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 뮤리엘, 우리의 몸에 흐르는 피가 그렇게 아름다운 것은 아니란다. 우리의 가치가 이 피에만 흐르고 있다고 생각하면 너무 잔인하지 않겠니?



“오빠, 오빠!”


“응?”


“도대체 무슨 생각하고 있어.”


“아, 그냥 졸려서 졸고 있었어.”


“내가 말하고 있는데, 졸았다고?”


 여동생 뮤리엘이 나를 째려본다. 실수했다. 자기 말을 무시하는 걸 제일 싫어하는 그녀인데.


“미안해, 무슨 얘기하고 있었지?”


“쳇… 오빠가 맨날 인간 같은 거에나 빠져있으니까 그렇게 얼빠져있는 거야. 도대체 언제 진조의 혈통에 어울리게 행동할 거냐고… 훈련도 빼먹고, 공부도 안 하고,”


 그놈의 진조의 피. 진조의 혈통. 나는 인간이 더 대단하다고 생각하는데… 당분간 여동생의 잔소리는 계속 될 모양이다. 한참을 혼자서 설교하는 것을 내가 참지 못하고 말허리를 잘랐다.


“... 그러니까 2대 진조님의 말씀처럼,”


“그래, 그래. 그래서? 무슨 얘기하고 있었지?”


“하아… 이번 주말에 같이 밖에 나가자고. 오빠가 그렇게 좋아하는 영화인지 뭔지. 영화관으로 보러 가자고. 아버지께도 허락받았으니까.”


“아아, 맞다. 고마워, 뮤리엘. 네 덕분에 이런 기회도 생기고.”


“오빠가 아버지하고 사이가 안 좋으니까… 나만큼 오빠 생각해주는 여동생이 어디 있어?”


“후후, 그럼. 네가 최고지.”


“그러니까, 오늘, 같이 수업 들으면 안 돼? 오빠 수업 들은 지 오래됐잖아. 같이 듣고 싶어.”


“... 알았어. 네가 그렇게까지 부탁한다면.”


“너무 좋아! 그러면 지금부터 수업 실로 같이 가자!”


“그래, 그래.”


 이렇게 좋아하는데, 그래도 가끔은 같이 공부라도 해줬어야 했나 싶다.


“그러고 보니 오늘 수업이 뭔데?”


“진조의 혈통과 역사… 오빠, 듣기 싫어도 수업은 들어야 해. 오늘같이 내가 당근을 줄때만 듣지 말고, 혈통에 걸맞게 향상심을 항상 가지라고.”


“알겠어, 알겠어.”


“대답은 한번만 해!”


“예이”


“하아…”


 진조의 혈통과 피에 큰 자긍심을 가진 여동생, 항상 진조의 후손으로 살라는 아버지의 말씀을 마음 깊게 새긴 그녀에 비해서 나는 그런 자긍심따위는 없다. 수업이라고는 했으나 평소에는 여동생 혼자서, 오늘은 나와 둘이서 듣는 과외에 가깝고 가르치는 사람도 우리 가문을 섬기는 집사장이다. 저택의 서재에서 우리를 반기는 것은 깔끔한 정복의 집사장이었다.


“오늘도 수고가 많아요, 집사장.”


“수업에 참가하시는 건 오랜만이군요, 도련님.”



“하하, 가끔은 얼굴도 비춰야죠.”


“좋은 생각이십니다, 도련님. 진조의 피에 걸맞은 행동이십니다. 그럼 오늘의 수업을 시작하겠습니다.”


 여동생은 그런 나를 반짝반짝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 여동생의 눈빛이 조금 부담스럽긴 하지만, 약속대로 수업은 들어야 했으니.


“그러면, 나엘 도련님께서 우리 알라드 가문의 현재에 대해 요약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알라드가는 진조의 적통이자, 모든 흡혈귀의 군주. 과거로부터 군림해왔고 현재에도 많은 흡혈귀와 인간의 정점에 서는 가문이다.”


“정확하십니다. 현재에도 저희 가문의 밑으로는 많은 세력이 머리를 조아리고 있죠. 알라드가의 일원이자 후계로써 도련님과 아가씨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을 가지고 진조의 자비와 단호함을 보여주셔야 합니다.”


 그 이후로는 우리 가문의 밑으로 있는 여러 가문과 세력을 소개했다. 국가 권력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가문, 많은 기업의 배후에서 자금을 움직이는 가문, 어두운 일을 전문적으로 처리하는 가문 등등. 어릴 때부터 듣던 내용이었기에 적당히 흘려들었다.


