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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맹인 여동생은 미워했던 오빠에게 의존한다(1)

(후회) 맹인 여동생은 미워했던 오빠에게 의존한다(2)

(후회) 맹인 여동생은 미워했던 오빠에게 의존한다(3)




“겨우 끝났네… ”

 

성수기 탓에 급하게 처리해야할 일이 늘어나자, 예정에도 없는 잔업을 하고야 말았다. 

 

점장은 예상치 못한 잔업에 얼굴이 굳은 나를 보고 고생한만큼 몫은 충분히 더 쳐주겠다고 위로했으나, 그건 별 상관이 없었다. 돈 문제로 골이 아픈게 아니라, 내가 앓고 있는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으니까.   

 

여동생.

  

아르바이트가 한시간이나 늦게 끝났다. 

 

연락할 새도 없이 일이 몰아닥치는 바람에, 집에는 연락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여동생이 따로 연락할 방법은 없을테고. 한시간 늦었다고 그 새 별 일이 생기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연락이 없으면 불안해 할 게 뻔했다.

 

역시 늦었지만 말이라도 해야겠지. 뒤늦게라도 연락해놓자고 핸드폰을 들었을 때.

 

“앗, 저기 얀붕 오빠?”

 

저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여동생의 학교 친구 얀진이었다.  

 

아르바이트 면접 이래로, 자주 여동생의 병문안을 와서 얘기를 나눠보긴 했지만. 오늘처럼 밖에서 마주친 적은 처음이었다. 게다가 독대라니, 역시 어색하다. 반대로, 얀진이는 불편한 기색없이 싱긋 웃으며 나를 마주보고 있었다. 

 

"아, 안녕?"

 

나는 슬쩍 손을 들어 인사했다.

 

“진짜 얀붕이 오빠시네요. 아, 혹시 알바 끝나고 집가는 길?”

 

딱히 숨길 것도 없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럼 같이가실래요? 저도 병문안 가려던 참이라.”

“그래…? ”

 

집가는 길을 누군가와 함께하는 거, 생각해보니 근 5년 만이었다. 귀갓길을 다른 사람과 같이 간게 오랜만이라, 얀진이와는 별달리 할말이 없을 줄 알았는데. 공통분모가 있어서 그런가, 대화는 나름 좋은 분위기로 이야기가 이어졌다.

 

가는길 동안 이전까지 얀순이의 학교생활 같은 걸 물어보거나, 요즘 유행하는 트렌드나, 별 시덥잖은 잡담까지 이어지다보니 정신 못차리는 사이 집 앞에 도착해 있었다. 

 

다른 사람이랑 마주 대화하는 게 오랜만이어서 그런가, 수다가 이렇게 재밌는거였는지 이제야 알았다.

 

“와, 오빠. 이거 봐봐요.”

 

빌라 공동현관의 문을 열고 있을 즈음, 얀진이는 나를 멈춰세웠다. 

 

얀진이가 가리키고 있던 곳은 빌라에 있는 작은 화단이었다. 아직 추위는 한참일텐데도, 화단에는 적지않은 꽃들이 피어있었다.

 

“수선화예요, 이거.”

 

예쁘네. 

 

한창 눈이 내릴 추운 겨울이라, 다른 꽃들은 이미 져버린지 오래고 나무도 이파리 하나 없는데. 노란색 색감의 꽃이 화단에 활짝 펴있자, 그건 그것대로 플라스틱으로 만든 조화가 아닌가 할만큼 기묘한 광경이었다. 그나저나 이맘때에 피는 꽃도 있었구나. 신기한 모습에 계속 쳐다본다.

 

“이런 날씨에 꽃구경이라, 기분이 묘하네.”

“예쁘면 된거죠. 봐봐요, 이슬 맺혀서 반짝거리는게 예쁘죠?”

 

듣고보니, 그렇네. 노란 꽃봉우리에 맺혀있는 이슬은, 아름다운 빛을 머금거나 독특한 모양을 가진 건 아니었지만. 마치 백수정처럼, 아무것도 꾸밈이 없었기에 되려 아름다웠다. 

 

맑고 투명해서, 자기가 받은 빛을 그대로 돌려주는 이슬의 순수함은 여느 장식에 비할 바 없었다. 그 모습 그대로 숨김 없었기에.

 

"오빠는 수선화의 꽃말이 뭔지 아세요?"

“꽃말?”

 

수선화의 꽃말. 꽃에는 관심이 없었으니 당연하게도 들어본 적 없다. 

