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도 이제는 지고, 봄도 한창인데도 아직 매서운 바람이 나무들을 스쳐 나에게 다가온다.


"얀붕아, 춥지않니? 사랑채에서 조금만 쉬고 가지 그래?"


산등성이에서 장작거리를 찾아 지게에 실던 나에게 얀순이가 조용히 다가와 소곤거렸다.


"어? 어...."


뭐, 장작거리도 충분히 모았겠다, 추운 것도 사실이고... 조금 쉬는 것도 괜찮겠지.


나는 얀순이를 따라 그녀의 집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얀순이 너 요즘 들어 이상한 거 같아. 뭐 잘못 먹었냐?"


산등성이를 따라 성큼성큼 내려가면서 얀순이에게 묻자 


"무슨 소리야? 하나도 안 이상한데."


하고는 오히려 내가 이상한 것처럼 시치미를 뚝 떼는 게 아닌가.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분명 이상해졌다.


귀한 분가루를 잔뜩 볼에 발라서는 눈 내린듯한 얼굴로 나에게 다가오질 않나.


일하는 와중에도 자꾸 쉬엄쉬엄하라고 옆에서 이야기하질 않나.


심지어는 앉아서 쉬고 있으면 그 옆에 앉아선 내 등이나 손을 자꾸만 문질러 보기까지 한다.


아까도 평소에는 고함을 꽥 질러서 불렀을 텐데 요즘 들어서는 이렇게 고양이처럼 몰래 다가와서는 귓가를 간지럽히니 역시 뭔가 잘못 먹은게 틀림없다.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자니 벌써 얀순이의 집이 코앞에 보인다.


"우리 부모님은 잠시 마실 나가셨으니 걱정 말렴!"


내가 떨떠름하게 있는 것이 부모님이 있을까 걱정한 거라고 생각한 건가?


일단 지게는 벽에 세워두고 얀순이와 함께 사랑방으로 들어간다.



 사랑방은 땔감을 얼마나 넣었는지 바깥과는 달리 뜨겁다고 느낄 정도였다.


그 뜨거움에 넋이 나가 가만히 서있자 얀순이가 쿡쿡 웃으며 구석에 놓인 소쿠리를 가져왔다.


"바보같이 서있지 말고 앉지 그러니?"


하고 소쿠리를 건네주는데 삶은 감자와 고구마로 가득하다.


"얘! 봄 감자가 맛있단다, 감자가 달아!"


그리 말하고는 얀순이가 주먹만 한 감자를 건네주는데 입에 넣자마자 사르르 녹아 사라진다.


"맛있지? 맛있지?"


"응! 정말 맛있어!"


허겁지겁 먹는 나를 얀순이는 배시시 웃으며 보기만 하길래


"너도 먹지 그래?"


하니 나는 됐다 하고는 얀순이는 손도 안대는 게 아닌가.


이상함을 느낄 무렵, 얀순이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얀붕이는 이렇게 맛난 걸 매일 먹고 싶어?"


갑작스레 당연한 질문을 해 나는 잠시 캑캑 거리며 기침을 한다.


"당연히 먹고 싶지! 그건 왜 물어!"


그러자 얀순이는 쿡쿡 웃더니 나를 밀치고는 그 위로 몸을 겹쳤다.


어버버 하는 나를 보며 얀순이는 다시금 입을 열었다.


"오늘은 사실 저번에 말하지 말라는 약속 지켜줘서 고맙다고 부른 거였어."


"저번?"


"벌써 잊은 거야? 동백꽃이 아래에서 했던 약속 말이야."


아. 이제야 기억이 났다.



 동백꽃이 활짝 피었던 나무 아래, 햇빛은 꽃들에 가려져 틈새로 조금씩 반짝이게 보였었지.


나와 얀순이는 서로 허겁지겁 옷가지들을 벗어버리고는 몸을 합쳤어.


앞으로 들썩, 뒤로 들썩. 거친 숨을 몰아쉬며 혹여나 소리가 들릴까 얀순이의 입을 내 입으로 들이 막기도 했지.


말은 들리지 않았지만 우리는 알 수 있었어. 얀순이는 나로 채워지길 원했고, 나 또한 얀순이를 채우는 걸 원했단 걸 말이야.


그렇게 얼마간 있다 움찔움찔하더니 얀순이의 음부는 새하얀 것으로 뒤덮였어.


서로 헐떡이며 마주 보고 있는데 멀리서 "얀순이 이 년이 바느질하다 말고 어디 갔어?" 하는 소리에 허겁지겁 옷을 입었지.


대충 몸에 묻은 것들을 닦아내고는 주섬주섬 옷을 주워 입는데


"오늘 있던 일은 말하지 마라!" 그렇게 말하니 나도 모르게 끄덕여 버린 것이다.



 그런데 그게 맛난 걸 매일 먹을 수 있단 거와 무슨 상관이 있는 거지?


"얀붕이는 아빠가 되면 어떨 거 같아?"


"그, 글쎄? 생각해 본 적 없는데?"


"그러지 말고, 한번 생각해 봐!"


"음...... 뭔가 싫을 거 같은데?"


나의 대답에 얼굴이 굳어진 얀순이. 지금까지는 보지 못한 모습에 그만 놀라 벌벌 떨기 시작했다.


"왜? 아빠란 건 좋잖아? 가족이 된단 거잖아? 가족은 좋은 거잖아? 응? 얀붕아."


이제는 내 멱살을 잡고는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그게, 지금 내가 바로 아빠가 돼도 직업이 없잖아? 가족을 굶기는 아빠라니 안되잖아?"


그렇게 말하자 갑자기 방긋 웃는 얀순이.


"뭐야, 그걸 걱정한 거였어? 그런 거라면 괜찮지."


뭐가 괜찮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기분이 좋아 보이니 다행이다.



 "너무 오래 있었던 거 같은데, 이제 집에 돌아갈게."


"그래......"


얀순이는 섭섭한 얼굴로 대답했지만 이내 미소를 띤다.


나는 밖에 세워둔 지게를 등에 매고는 발걸음을 집으로 향하다 잠시 멈춰 선다.


"그러고 보니 아까 맛난 걸 항상 먹고 싶냐고 했던 거 그건 왜 물어본 거야?"


"음, 그건 나중에 알게 될 거야!"


아랫배를 살살 문지르며 방긋 웃는 얀순이를 보며 나는 이상하다 생각하며 다시금 발걸음을 옮겨 집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