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일로 와서 앉아봐 할 말이 있어.

 


 

또 무슨 일인데 그래?

 

 


당신 솔직히 말해봐. 다른 여자 생겼지? 

 



갑자기 그렇게 말하면 좀 당황스러운데.


 

 

뭐가 당황스러워. 당신 요즘 힘든 거 같아서 

원래 주 5회 하던 거, 주 3회로 줄여도 줬는데 

그러면 더 잘해야 할 거 아니야.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솔직하게 말해봐.


 

 

진짜 몰라서 묻는 거야?

 

 


끝까지 숨기겠다 이거야? 

옛날에 학생 때는 나 좋다고 계속 쫓아다녔으면서. 

이제는 늙었다고 내가 싫은 거야? 

 

 

 

말은 똑바로 해야지.

내가 너 쫓아다닌 건, 니가 계속 내 옷이나 핸드폰 같은 거

훔쳐 가서 쫓아다녔던 거고.

 



그런 사소한 이야기는 차치하고.

예전보다 사정량도 줄어들고, 하는 시간도 줄어들었는데.

이것만 준 게 아니라 길이나 굵기도 전에 비해 작아졌어.

다른 곳에서 빼고 들어와서 그런 거 아니야?

빨리 바른대로 말해봐.

 

 


그 있잖아. 우리 올해로 60살인 건 알고 있지?

나 2달 뒤에 정년퇴직한다고.

 

 


내가 내 나이도 모를까 봐? 당연히 알지.

 

 


알면서 왜 물어보는 건데! 이제는 잘 서지도 않는다고!

일주일에 3번이나 뽑아가는데 멀쩡하겠냐고!

 

 


쓸수록 더 강해져야 하는 거 아니야?

경력이 늘어나면 더 노련해지고 기술도 늘어날 거 아니야.

 

 


진짜 환장하겠네! 

내 나이 때 다른 사람은 와이프랑 1년에 한번 할까 말까 라던데.

 

 

 

그게 가능해? 그 정도면 이혼해야 하는 거 아니야?

왜 같이 사는 거래?

 

 


진짜 말이 안통하네. 

됐고 부탁이 하나 있는데.

점심시간마다 회사로 도시락 싸 들고 오는 거 말이야.

이제 그만하면 안돼?

 

 


당신 밥 챙겨주는 게 뭐 어때서.

그게 문제 될 일이야?

 

 


그건 핑계고 사실은 나 감시하러 오는 거잖아.

내가 여직원들이랑 어떻게 지내나 보러 오는거 다 알아.

내 점심 챙겨주고 싶으면 그냥 아침에 도시락을 주면 되는 거 아니야?

 

 

 

알고 있었구나. 

불안해서 그랬지. 일하다가 눈 맞은 사람들도 많다던데 혹시 모르잖아.

근데 이번에 들어온 여직원. 그년 그거 당신 좋아하는 거 같던데.

 

 


20대 여자가 60대 남자를 좋아하겠냐고...

하... 됐다. 어차피 2달 뒤면 끝인데. 이 이야기는 그만하고.

나 퇴직 기념으로 다음 주에 애들이 손주들 데리고 집에 올라온대.

준비해두자고.

 

 


애들 올라온다고? 이게 얼마 만이야?

이 새끼들이 키워준 은혜는 모르고 

다 크고 독립하니까 연락 한번을 안 하더니만.

 

 

 

니가 애들한테 관심이나 준 적 있어? 나한테만 관심 있었지.

오죽하면 애들 사춘기 때 엄마는 아빠만 좋아한다고.

우리한테는 관심도 없다고 라면서 가출을 했겠냐고.

 

 


그래도 그 사건 이후로 애들한테 신경 좀 써줬잖아...

자꾸 옛날이야기 꺼낼거야?

 


 

용돈만 올려주는 게 신경 써주는 거냐? 에휴 진짜.

그나저나 요즘 걱정이야. 퇴직하면 이제 뭘 해야 할지 말이야.

나 할 줄 아는 것도 없는데. 나 이제 뭘 해야 할까.

솔직히 말하면 나 미래가 너무 무서워.

 

 

 

내가 항상 옆에 있잖아. 무서울 게 뭐 있어!

그동안 일하느라 수고했으니까. 이제 나랑 놀러 다니자!

해외여행은 어때?

 


 

우리 통장 잔고는 알고 말하는 거지?

평생 놀러만 다닐 수는 없어. 

 

 


그럼 애들한테 용돈 달라고 하면 되지.

인당 달에 30만원씩만 걷자.

수금 업자처럼!

 

 


그런 내가 싫어. 애들한테 손 벌리기는 싫다고.

 

 


음... 그럼 식당 차리는 건 어때?

당신 요리 잘하잖아. 분명 대박 날걸?

