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살성天殺星. 

하늘로부터 만인을 죽이라는 업을 타고난 존재.

살생의 기준이란 없어 선인과 악인을 구분않고 내키는대로 죽인다. 


─그런 의미에서 하니엘 폰 엘드레이크는 천살성이었다. 


혼자서 변경백의 영민들을 전부 참수한 황국 4대 공적이자, 그녀를 막아서련 성검을 든 검성마저 돼지고기 써는 푸주칼 따위로 쉽게 척살해버렸다. 

가장 아름다운 살육자. 모든 검사들의 적. 피투성이 검희. 붉은 죽음의 선고자─여러 거창한 별명이 있지만 난 하니엘을 딱 세 글자로 줄일 수 있다고 자신한다.


멘헤라라고.


“누나 자살할 거야. 죽고 싶어.”


목에 밧줄을 두른 채 의자에 올라간 천살성을 보자마자 머리가 지끈거려 온다.

오래 버틴다 했더니 또 이 모양 이 꼴이다. 난 질린 내색을 하지 않고 물었다. 


“왜 그러는데요?”

“누나는 쓰레기야. 실수로 죽여버렸어. 토마스 사제를.”


토마스 사제는 이 도시에서 굉장히 인망이 높은 명사제인 듯하다.

하니엘과 거기에 딸린 내가 공적임을 알고도 따뜻하게 맞아준 사람이다. 뭔가 꿍꿍이 속이 있던 거 아닐까. 


“착한 척 하는 사제란 놈들은 뒤로 더러운 짓을 했다던가 어린 소년들의 엉덩이를 탐하거나 그랬을 거니까 누나는 아무 잘못 없어요.”

“아니야. 램튼 군. 언제나처럼 죄수들로 가볍게 몸을 풀고 있었는데 차리리 날 베라면서 막아서더라구.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반으로 갈라져 죽어 있었어. 누나는 죽이고 싶지 않은데. 흑. 착한 사람을 죽였으니까, 누나도 죽어야만 해!!”


진짜 착한 사람이었네. 네가 변명의 여지가 없는 쓰레기잖아.

아무튼 하니엘은 지뢰계 멘헤라지만 시나리오상 아직 죽어선 안 된다. 토마스 사제 같은 엑스트라가 죽은 일로 이 여자를 잃을 순 없다.

뻥- 의자를 발로 걷어차련 그녀에게 난 다급하게 소리쳤다. 


“토, 토마스 사제는 대머리잖아요.”

“아? 대머리…?”


영문을 알 수 없단 얼굴이 된 하니엘에게 난 기세를 몰아 말했다.  


“그 인간이 신에게 사랑받는다면 추한 대머리 일리가 없잖아요. 하늘에게 선택받은 누나한테 말참견할 권리 따윈 없던 거라고요.”

“그런가아!! 그렇지. 나, 잘못이 없는 거지.”


궁색한 변호였지만 천살성의 얼굴이 눈에 눈에 띄게 밝아졌다. 단순한 여자라고 생각하면서 고개를 작게 끄떡였다.


“그런 거예요. 대머리는 살아있는 게 해악이라고요!! 대머리들은 자기 머리가 나쁘니까 벗겨진다는 걸 모른단 말이죠.”

“그치! 그치. 완전 그렇지!”

“두피에서 빠지는 머리카락이랑 같이 진작 죽으면 좋았을 텐데 잘 죽였어요. 누나.”


와락. 의자에서 뛰어내린 하니엘이 나를 덮치듯이 껴안았다.

폭신폭신한 두 언덕이 만든 골짜기에 코가 파묻혀 숨이 막힐 지경이다. 비릿한 피냄새가 아니었다면 푹 빠졌을 지도 모르겠다. 


“고, 고마워어...! 램튼 군 뿐이라구, 내가 누굴 죽여도 전긍정해주는 사람. 내 힐링은 너 뿐이야아...!”


─천살성의 전긍정 애착 인형, 그게 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