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기)


삶이란 무엇인가. 아니, 애초에 함선소녀에게 삶이라는 것이 주어지긴 했나?


갑자기 나타난 정체불명의 적, 세이렌. 인류의 편에 서서 세이렌에 맞서 싸우는 함선소녀. 그녀들 또한 정체가 알려지지 않은 성정큐브에서 태어나 싸운다.


자신들은 이 세계에, 인류가 살아가는 이 세계에 속하는 존재이긴 한 것인가. 세이렌처럼 낯설기 그지없으매 정처없이 떠도는 이방인이 아닌가. 모항에서 저 멀리 수평선을 바라보는 아카기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세상은 참으로 혼란스럽고 부조리로 가득 찬 것 같았다. 태어나자마자 싸우기를 강요받고 그것을 숙명처럼 받드는 노예나 다름없는 처지. 해상권을 잃은 상황 속에서도 저마다 욕망을 채우려 다투는 인간들. 그리고 인간의 이권다툼에 휘말려 강요받은 숙명조차 따르지 못하고 꼭두각시가 되어 서로 싸우는 함선소녀들.


그런 불합리한 세상은 그녀의 언니마저 앗아갔다. 그녀의 죽음은 전장에서 스러진 영광스러운 죽음으로서 대우받아야 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패배의 책임을 떠넘기고, 그 책임을 물으며 상대의 트집을 잡고 이득을 취하려는 중앵 지휘부의 추한 설전이 오갔을 뿐. 아카기에게 너무나도 소중했던 언니의 죽음은, 그녀의 헌신을 비웃듯이 불쾌한 불씨만을 남겼다. 그녀가 살아있을 때는 한번도 살피지 않던 그들은 그녀가 죽고 나서야 그녀의 전략적 가치를 운운하며, 그 가치를 상실한 책임을 서로 떠넘기느라 바삐 떠들 뿐이었다.


그녀의 언니가 어떤 존재이고 어떻게 살아갔고 죽었는지는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조롱과 매정함을 뒤로하고, 누구도 알아주지 않을 그녀만의 이야기를 품고 차가운 바닷속으로 가라앉아 그 일부가 되었을 뿐. 아카기는 언젠가 자신도 그리 되리라 생각했다. 세상에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 채 덧없는 인생을 품고 바다 밑바닥에 가라앉아 햇볕조차 바라볼 수 없는 곳을 영원히 떠돌겠지. 싸움으로 그 결말을 미루면서도 재촉하는 아이러니함 속에서 언젠가 자신은 쓰러져 그렇게 되리라 생각했다.


그런 결말을 맞이할 바에는, 그녀는 차라리 미치고자 했다. 세이렌. 저들과 함께 파멸의 춤을 추자. 파괴와 조롱, 약자를 짓밟는 폭력을 술잔으로 삼아 덧없는 잔치를 즐기다가 가자. 그들의 친구가 되어 저 꼴사납고 탐욕스럽기 그지없는 인간들을 조롱해보자. 저들을 언젠가 자신도 가라앉을 바닷속으로 끌어내려보자. 언니를 잃은 슬픔을 잊고자 바다에서 광기어린 춤을 춰오며 살아온 아카기는, 그렇게 천천히 미쳐갔다.


살을 에는 겨울바다의 칼바람이 부는 계절이 지나가고, 땅에서 푸른 생명이 돋아나고 나무가 벚꽃빛으로 물드는 계절이 찾아왔을 때 쯤, 아카가의 마음에도 벚나무가 한그루가 뿌리를 내려 자라고 있었다. 인연의 실을 당기듯이 계속 시선을 끄는 한 사내와 만났다. 성정큐브와의 상성이 매우 뛰어났던 그 사내는 아카기의 지휘관이 되었다. 아니, 그는 함선소녀들의 지휘관이 되었다.


