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여동생은 좀 멍청한 기질이 있다.


정말 신기하게 종이에 베여서 나한테 울면서 달려든다던지


벌레가 나타났다며 작은 개미 하나 못 죽이는 모습이 이라던지


아니면 정말이지 곤란한 상황이 올때면 항상 나한테 쫄래쫄래 따라와선 도와달라고 울고불고 난리를 쳤다.


그러면서도 나한테 잘보이려고 열심히 공부를 하는거 같았는데 매번 내가 옆에서 공부를 도와줄테면 항상 문제도 제대로 못풀곤 내가 하나 하나 설명해줘야 알아 들었다.


어릴적 나는 여동생과 헤어져서 살았는데 어머니와 아버지가 엄청나게 싸우셔서 나는 친가쪽으로 동생은 외가쪽으로 가서 살았다.


그 뒤로 양육권은 아버지가 있는상태로 나는 동생과 같이 살았다.


어머니에겐 양육권만 달라 하셨기에 아버지는 매번 홀로 우리를 먹여 살리러 돈을 벌러 가셨다.


그때문인지 집에서는 매번 나와 동생밖에 없었다.


동생은 학교에서도 따돌림을 당하는지 내가 동생쪽으로 볼때면 동생은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사교성이 떨어지는 애였기에 매번 학교가 아닐땐 옆에 붙어다니며 주말이면 밖에 나가서 같이 영화도 보고 놀이터에서 놀아주며 시간을 보냈다.


그래도 집에 가끔 보이는 아버지와 아예 사라지신 어머니 외엔 내가 유일하게 동생을 지켜 줄 수 있었으니까


그런 마음으로 동생을 보살피고 키웠다.


그렇게 동생과 같이 놀고 게임하며 내가 밥을 차려서 먹여도 주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면서


난 점점 기본적으로 챙겨주는거 이외엔 사생활이 있었고 가끔가다 여동생이 너무 달라 붙을때면 여동생을 멀리 보내놓고 화내는척을 했다.


그래도 여동생은 착하게 자라주며 가끔 들어오시는 아버지와도 같이 잘 어울리며 우리 셋은 그래도 행복하게 지냈다.


내가 고등학생이 되고 기숙사에 들어갔을때 동생은 울면서 제발 가지 말아 달라고 빌었지만 어쩔 수 없다며 주말에라도 같이 보자고 했다.


그런데 고등학생이 되고 이튿날 째 여동생은 자살기도를 했다.


자살 기도를 한 여동생의 소식을 듣고 곧장 조퇴를 한 뒤 병원으로 갔다.


병원에 가자 웃으면서 날 반기며 와줘서 고맙다는 말을 듣자 그러지 말라며 내가 보고 싶다는 이유로 그런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잔소리를 했다.


너도, 나도 이제는 나이가 들었으니 더이상 칭얼거린다고 받아줄 수 없다고 스스로의 일은 자기가 처리해야 한다고 했고 너무 나한테만 의지해서도 안된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체도 안하며 내게 말했다.


"그래도 오빠가 바로 달려 왔으니까 오빠의 마음이라도 알 수 있어서 기뻐"


그럼 제발 부탁이니 다른 방법은 많다고 매일 밤마다 사진이나 통화라도 해줄 수 있다 했지만


"그럼 직접 만나지도 못하고 오빠도 느낄 수 없잖아"


"지금 이렇게라도 만나서 화내는 오빠라도 보는게 좋아"


난 미안하지만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몇번의 말을 저 했지만 역시나 한귀로 흘려듣곤 그럼 나와 약속을 하자고 했다.


"그럼 평일에는 학교에 있겠지만 주말에는 완전히 나랑 놀아줘야 하는거야?"


나는 약속을 하며 평일에는 가만히 있어달라고 했다.


그 뒤로는 주말마다 집에 들어와서 동생이랑 놀아주었다.


그래도 내 말에 잘 따라주었기에 평일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주말에는 오히려 나와 잘때면 같이 잔다거나 내가 화장실을 갈때면 화장실 앞에서 기다리는 등


너무나 나를 따라다녔지만 평일에는 아무 탈 없이 있었기에 동생이 참은걸 생각하며 적당히 선을 지키며 놀아주었다.