“그렇다면 아가씨, 이런 가문들의 정점에 서는 진조의 피는 어떻게 계승되는지 말씀해보실 수 있겠습니까?”


“진조의 피는 마지막에 한명에게 돌아가야 한다. 우리의 경우에는 두 피가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들어왔다.”


“그렇습니다. 저는 현재 가주님을 섬겨온 지 어언 1000년, 이번 가주님께서 타계를 결정하시면 3대째의 가주님을 모시게 되겠습니다.”


“두 피가 하나가 된다니. 오라버니와 제 피가 하나가…”


 그녀가 그 뜻을 제대로 알고 있을까. 흡혈귀 사회의 법전에서도 단순히 ‘진조의 혈통이 여러갈래라면 한갈래로 합쳐라.'라고 나와 있으니 잘 알지는 못하겠지. 그저 얼굴을 조금 붉히고 있는 그녀가 이 말을 어떻게 이해했는지는 모르겠다.


“우리 흡혈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혈통. 제대로 된 혈통을 가지지 못한 인간에게는 없는 것입니다. 흡혈귀가 혈통을 잃는다는 것은 단순한 죽음 이상의 의미. 항상 우리가 가진 피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고 계시길 바랍니다.”


 그런 진부한 말과 함께 수업은 끝났다. 우리 흡혈귀는 위대하고 우리의 불로불사와 능력에 감화된 종속 흡혈귀들과 인간들에게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보여라… 항상 듣고 또 듣는 말인데 얼마나 지루하겠는가.


“하… 겨우 끝났네. 집사장은 고리타분하다니까.”


“하지만 오빠가 같이 참여해줘서 나는 훨씬 들을만했어. 고마워.”



“후후, 여동생을 위해서라면 이 정도는 해야지.”


“영화관 가는 걸 허락받아서 그런 거면서.”


“들켰나?”


“진짜, 약았어. 좀 혈통에 어울리게 행동해. 그러다가 내가 가주가 돼버린다?”


“후후.”


 나는 오히려 그걸 바라고 있다는 걸, 뮤리엘은 알고 있을까?



“참나, 이런 인간사회가 뭐가 좋다고. 무질서와 혼돈 그 자체잖아.”


“그래서 좋은 거 아니겠니. 이런 혼란스러운 사회에서도 어떻게든 질서가 지켜지고 그 기반 위로 이런 거대한 건물들이 올라왔다는 게 대단한 일 아니겠니?”


 그 주의 주말. 우리가 온 곳은 한국. 나는 평소에도 한국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나 뮤리엘은 인간이 쌓아 올린 것에 대해서 하찮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그들의 문화에 흠뻑 빠져있었다. 드라마와 노래, 영화 같은 문화들은 필멸의 운명이 있기에 만들어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런 문화가 인간이 짧은 인생을 살고 가볍게 죽기 때문에…”


“항상 듣던 얘기 그만하고 빨리 영화관인지 뭔지에나 들어가면 안 돼?”


 뮤리엘은 이런 내 얘기가 지루했는지 내 손을 끌고 영화관 안쪽으로 들어갔다. 나는 영화관에 오면 꼭 해보고 싶었던 일을 해냈다. 바로 팝콘과 콜라를 산다는 것이었다. 카운터의 점원은 내가 한국어를 잘한다는 것에 놀란 모양이었다. 영어로 대화할까 봐 꽤 긴장한 표정이 놀라는 표정은 재밌었다. 그야 뮤리엘과 나는 회색빛의 머리카락에 한국인과는 전혀 다른 얼굴이니까. 지금까지 공부해온 한국어 회화가 제대로 통했다는 것에 감동하며 뮤리엘에게 돌아갔다.


“뮤리엘, 팝콘 사 왔어.”


“늦어. 주변에서 인간들이 힐끔힐끔 쳐다보는 게 얼마나 기분… 읍…”


 나는 재빨리 뮤리엘의 입을 막았다. 우리 흡혈귀가 아무리 인간의 위에 군림한다고 하더라도 인간 사회에 전면에 나서는 것은 좋은 행동이 아니니까.


“여기서는 그런 말 하면 안 된다니까. 이상하게 쳐다본다고.”


“푸하… 알았어. 빨리 영화인지 뭔지 보러 가자.”


“그래, 그리고 뮤리엘?”


“응?”


“오늘 입은 옷 정말 잘 어울린다고.”


