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 - Day

 

휘이이이이-

 

아카데미 첨탑의 가장 높은 곳, 격렬한 전투 이후 복구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곳곳에 부서진 돌담과 어디론가 사라져 보이지 않는 종과 종루가 있었다는 증거인 일부 철골 뼈대들.

 

그곳에서 1학년을 뜻하는 녹색의 뱃지를 단 아카데미 교복을 입은 거구의 남성이 첨탑의 끝에서 저물어가는 석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언가 각오를 결심한 듯한 얼굴을 지으면서.

 

그러곤 얼마 지나지 않아 첨탑의 계단에선 탁탁하며 구두가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붉은 머리를 휘날리며 똑같이 1학년의 녹색 뱃지, 아카데미 교복을 입은 여자가 올라선다.

 

“정말이지 귀족인 저를 고백 장소로 직접 불러낸 것도 모자라서 이런 위험한 장소로 오게 하다니, 평민으로서 생각이 있으신 건가요?”

 

“아하하! 미안해 아델라. 하지만 여기가 아니면 안될 것 같아서 말이야.”

‘아마도… 마지막이니까…”

 

“빅터, 당신의 그 커다랗고 힘센 육체나, 저의 강력한 마법은 여기서 놀고 있을 때가 아니에요. 자칭 마왕이라고 하는 미치광이 마법사 덕에 아카데미 이곳저곳이 엉망이니 저희가 한시라도 빨리 손을 보태야 다시 옛날의 모습을 되찾아서 졸업장도 얻을 수 있다구요? 마왕을 저희가 무찔렀지만 명예란 다다익선이니까요.”

 

“음, 맞는 말이지. 하지만 단둘이서 이 아름다운 석양을 바라보면서 꼭 전해야 할 말이 있어.”

 

아델라는 여기에 왔을 때부터 단둘만 있는 것을 깨닫고 이미 심장이 쿵쾅거리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아무도 없어서 고요한 장소, 해가지고 달이 떠오르며 빛과 어둠이 섞이는 황혼의 시간, 이곳은 이전에 친구들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라고 말했던 것들에 전부 부합하는 장소다.

 

조금씩이지만 아델라의 얼굴이 붉어진다. 그리고 천천히 빅터를 향해 몸을 돌린다.

 

그런 아델라를 바라보며 몸을 돌리는 빅터는 양손에 가지런히 든 꽃다발을 그녀에게 뻗으며 무릎을 꿇는다.

 

“아델라… 나의 백번째 고백이야, 나와 사귀어줘.”

 

해는 점차 떨어져 가며 황혼은 희미해져 가고, 조금씩 짙은 어둠이 찾아오지만, 이젠 사과라고 놀릴 정도로 붉어진 아델라의 얼굴은 더욱 선명하게 보이는듯 했다.

 

“……흐, 흥!”

 

붉어진 얼굴을 숨기기 위해, 표정 관리가 안 되는 얼굴을 숨기기 위해, 아델라는 괜히 콧소리를 크게 내며 뒤로 돌아 빅터에게 보이지 않게 한다.

 

“이, 이전에도 말했지만- 저, 저는 고귀한 프로디지움 백작 가문의 영애! 아델라 프로디지움! 그에비해 당신은 성조차도 없는 평민, 급이 안 맞다는걸 몇 번이나 말했는지 벌써 까먹으셨나요!?”

 

빅터는 그 반응에 조금은 슬펐지만 그래도 항상 보여준 반응이라 다행이라는 듯이 웃어 보였다.

 

“하지만! 당신은 이번에 저와 몇몇의 고귀한 인물들과 함께 마왕을 무찌른 전사! 아직은 전국의 혼란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행정처리가 늦어졌지만 얼마 안 있어 곧 왕실에서 저희에게 포상을 내릴 겁니다. 그때 당신은 작위와 영토를 하사받아 정식 귀족이 되겠지요.”

 

………

 

‘어? 이때쯤엔 원래 빅터가 침울해하면서 뭐든지 반응을 해줬는데?’

 

“그러니 지금은 거절하겠습니다. 당당하게 귀족으로서 작위를 얻은 뒤 다시 하도록 하세요!”

 

………

 

‘……어라?’

 

대답이 없는 빅터의 반응에 아델라는 조심스레 몸을 돌리기 시작했다.

 

“…대신이라고 하긴 뭣하지만, 마침 내일은 복구작업도 쉬는 휴일, 같이 나가서 제 쇼핑에 어울려주는 짐꾼 정도는…… 빅터?”

 

다시 뒤를 돌아보았을 땐 거구의 남자는 어디에도 없고 바닥에 꽃잎 몇 개가 떨어진 꽃다발만 있을 뿐이었다.

 

 

 

 

D + 1

 

“정말이지 그 남자는 레이디에 대한 예의를 아직도 배워먹질 못한 건가요!”

 

빅터가 갑작스레 사라진 뒤.

꽃다발을 아카데미 기숙사의 자기 방에 가져다 놓은 아델라는 사라진 빅터를 찾기 위해 이곳저곳을 다녀봤지만, 평소엔 잘만 보이던 그 거구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찾을 수가 없었고, 그 누구도 모른다고 하였다.

 

‘어제는 밤이 늦어 포기했지만 오늘은 기필코!’

