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붕아 일어났니? 오늘 약속 잊지 않았지?'


토요일 아침. 일어나서 휴대폰 알람을 끄니 도착한 문자 알람이 있었다.

보낸 이는 얀순. 서로 고백한 지는 2주 정도 되지만, 그녀로부터 적극적인 주도로

사귄지 얼마 안 되는 풋풋한 관계를 뛰어넘었다.

여자로서는 보기 드문 적극성이라 생각되어도, 여자를 상대해 본 적이 별로 없는 나에게는

참으로 고마운 성격이다.

혹시나 이런 내 성격을 알고서 배려해준 것일지도.

이번에는 큰 맘먹고 데이트 신청을 했다.

물론,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든 것이 아니다.

며칠 전부터 얀순이와의 대화에서

'같이 한가롭게 걷고 싶다' 든지 '이런 것 같이 해보고 싶었다' 등으로

나에게 넌지시 희망 사항을 담은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풋풋함을 뛰어넘은 관계라 해도 나에게는 얀순이에 대해 아직 모르는 부분이 너무 많기에

많은 기회를 살려 그녀를 알아가고 싶다.

오늘 데이트는 중간중간 얀순이의 요청을 유연성 있게 따르고 싶기에

코스를 딱히 정해놓지 않았다.

나는 옷차림을 미리 준비하고 맛집이나 카페 같은 장소들을 조사했었다.

이 아침 문자에 답장을 보내고서 계획을 따라 데이트 나갈 준비를 하면 된다.


'잘 잤어? 오늘은 기대해주었으면 좋겠어~!'


문자를 보내고 씻으러 들어가는 사이


'응! 어제부터 두근거려서 잠도 못 잤어~

늦지 않게 와줘~  (>∀<)/'


칼같이 답이 온다.

설마 내가 답하는 것만을 기다렸으려나.

갸우뚱해 하면서도 다시 씻으러 들어간다.

거울 앞의 꾀죄죄한 내 모습은 씻고 꾸미고 한다면 나름 봐줄 만한 모양새로 변한다.

언제부터 이렇게 자기 자신을 꾸밀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었을까?

분명 내 삶은 여자하고는 관계가 너무나 없는 나날이었다.

초등학교는 몰라도 남중 남고를 나와서 사춘기와 청춘의 때는 남자의 무리서 지냈기에

이런 앞날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물론 대학교 와서도 순탄하지는 않았다.

여자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도 모르니 여자 동기 및 선배 앞에서 얼타기 일쑤였고

조별 모임이나 회의를 할 때도 내 말만 할 뿐 대화를 섞는다는 것 자체가 힘든 편이었다.

그렇게 어중떠중 있다 1학기를 말아먹고 그냥 공익근무나 빨리하러 가야 할까 한참 고민하던 때

갑자기 그녀로부터 고백이 들어온 것이다.


'그... 이것저것 있겠지만... 여러 번 마주하다 보니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저랑 사귀어주세요!'


나랑 같은 수업이 꽤 많아 같은 조 활동도 하고 개인적인 교류도 가끔 하던 그녀.

언제나 밝고 누구에게나 인자한 모습에 저렇게 천사 같은 사람도 있구나 했으며

친절한 행동과 배려는 그저 그녀의 성격대로 행동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첫 여사친이 생긴 것으로 절대로 부담되는 관계가 되지 않기 위해

오해할 만한 말이나 행동, 혼자만의 착각을 일절 하지 않았다.

그렇게 굳게 청정한 관계를 지켜오고 있었는데, 그녀로부터 이렇게 다가오게 된 것이다.


"참나... 사람도 살아봐야 알 일이구만...."


고백받을 당시에도, 그녀를 만날 때도, 그녀를 위해 준비하는 지금에도

당황스러움과 거북함이 느껴진다.

물론 이를 극복해야겠지만, 아직 내 마음은 적응하지 못한 것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녀가 이런 나의 심정을 알아주는지

내가 헤매더라도 끈기 있게 기다려주고

내가 일이 있어 못 만나더라도 내 사정을 아는 듯이 배려해주고

내가 곤란할 때라도 모든 것을 아는 듯이 적절한 도움을 준다.

그녀의 명석함과 인간적인 성품으로 그때 마다 맞아떨어진 것일 수도 있지만,

결국 나는 그녀에게 많이 의지해진 편이다.


"좋아 이것으로...."


아침 씻기를 마친 나는 포즈를 지어서 거울을 본다.

음. 준비 완료.