 우리가 평상시에 바깥을 나갈 때 입는 옷은 그래도 정장에 가깝다. 뮤리엘은 거의 원피스나 드레스 같은 나풀나풀한 옷밖에 없었기에 공항에서 마네킹에 있는 옷을 그대로 사서 입혀왔다. 본인은 인간 같은 차림을 한다는 것을 꽤 어색해했기 때문에 열심히 설득해야 했었다. 청바지는 원래 찢어져 있는 거니까 입으라고 얼마나 말을 했는지…


“치… 바보 같은 오빠. 인간들 옷을 입는 것도 오빠 부탁이라서 입어주는 거라고. 그러니까 좀 잘해.”


“고마워.”


 우리는 이윽고 어둑어둑한 영화관의 안쪽으로 들어갔다. 팝콘은 내가 들고, 콜라는 우리 사이의 팔걸이에 놓고. 인간처럼 영화를 본다는 것이 얼마나 신기한 체험인지. 살아온 지 100년이 넘어가는 나도 새로운 감각이었다. 이런 문화가 100년도 안 돼서 쌓아 올린 것이라니…


 이윽고 영화가 시작되었다.



 영화를 집중해서 보는 오빠의 얼굴을 옆에서 쳐다본다. 솔직히 인간이 쌓아 올린 건물이던 인간들의 연애를 그린 영화던 아무런 관심이 없다. 오빠와 나는 고귀한 밤의 왕, 그 진조의 혈통. 인간들이 만든 것을 보고 감동한다는 건 마치… 아기가 쌓은 장난감을 보고 감탄하는 느낌이니까.


 영화관의 불은 꺼져있지만, 나의 눈은 어느 때보다도 오빠의 얼굴을 보고 있다. 그의 오밀조밀한 코, 커다란 눈. 순박한 표정은 언제봐도 귀엽고, 나에게만 보여주는 자상한 표정은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든다. 조금 전에 옷을 칭찬할 때도 순간적으로 앞으로는 이 옷만 입고 오빠를 만날까 고민까지 해버렸다.


‘두 피가 하나가 된다…’


 오빠의 피와 내 피가 하나가… 아마도 두 진조의 피를 합친다는 말은 결혼을 말하는 게 아닐까… 아버지가 타계하시기 전에… 오빠… 오빠와 결혼…


 그런 생각을 하는 나의 얼굴은 붉게 물들었다. 오빠를 생각하면 나의 피조차도 제대로 조종할 수 없다니… 진조의 혈통으로써 조금 부끄러운 일이다.


 와삭.


 그런 생각을 잊기 위해 오빠가 사 온 팝콘이라는 것을 먹었다. 입안에서 바삭하고 부서지더니 사르르 녹아버리는 맛은 한 번쯤은 이걸 만든 인간을 인정해줘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미식이었다.



“아, 재밌었다.”


“그냥 괜찮았네.”


“그렇지, 마지막에 남자주인공이 여자주인공에 달려가는 장면은 정말… 눈물 없이는 볼 수 없었다니까?”


“우리가 흘릴 수 있는 눈물이 어디 있다고.”


“말이 그렇다는 거지.”


 인간이나 생물이 하는 대사를 우리는 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흘릴 눈물은 없긴 하지.


“인간들은 감동하면 눈물이 나온다잖아. 지금 이런 영화를 본 내 가슴의 감동은…”


“아아, 알았어, 알았어. 빨리 돌아가자. 나는 인간사회에 그렇게까지 오래 있고 싶어질 않단 말이야.”


“후후, 알았어. 그래도 커피 한잔 정도는 마시고 가자.”


 그래도 그녀는 팝콘이 마음에 들었는지 팝콘 통을 안고 있었다.


“그래도 팝콘은 마음에 들었나 보네.”


“음… 이 정도면 인간이 만든 것 중에서는 인정해줄 만 할지도?”


“푸흡… 그래, 그래.”


“뭐야, 오빠, 비웃지 마!”


 그런 시답잖은 말을 하며 우리는 근처의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시고는 비행기를 타러 다시 공항으로 돌아갔다.



“도련님, 아가씨. 내일의 저녁에는 만찬이 있을 예정입니다.”


 돌아오자마자 집사장이 우리에게 말했다. 식사가 필요 없는 우리에게 만찬이라는 것은 가문의 회의가 있다는 것과 비슷한 의미.


“약 12년만인가… 뭔가 중요한 말씀이 있는가 보군.”


 12년 전의 만찬에서는 한 가문의 파문을 결정하고 그들의 피를 모두 제거했었지. 흡혈귀의 힘으로 인간 사회의 전면에 나서려는 것에 대한 심판이었다.