 

아카데미 기숙사에서도 가장 구석진 곳. 원래는 창고로 쓰이던 방이지만 빅터 본인이 기존의 방은 너무 좁다고 하여 여러 번의 요청 끝에 만들어주었다는 특실.

 

쾅쾅쾅!

 

“빅터! 어젯밤엔 너무 늦어 적당히 1시간 동안만 두들겼지만 오늘도 그럴 거라 생각은 말아요! 5분 이내에 나오지 않으면 방문을 통째로 날려버리겠어요!”

 

1분… 2분…

 

쾅쾅쾅!

 

3분… 4분…

 

“이이익-! 이게 마지막 기회에요!”

 

쾅! 끼이이익……

 

결국 아델라의 손길에 포기한 건 빅터 본인이 아닌 낡아빠진 문의 잠금장치였다.

 

“엇…… 하, 하여튼 진작에 열어줬으면 고장 날 일도 없었을 텐데, 일단 실례하겠- 콜록콜록! 비, 빅터 당신 방 청소는 제대로 하는… 건… 가요…?”

 

들어간 방에서 보이는 것은 오랫동안 방치되었다가 갑작스레 공기가 밀려 들어와 마치 눈처럼 휘날리는 먼지들, 장기 보관을 위해 천이 덮여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물건들, 그리고 사람을 인식하여 자동으로 켜지지만 오랫동안 교체해 주지 않아 깜빡깜빡하는 마법등이 있는 전형적인 창고의 모습이었다.

 

“이게 무슨-“

 

‘분명 아카데미 기숙사 3동 2층, 중앙계단을 통해 올라와서 바로 오른쪽으로 꺾어 그 끝에 있는 방이 분명할 텐데?’

 

아델라는 혹시나 자신이 방향감각을 상실했나 싶어 반대 방향으로 걸어갔다. 조금 다급하게.

 

철컥 끼이익-

 

그러나 도착한 반대쪽에도 역시나 같은 창고만이 있을 뿐, 오히려 자주 사용하는 곳이라 전의 창고보다 먼지도 적고 마법등도 멀쩡한 상태다.

 

허억- 허억-

 

그리 멀지 않았음에도 다급하게 와서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일까, 폐에 산소가 모자란 듯이 급하게 숨을 들이쉰다.

 

불안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한다. 무언가 벌어져선 안 되는, 있어선 안 되는 일이 일어난 기분.

 

“도대체 이게 무슨 일…”

 

‘그래, 휴일 아침이니 운동이랍시고 한적한 공터에 만든 철판, 철봉등 이상한 기구가 많은 그곳에 있을 수도 있어.’

 

탁 탁 탁 탁

 

없다.

 

‘아니면 친구들, 에밀리아나 같은 평민인 에핀과 같이 있을 수도 있어. 그들과는 종종 놀러 가거나 같이 수련을 하니까’

 

탁탁탁탁

 

“어머 아델라양, 어서 오세요.”

“오늘은 휴일이라 도서실에서 밀렸던 책들을 보고 있었답니다.”

“빅터? 죄송하지만 그분은 누구신가요? 같이 있었냐니, 전 그런 분은 모르는걸요?”

“커다란 덩치? 아, 알겠다 아델라양이 좋아하는 남성분이신가요? 안타깝게도 이쪽으로 그런 분은 오시지 않았어요. 혹시나 다음에 뵙게 된다면 꼭 소개해 주세요. 꼭이요.”

 

그녀는 모른다.

 

탁탁탁탁

 

“오~ 아델라, 훈련장엔 무슨 일이야?”

“나? 복구작업때 계속 돌이나 자재들만 나르다 보니 실력이 녹슬 거 같아서 검이나 휘두르러 왔지.”

“빅터? 이름만 들으면 엄청 큰 놈인 거 같은데. 미안하지만 누군지 모르겠는걸.”

“나랑 친구라고? 내가 여기서 나름 신분 안 가리고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지만 그런 놈은 기억에 없는걸?”

 

…그도 모른다.

 

‘아카데미 재학생 명단! 거기! 거기라면 분명 적혀있을 거예요!”

 

탁탁탁탁탁탁탁탁!!!

 

“네, 아델라양 잘 지내셨습니까.”

“무슨 일이 있으신가요? 그렇게나 땀을 흘리시다니.”

“빅터라는 평민 재학생이 있는지 알아봐 달라구요? 일단 그 전에 땀을 닦을 수건과 물을 가져다드리겠습니다.”

 

쾅!

 

“헙! 진정하세요. 갑자기 책상을 치실 필욘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먼저 부탁하신 일부터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담당은 다른 인물에게 수건과 물을 준비하라 한 뒤 책을 펼쳐 찬찬히 학생을 찾기 시작했다.

 

사락사락

 

불안함에 아델라는 식은땀이 멈추질 않는다. 같은 책상에 앉아서 담당이 넘기는 책을 뚫릴 듯이 쳐다보지만 흥분 때문에 시점이 제대로 잡히질 않고, 흘러내린 땀이 시야를 방해한다.

 

어느새 아델라의 앞엔 어느새 마른 수건과 시원한 물 한 잔이 놓였지만 수건으로 시야를 방해하는 땀만 닦아내곤 다시 집중한다.