 

“수선화는 영어로 나르키소스. 옛날에 나르키소스가 호수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반해 샘에 빠져 죽게된 이래로, 그 자리에서 피어난게 수선화라고 해요. 그래서 수선화의 꽃말은 자기애지만… ”

 

수선화의 꽃잎을 매만졌다. 연노랑색 꽃잎. 가운데에 나팔처럼 생긴 꽃봉오리를 매만지며, 얘기했다.

 

“하지만 노란 수선화의 꽃말은 달라요.”

 

노란 수선화에는 나르키소스에게 사랑을 전하지 못한 에코의 이야기가 담겨있다고, 운을 떼었다. 여신인 헤라를 기만하려던 죄로 남의 말만 따라할 수 있는 벌을 받아. 자신이 사랑하는 나르키소스에게 단 한마디의 고백조차 하지 못한 에코. 노란 수선화는 그런 비극에서 피어난 꽃이라고.

 

“그래서, 노란 수선화의 꽃말은… ”

 

 

 

내 곁으로 돌아와줘.

 

 

 

귀를 틀어막았다. 

 

듣고싶지 않은 말이 귓속으로 흘러들어왔다. 

 

맴도는 생각들, 말소리, 비웃음. 

 

무서웠다. 

 

나도 알고있는 말이야. 알고있으니까. 제발 닥쳐. 아무리 말해도 비난은 멈추지 않는다. 

 

들리는건 귓가를 맴도는 이명. 쓰레기, 짐덩어리, 족쇄. 나를 욕하는 소리들.

 

울고싶어. 

 

나를 매도하는 그 소리가 듣기 싫었다. 

 

오빠에게 저지른 그 모든 죄가, 내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모든 비난의 화살이 나를 탓한다. 어째서, 어째서 그랬냐고. 오빠한테 왜 그랬냐며 힐난한다. 나도 그러고 싶었던게 아니라고, 변명한다. 

 

그럴때마다, 이 죄를 어떻게 갚을거냐고 또다른 내가 말한다. 산더미처럼 쌓인 죄.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새겼다. 

 

갚을 방법 따위 있을리가… 너무나 과분했다. 내게는 과분한 사랑이었다. 

 

주기만 했어도 모자랐을텐데. 오빠에게 상처까지 입혔으니. 평생을 바치더라도 못 갚을 양이었다.

 

제발 그만해줘. 모두 알고있으니까. 그만해.

 

무서웠다. 또다른 내가 하는 말들을 나를 죽이려할듯 물어뜯었으니까. 

 

나도 알고있는데도, 내 멱살을 잡고 면박하는 듯 나를 죄어왔다. 숨이 막혔다. 감당할 수 없었다. 내가 지은 죄를 돌이켜 볼 때마다 도망치고 싶었다. 그러면 안되는데도, 숨고 싶었다. 

 

무서워… 하지마…  

 

이불을 뒤집어 썼다. 

 

귀를 아무리 눌러 막아도 말소리는 줄어들지 않는다.

 

빨리 와줘… 오빠… 

 

오빠가 오면 잊을 수 있을테니까. 

 

사랑받을 자격도 없다는 말도, 너같은 쓰레기가 옆에 있으면 불행해질 뿐이라는 욕도, 오빠가 오면 거짓말같이 사라질거야. 눈을 감았다. 오빠를 생각하면 조금 더 버틸 수 있어. 그러니까… 

 

오빠.

 

발소리가 들리지 않아. 

 

오분이 지나도, 십분이 지나도 인기척도 들리지 않아. 분명 지금쯤 와야할텐데… 지금이라면 오고도 남았을텐데? 뭐야, 어째서 안오는거야…? 무슨 일이라도 생긴거야…? 거짓말이지… 장난이지, 이거…?

 

나, 버려진거야…? 

 

그럴리없어. 사랑한다며, 버리지 않겠다며. 

 

그런데도 말 뿐이였던거야? 아냐, 아냐. 오빠는 절대 버리지 않는다고 했어… 

 

오빠가 거짓말할리가 없어. 어제 말했잖아. 

 

근데, 어째서? 왜 버린거야?

 

내가 부족한거야? 내가 쓸모없어진거야? 그래서 버린거야…?

 

버리면 안돼. 버리지 마. 안돼. 떠나면 안돼. 어떻게든 옆에만 남게해줘. 

 

머리가 찢어질 듯 아팠다. 

 

누워있지 않으면 속에 있는 걸 게워낼 것만 같았다. 참을 수 없어. 

 

이대로는 안돼. 자꾸 소리지른다. 괴로워, 오빠. 어딨는거야… 한 번이라도 좋으니까… 제발 여기있다고 말해줘… 

 

***

 

현관에는 여동생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빠… ”

 

울먹거리는 여동생의 얼굴. 

