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2화


“며칠 전에 그런 일이 있었어요. 그러니까 영미씨도 조심하세요.”


“와, 그러면 그분들이 나엘씨 이름도, 주소도 알고 있다는 거 아니에요?”


“아니었으면 좋겠네요…”


 그 일이 있던 뒤로 약 일주일 뒤. 오랜만에 영미씨의 가게에 들러서 제육 덮밥을 시켜서 먹고 있던 중에 그 일이 불현듯 떠올라 영미씨에게 이야기했다.


“근데, 두 분 다 외국인 같다고 하셨고, 나엘씨를 정확히 알고 있는 모양이라고 했으니까. 나엘씨의 부모님과 관련된 분 아니셨을까요?”


“저희 부모님은…”


 분명 저런 사람들과의 연은 없을 것인데…


“나엘씨의 친척분이시라던 지? 정말 이야기하러 온 걸 수도 있잖아요.”


“하지만…”


 내 부모님은 그냥 외국에서… 어머니의 이름은 뭐였지? 외국에서 우리 부모님은 어떤 일을 하셨지? 왜 우리 가족은 한 번도 친척을 만나지도 친척이라는 사람을 듣지도 못한 거지? 목뒤의 흉터를 만졌다. 뭔가 기억이 날 것 같으면서도…


“으윽…”


 나는 들고 있던 수저를 떨어트렸다. 갑자기 엄습하는 두통이 너무나도 고통스러워서 순간적으로 손의 힘이 빠졌다.


“어머, 나엘씨!”


 영미씨가 하던 일을 멈추고 나에게 다가왔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졌다. 더는 이것에 관련된 생각을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죄, 죄송합니다. 갑자기 두통이…”


“빨리 집에 들어가서 쉬어야겠어요. 잠시 가게 문을 닫고 바래다 드릴게요.”


“아, 아니에요. 혼자 들어갈 수 있어요.”


 먹던 식사도 내버려 두고 일단 가게를 나섰다. 방금까지 내가 가지고 있던 의문이 뭐였더라?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왜 머리가 아팠더라? 뭔가 피곤한 게 틀림없다. 저번의 그 기묘한 일 때문인가…


“앗.”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아파트 현관에 도착한 나는 당황했다. 그 밝은 잿빛의 머리카락. 저번에 나에게 알 수 없는 말을 걸었던 여자다. 현관 앞에서 서성이는 모습이 나를 기다리는 것인가 싶었다. 이번 복장도 꽤 캐주얼해 보인다. 찢어진 청바지에 맨투맨 티셔츠가 그녀의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듯했지만,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라 했는가. 뒤돌아서 나를 본 순간에 그 언밸런스한 분위기는 신비함으로 바뀌었다.


“아, 아…”


 그녀는 나와 마주치더니 우물쭈물했다. 고개를 숙이고 잠시 있다가 다시 고개를 들고 손을 한시도 가만히 두지 못하고 움직였다. 영어는 할 줄 아는 걸까?


“Can you speak english?”


“아, 아니, 한글 공부해왔어요…”


 저번에 만났을 때는 분명 한국어를 사용하지 못했는데? 공부해왔다고?


“공부해왔다고요?”


“영어도 공부해왔어요!”


 그녀는 눈을 반짝이며 내 쪽을 보았다. 도대체 뭐 어쩌라는 말인가.


“대, 대단하네요…”


“저, 저 기억나시나요?”


 기억이 안 날 리가 있나. 저번에 만남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오늘까지도 이야기하고 온 참이었으니.


“그럼요. 저…”


“정, 정말로요!”


 그녀는 갑작스럽게 나에게 다가왔다. 진짜 눈 한번 엄청나게 크네. 그 눈에 비친 나는 엄청나게 당황하는 모습이겠지. 하지만 그녀는 엄청나게 기대하는 모습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예, 저번에 그… 집사분이랑 같이 오신 분이잖아요. 저랑 이야기를 나누고 싶으시다고 하셨는데, 제가 그날은 바빴거든요, 하하.”


 그렇게 둘러대자 그녀의 눈에서 이채가 사라졌다. 쭉 올라왔던 고개는 다시 푹 내려갔고 방금까지 열심히 얘기했던 모습은 어디 가고 완전히 실망한 모습이었다.