 

“흐음… 빅, 빅, 빅…”

 

담당의 한 음절마다 머릿속이 울리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윽고, 담당이 얼굴을 들어 아델라를 바라보자, 그녀도 책에서 눈을 떼어 시선을 마주친다. 하지만 조금 충혈된 눈동자, 전신에선 땀이 멈추질 않지만 입술은 오히려 바싹 말라가는 그녀의 표정을 바라본다면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죄송하지만…… 비슷한 이름의 빅토르라는 귀족 학생만 있을 뿐, 빅터라는 이름의 평민 학생은 없습니다.”

 

“……네헤?”

 

갈라져 빠져나오는 목소리는 길가에 버려진 새끼 길고양이를 떠올리는 처량함이 담겨있었다.

 

“…무언가 이름을 잘못 알고 계신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저도 아카데미에 근속하며 기억력도 좋은 편이라 빅터라는 흔한 이름은 몇 명 기억납니다만.”

 

뒤 이어진 말은 아델라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내고 있었다.

 

“아델라양이 입학하고 지금까지, 최근 1년간은 그러한 이름의 학생은 있다고 들은 적은 없습니다.”

 

삐이이이이-

 

마치 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이처럼. 시끄러운 이명과 오늘 하루 동안 느낀 불안감을 확신시켜 주었다.

 

빅터가 사라졌다.

 

그리고 그걸 아는 사람은 아델라, 그녀 혼자뿐이다.

 

 

 

 

D + 3

 

그 후 아델라는 미친 사람처럼 그와의 추억이 있던 장소를 찾아보고 그를 아는 사람들에게 전부 물어보았지만 결과는 변함없었다.

 

“어째서 빅터…”

 

결국 지쳐버린 아델라는 여러 종류의 탈력감을 지닌 채로 그저 기숙사의 침대에 누워 천장의 무늬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빅터가 그와 관련된 모든 것들이 사라졌어, 그를 기억하는 사람도 장소도 아무것도 남질 않았어… 아무것도…… 아무것도?’

 

무언가 번뜩 생각이 난 아델라는 재빨리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책상을 바라보자 그곳엔 빅터가 건네던 꽃다발이 꽃병에 담긴 채 아직은 그때의 모습을 거의 유지 하고 있었다.

 

침대에서 벗어나 꽃병에 다가가보니 생각보다 많은 양의 꽃잎이 없어져 있었다.

 

“이것도 분명 빅터씨와 관련된 물건, 하지만 바로 사라졌던 다른 것들과는 달리 이 꽃들만큼은 사라지지 않았어요.”

 

무언가 이상해 자세히 바라보자 위화감이 느껴졌다. 분명 꽃잎의 개수는 확연히 줄었지만 그에 비해 땅에 떨어진 꽃잎이 보이질 않았다.

 

마치 꽃잎만이 사라진 것처럼.

 

확인을 위해 꽃잎을 좀 더 가까이 다가가 확인하기 시작했다. 바라보기 시작한 지 2분 정도 지났을까 이상 현상이 확인됐다. 아주 조금이지만 꽃잎의 일부가 푸른빛의 형태로 바뀌어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보, [보존]!”

 

이유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아델라는 사라져가는 꽃잎을 보고 공포를 느껴서 더 이상 사라지지 않도록 보존마법을 걸어두었다. 그리곤 꽃병째로 들어서 마법학부로 다급히 뛰어간다.

 

 

 

 

*         *          *

 

 

 

 

“소멸마법의 여파군요.”

 

“소멸마법이요?”

 

“예, 사실 소멸마법이라고 하기엔 너무 복잡한 술식이 사용된 것 같지만, 일단 꽃에서 나타나는 반응 자체는 소멸마법이 발동하고 남은 마력이 주변의 물체에 아주 미약하게 묻었을 때 그 반응이 아주 느린 모습과 비슷합니다. 혹시 이걸 조금 나눠주실 수 있겠습니까? 이 정도로 느린 반응이면 연구자료로 사용하기에 매우 용이할 것 같군요.”

 

“그, 그건 안 돼요…!”

 

“아쉽군요. 아, 혹시 관련 자료를 더 보고 싶으시다면 아카데미 도서관을 들리시죠. 거긴 건물의 외관만 조금 파손되었을 뿐 내부는 멀쩡하여 자료를 찾기 쉬울 겁니다.”

 

아델라는 교수의 말을 듣곤 곧바로 꽃병을 들고 도서관으로 간다. 중간중간 아델라를 알아보고 인사하는 자들이 있었지만, 평소의 활기찬 표정을 지녔던 그녀와 달리 지금은 무언가에 쫓기듯 초조함과 암울함을 지녔기에 누구도 인사를 받아주지 않는 그녀를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D + ?3

 

그 이후론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갔다.

 

아카데미 복구 작업이라는 중요한 일조차 평소엔 쓰지도 않았던 귀족의 권력과 마왕을 쓰러뜨린 자라는 명예를 들먹이며 오로지 도서관과 식당, 기숙사만을 오가며 시간을 보냈다.

모든 건 사라진 빅터를 위해.

 

소멸마법에 대해서 더 알아낸 것이라곤 하급의 것은 그저 마력과 술식만 이해하면 사용이 가능한 방면에 상급의 것은 시간마법과 공간마법 등이 필요한 매우 난해한 종류의 것이었다.

