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인이 귀가 짧아 공주 전하의 말씀을 듣지 못하였나이다. 청컨대 다시 한 번 말씀을 내리시어 어리석은 소인이 이해할 수 있게 말씀을 내려 주십시오."


"정녕 듣지 못하셨다면 다시 말씀드리지요, 나는, 공을 사랑합니다. 천하의 그 누구보다도요."


공주는 눈앞의 왕세자에게, 체통에 맞지 않게 붉게 물든 얼굴을 들이대며 달콤한 목소리로 사랑을 고백했다.


"나는, 공을 나의 반려로 삼고 싶어요, 상경(上京)에서 귀하게 자란 귀한 이들의 자식들은 내게 들어오니 않습니다. 나는 오직 당신을 나의 반려로 삼고 싶습니다. 부디, 공도 나를 공의 아내로 기쁘게 맞아 주시길 바랍니다."


보통의 사내라면, 이리도 빼어난 미모와 지색을 지닌 여인이자신을 사모한다는 말을 듣는 순간 황홀함을 숨기지 못하며 그저 기뻐하고 감사할 것이다.


또한 이 여인은 작금의 천하에서 가장 강한 나라의 적녀였기도 하였으니, 그 황홀함과 기쁨은 더 늘어나면 늘어났지 결코 줄어들지는 아니할 것이었다.


귀한 제후의 자식들과 황족들의 그 눈길은 끊이지 아니하였고, 그녀에게 말을 걸어 보고자 하는 여러 귀공자들도 그와 같았다.


그러나 이 왕세자는 그러지 않았다. 왕세자는 아무 표정도 짓지 않은 채, 두 손을 모아 읍을 하며 공주에게 무뚝뚝한 목소리로 말했다.


"천한 소인이 분수에 넘치는 은혜를 받았으니 더없는 광영이오나, 존귀한 공주 전하께서 소인 같은 소국의 동궁(東宮)을 반려로 맞아들이시기 보다는 더 지모가 뛰어난 이를 반려로 삼으심이 옳다 사료되옵니다. 


또한 제게는 이미 지학(15살)에 맞아들인 빈(嬪)이 있고, 그 사람과 혼인을 맺은 지 5년이 되었으니 가히 조강지처라 할 만합니다. 소인은 조강지처를 버릴 수 없사오니, 청컨대 뜻을 거두어 주소서."


왕세자가 완곡히 공주의 마음을 거절하자, 공주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래야 그녀가 사모하는 님이 아니겠는가. 이 곧은 절개, 가족을 아끼는 그 마음에 그녀는 반했던 것이었다.


"옛 말에 사람이 명예를 얻으면 친구를 바꾸고, 부유하게 되면 그 처를 바꾼다 하였습니다. 공이 절 아내로 삼고자 한다면 공은 천자의 부마로써 많은 명예를 취할 수 있을 터인데, 어찌 그리도 고집을 부리십니까?"


"광무황제(후한 광무제 유수)가 신하인 송홍에게 황제의 누이인 호양공주를 개가케 하려고 떠보았던 말이 정확히 그와 같있습니다, 그리고 송홍은 황제의 물음에 이리 답하였지요. '신은 가난할 때 친했던 친구는 잊어서는 안 되고, 지게미와 쌀겨를 먹으며 고생한 아내는 집에서 내보내지 아니한다고 들었습니다.' 라고요.


어려웠을 때 도움을 준 이들을 부귀영화를 얻었답시고 거리낌없이 소박맞힌다면, 천하의 모든 이들이 그를 어찌 보겠습니까? 여염의 사람조차 이것을 사람이 할 도리가 아니라 여기는데, 어찌 일국의 동궁으로써 그러한 것을 본받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