 

 


그럼 내가 만든 음식 다른 여자들이 먹을 텐데 괜찮겠어?

저번에 회사 야유회에서 내가 구운 고기 여직원 줬다고

하루종일 화냈잖아.

 


 

아! 그건 안되지, 안돼! 그럼 남성 전용 식당 같은 건 어때?

괜찮을 거 같지 않아?

 


 

되겠냐고.

 

 


그러면... 우리 귀농할까? 농사나 짓고 사는 건 어때?

당신이 밭을 갈면 내가 씨앗을 뿌리는 거야.

재밌을 거 같지 않아?

 


 

시골 내려가면 벌레도 많을 텐데 괜찮겠어?

너 벌레 엄청 싫어하잖아. 

저번에 집에서 벌레 한 마리 나왔을때 집 뛰쳐나와서는

현관문 앞에서 내가 오기만을 기다렸잖아.

 

 

 

벌레는 질색인데... 그럼 이것도 싫어! 

나는 그냥 당신만 옆에 있어 주면 되는데.

왜 자꾸 우리 사이를 위협하는 것들이 많은 거야!

 

 

 

이래서 내가 걱정이 많은 거야. 너 때문에!

니가 싫어하는 게 너무 많아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내가 짐덩이가 된 기분이네...

그래도 내가 옆에 있으니까 좋지 않아?

뉴스 보니까 요즘은 황혼이혼 같은 것도 많이 한다던데.

가족들한테 버림받은 아버지들이 많이 고독사한데.

 


 

솔직히 말하면 맞긴 해.

힘든 시기에 옆에 있어 주니까 버팀목이 되어주는 거 같기도 하고.

처음으로 결혼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드네.

 


 

처음으로? 

30년 넘게 같이 살아놓고서는 이제서야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그러면 왜 나랑 같이 사는 건데! 왜 나랑 결혼했냐고!

 

 

 

그... 엄밀히 말하자면 결혼은 니가 나 몰래 했잖아.

결혼식 끝나고 혼인신고서 제출하러 갔을 때.

창구에서 이미 혼인상태라고 말했을 때 내가 얼마나 당황했는데.

내 도장은 언제 빼돌렸고 또 혼인신고서는 언제 몰래 제출한 거야?

그것도 고등학생 때?


 

 

그 이야기는 왜 꺼내는 거야...

사람 민망해지게....

아니 그래서 나랑 결혼한 거 후회해?

 


 

별로 후회하지는 않아.

너 지금 쓰고 있는 지갑이 뭐야.

 



내 지갑? 

당신이 대학생 때 처음으로 벌은 알바비로 사준 거잖아.

4월 21일 오후 2시 36분에 현대백화점 2층에 있던 가게에서 

원래는 35만원인데 할인받아서 27만원에 주고 산 지갑이잖아.

그때 가게 직원이 여자친구 선물로 딱 맞는다면서 추천 해줬었지?

 


 

같이 사러 간 것도 아니고.

그거를 어떻게 다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그거를 30년 넘게 쓰고 있다는 거잖아?

다 헤지고 볼품없어졌을 텐데, 왜 아직도 쓰고 있는 거야?

 


 

그거야. 

당신이 처음으로 나한테 준 선물인데 어떻게 안 쓸 수가 있어.

평생 간직해야지, 안 그래?

 

 

 

이것 봐. 나밖에 모르는 거.

전 세계를 뒤져봐도 이렇게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은 너밖에 없을 거야.

이런 사람을 어떻게 그냥 무시할 수 있겠어. 

결혼한 거는 후회 절대 안 하지.

 

 

 

당신이 나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구나...

근데 나 그런 말을 들으면 가만히 있을 수가 없는데...

 

 

 

나 힘들어... 

잘 서지도 않는다고...

 

 

 

그럼 안 할 거야? 사람 애태우게 만들어 놓고?

 

 


사실 요즘 하는 생각인데. 내 속마음을 솔직하게 말해보자면.

내 예전 같지 않은 몸으로, 전처럼 너를 만족시킬 수 있을까?

이제 더 이상 너를 만족시키지 못할까 봐 두려워.

만족시키지 못한다면. 너가 나한테 실망하는 건 아닐까.

평소와는 다른 표정인 실망감에 빠진 표정으로 

나를 쳐다볼까 보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었단 말이야?

그거는 문제 될 게 하나도 없지. 당신 요즘 잘 서지 않는다고 했지?

 

 

 

어 맞아.

 

 


입이랑 손은 멀쩡하지 않아? 

예전이랑 비교해서 크게 달라진 것도 없고.

 

 


어... 맞지?

 


 

그러면 그걸 쓰면 되지.

아가리 대봐.

 


 

뭐하려고...?

갑자기 내 머리채는 왜 붙잡는 거야...?

어...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