 

하급부터 찬찬히 알아보았지만 결국 그와 관련된 마법은 최상급의 [존재 소멸마법], 내용은 하나의 존재가 대상이 되며 사람을 대상으로 할 경우 땅 위의 모든 존재가 대상에 대한 기억을 잊어버리고 땅 위에 남긴 모든 흔적은 공간째로 바뀌듯 사라져 버린다.

 

“이거라면 분명… 분명 찾을 수 있어…!”

 

금서의 내용이지만 이미 도서관의 관리자를 협박하여 알아낸 정보. 물러설 곳이 없으니 오로지 앞만 보고 달리는 미치광이 군마와도 같다.

 

“조금만 기다려요 빅터. 이것만 제대로 파헤치면 다시 당신의 얼굴과 목소…리, 가?”

 

아델라는 이러한 위화감이 너무 오랫동안 듣질 않아서 까먹은 느낌이 아닌 걸 깨닫는다. 아델라의 머릿속에서 빅터에 대한 존재가 점차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D + 6??

 

아델라는 무려 아카데미 조기졸업이라는 기적을 일으켰다. 가문에서의 축하와 왕실에서도 역시 유능한 인재를 얻기 위해 축하의 말을 보내었지만, 그녀는 적당한 문답과 사교장에 얼굴을 잠깐 보였을 뿐, 자신의 목표를 위해 가문의 근처에 자그마한 공방을 짓고는 가끔씩만 가문에 얼굴을 보이며 자신의 마법 연구에 빠지기 시작했다.

 

사각 사각 사각

 

“빅…터, 빅터… 비……… 흡! 빅터! 빅터!”

 

아델라는 발작 증세를 지닌 사람처럼 빅터의 이름을 중얼거리며 연구일지 작성을 멈추지 않았고.

 

스으윽 스윽 사각

 

일지를 작성 중인 그녀의 바로 옆엔 한 남성의 얼굴과 이름이 자동으로 움직이는 펜에 의하여 계속해서 그려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얼굴과 이름은 시간이 지나고 나면 조금씩 지워졌기에 양피지 위를 춤추는 펜은 쉴 수가 없었다.

 

아델라는 그림을 그리는 펜이 멈추지 않을까 일지와 그림을 번갈아 보다 결국 피로가 찾아와 한계라고 느끼며 펜에만 마법을 유지하며 침대로 다가가 누우려 했지만, 침대의 머리맡에 있는 꽃병을 잠시 바라보곤 다시 책상으로 다가가 일지의 작성을 시작했다.

 

침대 머리맡의 꽃병은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있었다.

 

 

 

 

D + 2???

 

[프로디지움 백작가의 영애, 아델라 프로디지움이 공간마법의 새 시대를 열다!]

 

[그녀가 발표한 논문을 읽은 마탑의 마법사들, 모두 경악을 금치 못해!]

 

[현 공간마법의 대가 “그녀는 나보다 이론적인 부분을 뛰어넘었다. 진정한 후계자를 찾은 것 같다.”라고 하며 그녀의 논문에 힘을 실어주다.]

 

[마탑 공식적으로 아델라 프로디지움에게 막대한 지원을 약속하며 ‘차원도약’마법에 대해 심도 있는 토론을 원하는 입장 표명.]

 

“비, 이, 익, 터. 흐, 히히 아직 괜찮아……”

 

 

 

 

D + 4???

 

[아델라 프로디지움 공간마법에 이어서 이번엔 시간마법을!]

 

[마탑에서도 이것은 단순히 천재라고만 칭할 수가 없어.]

 

[현 시간마법의 대가 “현재 그녀가 외부와의 직접적인 접촉을 피하고 있어 안타깝다.”라며 표명]

 

[아델라 프로디지움, 그녀는 정말로 천재인가? 마탑의 일각에서는 그녀의 너무 빠른 성취에 의혹을 품어, 그녀의 공방 근처는 무언가 불길하다며 의견을 내기도 해.]

 

“빅, 그야 그라고! 남자, 남성, 그, 빅, 그, 잊어선 안 돼!!!”

 

 

 

 

D + 6???

 

[참혹한 광경, 프로디지움 백작가의 몰락. 원인은 마나의 폭주인가?]

 

[지나가던 상인과 용병들의 의견 일치, “땅 위가 푸른 마나에 순식간에 휩싸이고 나서 남은 것은 풀 한 포기도 남지 않아.”]

 

[3개월 전부터 프로디지움의 영지로 모인 뒤틀린 마나의 흐름, 의도적인 현상이라 보고 현상 파악 중.]

 

[시간, 공간마법의 대가 둘 모두 실종. 마지막 행선지가 프로디지움 영지기에 희망적인 관측은 어려워.]

 

[마탑의 일부에선 용의자로 아델라 프로디지움을 지목.]

