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은 외대 다니는 얀붕이고. 최근에 교환 학생으로 온 북유럽 출신 여자랑 연애하고 있음.


만난 썰이라고 해봐야... 그 조별 과제를 하는데. 걔가 먼저 나보고 호감의 표시를 보였고...


그리고 나서 연애하게 됐음.


둘이서 뭐 했냐..? 무슨 이야기 했냐? 그런건 썰 풀어봐야 솔직히 비틱밖에 안 되니까. 넘어가고. 중요한건 다음이지.


여자친구는 나보다 연상이라서, 취업 활동을 빠르게 했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유럽에 있는 회사에서 근무를 한다더라.


자기는 한국처럼 빡세게 사는것보다는 느긋하게...여유를 즐기면서 사는게 좋다나 뭐라나..?


유럽...특히 북유럽 복지는 존나 유명하니까. 내가 뭐라고 말을 할게 못되더라.


-붕이도. 나랑 같이 가야지? 우리 엄마, 아빠 소개시켜줄게..! 결혼해야하니까. 서로 얼굴은 알아야지 않겠어?


-어...?


얘랑... 결혼을 해야겠다. 그런 생각은 없었는데... 갑자기 그런 식으로 훅하고 여친이 치고 들어오니까. 할 말이 없더라.


아, 참고로 말해서. 다른 여자를 사귄다거나 그런게 아니야. 그냥... 아직 마음에 준비가 안 된거지.


나는 학생이고...취업도 못 했는데. ...결혼을 하는건 현실적으로 무리가 있잖아.


-아이... 붕! 그런건 걱정하지마. 내가 너무 진지하게 말해서, 좀... 당황한 것 같은데. 나도 네 마음 이해해... 


내가 머뭇머뭇 거리니까, 여친도 좀...당황한 것 같았음.


-...그래도 우리 할머니가 너를 보고 싶어하셔... 최근에 몸 상태가 너무 악화가 되어서... 요즘 힘들다는 소식을 많이 듣고 있거든. 그래서 나는 할머니가 붕이를 보면서 조금 일상에 자극을 받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알겠다. 좋아..! 


여기서 더 거절하면 여친이 상처를 받을까봐 어쩔 수 없이 여친의 동네로 가겠다고 말을 했음. 


좀...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는 여자 친구를 사랑하거든. 여자친구도 나를 사랑하고 있고.


야, 생각해봐. 여자친구는 나 때문에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하고, 입맛에 안 맞는 음식도 먹으면서 우리 문화에 대해서 익숙해지려고 노력하는데. 


나도 여친을 위해서 그 정도 노력은 해야하지 않겠나? 그 생각이 드는거임.


생각해보니까, 지금도 여친이랑 한국말로 이야기를 하고 있고, 나는 여자 친구네 모국어에 대해서 1도 모르고, 사실 핀란드나 노르웨이 같은 나라에 대해서 1도 관심이 없었음.


사람에 따라서는 기분 나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여친은 한번도 그런걸로 나한테 뭐라 말 한적이 없었음.


그 정도로  지금까지 보면, 항상 여친이 나를 위해서 맞춰줬으니까, 이번에는 내가 여친에게 맞춰주기로 함.


그래서 이런이런 이유로 외국으로 간다. 집에 말하니까 반대도 없더라.


우리 엄마랑 아빠도 내가 외국인이랑 교제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음.


근데... 뭐... 좀 그런거 있잖아.


배트남이나 태국 같은... 그런 나라였으면 좀 싫어 했을 것 같은데. 유럽에서 왔다고 하니까. 엄청 좋아하시는..? 좀 그런게 있기는 하지.


특히 북유럽은 이미지도 좋잖어.


-우리 얀붕이를 잘 부탁해요. 


오히려 엄마가 여친한테 그런 말을 꺼낼 정도였음.


무한한 신뢰에 가깝지...머


그렇게 어영부영하다가, 결국에는 북유럽으로 가게 됐음. 