이제 옷을 입기 전 시간을 확인한다.

8시 9분.

아직 약속 시간까지 51분 남았다.

하지만 나는 어설픈 내 자신을 믿지 못했기에

그녀에게 약간 미안한 행동을 했다.


'위치 추적 어플.

현재 대상은 00구 00동 000-00 에 있습니다.'


그녀는 기계를 잘 다루는 편이지만 나만큼 기계를 잘 사용하지는 못한다.

그녀가 기계의 온전한 부분을 다 사용한다면,

나는 기계의 원래 수준을 넘어 마개조를 하거나 프로그램을 손봐서 그 이상을 끌어올린다.

특히 정해진 프로그램을 뛰어넘어 조작할 수 있는 컴퓨터나 스마트폰의 경우

그 차이가 확실하게 드러난다.

그녀가 잠깐 스마트폰의 이상을 확인해달라 했을 때 나는 몰래 이 어플을 깔아버린 것이다.

누가 하면 불법이지만. 내가 깔고 설정하고 했기에 들키지만 않으면 합법.

들키지도 않으려고 스마트폰 목록에도 안 보이게 하는 등 마무리는 완벽하다.

그녀에게는 정말로 진심으로 내 혼신을 다해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어도

나의 부족함을 메꾸기 위해서 필요한 최소의 예방책이다.

다른 불법적인 사용은 안 한다.

이렇게 약속 시간에 만나거나 장소를 찾아갈 때 보조하는 수단으로 쓸 뿐.

결코 다른 때에 켜보지 않는다.

누가 뭐라 해도 나는 나름 양심적인 사용자라고 자부한다.

그리고 이렇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 만큼, 그녀에게 정성을 다하고 사랑으로 보답하면 된다.


자. 오늘의 계획을 완수하러 가자.


///////////////////////////////////////////


아침에 꾀죄죄하게 일어나 스마트폰을 본다.

내 문자를 보더니 비실비실한 눈을 뜨고 열심히 답장을 적는다.

눈이 잘 안 보이는지 몇 번 눈을 비비고 답을 적는다.

적다가 지우다가 적다가 지우다가.

무슨 말을 하려다가 지우는 거지?

차라리 휴대폰의 화면도 보이게 위치를 바꿀까 하다가

손의 위치가 바뀌면 소용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만둔다.

아 이제 보냈다.


'잘 잤어? 오늘은 기대해주었으면 좋겠어~!'


이런 문자였구나.

이전에는 어떤 글이었나 궁금하지만, 이것만으로 충분하다.


'응! 어제부터 두근거려서 잠도 못 잤어~

늦지 않게 와줘~  (>∀<)/'


솔직한 심정을 담아 답장을 보낸다.

아니 진실을 보자면 새벽부터 일어나있었다.

아, 씻기 전 바로 확인해주네.

아, 웃어줬다.

어멋♥ 멋지다.

꾀죄죄한 얼굴도 귀엽지만 이와 대비되는 깨끗한 상반신도 매력있다.

이거 캡쳐해야지.


"참나... 사람도 살아봐야 알 일이구만...."


그래그래. 정말 살아봐야 알 일이지.

내가 너랑 만나 이렇게 이어질 수 있다니.

지금도 정말 꿈만 같다.


씻는 그의 모습을 넋 놓고 본다.


"좋아 이것으로...."


라며 포즈를 취하는 얀붕.

저러니까 모델 같네?

이것도 놓치기 전 한 장.


씻고 휴대폰을 만지더니 옷을 입으러 간다.

아, 조금 일찍 나오려고 하는구나.

나도 맞춰서 가지 않으면.

어제부터 준비해 놓은 옷을 입고 마지막 손질을 한다.

얀붕이 오늘은 이렇게 입었구나?

멋있네~ 나를 위해 신경 써줘서 정말 기뻐.

화면에 비친 그의 모습과 거울에 보이는 나의 모습이 조화를 이룬다.

오늘도 완벽하네.


///////////////////////////////////////



모든 준비가 끝났다.

모든 준비가 끝났다.


오늘도 부족한 내가 그녀를 위해

오늘도 완벽한 내가 그를 위해


기운찬 마음으로 나서자.

상냥한 느낌으로 이끌자.





-------------------

눈팅만 하다가 이번 기회에 처음으로 참여해 봅니다.

부족할 수 있겠지만 능력자이신 얀챈분들이 있기에

대담하게 도전해봅니다.

참고로 소재는 '서로 추적한다면 어떨까'라는 것을 주워서 써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