 

“해냈다해냈다해냈다해냈다해냈다해냈다해냈다해냈다해냈다해냈다해냈다해냈다해냈다해냈다해냈다해냈다해냈다해냈다해냈다해냈다해냈다해냈다해냈다해냈다해냈다해냈다해냈다해냈다해냈다해냈다해냈다해냈다해냈다해냈다해냈다해냈다해냈다해냈다해냈다해냈다해냈다해냈다해냈다해냈다해냈다해냈다해냈다해냈다해냈다해냈다해냈다해냈다해냈다해냈다해냈다해냈다해냈다해냈다해냈다해냈다해냈다해냈다해냈다해냈다해냈다해냈다해냈다해냈다해냈다해냈다해냈다해냈다해냈다해냈다해냈다해냈다해냈다해냈다해냈다해냈다해냈다해냈다해냈다해냈다해냈다해냈다해냈다해냈다해냈다해냈다해냈다해냈다해냈다해냈다해냈다해냈다. 실험 성공. 조금만 더 기다려줘 그대.”

 

 

 

 

D + ????

 

휘이이이이-

 

아카데미 첨탑의 가장 높은 곳, 그날의 전투 이후 복구 우선순위에서 밀려났었지만 이젠 말끔해진 돌담과 마법이 새겨진 종과 종루가 하늘을 찌르듯이 세워져 있었다.

 

그곳에서 1학년을 뜻하는 녹색의 뱃지와 졸업자의 뱃지를 단, 낡은 아카데미 교복을 입은 붉은 머리 여성이 첨탑의 끝에서 저물어가는 석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드디어 만나게 될 사람을 기대하면서.

 

그러곤 얼마 지나지 않아 첨탑의 계단에선 철컹철컹하며 갑옷이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황금색 갈기를 휘날리는 투구를 쓴 왕실기사단장이 올라선다.

 

“이젠 끝이다! 마녀 아델라 프로디지움. 5년 전 프로디지움 영지민과 백작가의 대량 학살, 두 마법의 대가를 살해한 극악무도한 범죄자로서 즉결처형 하도록 하겠다!”

 

“역시 아직 내가 기억하고 있어서일까, 그가 있던 자리에 흔적이 남아있어.”

 

아델라의 무시에 기사단장은 눈살을 찌푸렸지만, 주먹쥔 손을 들어 올려 외부에 신호를 보내었다.

 

쉬익-

 

화살이 날아와 아델라의 팔뚝에 꽂힌다. 그리고 즉시 화살촉에 발라져 있던 독이 퍼지며 그녀의 피부가 검게 썩기 시작한다.

 

첨탑의 주변으로 하늘에 떠오른 마법사들이 영창을 끝마친 마법을 그녀에게 곧장 발사한다. 불, 얼음, 돌, 바람 등 다양한 종류의 공격마법이 그녀의 몸을 베고, 꽂히고, 절단내며 지나가지만, 충격에 몸이 흔들릴 뿐 어떠한 저항도 보이질 않는다.

 

“이제 와서 순순히 죗값을 받아들이는 건가, 그 태연한 태도가 오히려 역겹군.”

 

“죗값이라면 진작에 받는 중이야, 그를 잃었다는 것, 그를 듣지 못한다는 것, 그를 보지 못한다는 것, 그와 대화하지 못한다는 것.”

 

드디어 제대로 대화가 통했지만 아델라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첨탑 옥상의 바닥이 마법진에 감싸인다.

 

“말도 안 돼! 이미 주변의 마나는 아티팩트로 뒤틀고, 몸속의 마나조차 독에 중독되어 움직일 수가 없을 텐데!”

 

“죽여라! 마녀의 목을 떨어트려!”

 

“그리고 나의 유일한 죄는 그의 고백을 부끄럽다면서 받아주지 않았던 거겠지.”

 

달려 나간 기사단장과 아델라의 거리가 단 몇 걸음만 남았을 때, 그녀의 몸은 상처 하나 없이 말끔한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시간마법!?’

 

이어질 마법을 경계하며 급하게 목을 향해 검을 휘둘렀지만, 아델라의 몸을 중심으로 퍼져 나오는 파장이 검 끝을 분해해 버리고 있었고, 잠깐 눈을 감았다 뜨자 그사이 파장은 코앞까지 왔으며 그보다 앞에 있던 팔과 다리는 고통도 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그 후 파장에 먹힌 기사단장은 물론 가까이 있던 마법사들 또한 사라졌다.

 

높은 하늘에서 바라보자면 거대한 원의 형태로 퍼져나가는 파장이 첨탑을 중심으로 생물, 무생물을 가리지 않고 전부 분해하며 마나로 치환하고 있었으며 그 범위는 이미 아카데미 전체 부지를 넘어 다른 지역까지 넘어가고 있었다.

 

치이익- 툭, 투욱.

 

“아, 한계에 도달했구나.”

 

그녀의 옷을 녹이며 떨어져 나온 것은 검게 타버린 사람의 심장 두 개. 마법의 대가를 죽여 얻어낸 그들의 정수였다.

 

여태까지 계획을 위해 더 수월히 마법을 사용하는 대에 도움을 주었지만, 방금 전 시간을 되돌리는 마법과 파장을 일으키는 마법을 사용하며 결국 한계에 도달해 망가진 것이었다.

 

“[마나흡수]”

 

퍼져나간 파장 내부에 남아있던 치환된 마나들이 전부 아델라에게 모이기 시작한다. 지금도 파장은 더욱 커지고 있으니 이 [마나흡수]는 멈추지 않고 계속 작동할 것이다.