 

혹여나 곧 울음보가 터지지라도 않을까, 위태위태한 모습이었다. 

 

처음보는 깨질듯 말듯 아슬아슬한 눈동자를 본 나는, 막상 목이 메어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이럴땐 어떻게 해야하지, 조금만 침착했다면 무슨일이냐고 물어라도 봤겠지만. 

 

도저히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이윽고, 여동생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나, 오빠가 버린줄 알고… ”

 

그제서야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한 나는, 푹 주저앉는 여동생을 붙잡아 부축했다. 

 

“무슨 일이예요…?”

 

뒤따라 들어온 얀진이가 물었다. 

 

나도 어떻게 된건지 궁금할 따름이건만. 나는 그저 고개를 으쓱거렸다. 

 

원인 같은 건 나도 알 도리가 없었다. 그저, 상태가 불안해보인다고 밖에 말할 수 없었다.

 

“그 나도 모르겠어. 갑자기 이렇게 돼서.”

 

내 품을 꼭 껴안고 있던 여동생의 떨림이 점차 잦아들고 있었다. 

 

이제는 진정이 된걸까. 차분히 얀순이의 허리를 붙잡고 떼어내려 하자.

 

“싫어. 가지마… ”

 

여동생은 오히려 내 등을 꽉 붙잡고 놓으려 하지 않았다. 

 

“무서우니까. 조금만 더 이대로 있어줘. 자꾸, 이상한 목소리가 들려서… ”

“알았어.”

 

어쩔 수 없다. 

 

“얀진아, 미안. 오늘은 상황이 아닌거 같아서. 다음에 다시 찾아와줄래…?”

“아녜요. 괜찮아요. 저도 이해하니까요.”

 

하며, 얀진이는 어딘가 망가져버린 얀순이를 측은하게 바라봤다.

 

“그럼, 다음에 올게요.”

 

얀진이가 가고나자.

 

나는 여동생을 일으켜 세웠다. 

 

여동생의 모습은 마치 어딘가 나사가 빠져버린 사람처럼 느껴져서, 나 역시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저 이대로 시간을 두고 경과를 보는게 답인걸까. 전혀 모르겠다.  

 

“이제 괜찮아?”

 

여동생은 아무말 없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조금은 마음이 추스러진걸까. 내 등을 꽉 움켜잡고 있던 여동생의 손을 조심스레 풀고 있자. 

 

“오빠, 얀진이랑 같이있지마… ”

 

여동생은 말했다.

 

“얀진이랑 같이 있으면… 오빠, 어디론가 떠나버릴 것 같으니까… 그런건 싫어… 절대 안돼…”

 

여동생은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어떻게든 몸을 짓누르는 괴로움을 떨쳐내려고 하는듯, 필사적으로 달라붙었다. 벗어나기위해 발버둥치는 여동생의 얼굴을 보아하면, 아무말도 나오지 않았다.

 

“오빠를 잃어버리고 싶지 않아. 이제야 사랑해주고 싶었는데. 용서받고 싶었는데. 오빠가 없으면 나, 어떻게 해야하는거야…”

 

여동생은 껴안은 채로 귓가에 속삭였다.

 

“떠나지 말아줘, 오빠… 뭐든 해줄테니까… ”

 

라고. 

 

“거짓말 아냐… 나, 오빠를 위해서라면 내 모든 걸 내줄 수 있어… 그러니까… ”

 

여동생은 몸 위로 덮고 있던 옷가지를 한꺼풀씩 벗어낸다. 

 

처음은 웃옷. 다음은 브래지어. 이내 얇은 반바지와 팬티. 

 

어느하나 남김없이, 치부조차 가리지 않은 새하얀 모습으로.  

 

여동생은 아무것도 숨기지 않은 순백의 나체로 내 앞에 서있었다.

 

“오빠의 개가 될테니까… ”

 

한없이 비참해진 여동생의 모습. 

 

“버리지만 말아줘… ” 

 

울먹이며 애원하는 여동생의 모습을 보기에는, 자신이 없었다. 

 

“미안… ”

 

그저, 그 말 밖에 꺼낼 수 없었으리라. 

 

내 입에서는 그저 미안하다는 말 밖에 나오지않았다.

 

“어째서야…? 뭐가 미안한건데…?”

“그, 미안… 그래도 남매잖아. ”

 

그 이상은 도덕을 저버리는 짓이니까. 

 

그렇게해봤자, 여동생의 마음에 못을 박는 일 밖에 더 되지 않을테니까. 그럴 수 없었다.

 

“그게 어때서…?”