내 여친은 한국에 대해서 잘 아는데. 나는 노르웨이... 북유럽에 대해서는 잘 모름. 기껏해야 홀란드... 고등어, 연어, 이케아. 진짜 그 정도만 알고 있지. 


거기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솔직히 아무런 관심이 없었고. 그래서 북유럽에 왔을 때 좀 깜짝 놀랐음.


여기는 극지방이랑 가까워서 그런지 백야 현상이라는게 있더라.


음...나도 너무 신기해서 찍어봤는데.


이게 해질녘에 찍은게 아니라 새벽 2시에 찍은거임.


...나는 문과 출신이라서, 정확한 이유는 모르는데. 극지방은 항상 태양빛을 받기 때문에 밤이 되어도 해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 식으로만 알고 있음. 


그 다음에 본격적으로 이제 여친네 집안에 방문을 했는데.


도시가 아니라 시골 출신이더라.


-붕은 이런건 처음이지? 도시 출신으로 어때? 시골은?


-어 나는 좋다고 생각하는데, 평화로워 보이네. 조용하고...힐링되는 기분이야.


생긴것만 보면 여친이 세련된 도시 여자고. 내가 깡촌에서 살 것 같이 생겼는데. 


...공항이 있는 수도에서 좀 멀리 떨어졌더라. 


구체적으로 말하면 기차를 타고 종점에서 내린 뒤에 또 차를 타고 4시간은 더 가야 여친이 살고 있는 마을이 나왔음.


이케아 같은 쇼핑물이 하나도 없는 그런 곳 있잖아. 우리로 치면 BYC같은 동네.



내가 오니까, 여친네 가족들이 전부 나를 맞이 해주더라.


음... 이게 북유럽식 전통 복장이라고 하는데, 좀 신기했음.


우리로 치면 여친은 촌에 있는 집성촌...? 그런 곳에서 살고 있더라. 


유럽에도 이런 곳이 있구나. 신기하기도 하고...


-붕..! 오늘은 늦었으니까, 쉬고. 내일부터 우리 가족에 대해서 알려줄게?


좀 개꿀이라는 생각도 드는게.


내가 그... 문과 대학을 나왔다고 했잖아.


대학생이 아니라, 대학원생인데... 대학원생은 레포트를 발표해야 하잖아. 


확실한 주제를 못 정해서 갈팡질팡 했었는데, 여친 동네를 보니까. 이걸 주제로 레포트를 내면 어떨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야, 북유럽 전통 문화에 대해서 레포트를 내는 사람은 나 말고는 없을걸? 


머...자세한건 내일 여친한테 물어봐서 상의를 해봐야 알 것 같고. 그 날은 그렇게 잤음.


다음 날. 


여친한테 너네 마을에 대해서 논문을 좀 쓰고 싶다고 말 하니까... 


-논문...? ...알겠어..! 근데, 너무 멍청한 짓은 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그냥 그렇게 말하는거임. 


그래서 알겠다고 말했지 ㅇㅇ


여친네 집안 사람들이랑 이야기를 할 기회를 가졌는데.


나는 노르웨이 말을 모르니까... 바보처럼 인사만 꾸벅꾸벅하면서 그렇게 사람들을 상대했지.


나는 좀 병신 처럼 보이지 않을까? 그런 걱정을 했는데...그런거랑 다르게 다들 따뜻하게 대해주시더라.


나라는 존재가 여기서 엄청 특별한 존재가 된 느낌? 


오취리도 가나에서는 평범한 흑인 1인데, 한국에 오니까 연예인이고 그러잖아.


내가 음식 같은거 하나 먹기만 해도. 


주변에서 오오-굉장해.. 그런 반응이고, 맛있다고 말하면 다들 웃고 신기해 하더라.


여기는 마트 하나 없는 시골이니까.


내 존재가 그냥 이 사람들에게는 무한도전,1박2일 같은 느낌이지.


생각보다 살기 좋음.


북유럽 사람들은 손님 접대가 싸가지가 없다. 그런...말이 있어서 걱정도 좀 하고 그랬는데. 


그런건 1도 없고 다들 따뜻하게 반겨주시더라.