 

“이거면 이제… [차원 통로]”

 

파지직! 파직!!

 

아델라가 뻗은 손 앞에 허공이 유리처럼 깨져나가며 그 너머, 검은 바탕에 초록의 물줄기가 흐르는 공간을 보여준다.

 

“아아…! 드디어! 기억이 나. 빅터! 거구의 남성! 아카데미의 동급생, 평민, 그리고… 나의 사랑.”

 

그 말을 끝으로 아델라는 깨져나간 허공의 틈을 넘어갔다.

 

 

 

 

*         *          *

 

 

 

 

그곳은 딱 두 가지로 분류된다. 위아래, 앞뒤 양옆의 구분 없이 오로지 검은색 일체의 공간, 그리고 그곳을 마치 강처럼 흐르는 초록색의 각진 형태의 숫자 0과1.

 

아델라는 미지에 대한 두려움이 피어올랐지만 이곳에선 빅터에 대한 기억을 잃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 두려움을 이겨내며 앞으로 나아갔다. 어차피 방향의 구분이 없는 곳, 그러니 오로지 앞만을 바라보며 걸어간다.

 

그것이 정답이었던 걸까, 무언가 색다른 곳이 보여 도착한 곳은 컴퓨터와 책상이 중앙에 놓인, 현대의 원룸 크기의 방이었다.

 

‘원룸? 컴퓨터? 제가 이걸 어떻게 아는 거죠?’

 

아델라는 그러한 의문을 느끼면서도 중앙에 다가가 컴퓨터의 모니터를 바라본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마우스를 잡아 익숙한 손놀림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미 모니터엔 게임을 하는 사람에겐 익숙한 페이지가 보인다.

 

빅터

1회차 아카데미 시험의 숲 / Y17 M04 D05 불러오기

2회차 외진 훈련장           / Y17 M04 D08 불러오기

3회차 제1 훈련장            / Y17 M04 D12 불러오기

4회차 기숙사 외진 뒤편    / Y17 M05 D02 불러오기

5회차 아카데미 실험실     / Y17 M04 D25 불러오기

 

그곳엔 누구라도 알기 쉽게 빅터라는 인물의 세이브 파일이 띄워져 있었다. 아델라는 그중 제일 위에 있는 1회차에 마우스를 움직여 불러오기를 눌렀다.

 

딸깍.

 

[빅터의 1회차를 보시겠습니까? 네 / 아니요]

 

“네…”

 

딸깍.

 

그러자 시야가 뒤집어졌다.

 

 

 

 

*         *          *

 

 

 

 

D - 365

 

‘아카데미의 구원자’라는 쯔꾸르 게임이 있다. 딱히 스토리의 깊이라던가, 게임 자체의 완성도가 높진 않지만 최고로 꼽히는 장점이 있다. 바로 캐릭터들의 고퀄리티 일러스트와 매력적인 개정을 가진 히로인들이다.

 

할 게 없어 심심하던 나는 인디게임 추천글에서 발견하고 어떠한 이끌림에 곧장 구매해서 게임을 즐겼고, 2회차부터 열리는 루트가 있기에 그 루트를 가기 위해 다시 캐릭터를 만들어 새로 시작하기를 눌렀지만.

 

“그게 게임 속 전생이라는 클리셰였냐고, 내가 5700자의 비판 댓글을 썼어, 아니면 게임 결말이 불만이라는 글을 써서 올리기라도 했냐고…”

 

그냥 평범하게 즐겼고, 평범하게 2회차를 즐기려 했을 뿐인데.

 

“거기다 뭐야 이 몸은? 원래 내 몸보다 조금 더 큰 거 같은데?”

 

띠링.

 

온갖 현실 부정과 투덜거림을 내뱉을 때, 눈앞에 경쾌한 알림과 함께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메인 퀘스트 – 에핀의 친구가 되고 동료들과 함께 위험을 무찔러 나가세요!]

[메인 퀘스트 – 아카데미 입학식 참여 0/1]

[보상 – 스킬 포인트 1]

 

“허, 진짜 게임 속 인가 보네. 음? 뭐야 아래에 이건 서브 퀘스트?”

 

[서브 퀘스트 – 당신의 진정한 히로인을 찾아보자! 100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는 없다!]

[성공조건 – 1번 이상의 고백 이후 대상이 받아줄 것.]

[보상 - ??? ??? ??? ?? ????.]

[실패조건 – 100번 이상의 고백 이후 대상이 안 받아줄 것.]

[보상 – 현실세계로 복귀.]

[주의 – 오직 한 명의 대상에게만 할 수 있습니다. 양다리는 안 돼요!]

 

“어? 현실세계로 복귀?”

 

성공 시의 보상이 물음표투성이인 것도 실패의 보상이 현실 세계로 복귀인진 알 수 없지만, 고백이라는 조건을 보고 딱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아델라 프로디지움. 서브 히로인중 귀족 특유의 고압적인 성격과 츤데레가 섞여 친해지기가 까다롭고 실제로도 그리 인기가 많지 않은 캐릭터.’

 

특히나 츤데레라는 그 성격에 주목했다. 츤데레는 속마음은 좋다고 해도 겉으론 반대의 형태로 표현하는 매우 귀찮은 성격. 하지만 오히려 내가 가진 퀘스트의 실패 조건을 이루기에 매우 이상적인 성격이다.