사내는 아카기가 진저리가 날 정도로 싫어하는 인간들과는 달랐다. 함선소녀들을 인간처럼 대우해줬으며, 임무를 수행할 때를 제외하면 권위적이지도 않았다. 그의 권위는 전장에서 함선소녀들을 이끄는 지도자가 되었고, 그녀들을 괴롭히는 부조리를 청소하는 울타리가 되어주기도 했다. 권위라는 것이 저렇게도 쓰일 수 있는 것임을 아카기는 지휘관을 보고 처음 알았다.


그 젊은 지휘관은 꽃들이 만개한 정원과도 같은 사람이다. 아카기는 그렇게 느꼈다. 전장에서는 아름답고 우직한 나무처럼 서 있으며 그녀가 믿고 기댈 수 있는 그늘을 만들어 주었다. 함선소녀들을 대하는 얼굴은 개나리처럼 넉살 좋았으며, 홀로 업무를 보는 모습은 한줄기 붓꽃처럼 우아했다. 다른 세력의 지도부와 얼굴을 맞대는 팽팽한 신경전에서 상대의 고개를 끄덕거리게 만드는 언변을 펼치는 모습은, 가히 사람을 홀리게 만드는 동백나무와도 같았다. 그렇게 유능하고 우직한 그에게 장난삼아 추파를 던질 때면, 수줍은 제비꽃 같은 모습을 보이는 사내. 충성하지 않을 수 없었던 그의 곁에 있을 때면 아카기는 풍요로운 정원에서 꽃들의 향기에 안겨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곁이라면 자신은 전쟁병기가 아닌, 아카기 자신으로서 존재하고 인정받음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휘관의 곁에서 아카기는 평온감과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충만함을 느꼈다. 지휘관의 온기와 그가 준 추억들이 그녀의 기억에, 가슴에 쌓여 그 속에 뿌리내린 벚꽃나무를 자라게 했다.


"하지만 지휘관님은 저만의 지휘관님이 되어주시지 않으시는군요. 우후후.... 후후후....!"


그래. 지휘관은 매력적이다 못해 자신의 마음을 울리는 지주이다. 한가지 큰 문제가 있다면, 그는 다른 함선소녀들에게도 같은 존재라는 것. 파벌 싸움에 지치고, 전장의 치열함에 마모되고, 무능한 인간 지도자들에게 가식과 예절로 물들어 철저히 속내를 숨기고 고통스러워하던 함선소녀들에게 젊은 지휘관은 열망의 대상이자 지주였다.


그의 곁에 모여드는 함선소녀들이 하나둘씩 늘어갈 때마다 아카기의 초조함과 질투는 커져만 갔다. 누군가가 지휘관의 눈에 들면 어쩌지? 그가 더이상 나를 보아주지 않게 되는건 죽는 것 보다 싫다. 혹시 나는 지휘관에게 특별한 존재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고개를 들 때면 저절로 침울해지고는 했다. 그래서 아카기는 전장에서 더욱 춤을 요란하게 추었다. 함재기의 엔진 소리, 공기와 수면을 울리는 포격의 소리, 적이 격침당하는 비명과 굉음을 악기삼아 파괴의 악곡을 연주하며 춤을 췄다. 지휘관이 자신을 바라봐주었으면 해서. 자신은 특별한 존재라고 인정받고 싶어서.


하지만 그녀가 아무리 요란하게 전장에서 연주하고 춤을 춘들 지휘관은 그녀에게 눈길을 돌릴 수 없었다. 본능처럼 부하를 살피는 그는, 부하가 늘어날 수록 바빠졌으며 함선소녀들의 과실이나 부상까지 책임지는 일이 늘어났다. 그녀들의 안정과 지휘관의 시간과 건강을 등가교환하는 탓에 그의 생기가 시들어 갈때면 아카기는 슬픔과 분노를 느꼈다. 아름다운 정원에 핀 꽃과 나무에 진드기들이 달라붙어 그 양분을 빨아먹으며 기생하는 것 같아 짜증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해충들을 치워버릴 수는 없어요. 그건 당신에게 큰 민폐잖아요?"


