내린 머리칼

오른눈에 나있는 일자의 자상.


왼쪽 팔오금에 견착하고 있는 기관단총까지


ump9이었다.


그렇다 ump45 그녀와 왔다면 아마 다른 세 명까지 모두 데려 왔겠지.

어쩌면 추격에 능한 이들을 더 데려왔을지도 모른다.


머릿속이 복잡했으나

성당 문을 연 이후부터 이쪽을 향해 있는

갈색빛의 시선이 슬슬 날카롭게 느껴지기 시작하자.


다시 밖으로 도망칠까 생각했으나


나를 향해 걸어오는 나인을 보며 

여기서 도망쳤다가는 정말 뒤가 없을 것 같다는 느낌에

삐걱 거리는 성당의 작은 나무 문을 닫으며 안으로 들어왔다.



그래도 내 앞의 ump9가 404의 다른 인형들보다는 상대하기 쉬울거라

생각했으며 아마 나에게 오는건 

갑작스레 은퇴한 SO9구역의 지휘관을 찾기 위한 간단한 심문에 불과할거다.  


그리고 SO9 구역의 지휘관은 내가 아니다. 나는 그저

북방 민간거주지역의 공무원 토미 슬라ㅌ



"안녕? 저기 물어볼게 있는데.."



특유의 능굴맞은 목소리에서는 약간의 서늘함이 느껴져 왔으나

나는 내가 할일을 잊지 않았다.


자신의 텍티컬 리그에 손을 집어 넣는 ump9의 모습에 

내가 몸을 움츠리며 공포에 질린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자



"아아! 겁 먹지는 마~사람을 하나 찾고 있거든"



그녀의 텍티컬 리그에서는 그녀의 손바닥 보다 

조금 큰 사진 하나가 튀어 나왔다.


나, 아니 그녀가 찾는 사람에게 그녀가 덮치듯 어깨동무를 하며 

찍은 사진이었다.



"이렇게 생긴 검은 머리의 남자 혹시 본적 있어?"


  

마치 받아서 자세히 보라는듯 사진을 건네오는 ump9의 사진으로

겁을 먹어 흔들리는 손으로 사진을 받아들려 하자.



-텁


"흐읍!"



이내 ump9 손이 펴지고 사진이 바닥으로 툭 떨어지며

내뻗은 내 왼쪽 손목을 ump9이 잡아챘다.



-꽈악 



손목이 으스러질 것 같은 감각을 느끼며 

그녀의 힘에 따라 뒤로 밀려 등에 벽이 닿자


그녀가 얽힌 손을 들어올려 벽에 고정시키며 짓눌렀다.



"히익!!히이이익!!!"



전술 인형은 인간보다 몇 배는 강하며 전술 인형이 하는 일은

살육이다.


아마 소심한 공무원 토미는 겁에 질려 이렇게 반응할 것이다.


필사적으로 다리를 오들오들 떨어대며 겁에 질려있자.


내 왼손을 꽉진 체 벽에 짓누른 탓에 몸을 밀착한 ump9이 

내 목에 얼굴을 묻는게 느껴졌다. 


익숙하지만 낯설어야할 여인의 체향이 코를 간지럽히자  

쓰고있는 가면이 깨질 뻔함을 느꼈다.



"쓰으읍... 하아아...."  



"진한 향수향. 다행히 남에게서 뭍은 냄새는 아니네. 

향수향 속에 숨어 있는건..." 



슬쩍 고개를 떼며 중얼거린 ump9가 이내 

고개를 들어 올리자

그녀와 눈이 보였다.


환희 가득찬 미소로 가려진

광기에 물든 노란 갈빛의 눈동자가 


"모습이 많이 바뀌었네 지휘관? 저번 픽업지점에서 

본 뒷모습이 마지막이었으니까 2개월 만인가?"


"사...사람 잘못 보셨-"


"미치도록 그리웠어 지휘관, 이대로 더 안고있고 싶지만."



-철컥


 

그녀가 왼손에 들고있던 ump9기관단총의 

총구를 내 턱을 향해 겨누었다.

비 이상적으로 크게 개조된 총구. 실탄용이 아니다.