“아… 그럼… 기억 못하시는 건가요…”


“저… 혹시 우리가 예전에 만난 적이 있나요?”


“네…”


 그녀는 내가 입을 열 때마다 눈에 보이게 풀이 죽었다. 안 그래도 창백해 보이는 피부가 더 창백해 보였다. 만난 적이 있다라… 그녀의 머리카락 색과 내 머리카락 색은 정말 비슷하다. 부모님의 머리카락 색은… 기억이 나질 않네.


“혹시 우리가 가족이었나요?”


“네, 네!”


 거의 소리를 지르듯이 뛰어오르는 그녀. 거의 조울증 환자 같았다. 방금까지는 엄청 풀 죽어있었으면서 지금은 뛸 뜻이 기뻐하다니.


“친척이었나 보군요. 저희 부모님이 한 번도 친척에 관해서 말씀을 안 하셔서 몰랐어요. 만난 기억도 없다는 건 이상하긴 하네요.”


“...”


 그리고 이 말을 하자 그녀는 완전히 굳어버렸다.


“흑…”


 그리고 고개를 숙이더니 눈물이라도 흘리는 것처럼 숨을 쉬는 것이 아니겠는가. 눈앞에서 갑자기 울어버리니까 정말 당황스러웠다. 도대체 뭐 어쩌라는 거야.


“흑… 흐아앙…”


“잠, 잠깐만요! 진정하세요. 제가 다 잘못했어요. 네?”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처음 보는 여자에게 할 행동은 아니었지만 지금 당장 필요한 행동이었다.


“잘, 잘못했어요. 죄송해요… 흑…”


“아니, 제가 죄송해요. 응? 그러니까 그만 울어요…”


 고개를 숙여보니 그녀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있었다. 우는 척이라기에는 표정이 일그러져있다. 살짝 섬뜩할 정도였다. 그런 표정으로 우는 듯한 목소리로 사과를 계속해서 하는 그녀…


“그… 일단 들어가서 얘기할까요?”


“네…”


 이 여자를 집으로 들이는 것이 제대로 된 판단이었을까? 하지만 이렇게 아파트 앞에서 계속 서서 이야기하기에는 그녀에게도 깊은 사연이 있어 보였다. 내가 제대로 된 판단을 한 게 맞기를 바라며 나는 그녀를 안으로 들였다.



 오빠와 대화하기 위해서 지난 일주일간 오빠의 방에 있는 책들로 공부했다. 인간들의 언어를 하나 공부하는 정도야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저 오빠를 만나면 뭐라고 말해야 할지… 그게 문제였다.


“바로 오빠라고 불러야 하나… 분명 마음 깊은 곳에서는 나를 기억할 거야… 아닌가, 살짝살짝 물어봐야 하나… 나를 떠올렸다가 거절하면 어떡해…”


 마치 개미집같이 특색 없이 쌓아 올린 아파트라는 건물 앞에서 그렇게 불안해하며 서성이다가 마침내 마주쳐버렸다. 오빠도 나를 보고 눈치챈 모양이었다. 살짝 당황한 표정이 또 귀염…


“아, 아…”


 뭐라고 말해야 하지, 점점 다가오는데. 바로 나를 기억하냐고 물어봐야 하나?


“Can you speak english?”


앗…


“아, 아니, 한글 공부해왔어요…”


 그 뒤로는 당황해서 횡설수설하는 나와 똑같이 당황해서 아무 말이나 던지는 오빠의 대화였다. 무슨 말을 했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질 않지만 다시는 듣지 못할 거라 생각한 오빠의 목소리를 들으며 다시 한번 오빠와 대화를 나눈다는 자체가 너무나도 행복했다. 하지만


“저, 저 기억나시나요?”