 

여동생은 천천히 내게 다가왔다. 어떠한 감정조차 사라진 채, 무심했다.

 

“나, 잘 모르겠어. 그게 잘못된거야…? 다른 사람이랑 다른게 뭔데. 나, 누구보다 오빠를 사랑할 자신이 있는데. 어째서 안된다는거야… ”

 

뜨거운 숨결이 귀를 간질였다. 

 

***

“사랑해… 누구보다 더… ”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오빠를 사랑해서는 안되는 걸 아는데도. 이런 나 같은건 오빠 옆에서 사라져야 했을텐데 오빠를 괴롭혔는데도, 눈치없이 좋아하게 돼서. 이제서야, 오빠를 알게 됐어. 

 

“나도 내가 이상해진건 알지만 그래도, 알고있어. 오빠를 사랑하고 있어. 진심으로. 내가 망가지지 않았더래도, 오빠를 사랑했을거야. 오빠 곁에서, 항상 오빠의 상냥함을 봐왔으니까. 얼마든지 사랑했을거야

 

가슴이 쿵쿵 거린다. 

 

귀를 틀어막고 싶은 이명에, 어느덧 몸이 집어먹힌듯 움직인다. 

 

더이상 나는 내가 아니게 되어가는거 같아. 오빠 때문이잖아. 오빠가 내 곁을 자꾸 떠나려하니까. 이러는 거 아냐.


"그러니까, 떠나지 마 변덕같은 게 아니니까. 진짜, 오빠를 원하고 있으니까. 오빠가 없으면, 살아갈 수 없으니까


오빠 탓이야.

 

떠나지 않을거라면서… 왜 날 떠나려하는거야? 

 

그러면, 내가 더이상 갚아나갈 수 없잖아. 오빠에게 줄 수 있는건 고작, 사랑뿐이니까. 

 

오빠의 그 유약한 성격 때문에, 그것마저 받아주지 않으면. 나는 더 어떻게 해야하는거야…? 

 

오빠의 개가 될게. 

 

그러니까, 두고가지 말아줘. 어떤 방식으로라도 오빠 옆에 남게 해줘. 

 

무엇이든 어떻게든 괜찮으니까, 날 필요로 해줘. 그렇게라도 속죄하게 해줘. 

 

나, 오빠의 진심을 알고 있으니까. 오빠의 진심을 사랑하게 됐으니까… 

 

“가져줘, 오빠.”

 

참을 수 없어. 이대로는 안된다며, 마음은 계속 소리지른다.


다른 건 모두 잃더라도, 오빠를 잃긴 싫으니까. 오빠에게 모든 걸 줄 수 있어. 

 

“오빠에게 닿을 수 없다해도, 곁에서 바라볼 수만 있어도 좋아. 오빠의 주변을 맴돌게만 해주면, 항상 보고있을테니까 오빠가 사랑해주지 않더라도, 영원히 사랑해줄거야… 곁에만 있게 해준다면, 오빠를 행복하게 하기위해서 뭐든지 할 수 있어…

 

오빠가 얼마나 소중한 사람이지. 얼마나 순수한지. 다른 사람들은 몰라. 


내가 부족한만큼 오빠를 더 사랑할테니까… 오빠를 모두 알아줄테니까…     

 

“내가 오빠를 행복하게 해줄게, 다른 사람이 메울 수 없을만큼. 그러니까… ”

 

천천히 촉감으로 오빠의 몸을, 얼굴을 머릿속에 새겨간다. 더는 잊을 수 없을 만큼. 다시는 오빠를 잊지 않을만큼. 세세한 부분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머릿속으로 기억할 수 있도록. 


오빠를 잊고 싶지 않으니까. 영원히 기억하고 싶으니까.


“내 곁으로 돌아와줘… ”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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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 풀악셀 참았다 이정도면 잘 참은거 맞지?


전 화 임팩트가 좀 커지는 바람에 결말이 묻힐까 고민되긴 하는데, 그래도 무난하게 결말낸 것 같아서 다행임. 


솔직히 소설 올려보는 거 얀챈이 처음이라 좀 살 떨렸음 


옛날에 싸지른 글은 논외로 치고, 사실상 거의 처음 공개하는거나 다름없었는데, 다들 좋아해줘서 너무 고맙다ㄹㅇ


덕분에 결말까지 쓸 수 있었던 것 같음


막상 결말 쓰고 나니까 못참겠네;;



결말도 냈으니까, 이제 얀데레 여동생 만들러 가봄ㅂ2


다음부터는 '얀데레 여동생 연금기()' 으로 돌아올테니까


안오면 성공한 줄 알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