하지만 적당히 풀어주려 했지만 점점 수위는 선을 넘기 시작했고 자기 옷이 아닌 내 옷을 입을때도 그러려니 했지만


내가 하루종일 입고있던 옷을 빨랬감에서 코를 박고는 냄새를 들이맡는걸 보곤 더이상은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주말마다 같은 침대에서 자는것도 못하게 막았고


토요일은 같이 놀아 주었지만 일요일은 내가 친구들과 놀러 가겠다고 한 뒤 밤에 들어오자


동생은 내 방을 잔뜩 어질러 놓고 나체로 침대에 자고 있었다.


그저 난장판만 일어난것이 아니라 내가 이번주 숙제를 다 저장해놓은 노트북이 뒤로 꺾여있었다.


안그래도 아버지는 매번 생활비가 부족하다 하셨지만 그래도 공부를 하려면 컴퓨터는 있어야 한다고 큰맘먹고 70만원 컴퓨터를 샀지만


그런 컴퓨터도 잘 돌아가지 않아 힘들지만 그래도 열심히 써서 기숙사에서도 들고 다니며 공부를 했는데


그런 노트북이 반대로 꺾여 부서져 있었다.


사람이 화가 나면 말이 없다고 했던가


내가 천천히 동생을 깨우자 동생은 덮은 이불을 쥐고 가릴 곳만 가리고선 금방이라도 울듯이 억지로 웃으면서 이제 왔냐며 말했다.


이게 다 어떻게 된 일이냐며 추궁하자


"오빠가.. 안오니까.. 오빠가 있던 방에 있으려고 했지 오빠가 같이 못자게 하니까 오빠가 가고 나서 온몸으로 느끼고 싶었어"


침착했던 난 시간이 지나 조금씩 화가 풀릴수록 오히려 조금씩 언성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집착의 정도가 너무나 지나쳤다. 노트북은 왜 부쉈냐며 아버지가 형편도 안되는데 어떻게 산건지는 아냐며 화를 내자


"오빠 동생이 오빠가 없으면 힘들데.. 오빠한테 관심 끌려고 그랬나봐"


장난스럽게 말을 하자 난 화가 난 나머지 동생의 뺨을 때렸다.


이때까지 한번도 동생을 때린적은 없었다.


아무리 동생이 실수하고 화가 나는 행동을 했을지언정 잔소리만 하고 끝이였고


장난으로 몇번 약하게 건드리는 정도까지 밖에 안해봤지만 그래도 믿고 의지 할 수 있던 사람이 나밖에 없던


동생이였기에 열심히 보살펴 줬다.


하지만 보살펴 키운만큼 착하게 자랐고 몸은 이미 다 커서 충분히 성인으로도 보일만큼 잘 자라주었다.


하지만 정신은 어릴적.. 아니 그보다 더 심하게 내게 집착을 했다.


뺨을 떄리고 나선 동생은 뺨을 한번 만지더니 진짜 맞았나 확인을 하다 벌떡 일어나더니 자기방으로 향했다.


나도 뺨을 때린것에 당황하며 어쩔 쭐 몰랐는데 동생은 자신의 방에 가서 문을 잠그고선 아무말 없이 방에 있었다.


내가 미안하다며 말로 해보자고 계속 말했지만 내부에서는 자신같은 사람은 필요 없다며


더이상 믿을 사람 하나 없고, 사랑해주는 사람 없는 인생은 의미 없다는 말을 했다.


방 안에서 울면서 죽고 싶다고 계속 말하며 부스럭 거리는 소리를 듣곤


난 문을 어떻게던 열려고 했다. 제발 그런 행동은 하지 말아달라며 내가 정말 미안하다며 문좀 열어달라고 했다.


동생이 어릴적 울면서 내게 많은걸 부탁해도 어떻게던 들어주며 내게 고맙다며 말해주던 모습이 기억에 스치자


난 있는 힘껏 문고리를 부숴 방 안으로 들어갔다.


이미 손목을 긋고는 울다 지쳐 졸았는지 기절했는지 난 어떻게던 집안의 붕대를 감고는 119에 전화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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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 가서 정신적으로도 검사를 받아보았다.


검사를 받자 사회성 결여와 과한 의존증세가 있다고 말했다.


아직 사회성이 결여되어 친구를 사귀지 못했기에 나에게만 의존했다고 차라리 내가 친구를 만들어 주었음 어땟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병원에 얼마 있다 방학이였기에


방학동안 같이 병원에서 생활하며 조금씩 동생의 사회성을 만들어 주려고 노력했고, 과한 의존증을 줄이기 위해서 조금씩 만나는 시간을 줄이고


스스로 생각 할 시간을 주었다.