"쯧-"



연기를 그만두고 내 턱을 향하는 그녀의 총구로 손을 뻗었다.



-퍼버버벅!!!



벙어리 장갑을 낀 내 오른손에 잡힌 체 오른쪽으로 밀려나간 총구에서

굉장히 작은 격발음이 울리자

나무문에 주사기 같이 생긴 것들이 박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항하지 말아줘 지휘관, 언니도 g11도 hk도 그리고 다른 아이들도 모두

 지휘관을 기다리고 있어."



간절한 말투와 표정과는 별개로 

괴력과 함께 다시 내 몸으로 겨누어 지고 있는 

총구를 본 사내는 더이상 겁에 질리지도 떨고 있지도 않았다.


그저 차분한 눈빛으로 총구를 잡아 당기며



-뻐억!!!



"꺗-" 



허리를 들어 

그녀의 복부와 가슴 사이에 무릎을 꽂아 넣었다.


둔중한 타격음이 성당에 울려펴지자


전술인형의 몸 임에도 순식간에 급소에 박힌 

무릎을 웃고 넘길수준은 아니었는지

 

일순 갈빛 머리의 소녀가 몸을 움츠러들고 

그새 잡혀있던 왼손을 

벙어리 장갑에서 뽑아낸 사내가 

양손으로 그녀의 기관단총에 손을 모으자



-철컥



순식간에 분리된 탄창이 성당 바닥에 튕기고 약실 속에 있던 

특수 탄환이 튀어나오며 그녀가 들고있던 기관단총이 비워졌다.


이어 그녀를 제압하고 성당에서 벗어날 요량으로 안다리를 걸려 했으나.



-텁!!



"흡-"



총을 놓은 그녀의 얇은 손이 내 왼쪽 손에 다시금 얽히고 

반대손이 마치 포옹하듯 파고들며 오른팔에 상완과 함께 몸을 

옭아맨뒤 내 등쪽 코트를 쥐어잡았다.



"흡-"



끌어안은 그녀의 팔이 조여왔고 반사적으로 마른 신음이 튀어 나왔다. 



"응? 지휘관 이젠 안놓칠거야 절대절대절대절대절대"



문득 이해가 안되었다.

 

그녀의 행동이, 내가 도망쳐 다녀야 할 이유가.

대화로 해결해보려 노력한 적도 있었으나.



"..나인(nine)"



"아... 아아... 지휘관...몇 개월만에 드디어..."


"보고 싶었어...보고 싶었다고..."


"이 체온이...날 부르는 이 목소리가 듣-"



"내가 널 그렇게 가르쳤나."



눈물섞인 애틋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는 나인의 속삭임이

마른 나의 목소리에 끊겨졌다.



"지...지휘과-"


"상관을 향한 절대 복종 그게 너희가 해야 할 역할이다."


"하지만 이게 지금 무슨 꼴이지 내가 무슨 죄라도 저지른건가?"


"은퇴 그래 은퇴 역시 상관의 선택, 그리고 

바뀐 지휘권자에게 적응 하는 것 역시 너희가 감내해야할 사항이다."



나인의 양팔에 힘이 빠지는게 느껴 졌으나

도망치려 하지는 않았다.


덤덤하게 말했지만 욱하는 마치 돌을 삼킨듯한 분노가

가슴속 깊이 내돌고 있었기에.


나는 유능한 쪽에 가까웠던 평범한 지휘관이었고

은퇴하고 싶다는 생각에 추가 계약을 하지 않았을 뿐이다.


사표를 내기 직전까지 이렇게 나를 끈질기게 추적해오는

이들과 그 어떠한 마찰, 불화도 없었고.


또한 그녀들도 그렇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두꺼운 가면 밖에서 상냥하게 대해줬다고 생각했다.


특히 프레데리카 박사와 상부의 명으로 심혈을 많이 기울인

404부대는.



내가 생포 현상금이 걸릴일도, 여권으로 쓰이는 


개인 ID가 해킹 당해 고립 될 일도.


2주면 돌아갈 고향을 두고 6개월간 모습을 바꿔가며


떠돌 이유도 없었다는거다.



감정이 섞인 내가 내뱉는 말이

생각보다 날카롭게, 끔찍하게 들리는 듯

나인의 표정은 점차 일그러지고 있었다.