 

“그런데 일단 아카데미로 가야 하는 거지?”

 

행동하기 전에 상태창이나 인벤토리를 외쳐보며 나에게 다른 부가적인 능력은 없는지 확인했다. 다행히도 그러한 기능들이 작동하기에 게임치트의 힘으로 스토리를 따라가는데 고생하진 않을 것 같다.

 

내가 서있던 곳은 도시의 골목처럼 보이는 곳, 아까부터 혼잣말에 헛짓거리를 했지만 그 누구도 이곳을 지나가지 않아서 소란 없이 사람들이 많이 보이는 골목의 끝으로 향했다.

 

밝은 빛이 나오는 대로로 나오자 우글거리는 사람들과 마차가 뒤엉켜 물처럼 흐르는 것 같아 보인다. 그리고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자 그곳엔 아카데미의 가장 높은 첨탑이 곧게 뻗어있는 게 보여 길을 잃지는 않을 것 같다.

 

“진짜로 해야하는건가 게임 속 전생 생활.”

 

꿀꺽-

 

난 기대와 두려움을 안고 아카데미를 향해 걸어갔다.

 

 

 

*         *          *

 

 

 

 

아델라는 그러한 빅터의 일생을 바라보며 빠져들기 시작했다.

 

처음 보고 만났기에 마물에게 어이없이 당하는 죽음.

귀족과 평민이라는 신분 차이 때문에 당하는 부당한 처사.

처음엔 괜찮다 싶었지만, 점차 이세계에 익숙해지며 느껴지는 현실 세계와의 괴리감.

왜 자신이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신적 고통.

마지막으로 죽음을 경험해도 다시 되돌아가는 회귀라는 끔찍한 저주.

 

“빅터에게 이곳은 지옥이었구나.”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그에게 아델라는 하나의 버팀목이었다.

 

분명 처음엔 다짜고짜 고백하는 빅터는 마음에 들지 않았겠지만, 점차 시간이 지날수록 포기하지 않고 진지하게 다가오는 그에게 빠져든 아델라였기에 알 수 있었다.

 

빅터도 어느 순간부터 거짓이 아닌 진심으로 아델라를 진짜 좋아하게 되었다고, 고백하며 거절당했을 때 슬퍼하고, 언제부턴가 아델라가 위로 차원에서 데리고 가는 짐꾼 역할 겸 데이트를 통해 행복을 느꼈으며, 다음 고백 땐 성공하겠다는 마음을 다지는 그가 보였다.

 

“그리고 그걸 전부 거절해버린 난 악마겠네… 흑…”

 

오랫동안 멈춘 줄 알았던 눈물이 다시 흐르기 시작한다.

 

빅터에 대한 미안함과 스스로에 대한 미련함, 언제든지 받아들일 수 있었음에도 거절해서 그에게 상처만 입혔다는 후회.

 

그 모든 감정이 모여 다시금 아델라를 옥죄고 있었다.

 

“미안해 빅터. 미안해 빅터.”

 

‘아아… 여기라면 빅터에게 영원히 사죄할 수 있을 거야. 내 목소리가 들리지도 않고, 내 마음이 닿지도 않겠지만 여길 나의 지옥이라 하고 계속해서 그에게 미안하다고 소리치자.’

 

무릎을 꿇고 몸과 머리를 살짝 숙이고 양손은 곱게 겹쳐 가슴께 앞에 가져온다. 신에게 사죄하듯, 그 마음과 몸은 오로지 빅터에게 향한다.

 

이대로 영원히……

 

띠링-

 

……하는 소리가 뒤에서 나지 않았다면 말이다.

 

“뒤에서 소리가.”

 

금세 다시 일어나 뒤를 바라본 아델라의 눈앞엔 방금까지 보았던 빅터의 방처럼, 이번엔 자신의 공방과 그 중앙에 떠오른 새하얀 양피지가 보였다.

 

그 양피지에 다가가니 조금 전 모니터에 적힌 것과 비슷한 글자들이 나열해 있었다.

 

아델라 프□디지■

1회차 차원의 ◇▽ / Y?? M13 D01 저※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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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가 번져 읽기가 힘든 곳도 있었지만, 그 아래의 글자는 제대로 읽을 수가 있었다.

 

“새로하기.”

 

그 양피지에 손을 뻗음에는 전혀 망설임이 없었다.

 

 

 

 

D + ♥

 

12월, 게임 속 세상을 구하고 복귀한 지도 벌써 3개월이나 지났다. 다행이도 돌아왔을 때는 내가 사라졌을 때의 시간 차이가 1시간 정도였기에 일상으로의 복귀는…… 조금은 문제가 있었지만 성실히 정신과를 다니며 치료했기에 현재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물론 아직도 실연에 대한 슬픔만은 남아있지만.

 

“하아… 아델라…”

 

이런 식으로 궁상맞게 짝사랑의 이름을 외는 것이 내 일상의 대부분이다.

 

학교를 마치고 조금 싼값에 구했던 허름한 원룸으로 돌아가면 오늘도 그때를 회상하며 그 게임을 플레이하다 잠들 것이다.

 

“아, 오셨군요!”

 

만약 기적이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말이다.