아 맞다!


북유럽 접대 관습 문제에 대해서 여친네 아버지한테 물어봤거든?


-우리는 손님을 정말 따뜻하게 대접하고, 환대하고. 그 사람들이 우리의 주민이 되었으면 좋겠다. 한번도 우리는 외부에서 온 손님을 배척하지 않았다. 그게 우리의 전통이고 문화고, 역사다!


여친이 그런 식으로 통역해주더라.


북유럽에서도 접대의 관습이라는게 있는데. 핀란드 새끼들이 손님한테 식사도 대접 안 해줘서 덩달아 북유럽 이미지가 나빠졌다. 그런 느낌의 말을... 많이 하시더라.


화가 많이 난 듯..? ㅋㅋ


-붕! 원래 폐쇄적인 마을에서는 근친혼을 피하기 위해서 외부인을 끌어들이는 풍습이 있다고 해!


뭐... 그런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외부의 손님을 붙잡기 위해서 접대의 관습이라는게 있었던 거고. 


별로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


아, 그리고 좀 특별한 경험을 했는데.


미드소마라는게 있음.


우리 나라 말로 여름 축제 같은건데. 그냥 풍년을 기원하는 머 있잖아. 어디 문화권에서도 흔히 있을 법한... 그런 축제.


-붕! 관심 있으면 참가해볼래?


-?어...나도 할 수 있는거야?


-왜 안 되겠어?


여친 말로는 이번 여름 축제는 90년에 한번 열리는 그런 축제라고 하더라.


그래서 나도 핀란드 전통 복장으로 갈아입고... 머리에 화관까지 올리고 그랬음.


-붕..! 8월의 신랑이네..! 잘생겼어..! 후후...


-하하..신랑...?


여친이 그런 식으로 말하니까 좀 설레더라. 아직 결혼을 할 생각은 없는데.


똑같은 옷을 입기는 했어도.


...확실히 여기 사람들이 전부 다 금발 벽안이라서. 


나 혼자 검은 머리 외국인이니까. 어딜 가도 눈에 띄더라.


하지 축제는 9일동안 이어지고... 오늘은 그냥 오프닝 같은 느낌임.


이 사람들에게는 일상적인 모습인데, 그게 내 눈에는 정말 신기하더라.


점심 만찬을 끝낸 뒤에 여친네 가족이랑 뒷산을 올라갔음. 보여줄게 있다면서.


...절벽 끄트머리에 누가 있는거임.


자세히 보니까, 여친네 할머니 있잖아. 그 분이었음.


사실 머...제대로 된 대화도 잘 못 나누고. 딱 한번 얼굴을 봐서. 별 다른 생각이 없었는데. 그 분이 휠체어에서 일어나서 뒤뚱뒤뚱 절벽으로 걸어가시더라.


좀 불안했음.


무슨 사고라도 날까봐. 아니, 이게 그... 다 늙은 노인이 저렇게 있는데. 아무도 말릴 생각을 안 하고 있다는게 내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갔지만. 무슨 이유가 있겠지. 하고 지켜봤는데...


그러다... 바람이 세게 불어서 할머니가 비틀거리며 절벽 아래로 떨어진거임.


...시발 박 터지는 소리가 들리더라.


-오...시발... 오마이갓..! 119 불러야 하는거 아니야?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거지? 전화...헬프미..! 헬프미미..!!!


머리 털 나고 이런건 처음 봐서, 어쩔 줄 몰라했는데.... 그런 나랑 다르게 여친네 가족들은 무덤덤한거임.


-붕, 이게 우리의 문화야.


-어...?


-우리는 이걸 순환이라고 불러. 땅에서 태어났으니...다시 땅으로 돌아가는거지. 이상한건 하나도 없어. 


일본의 미비키, 한국의 고려장처럼. 척박한 땅에서 사는 문명은 대게 비슷한...풍습을 가지고 있음. 뭐... 집단에서 요구하는 자원보다 더 많은 인구가 태어나면 기존에 있던 사람을 죽이는 풍습 같은게 있기는 하지만...