조금씩 발전은 있었다. 조금씩 조금씩 발전을 하며 2학기 부턴 기숙사를 들어가지 않기로 해서


동생이 병원에 퇴원을 하고 동생의 학교에 가서 잘 대해달라며 맛있는 것도 주곤 했다.


동생의 친구들과도 같이 놀며 동생이 친구도 많아진 것 처럼 보여 좋았다.


동생을 좋아하는 것으로 보이는 남자 애도 있었기 때문에 난 안심했고 안일했다.


난 이제 가만히 놔두면 시간이 지날수록 호전될것이라 생각했지만


하루에 10시간에서 1시간만으로 내가 옆에 있어도 괜찮아 졌다고 생각했지만


야자를 하고 돌아오자 동생은 내 방 안에서 움크린체 자고 있었다.


눈에는 눈물을 흘렸다는듯 눈은 부어 있었고 내 침대 위에는 내가 입었던 옷들이 잔뜩 널부러져 있었다.


동생의 집착이 솔직히 말해선 조금씩 부담이 되었다.


더이상 애도 아니였고 동생도 곧 있으면 고등학교를 올것이였으며 가장 중요한것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것이였다.


나는 남고였지만 항상 동생을 보러 가야한다고 다른 애들이 소개팅이라도 가지 않아야 겠냐 했지만 거절하고 거절하다


그 일요일 날 친구들과 나가서 놀때 만났던 한 선배가 있었다.


그 선배는 매번 내 애기를 들어주며 여동생 때문에 힘들었겠구나, 그래도 여동생인데 잘 대해줘야지 않겠냐며 여동생을 주제로 말을 나누었고


어느샌가 여동생만이 아닌 다른 주제들로도 대화를 나누며 조금씩 선배와 대화 할때면 살면서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을 조금씩 느꼈다.


그런데 동생이 요즘따라 집착이 심하다 말하자 동생을 조심하라며 그럼 동생하고 대화를 잘 나눠보라고 했다.


이미 지쳐 있었던지라 힘들게 맞쳐주는 동생보다 내가 아무렇게나 칭얼거려도 받아주는 선배가 좋았다.


그런데 내방에 자고 있는 동생을 평소같았으면 깨우고 그냥 잤겠지만 그저 침대 밑에 이불을 깔고는 그냥 잤다.


선배가 반응을 해주지 않으면 어떻겠냐고 말했기 때문이였다.


차라리 관심을 안주는 방법을 쓰면 괜찮아 질거라 생각했다.


매번 밥을 차려주고 난 나중에 먹겠다고 했고


집에 들어올때면 내가 공부하고 있을땐 방해하지 말라고 했다.


어쩔 수 없다는듯 시무룩한 표정의 동생이였지만 그래도 나를 덜 귀찮게 해서 좋은듯 했다.


최소한의 관심만 줘서 동생이 폭주하지 않게 했고 난 공부한다며 선배와 대화를 했다.


일요일이면 동생의 친구들과 같이 놀기도 했지만 동생의 친구중에 선배의 동생도 있어서 자연스럽게 만나 같이 있을 수 있었다.


사실 선배 옆에 있으면 좋은 기분이 들었다. 선배는 나보다 큰 키에 항상 웃으면서 받아주며 그저 옆에만 있어도 편안한 사람이였다.


그런 선배도 내가 좋았을까 내가 옆에 뭐라 뭐라 한들 정말 쓸모없는 말일지라도 열심히 집중하며 들어주었다.


좋았다 그런 관심이, 좋았다 그런 포근함이, 좋았다 선배란 사람이


동생은 항상 옆에 껴서 같이 붙어다녔고 가끔 선배와 나 사이에 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같이 있으면 편안했으니까


어느순간 동생은 선배를 매우 싫어하는거 같았다.


그런데 어느날은 선배가 내게 말했다.


동생이 자기를 너무 싫어하고 질투한다며 원래부터 나는 자기의 꺼였다는 둥의 말을 하며 악담을 퍼부었다고 했다.


그런 동생에 지쳐 미안하다며 계속 애기를 나누었고 그날 나는 선배한테 고백을 했다.


선배는 잠시 아무런 답장이 없더니 곧 답장을 했고


그 답장은


'좋아'


였다.


그 뒤로는 일요일마다 몰래 만나선 같이 놀았지만 시간을 너무 지체할 순 없어 매 일요일 2시간씩 시간을 내서 만났다.