 

“오랜만이에요 빅터. 아니면 여기선 한우민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다행히도 얼굴은 여기나 저기나 똑같네요, 몸은 조금 작아진 것 같지만.”

 

“…아, 델라?”

 

“네, 당신의 아델라에요.”

 

내 원룸 방문 앞에 서 있는 붉은 머리의 소녀. 지금 내가 환상을 보고 있는 건지 아니면 정신병이 다시 도진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뺨을 세게 꼬집어서 꿈에서 깨보려 하지만.

 

“아프네…?”

 

“그러지 마세요. 얼굴에 상처가 남잖아요.”

 

아델라는 살며시 내 손을 잡아 끌어내려 주었다. 뺨에서 느껴지는 고통보다, 그 따스함에 이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자각한다.

 

“아델라 여긴 어떻게? 아니 그보다 당신의 아델라? 그런데 내 집은 어떻게 알고? 아니 그보다 진짜 어떻게?”

 

“후훗, 진정하세요. 너무 갑작스러웠죠? 하지만 제대로 대화하기 전에 먼저 이거에 대한 대답을 듣게 해주세요.”

 

그러곤 아델라는 뒤를 돌아 무언가를 준비하는 듯하더니 다시 내 앞으로 돌아서선 꽃다발을 내밀며 무릎을 꿇었다.

 

“빅터… 아델라 프로디지움의 명예와 이름을 건 첫 번째 고백이에요. 저와 사귀어주세요.”

 

마치 데쟈뷰 같다. 정반대지만 마지막으로 아델라에게 고백했을 때와 비슷한 모습. 식어가던 사랑이 다시 불 붙기 시작한다. 지금은 내가 그때 듣고 싶었던 말을 해야겠지.

 

“…네, 저도 좋아해요 아델라.”

 

그러자 환한 미소와 함께 아델라는 내게 달려와 입술을 맞췄다.

 

“츕…”

 

처음은 가볍게 서로의 입술을 부딪히는 버드키스.

 

“츄릅, 후아아… 츕, 츄르릅…”

 

그러다 접촉 면적이 점점 넓어지며 이윽고 서로의 입안을 혀로 탐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래선 궁금증을 해결할 수 없기에 나를 꽉 껴안는 그녀를 살짝 떨어트리곤 입을 연다.

 

“하아… 하아… 하아…”

 

“하아… 하아… 아델라, 일단 방에 들어가서 찬찬히 대화해보자.”

 

고개를 끄덕여 동의하는 아델라를 이끌고 자취방으로 들어가자 청소를 자주 하질 않아 지저분해 보이는 남자의 원룸이 그대로 보인다.

 

“어, 앗, 잠시만 기다려 금방 치울 테니-”

 

“아뇨 괜찮아요. 제가 지금은 좀 많이 흥분상태라 시간이 모자랄 것 같네요.”

 

몸이 돌처럼 굳어 움직이질 않는다. 그렇게 굳어버린 나를 지나쳐 방 안으로 들어간 아델라는 이곳저곳을 살피더니 매트리스에 엎드리곤 크게 숨을 들이쉬어 냄새를 맡기 시작한다.

 

“스읍- 하아… 이게 빅터의 냄새군요. 정말로 진해요.”

 

몇 번 그렇게 숨을 들이쉬고 나서 다시 일어난 아델라는 나를 바라보고 손짓하자 내 몸이 공중으로 띄워져서 매트리스에 조심히 옮겨지곤 눕혔다.

 

‘이 느낌은 착각이 아니라면 마나? 여기서도 마법을 쓸 수 있는 거야?’

 

“정말로 죄송해요. 하지만, 하지만!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만큼, 빅터에게 죄를 지은 만큼 봉사할 수 있게 해주세요.”

 

그러곤 그녀는 다시 한번 손짓을 하더니 그녀와 내 옷이 스르륵 하며 벗겨져 나체가 되었다.

 

‘잠깐, 잠깐잠깐잠깐!’

 

“다행이에요 제 몸에 반응해 주시는군요.”

 

하읍-

 

그때부터 쾌락의 지옥이 시작됐다.

 

 

 

 

*         *          *

 

 

 

 

그 이후는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아델라와 나는 당연히 결혼, 주민등록번호나 행정적 문제는 그녀가 차원을 넘어서 올 대마법사였기에 마법적인 힘으로 해결했다. 그리고 대마법사의 머리는 현대의 경제에도 잘 먹히는지 그 수완 덕에 큰돈을 벌고 금세 큰 집으로 이사하여 평온하게 살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내 사랑 우민! 저와 결혼을 전제로 사귀어주세요!”

 

아델라는 꽃다발을 건네며 학교로 등교하는 내게 고백하고 있었다.

 

“네 아델라, 저도 당신과 같은 마음이에요.”

 

“사랑해요 우민~!”

 

츄-

 

요즘은 이런 일상이다. 이미 결혼도 했지만 내가 고백한 횟수만큼 다시 내게 돌려주겠다는 우스꽝스럽지만 행복한 나날.

 

 

 

 

D + ♥♥♥♥♥♥♥♥♥♥♥♥♥♥♥♥

 

 

 

 

영원히 사랑해요 우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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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숙한 실력이지만 재밌게 봐주시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