그건 시발 전근대적인 이야기고.


당장 에도시대의 집권자들도 미비키를 하지마라. 그런 식으로 말이 나오곤 했으니까. 그 시대 기준으로도 미개한...풍습인데. 


그런 풍습을 아직도 유지하고 있다는게 나는 믿겨지지가 않았음. 


그것도 선진국인 북유럽에서!!!!


-어...나는 문화의 차이를 인정해. 그럴 수 있다고 생각은 하는데, 이건 논문에 안 적을게. 괜찮지?


-그건 마음대로 해 붕.


일단...담담하게 말은 했는데. ...심장이 미친듯이 뛰더라.


사람이 죽는 걸 봐서...그런가... 


예쁘고 사랑스럽게 생긴 내 여자 친구가 오늘은 좀 다르게 보이기도 했고.


...그 날 잠을 자는데 진짜 머리 속으로 오만 생각이 다 들더라.


경찰에 신고 해야 하는건 아닐까? ...나 무슨 해꼬지를 당하는건 아니겠지? 


그래서 도망쳤다.


존나 뛰고 뛰다 보면...기차역까지는 갈 수 있을 것 같았거든.


===


-붕! 왜, 다들 자고 있는 한 밤중에 쥐새끼처럼 몰래 마을을 빠져나갈 계획을 가지고 있었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 나는 물어보지 않을거야. 보복...? 처벌...? 붕...? 왜 그래...? 나는 붕에게 심한짓을 할 생각이 없어. 단지... 이 마을을 벗어나는게 불가능하다. 그런 말을 붕에게 하고 싶었을 뿐이야. 이 곳은 밤이라는게 존재하지 않는 극지니까. 그리고 붕은 유일한 동양인이고. 우리랑 완전 다른 유전자를 가졌지.


-...갑자기 무슨 소리냐고? 그건 붕이 앞으로 이 마을에 남아서 열심히 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거야. 저번에 우리 아버지가 말했듯... 이 마을에서 근친혼은 금지니까. 그래, 그건 사실이야. 우리 하지 축제에서도 약속했잖아? 붕이는 8월의 신랑이 되겠다고. 부모님에게 연락할 기회는 내가 줄 수는 있지만... 영상 통화로만 할 수 있어. 지금처럼 도망가면 안 되니까.


-잘려나간 발목의 상처는 금방 나을거야. 물론...뛰지는 못하겠지만. 앞으로 붕은 이 마을에서 해야할 일은 아기를 잔뜩 만드는거니까, 그 일을 하는데 있어서 발목은 크게 상관이 없잖아? 음... 붕! 저번에 우리 할머니가 승천한걸 본적있지? 우리는 땅에서 태어나서, 다시 땅으로 돌아가. 그리고 육체는 땅의 거름이 되고 영혼은 하늘로 올라가지. 그리고... 다시 시간이 지나면 하늘로 올라간 영혼이 땅으로 돌아와. 불교의 윤회같은 개념이야. 이별이 있으면 만남의 순간이 다시 찾아오는거고. 붕! 잘려나간 발목은 돌아오지 않겠지만.... 그래도 붕이 한번 '승천'하게 되면 다시 태어나게 될거고. 응...그때는 멀쩡한 몸이겠지?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잘려나간 발목을 찾고 싶으면 '승천'밖에 없다. 이 말이지. 나는 얀붕이의 발목을 방법이 없다는 말을 하고 싶네. 음... 괜찮잖아! 이 정도면..! 아즈텍처럼 산제물을 바치기라도 해, 가슴을 갈라서 심장을 꺼내기를 해..? 내가 얀붕이에게 바라는건, 내가 한국의 문화를 존중해주는 것처럼 얀붕이도 우리 나라의 문화를 존중했으면 좋겠다. 그 이야기를 하고 싶은거야. 음...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벌써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 얀붕이는 8월의 신랑이니까. 


-그러니까 오늘도 으샤으샤! 열심히 아이를 만들지 않으면.... 8월의 신랑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겠지..? 아기..열심히 만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