 오빠는 나를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만난 적이 있냐고 묻고, 가족이냐고 물었을 때는 한 줄기 희망이라도 찾은 기분이었지만 이내 친척이었냐는 질문에 나를 완전히 잊어버렸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지만…


“흑… 흐아앙…”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 오빠가, 나를 그렇게 챙겨주던 오빠가 마지막에 이렇게 만날 수 있었는데 나를 전혀 기억하지도 못하고, 잊어버리고, 더는 옛날의 기억을 함께 공유할 수도 없다니…


 미안해요, 죄송해요. 아무것도 모르고 응석만 부린 나를… 나를 위해서 이렇게 영락해버린 오빠에게… 눈물이라도 흘려서 용서를 구하고 싶었지만 역시 눈물은 흐르지 않는다. 그저 나의 격한 감정이 몸을 통제할 수 없는 감정만이 흘러넘친다.


“잘, 잘못했어요. 죄송해요… 흑…”


 누구에게 하는지도 모르는 사과를 입으로 중얼거렸다. 인간처럼 눈물을 흘릴 수 있었다면… 그저 흐르지 않는 눈물이 야속할 뿐이었다. 이대로 오빠가 여생을 살아가게 두어야 할까? 흡혈귀로서 살아가던 때, 내가 오빠의 곁에 있을 때보다 인간으로서 좋아하는 것들을 직접 해볼 수 있는 지금이 나엘에게 더 행복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를 감쌌다. 일부러 나를 기억 못하는 걸지도 몰라. 나 따위를 보고 싶어야 할 리가 없잖아. 마지막까지 오빠를 귀찮게 할 셈인 거야? 너는…


“그… 일단 들어가서 얘기할까요?”


 하지만 그런 생각은 모두 끊겼다. 오빠는 나를 기억하지는 못할지언정 나를 싫어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야 싫어하는 감정이 앞선다면 나를 여기에 두고 떠나면 될 일 아닌가. 집으로 초대한다는 것은 나를 생각하는 마음이 조금은 있다는 것 아닐까?


“네…”



 따듯한 커피를 두 잔. 커피메이커에서 내린 커피를 그녀에게 갖다주자 그녀는 공손히 양손으로 커피를 잡았다. 그리고는 커피를 그저 응시했다. 마치 커피에 비친 자기 모습이라도 쳐다보듯이.


“그래서, 저를 어떻게 아시고, 아니지, 제 신상정보는 어떻게 아신 거에요?”


“저는, 그… 오빠… 아니 나엘씨의 친척이에요.”


“아… 그러셨구나.”


 아니 그래서 내 집 주소는 어떻게 알았는데. 부모님이 죽고 나서 물려주신 건물이긴 하지만 애초에 부모님이 죽고 나서 내가 여기로 돌아올지 아니면 그대로 외국 어딘가에서 살지 어떻게 알았냐고.


“그… 저를 어떻게 찾으신 거죠?”


“아… 나엘씨의 부모님이… 남기신 편지에 적혀있었어요.”


“그, 그렇구나.”


 굉장히 어색했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 내 가족이라고, 친척이라고 주장해오는데 믿을 수 있는 것은 나와 닮은 머리색 하나뿐이었다. 물론 내 회색빛 머리카락이 흔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회색빛 머리카락을 가진 사람이 다가와서 친척이라고 한들 ‘아, 그렇구나.’라고 바로 납득할 정도로 내가 사람을 쉽게 믿는 사람은 아니다.


“그러고 보니 성함도 못 들었네요.”


“... 뮤리엘이에요.”


“뮤리엘씨…”


“씨는 안 붙이셔도 돼요.”


“음… 뮤리엘씨, 저희 부모님의 친척이시라고요?”


“네…”


“그러면 어떤 이유로 저를 찾아오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나엘… 님이 잘 지내시는지 궁금해서요…”


“아하…”


 정말 모르겠네. 처음에 하던 말은 유럽 쪽의 말이라고 생각하면 고작 멀고 먼 친척이 제대로 지내는지 알기 위해서 머나먼 한국까지 날아왔다는 말인가? 그것도 처음 나를 만난 날부터 일주일이나 지났으니까…


“정말… 그 이런 말 드리면 실례일지도 모르겠지만… 저를 그렇게까지 찾으실 이유가 있나요?”


“...”


 정적.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나는 기억도 안 날 정도의 친척이 나를 울면서 찾아올 이유가 도대체 뭔지… 부모님의 유산을 노리고 왔다기에는 지나치게 나를 대하는 태도가 조심스럽고…


“오… 오빠는 정말 아무것도 기억 안 나시나요?”