“그렇습니다. 내일의 저녁까지 두 분 모두 준비해주십시오.”


“알겠다. 뮤리엘, 들어가자..”


“응.”


 아버지가 하실 말씀. 아마 아버지의 타계와 계승에 관한 말씀이겠지. 웬일로 아버지가 뮤리엘과 바깥에 나가는 걸 허락하나 했더니… 마지막 온정이었나.


“뮤리엘, 아버지가 이제 계승을 준비하시는 건 알고 있지?”


“응. 최근까지도 여러 가지를 정리하고 계셨으니... 무리엘, 무슨 일이 있더라도 혈통에 걸맞게 살아가렴.”


“그게 무슨 말이야?”


 뮤리엘은 의문이 가득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진조의 피에 항상 자긍심을 가지라고 나한테 설교하던 여동생이 나에게 역으로 이런 말을 들으니 그렇겠지.


“네가 항상 하던 말이지 뭐겠니.”


 나는 웃으며 얼버무렸다.


“오빠는 진조의 후손이라는 자각이 아예 없으면서. 내가 가주가 되면 오빠는 그날부터 오빠는 교육이야!”


“하하하. 알았어. 알았어.”



 다음 날 저녁, 식당에서는 향긋한 요리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 우리의 앞으로는 스테이크며, 칠면조 한 마리, 각양각색의 음식들이 보였다. 이것들은 식사를 위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가문의 품위에 맞는 준비일 뿐. 먹는 시늉조차도 하지 않는다. 아버지가 식탁의 상석에 앉아계셨고 우리는 그저 앉아서 아버지의 말씀을 기다렸다.


“내가 타계를 준비하는 것은 너희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예, 가주님.”


 뮤리엘과 내가 동시에 대답했다.


“1000년간 살아왔고, 전통에 따라 나는 이제 죽음을 맞이하고 다음 가주를 결정해야 할 때가 왔다.”


 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몇천년이고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진조의 피가 흐르는 고귀한 혈통이 타성에 젖지 않도록 가주는 천년에 한 번씩 교체되어야 하는 전통이 있다. 이전 가주가 고귀한 죽음을 맞이하고 다음 가주에게 진조의 피를 물려주는 전통이었다.


“[두 피가 하나가 되어야 한다.] 진조님의 혈통에 따른 전통을 이행해야 할 때가 왔다. 오늘, 이 전통을 이행하고 나는 죽는다.”


“가주님, 그 전통이 무엇인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뮤리엘이 말했다.


“지금부터, 이동하겠다.”


 아버지는 뮤리엘의 말을 무시하고 움직이셨다. 이동한 곳은 저택의 가장 큰 홀. 위에서 빛나는 샹들리에의 빛에 내리쬐는 여동생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하얀 드레스와 목에서 빛나는 붉은 루비 목걸이. 마지막으로 눈에 새기는 여동생의 모습이겠지.


“이제부터, 진조의 피를 하나로 합치겠다. 준비하거라.”


“아, 아버지 무슨 말씀인지 설명을?”


 뮤리엘은 당황했는지 호칭이 가주님에서 아버지로 바뀌었다. 나는 그저 그녀에게 멀찍이 물러나서 왼손에 피로 검을 만들었다.


“뮤리엘, 지금부터 무슨 일이 있어도 너의 탓은 아니란다. 그것만 알아주렴.”


“오빠, 무슨.”


 앞으로 달려 나가서 그녀의 몸통을 향하여 횡 베기를 했다. 그녀는 어지간히 놀랐는지 그 횡 베기를 막지 못했지만, 나의 횡 베기는 그녀의 몸을 뚫지 못했다. 역시 뮤리엘쪽이 진조의 피를 더 진하게 이어받은 것인가. 아니면 단순히 내가 나태했기 때문이었을까.


 곧바로 오른손에 피로 창을 만들어서 찔러보지만, 그녀의 손바닥에 막혀버린 나의 찌르기. 그녀는 여전히 당황한 표정이었으나 곧 침착함을 되찾은 모양이었다. 내 혈창을 부숴버리고는 입을 열었다.


“피여, 멈춰라.”


 그 말과 함께 뒤로 물러나던 나의 발이 우뚝 멈췄다. 그대로 뒤로 쓰러져버렸다. 남의 피를 조종하는 능력도 이 정도라니. 역시 나와는 전혀 달라. 어떻게든 일어서려는 팔도 이윽고 뚝 하고 굳어버렸다.


“뮤리엘, 역시 자랑스러운 내 여동생이야.”


