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아와 이재혁은 유치원때 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온 질긴 인연이다.

아니 표현이 조금 어설펐다.

정수아 그녀가 직접 '질기게' 만들었다.

컴퓨터로 조작해 같은 반으로 만드는 건 기본이다.

언제나 반장으로 선출되는 그녀는 제비뽑기에서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손 안에 솜겨둔 쪽지를 꺼내 이재혁의 근처 자리에 앉는다.

좋아하기 떄문이다.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 감정은 날이 갈수록 줄어들기는커녕 커져만 간다.

하지만 표현이 서툴다.

그것이 그녀의 단점이다.

대놓고 티를 내는 이재혁의 여동생 이유리를 생각하면 이가 아득바득 갈리고 초조해진다.

 

'가족이란 선이 언제까지 지켜질지…….'

 

집에 돌아와 학교 안에 설치된 CCTV를 해킹해 이재혁이 찍힌 영상을 편집하고 수정한다.

그 과정에서 이유리가 옥상에서 고백받는 화면을 찾았다.

 

"흥. 또야?"

 

정말 바보같다.

저렇게 아름답게 꾸며서야 자기를 부르는 꽃인 줄 아는 날파리들만 꼬일 뿐이다.

정수아는 굳이 머리를 풀지 않고 안경을 쓰고 다니는 것은 이재혁이 외관에 크게 반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꾸밈 없는 모습을 유지한다.

그리고 언젠가 머리를 풀고 이재혁을 바라볼 때 휘둥그레지는 반응을 기대한다.

이유리와 비교해도 자신있다.

자신은 거기에 똑똑한 머리가 있지 않은가?

 

"뭐 운동 능력은 이유리에 비해 밀리지만……."

 

책상에 앉아 커피를 홀짝 마시며 옥상을 떠나는 이유리를 바라본다.

카메라에 달린 고성능 음성 추적기가 임현석이 한 말을 잡는다.

 

-어떤 새끼인지 모르겠지만 하나하나 찾아봐서 조져 놔야지. 크크.

 

"음."

 

쨍그랑!

머그컵이 순간 바닥에 닿아 깨졌다.

정수아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재혁이 몸에 손톱 하나라도 건들면……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거야!"

 

그건 임현석은 물론 이유리도 마찬가지다.

 

 

 

*******

 

 

 

내 눈에는 왜 이렇게 가엾은 아이가 밟히는지 모른다.

그건 필시 내가 여동생을 보호하는 오빠로 있기 때문일 것이다. 

초등학교에 올라오고나서 우연히 아는 사이인 정수아와 옆자리가 됐을 때 나는 기뻐했지만 정수아는 그렇지 않았다.

그녀는 가림판으로 책상을 반으로 갈랐다.

 

"아는 체 하지마."

"……."

 

타인과의 소통을 거부하는 녀석.

그 탓에 학급에서 금방 외톨이가 됐다.

유치원 때도 이랬다.

하다못해 선생님이 왜 그러냐고 했을 땐.

 

"수준 낮아서요. 같이 못 놀겠어요."

 

그러니 따돌려지지 않은 게 이상한 거다.

그런데 눈에 밟혔다.

차갑기 만한 태도가 외로운 투정으로 보였다.

나는 여동생에게 그랬듯이 정수아에게도 다가가서 친근하게 굴었다.

물론.

 

"진짜 필요 없으니깐 말 걸지 말아줄래?"

"그만 좀 말 걸어. 언제까지 그럴 건데?"

"흥."

 

이제는 대꾸조차 듣기 어려워질 정도로 그녀는 방패를 세웠다.

정수아를 괴롭히고 싶은 아이들은 나를 회류하고 협박하려 했다.

 

"그만 좀 같이 있어."

"저런 애가 뭐가 좋다고 그러냐?"

"너도 왕따 당할래?"

 

나는 그 아이들의 말을 무시했다.

너무나 수준 낮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늦잠 잔 여동생을 데려다주느라 평소보다 늦게 등교했을 때.

그 녀석들은 가위로 정수아의 머리카락을 자르겠다고 위협하며 갖고 놀고 있었다.

정수아는 초등학생이 도저히 읽을 것 같지 않은 어려운 책을 읽으며 그들을 무시하고 있었고 나는 화가 났다.

 

"이래도 무시해?"

"병신 새끼."

"못 읽는 주제에 읽는 척 하는 거지?"

 

나는 곧장 달려가 정수아와 그들 사이를 떼어놓았다.

 

"야. 너 왜 나대냐?"

"그만 좀 해. 수아가 싫어하잖아."

"아예 그냥 둘이 사귀지 그래? 너 정수아 좋아하지?"

"이 새끼!"

 

말귀를 못 알아쳐먹는 애는 매가 약이다.

그렇게 서로 치고받다가 나에게 잔뜩 맞은 그 녀석은 약이 올랐는지 가위를 치켜들고 내가 아닌 정수아에게 달려들었다.