그렇게 행복하게 보내며 내가 2학년이 되었을때


선배는 공부한다며 바빳고 동생은 고등학교에 적응하니라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매번 학교에 있었던 일들을 말했다.


동생이 고등학교에 애기를 할떄마다 조금씩 다른 애들과 친해지는게 어떻겠냐 말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불평을 하는 말은 사라졌다.


그런데 어딘가 이상했다.


항상 집착 수준으로 붙어다니던 동생이 눈에 다크서클이 생길 정도로 매번 밤마다 무언가를 한 것이였다.


난 편해졌거니 하고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았다.


어쩌면 오랜만에 찾아온 평화를 가만히 즐기는 것 일지도 몰랐다.


그런데 어딘가.. 무언가가 잘못되는 느낌이 들었다.


분명 엄청나게 편했지만 어느 순간 위화감을 느꼈다.


혹시나 몰라 선배에게 연락을 해봤지만 받지를 않았다.


뭐지? 너무 바빠서 그런건가?


난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고 점점 동생은 지친 얼굴에서 웃는 얼굴로 바뀌고 있었다.


매번 일요일 마다 만나던 선배가 2달째 연락이 없었다.


혹시나 몰라 선배의 집을 찾아가 보았다.


문을 두드리고 문이 열리자 선배는 날 보더니 금세 문을 닫았다.


왜 그러는거냐며 문이라도 열어달라 했다.


문을 열자 선배는 그 편안한 얼굴은 사라진체 피해망상에 걸린 사람처럼 죽을 상이 돼 있었다.


선배는


"미안하지만 나 찾지 말아줬으면 좋겠어.. 너한테도 좋은 일일테고 나한테도 좋을거야..'


난 영문도 모른체 문전박대를 당했고


그대로 집으로 돌아왔다.


천천히 잘못되었다는 생각은 이내 완전히 꼬였다는 생각으로 밖에 안들었다.


내가 집에 들어온 그날부터 동생은 다시 시작했다.


하지만 동생은 예전처럼 부담스럽게 들이밀거나 집착을 하는것이 아닌 천천히 조심스럽게 다가와 접근했다.


매번 내가 차리던 식사도 본인이 준비하며 최대한 내가 좋아하는걸로만 준비했고


매번 날 따라다니지 않고 내가 필요할때면 언제나 찾아와 도와주었다.


점점 누군가를 닮아가는 모습이였지만 그래도 집착은 아니니 괜찮다며 스스로 생각했고


매번 꿈에선 여동생을 과거에 챙겨주던 모습이 계속 떠오르며 여동생을 아끼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점점 여동생이 다가갈수록 이런 꿈들은 많이 꾸었고 학업에 열중하였기에 남는 시간은 얼마 없었다.


그런 남는 시간이 조금씩 여동생에게 잠식되어 갔지만


그런 잠식을 알아차리지 못할정도로 조금씩 아주 조금씩 잠식되어갔다.


선배가 무슨 일이 일어났나 알아 보려고도 했다.


하지만 이미 집에서 나와 붙어있던 여동생이였기에 그런것을 생각할 시간을 만들지 않았다.


여동생은 사랑한다며 계속해서 말했고, 가끔은 손도 잡고 데이트도 즐기며 보냈다.


스스럼 없이 나를 안아주고 해도 일상이 되었기에 거부 할 수 없었다.


침대에서 같이 자는것도 거부 할 수 없었다.


침대에서 같이 잘때면 어릴적 여동생의 꿈을 꾸지 않았으니까


잘때마다 키스를 하고 자는 여동생을 뭐라 말할 수 없었다 매번 몽롱할때쯤 키스를 해왔기에 오히려 기분좋게 잤으니까


학교에 있던 성적은 점점 떨어지기 시작했고 공부엔 집중이 잘 안되었지만 원래 공부를 해온것이 있었기에 그나마 조금 떨어진 상태로 버텼다.


학업 스트레스로 가득했고 그나마 쉬는 시간도 극히 적었기에 더욱 더 점점 더 쉬고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여동생의 가슴팍에 안긴 체 가만히 온기를 느끼는 것이 정말 행복했다.


그저 조금씩 칭얼거릴 사람이 필요했다.


어릴적 부터 나도 보살핌 받고 싶었다.