“오빠, 이게 무슨 일이냐니까!”


 그녀가 마음만 먹으면 다리뿐만 아니라 온몸, 뇌까지의 혈류도 조종할 수 있을 것이다. 남의 피를 조종하는 능력이란 쉬운 것이 아니다. 이 정도면 진조의 재림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겠군. 내 말을 들은 뮤리엘이 나의 피의 통제권을 돌려줘서 나는 땅바닥에서 일어섰다.


“나엘, 역시 인간의 문화에 감화되더니 나약해 빠졌구나. 너에게 그 피는 어울리지 않는다. 알라드가문의 피를 포기하거라.”


 아버지의 피처럼 차가운 말씀. 하지만 나는 이미 예상하던 상황이었다.


“저는… 진조의 피를 포기함을 여기서 선언합니다.”


“오빠! 그게 무슨 말이냐고! 진조의 피를 포기한다니!”


“뮤리엘, [두 피가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말은 후계자 중에서 한명만이 그 피를 모두 가져갈 수 있다는 말이야.”


“그렇다는 말은…”


“뮤리엘, 너의 탓이 아니야. 우리의… 피에 흐르는 운명이야. 자.”


 나는 그녀에게 내 목덜미를 보여줬다. 뮤리엘은 목덜미를 보고는 더욱 놀랐다. 흡혈귀의 목덜미를 보여주는 것은 목숨을 포기한다는 것과도 같은 제스쳐.


“뮤리엘, 나엘의 피를 흡혈하거라. 네가 정통한 진조의 후계다.”


“아버지, 하지만…”


“반론은 받지 않겠다. 진조의 피에 걸맞게 행동하여라.”


 뮤리엘의 눈이 허공을 맴돌았다. 그녀의 손에서는 망설임이 잔뜩 묻어나오고 있었다.


“오… 오빠… 흑… 이런 게 계승이라면… 나는…”


“뮤리엘, 사랑하는 내 여동생아.”


 나는 내 앞까지 다가온 여동생을 안아줬다. 그녀는 내 어깨에 얼굴을 파묻고 흐느꼈다. 뮤리엘의 등 뒤로 보이는 아버지는 한없이 차가운 얼굴을 한 채로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뮤리엘, 나는 오히려 내가 피를 포기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너는 항상 진조의 혈통에 자긍심이 있었잖아. 나는 네가 너무 자랑스러워. 낙오자 같은 나와는 전혀 다르니까. 네가 계승하게 돼서 너무 다행이야.”


“싫어, 싫다고! 나는 절대로 싫어!”


“뮤리엘, 빨리.”


“싫어, 오빠! 오빠, 제발… 이런 건 싫다고.”


 처음부터 우리의 운명은 이런 것이었다. 진조의 피를 둘러싼 고독蠱毒속에서 지금까지 이렇게 우애 좋게 자란 것 자체가 나에게는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네가 이런 사실을 안다면 너도 나처럼 진조의 피를 잇지 않으려고 했을 테니… 그저 먼저 이런 운명을 알게 돼서, 받아들일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마지막의 마지막에 그녀에게 최면을 걸었다. 나보다 진조의 피를 많이 이었다고는 해도 울고 있고 감정이 흐트러진 지금에는 한순간이라도 그녀에게 간섭할 수 있었다. 양 뺨을 손으로 잡고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뮤리엘, 나를 흡혈해. 진조의 피를 가져가.”


“흑… 흐윽…”


 그녀는 울면서 내 어깨에 다시 얼굴을 가져다 댔다. 아니 이빨을 가져다 댔다. 진조의 피를 이은 흡혈귀의 흡혈은 고귀한 것. 그녀의 첫 흡혈이 이런 상황이라니.


“아버지, 그거 알아요? 다 개 같아요. 이런 운명도 당신도.”


“...”


“부디 뮤리엘이 고독孤獨하지만 않기를. 고고하게 군림하여도 누군가 기댈 곳이 있기를.”


“유언은 끝났느냐?”


“다 끝난 거 같은…”


 그 순간 온몸에 격통이 일었다. 내 몸은 마치 전기로 고문이라도 당하는 개구리처럼 움찔거렸다.


“으아… 으아 아아!”


 뮤리엘이 문 이빨 사이로 나의 존재가, 힘이, 모든 것이 빠져나가는 기분이 든다. 아니 삶을 뺏기는 기분이다. 눈이 저절로 감겼다. 아아… 부디… 행복하기를…




우리 대회 정상영업해요 (아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