그러나 그 진드기들을 불태워버릴 수는 없었다. 눈엣가시나 다름없는 그녀들이지만, 그녀들이 지휘관을 지휘관으로서 있게 해주는 존재이며 그가 목숨처럼 소중히 여기는 모항의 식구들이기도 했으니까. 그 해충들을 해치우면 그는 눈물을 흘리며 분노하고, 만개한 정원도 같이 불타 없어질 것임을 알았기에 아카기는 분노와 짜증을 억눌러왔다. 진드기들도 각자 역할이 있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만 했다.


"아아아... 너무 속상해. 지휘관님을 위해 싸우고 또 싸우고... 이 마음을 부딪히면 나를 바라봐 주실 것이라고 생각했는데요. 후후... 후후후후.....! 하지만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네요! 당신의 곁에 서는건 오직 이 아카기 하나라는 바램은 치기어린 소원을 넘어선 오만이었던 것인가요!"


가슴 속에 뿌리내린 벚나무는 어느새 크게 자라 꽃봉오리를 맺었다. 그녀의 마음과 눈은 항상 지휘관을 향하고, 그에게 느낀 복잡한 감정들이 사랑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뒤로는... 그녀는 그 사랑을 키워 벚나무에 뿌렸다. 해충들이 득실대고 꽃샘추위 처럼 얄밉게 날아드는 방해를 치워내고, 사랑의 결실이 맺어지는 때가 오면 그 꽃봉오리는 만개하여 영원히 아름답게 피어있을 것이다. 아카기와 지휘관의 사랑은 영원히, 인연의 붉은 실로 이어져 죽음조차 떼어놓지 못할 것이다. 아카기는 그렇게 여겨왔다.


"그래요... 인정할게요. 제가 너무 안일했어요. 제가 노력하면 지휘관님이 저를 바라봐주실 것이라고, 저를 선택해주실 것이라고 믿었던 제가 나태했어요. 사랑이라는 것도 쟁취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와요? 그걸 이제야 깨달은 이 아카기가 바보였답니다. 후후후.... 후후후...!"


어느날 지휘관이 몰래 아카시에게서 서약의 반지를 건네받는 모습을 보기 전 까지는 말이다. 아카기는 절대로 용납할 수가 없었다. 그의 마음이 다른 해충에게로 향하는 것 만큼은 절대로 두 눈을 뜨고 지켜볼 수가 없었다. 이 마음 속에 뿌리내린 벚나무가 시들고 그녀가 사랑했던 정원이 그녀의 것이 아닌 다른 해충의 둥지로 전락하는 것 만큼은 절대로 내버려둘 수가 없었다.


아카기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사랑이란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그녀가 태어나 받드는 숙명과도 같다. 싸우고, 권모술수를 펼쳐 해충들을 도려내고 온전히 자신의 품에 품기 전 까지는 그녀의 것이 아니다. 사랑이란 싸워서 쟁취해야 하는 것임을 이제서야 깨달은 자신을 꾸짖고 책망한다.

그가 눈을 돌리기 전에 자신을 바라보게 만들 것이라고. 그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아차린 아카기가 행동하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슬슬 지휘관님이 돌아오실 때가 되었군요."


배가 입항함을 알리는 모항의 사이렌 소리. 지휘관의 귀환을 알리는 저 소리는 아카기에게는 스스로 내리는 출격의 신호탄.


"마침 오늘밤은 달이 아름다워요. 지휘관님도 분명 그렇게 느끼실 거에요. 바다도 잔잔하고 달빛도 아름다우니... 오늘은 잔뜩 이야기해봐요. 당신에게 선택권은 주지 않을거랍니다?"


아카기는 지휘관이 있을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카기가 지휘관에게 붉은 인연의 족쇄를 채우기까지, 앞으로 2시간이 남았다.







뭐? 철 지난 벽람은 왜 꺼내와서 지랄이냐고? 아카기는 상해서 보기 싫어? 구미호가 사람 잡아먹는건 끔찍해서 보기 싫어...?


글도 참 뭣같이 쓰는데 나대지 말고 그냥 발이나 닦고 자라고? 


알겠어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