아버지를 따라 친가쪽에 갔을땐 아버지가 가고 할머니만 남았을땐 수돗세도 아깝다며 씻지도 못하게 했고


매번 아버지만 잘 대해주시며 아버지 없인 학대 당하다


다시 재결합을 하고 그 어린 나이부터 여동생을 챙겨주기 시작했기에 사생활이란게 없었다.


그저 맞춰주고 맞춰주며 화나게 할지언정 욕을 해도 금세 웃으며 반겨줘야 했으니까


그렇지 않으면 나 없인 보살핌 받지 못하는 애가 슬퍼할테니까


여동생이 사랑한다고 귓가에 대고 가볍게 속삭이면


사람은 똑같은 말을 들으면 감흥이 떨어진다 했지만 점점 사랑한단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져 더욱 더 안기고 싶었다.


팔을 벌리며 안아주던 여동생이 내가 아침이 되자 둘은 나체로 서로를 안고 있었고 먼저 깬 여동생이 일어났냐며 웃어주었을땐


정말이지 행복했다.


늦게 오는 사춘기가 무섭다고 했나?


시간이 지날수록 동생은 나를 안아주는 대가로 많은것을 바랬다.


아침에 일어났을때 나체가 되는것은 큰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자려고 들었을때 등에 가슴팍을 비비는것, 내 다리사이에 허벅지를 끼워넣고 비비는것


천천히 수위는 높아져만 갔고


그 수위는 내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을땐 맨정신으로 몸을 겹치게 되었다.


하루종일 공부만 하다 몸을 겹치는것 정도야 시간에 문제는 없었다.


그저 밥 한번 더 먹을 시간이였으니까


고작 몸 한번 겹치는 이 쾌락으로 더욱 공부에 집중 할 수 있었으니까


몸을 겹치지 않고서야 공부는 커녕 맨정신으로 버틸 수조차 없었으니까


우린 어른이 되었고 아버지는 고등학교 3학년때 현장에서 일하다 돌아가셨다.


보험금이 있었기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취업을 했다.


보험금은 내 명의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보험금을 정리하다 여러 서류를 보았다.


유전자 검사, 가족관계 증명서.. 등등


그런 서류들을 본 결과 사실 어머니는 이미 아이가 있었는데 재혼을 했고


아버지는 내 원래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재혼을 하신거였기에 서로는 싸우다 이혼을 했지만


어머니는 사실 그저 도망간 것이였고


아버지는 어쩔 수 없이 피도 안섞인 동생과 나를 위해 돈을 벌어다 준 것이였다.


그런 아버지를 뒤로 한체 이런 서류를 정리하다 동생에게 들키게 되었다.


동생은 대학을 졸업하곤 대기업에 들어갔는데


대기업에 매번 출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올때면 항상 바로 입을 맞추고 몸을 섞었다.


이미 서로는 피가 안섞였기 때문이였을까? 그런 서류를 본 뒤 동생은 위험한 날에도 안에 싸기를 바랬고


그렇게 임신을 하자 1년간 휴가를 내놓고 우리의 아이를 출산했다.


하지만 우리가 낳았다고 할 수 없었기에 난 조건 결혼으로 우리의 아이를 입양하기로 했다.


매달 내가 돈을 줄테니 혼인 신고서에 도장만 찍어달라 했고


그런 우리의 아이를 정식으로 입양하고 지극 정성으로 돌봤다.


그 뒤로 우리는 맞벌이로 자식을 열심히 키워 나갔다.


그렇게 우리의 딸은 풍부한 관심과 사랑 속에서 잘 자라주었고


딸은 얀붕이라는 남자 아이에게 관심이 생겼는지 매번 우리에게 말을 해주곤 했다.


음.. 어디까지 했더라?


아무튼 이러한 나와 사랑하는 아내 얀순이, 얀진이와 함께 영원히 살았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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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글을 쓰는데 한 10번 이상 갈아 엎으니까 멘탈 나가는거 같은데


결국엔 그냥 내가 쓰고싶은거 쓰니까 되게 재밋단 생각이 듬


반복되는 말도 많고 쓸모없는 내용도 많은데 내가 넣고싶은 내용들을 다 넣고


어떻게던 이어가려고 해서 이음새가 이상할 수도 있겠다..


먼가 대회에 넣어도 될거 같아서 대회탭에 넣었는데 아닌거 같다 싶으면 소설탭으로 바꿀게..


오타나 문맥 이상한거 지적해주면 고맙고 오늘도 읽어줘서 정말 고마워!


본인 소설 모아둔곳 https://arca.live/b/yandere/245665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