"도저히 못봐주겠군 은퇴 직 후 너희가 날 잡을 때도 했었던말 아닌가."


"왜...왜..." 


"왜 예전처럼 상냥하게 대해주지 않는거야...?"


"왜 이렇게 까지 떠나려는 건데... 지휘관...?"



흘러내린 눈물이 그녀의 상의를 적셨다.



"더이상 피보는 일을 그만두고 싶었을 뿐이며 

고향으로 되돌아가고 싶었을 뿐이다."


"안돼..안돼...지휘관이 없는 지휘소는 상상 할 수 없어..."



또 다시 원점.


더 이상의 이야기는 필요 없을 것이다.


패닉에 빠진 나인이 중얼거리는 사이 슬쩍 오른팔을 뻗어

벽에 박혀있는 주사기 하나를 손에 쥐었다.



-탁탁탁탁!!!



"적응해야한다고 말했다."


"다시는 지휘소로 되돌아갈 생각은 없-"



뛰어오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콰직!!!


"꺄악?!"



성당 안쪽 뒷문으로 추정되는 나무문이 박살나는걸 

본 내가 급히 나인을 밀치며 옆으로 구르자.



-퍼버버벅!!



방금까지 내가 앞에 서있던 나무벽에 주사기, 아니 제압용 특수탄이

박혀드는 게 보였다.



"나인 내가 뭐라고 했지 대화할 생각 말고 제압부터 하라고."


"언..언니?"


"긴가민가 하지 말걸 그랬어 지휘관" 


"그래도 괜히 들이댔다가 지휘관이 아니면 처리해야했으니까."



차분한 목소리에 기대어 앉아있는 상태로 고개를 내빼자.


아까 거리에서 보았던 ump45가 단안 야광투시경을 낀 체

내쪽으로 자신의 기관단총을 겨누며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그렇게 들어나는 게 싫었으면 처음부터 오지 말지 그랬나"


"무슨 소리야 지휘관, 지휘관 덕에 so9구역 지휘소의 몸집이 불어나면서

우리 신분따위는 별 상관 없어졌어"



무슨 소리를 하려는거지?



"단지 지휘관이 아닌 외간 남자에게 몸을 가까이 한 건 역겨운 행위니까."



덤덤히 그리 말하는 ump45, 사오의 말에 어이가 없어졌다.



"결국 미쳐버린건가 사오"


"미쳤지 404.. 아니 지휘소 아이들 전부가 지휘관에게 미쳐버렸어."



-터벅 터벅



발소리가 가까워 지는게 들리자 손에 들고있던 

주사기를 주머니에 넣은 뒤 

코트 속 리볼버 손잡이를 쥐었다.



"나인 멍하니 있지말고 제압할 준비해"


"읏..."



바닥에 주저앉아있던 나인에게 조용히 읇조린 사오가 다시금 말을 이었다.



"만일 위선의 가면이었다고 해도 당신이 우리에게 준 애정에서는 


진심이 느껴졌어 지휘관."


"이제와선 그게 위선인지 아닌지도 상관 없어졌지."


"이미 우리는 당신의 애정에 중독되어 버렸으니까"


"당신이 당신의 숨결이 당신의 품이 없으면 더 이상 살 수 없어버릴 정도로"


"그러니까"


"지휘관이 뭐래도 결국 우리는 지휘관을 끌고 갈거야."



-콰직!!!



점점 가까워지는 목소리에

고요히 리볼버의 공이를 당기며

호흡을 가다듬는 도중.


좀 전까지 나인과 대치하며 기대있던 성당 정문이 박차지며

열렸다.


그리곤



-퍼버벅!!!



"끄윽-"



뭐라 행동하기도 전에 정문을 박찬 하얀머리의 소녀의

돌격소총에서 특수탄들이 쏟아져 나왔고


이내 복부와 가슴에 감각이 마비되는걸 느끼며 옆으로 쓰러졌다.



"너무 원망하진 말아줘 지휘관 우리도 미칠 것 같으니까"



정문에서 쏟아지는 달빛에 푸른 빛을 옅게 머금은 은발이 

흔들리는걸 마지막으로 눈앞이 아득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