 호칭이 오빠로 바뀌었다. 벌써 그렇게 가까워졌다는 건가. 다른 여성에게 오빠 소리를 듣는 것도 드라마나 영화에서의 로망이었는데, 조금 당황스러울 정도로 빠르게 친근감을 가지는 게 아닌가.



“죄송합니다… 이상하게도 제가 기억이 나질 않네요.”


“그러면 우리가 지낸 기억도 다 잊어버리셨나요?”


“음…”


 이상하다. 내 어린 시절은 어땠지? 저번의 위화감이 온몸을 덮친다. 부모님의 얼굴도 내가 이전에 어디서 살았는지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왜? 살면서 친구 한명도 없는 거지? 나는 도대체 어느 학교를 나오고 어떻게 지낸 거지. 근 1년의 기억만이 선명하다. 목뒤를 만져보았다. 흉터의 감촉과 함께 심각한 두통이 머리를 덮쳤다.


“오빠!”


 앞으로 고꾸라지는 나를 뮤리엘이 붙잡았다. 커피잔에 머리를 박기 전에 어느새인가 뮤리엘이 내 옆으로 다가온 것 같았다. 뮤리엘은 아까 낮에 보았던 울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아…”


 괜찮다고 말하려고 했는데 말이 나오질 않았다.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코에서 따뜻한 액체가 흐르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왜 기억이 없는 거지? 지금까지 왜 아무런 생각도 없이 지내고 있던 거지?


“집사장!”


 아무도 없던 그녀의 뒤로 어두운 그림자가 덮쳐오는 모습을 보며 나는 기절했다.



“집사장,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나엘님은 현재 진조의 피를 잃으며 그 존재를 잃어버리신 상태. 원래라면 자신의 기억이 없으셔야 하는 상태지만, 전대진조님의 자비로 그 기억을 임시로 불어넣은 상태입니다. 자신의 과거나 출신에 대해서 대부분의 의문을 품지 않도록 조정되어있으나…”


 그의 몸이 점점 차갑게 식어가는 느낌이 든다. 점점 일그러지는 표정이… 나에게도


“역시 진조의 피를 가졌던 몸, 그 제약을 풀어버리려는 시도를 할 수 있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피와 함께 뽑혀 나간 기억은 돌아오지 않는 법. 아마 제약을 푼다 한들 자신이 누구였는지는 기억하지 못할 것입니다. 아니 그 전에, 아마 과부하로 죽어버릴지도…”


“그럼, 어떡하라고. 뭘 해야 하는데.”


“음… 진조님께서 자비를 베푸신다면… 혈류를 한번 만져보시면, 전대 진조님이 엉켜놓은 부분을 찾으실 수 있을 겁니다.”


 나는 곧바로 오빠의 머리를 무릎 위에 눕히고 머리에 손을 댔다. 엉망진창으로 움직이는 혈류를 어떻게든 돌려보고 움직여보았다. 이윽고 조금 표정이 편안해진 오빠의 코의 피를 주머니에서 꺼낸 손수건으로 닦아주었다.


“...”


 오빠가 한낮 인간으로 전락해버린 것도… 나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내 탓이었다. 그리고 지금 오빠가 엉망진창이 돼서 누워있는 것도, 나를 기억하려다가 쓰러져버린 것도 나의 탓이다.


“나는 아직도… 어리광만 부리는 걸까?”


 오빠가 나를 기억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지고… 나를 기억할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찾아왔지만, 이제는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른다…


“오빠에게 떨어지는 게… 더 도움이 될까?”


 아니, 절대로 그럴 리가 없어.


“오빠는 오빠야. 기억을 잃었더라도.”


 평생, 나를 위해 헌신한 오빠처럼. 나도 평생 오빠의 곁에서 오빠가 인간의 수명을 다할 때까지 같이 지내면 되는 거 아니겠어?



“허억… 쿨럭, 쿨럭…”


 한참 동안 물에 빠져있던 것 같은 기분이다. 눈앞의 초점이 맞지 않았지만, 점점 선명하게 보였다. 이상하게 어둡다싶었더니 뮤리엘의 무릎을 베고 누워있던 모양이었다.