 

"씨발. 그깟 머리 좀 짤라 주겠다는데!"

"그만!"

 

그것은 사고였다.

날카로운 가위질을 손으로 막으려다가 튕겨져 나갔는데 하필 왼쪽 눈에 박히고 말았다.

아찔하다.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그 고통을 신음하나 뱉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단지 놀란 눈으로 날 바라보는 정수아를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으리라.

 

"나,난…… 괜찮아…."

"…그, 벼,병원에 지금 당장……."

 

정수아가 품에서 휴대폰을 꺼내는데 손을 너무 떤 나머지 바닥에 떨어뜨렸다.

나는 그 모습에 피식 웃고 말았다.

 

"너도 애처럼 실수하는 구나."

"흑흑흑. 미안해. 내,내 잘못이야."

 

잘못한 쪽은 저 녀석인데 왜 피해자가 울고 사죄하는지.

그 일이 있고 그 사건은 애들끼리의 '사고'로 규정되고 사고친 놈은 전학을 갔다.

왼쪽눈은 실명이 됐다.

하지만 분명히 말하지만 나는 괜찮다.

가엾은 아이를 하나 구하고 진정한 내 친구가 됐으니깐.

 

"미안해……."

"응? 뭐가?"

 

점심시간.

정수아와 교실에서 책상을 붙여 밥을 먹는데 이 녀석이 뜬끔 사과를 한다.

 정수아가 차가운 손으로 내 왼눈을 만지작거렸다.

 

"미안해."

"네 잘못이 아니라니깐. 왜 네가 사과하는 거야. 그나저나."

"응?"

"전학간 그 녀석 어떻게 됐을라나."

 

결국 사과 한 마디 하지 않고 가버린 그 녀석. 밉다면 솔직히 그 녀석이 밉다.

 

"괜찮아내가매일추적하고있으니깐절대로좋은인생살게둘지않을거야평생후회하고사과할마음이들떄까지괴롭혀줄테니깐걱정하지마."

"어? 뭐라고?"

 

혼자 속닥거려 들리지 않았다.

정수아는 가끔 혼잣말로 이랬다. 

 

"아냐. 알아서 잘 살겠지. 그 나쁜 새끼."

"하하. 벌이나 받았으면 좋겠네."

"……."

 

평화로운 점심시간이다.

 

 

 

*******

 

 

 

임현석은 이유리가 좋아하는 녀석이 누구인지 캐묻고 다녔다.

하지만 친구들은 물론 그 어떤 사람도 그런 사람이 있는지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냥 한 소리인가? 아니야. 그때 그 눈빛. 분명해."

"같은 고등학교에 한 학년 위로 오빠가 있습니다."

"그래? 일부러 숨긴건가? 그건 그렇고 오빠가 있었구나."

 

고급스러운 쇼파에 몸을 기댄 임현석은 비서의 보고를 받으며 읊조렸다.

 

"뭔가 알고 있을지도 모르니 직접 한 번 가봐야겠네."

 

다음 날 학교.

임현석은 2학년 1반의 문을 열고 앞자리 여학생과 떠들고 있는 이재혁의 목에 팔을 감았다.

 

"야. 나 좀 보자."

"무슨 일인데?"

"오면 알아. 네 여동생인 거. 소문내고 싶지 않지?"

"……."

 

임현석과 이재혁은 옥상으로 올라갔다.

같은 학년이지만 말을 나누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임현석이 그 날을 회상히며 피식 웃었다.

 

"야. 나 차였다. 네 여동생한테."

"유리가 내 동생인 건 어떻게 알았어?"

"알 건 없고. 혹시 알고 있냐?"

"뭘?"

 

임현석이 이재혁의 가슴을 툭툭 쳤다.

 

"네 여동생이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서 찼는데 혹시 아냐?"

"알아서 뭐하게?"

"그건 내가 알아서 할거고. 아냐고 모르냐고."

 

이재혁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알아도 말 못 해주겠다. 너 쌩양아치구나?"

"뭐?"

"다신 내 여동생한테 접근하지 마. 말만 섞어도 질 안좋은 녀석인 건 알겠으니깐."

"너 쌈 좀 하냐?"

 

퍽!

갑작스럽게 날아온 펀치에 이재혁이 고꾸라졌다.

 

"너 새끼가 뭔데 날 평가해? 씨발 새끼야."

 

퍽!퍽!퍽!

이재혁은 반항하려 했지만 턱에 정면으로 맞아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임현석이 발길질을 마저 다한 후 침을 퉷 뱉었다.

 

"병신 새끼. 유단자가 사람패면 감옥간다지만 한 번 신고해봐라. 잡혀가는지 하하하."

"……."

 

임현석은 옥상을 내려갔고 이재혁은 그대로 교실에 들리지 않고 조퇴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그건 무서웠기 때문이다.

이유리와 정수아가 만약 자신이 누구한테 다친 걸 알아차린다면 얼마나 화를 낼지 말이다.

그것만은 안 된다.

정말로 그것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