“괜찮아요?”


 그녀의 어두운 표정은 여전했다. 그녀가 도대체 나에게 왜 그런 표정을 짓는지는 아직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


“아무것도 기억이 나질 않네요… 부모님이 계셨다, 지금 사는 집은 부모님의 유산으로 사게 된 것이다… 그런 기억들은 나는데, 제가 어디서 살았었는지, 다른 친척은 있었는지, 학교는 어딜 나왔는지… 아무것도 기억이 나질 않아요…”


“...”


“저는 나엘이라는 사람이 맞긴 한 건가요?”


“당신은 나엘이 맞아요!”


 그녀는 마치 진실을 말하는 것처럼 말했다. 어느 때보다도 확신이 선 목소리에 나는 조금 당황했을 정도다.


“그러면 당신은 제 친척이 맞나요?”


“사실은… 저는 당신의 여동생이에요.”


 그녀는 마치 굳은 결심을 한 모습으로 그런 것을 고백해왔다. 하지만… 무슨 웹소설도 아니고…


“사촌 여동생 같은?”


“아뇨! 진짜 여동생이요!”


“그러면 왜 처음부터 솔직하게 말하지 않으신 거죠?”


“오빠는… 사실 기억을 잃고 계셔서… 혼란스럽게 만들고 싶지 않았어요…”


 하긴 지금 이 사실을 알고 상당히 혼란스럽다…


“그러면 저희의 부모님은 어떤 분이셨나요?”


“그건…”


 그녀가 입을 열려고 하다가 갑자기 우두커니 멈추더니 고개를 숙였다.


“죄송해요… 말할 수 없어요.”


“그러면 저희가 가족이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하죠?”


“그건!”


 그녀는 어디선가 사진첩을 꺼냈다. 바지에서 나왔다기에는 크고, 품에서 꺼냈다기에는 맨투맨 티셔츠에는 수납공간이 없는데?


“이… 이 사진들을 보시면…”


 그녀가 펼친 사진첩에는 꽤 많은 사진이 있었다. 대부분은 고풍스러운 옷을 입은 나와 뮤리엘의 사진이었다. 뒤로 펼쳐져 있는 배경이 너무 웅장해서 어디 성에서라도 찍은 것 같았다. 몇몇 사진은 나와 뮤리엘이 함께 찍혀있었고 각각 찍혀있는 사진도 있었지만, 나만 웃고 있었고 뮤리엘은 그렇게까지 웃고 있는 사진은 없었다.


“... 혹시 우리 왕족이나 재벌이었나요?”


“... 비슷해요.”


 마지막의 사진 한장에는 우리가 카페 같은 장소에서 찍은 사진이 붙어있었다. 지금 입은 복장을 그대로 입은 사진에는 나만 웃고있었고 뮤리엘은 사진을 찍는 방향을 쳐다보지도 않고 있었다.


“그… 뮤리엘씨와 제가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나요?”


“아뇨! 저, 저는 오빠를 정말 좋아했는걸요…”


“그렇지만, 저희가 같이 찍힌 사진이든 어떤 사진이든 저만 웃고 있는 걸요?”


“그, 그건…”


 뮤리엘의 말문이 막혔다. 마지막에 찍혀있는 사진을 보며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입을 벙긋거리며 무슨 할 말을 찾는 모습이었다.


“오히려 조금 불쾌해 보이는데…”


“하, 하지만… 진짜란 말이에요…”


 뮤리엘의 표정이 상당히 구겨졌다. 꽉 쥔 손은 부들부들 떨렸다. 이윽고 그녀는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봤다.


“과거의 사진은 중요하지 않아요. 저는, 오빠와 지금부터 보낼 시간이 더 중요한걸요!”


“컥…”


 뮤리엘은 그렇게 말하고 나를 꽉 끌어안았다. 그 체구에서는 나올 수 없는 힘이었다.


“자, 잠…깐…”


“아, 죄송해요.”


 갈비뼈가 부러지는 줄 알았다.


“지금부터 보낼 시간이라니요?”


“저, 결정했어요. 지금부터라도 오빠와 더 소중한 시간을 보내겠어요.”


“아니… 그게 무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