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역키잡 보고 싶은데 왜 없음?

본읾,,,, 정신 차리고 보니 너무 못써서 수정핢,,, 전 글에 개추 준 얀붕이들 미안,,, 기억하께,,,


  밤하늘의 별빛이 방 안을 한번 휘젓고 그대로 유유히 떠나간다. 가라앉은 공기가 불길을 중심으로 가라앉고, 이내 타오른다.

  

  몇 년 만에 제대로 된 음식을 먹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곳의 냄새를 맡았고, 적당한 여관의 방을 빌려 비명과 함께 잠들지 않는 시간을 보냈다.

  

  그러고도 시간이 남아 어린 마족과 함께 시장을 두어 번 들러 대충 그 나이대에 어울릴만한 걸 사줬다.

  

  그렇게 이틀이 지난 지금, 침대에 누워 잠에 든 마족과 같은 방안에서, 나는 난로로부터 전해진 온기에 저항하지 않고 몸을 데웠다.

  

  그러한 여러 요인과 인과가 겹친 결과, 나는 쏟아지는 잠으로부터 몸을 맡기지 않을 합당한 이유를 찾지 못했다. 

  

  "편히 쉬어라. 언제 도망쳐야 할지 모르니."

  

  내뱉은 말에 책임을 지기 위해 난롯불을 쬐면서 솔선수범하여 벽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평화롭고 행복하다. 역시 사람은 사람답게 살아야 살아갈 수 있는 법.

  

  누군가 덮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쯤은 시궁창에서 언제 칼을 맞을지 몰라 전전긍긍하던 나날에 비해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았다. 오히려 적당한 긴장감은, 삶의 소중함을 알게 해주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던가.

  

  그래, 삶이란 이런 것이다. 이틀간 꿈에 그리던 평화로운 나날을 맘껏 누리는 나날을 보내며 시간을 지새웠다. 그녀와 함께, 평화로운 곳에서 같은 지붕 아래에서 살아가는 꿈꿔왔던 삶같이 달콤한 시간을.

  

  문득 쬐고 있던 불을 향해 시선이 갔다.

  

  타오르는 불에는 마력이 있다. 정확히는 그로부터 비치는 그윽한 불빛에 관한 힘이다. 평소라면 하지 않을 이야기도 괜히 한 번쯤 해보게 되는 마법 같은 힘.

  

  그것이 정말로 불빛의 힘인지, 아니면 그저 분위기의 착각에 불과한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쩌면 알고 싶지 않아 하는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어디까지나 그런 마법 같은 힘에 기대고 싶어 한다는 점일 테니.

  

  맹렬히 타오르는 불을 멍하니 바라봤다. 이따금 불씨가 튀어 올라 타닥거리며 자그마한 소음 한 가닥을 만들어냈다. 퍽 기분이 좋아지는 음색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소음을, 일찍이 들어본 적이 있었다. 그 점을 떠올리자마자 깊이 생각해 보았지만 감이 잡히는 데가 없었다. 결국 한숨과 함께 그 마음을 접어버렸다. 정 중요한 일이면 언젠가는 떠올리리라.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노래를 부르는 음유시인처럼 감미로운 음색, 매일 아침 들어온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자 절로 감긴 눈이 뜨였다. 어쩐지 그립게 느껴지는 목소리이기도 했다.

  

  "…아니, 그냥 잠깐 졸았어."

  

  잠깐 졸은 것 치곤 머릿속이 복잡했다. 길고 긴 꿈을 꾼 것처럼.

  

  그러나 그런 사실을 굳이 말할 필요는 없겠다 싶어 언제부터 졸았는지를 알기 위해 주변을 둘러봤다. 머리도 아프고 삐이이― 거리는 이명도 울리는 것이, 영 심상치 않긴 했다.

  

  별빛이 내리는 밤하늘이 수평선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는 들판, 사람의 기분이란 것은 단순하여, 타닥거리는 모닥불 주위에 둘러앉아 이렇게 아무 말 없이 앉아있는 것만으로 우리는 일말의 행복감을 느끼곤 했다.

  

  "잠깐, 왜 밤이야."

  

  "글쎄, 왜 밤일까?"

  

  "때리지 말고. 진짜 눈만 감았다 뗐다니까."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뒤 모닥불의 은은한 불빛이 주위를 가득 채우자, 연이은 침묵이 어색했던 나는 화사한 금빛 머리칼을 가진 그녀에게 대뜸 추억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본능에 가까운 행동이었지만, 정말 맞는 것이 아파서 그랬던 것은 아니리라.

  

  자연스레 왼손으로 그녀가 다시금 뻗은 주먹을 막아 세우며 내뱉는 이야기의 형식은, 주로 그리운 그녀에게 내가 있었던 일을 하소연하는 식이었다. 그중에서도 하고 싶었던 말들을 골라서.

  

  "마족을 하나 주웠어. 한번 살아남는 법을 가르쳐 주려고. 아이를 키우는 걸 미리 연습했다고 쳐도 될까."

  

  "아직 잠이 덜 깼구나?"

  

  물론 정상인이면 이런 대답이 돌아올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리하여 어렵지 않게 날아오는 주먹을 피했다. 분위기를 박살 내는 데엔 가벼운 농담만 한 게 없는 법이다. 주먹보다도.

  

  뒷일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내 입은 청산유수처럼 알아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객관적으로 보기에도 아주 필사적인 변명이었다. 뜻밖에도 중간쯤부턴 그녀도 경청하는 태도를 보였다.

  

  "계속 들어봐. 그냥 꿈 이야기니까. 좀 긴 꿈이긴 했는데. 어쨌든, 그 마족이 어떻게 생겼냐면. 하얀 머리칼에 녹색 눈동자를 가진 여자애였어."

  

  "참 전형적으로 마족처럼 생기기도 했네. 나보다 예뻤어?"

  

  "아니, 근데 귀엽긴 하던데."

  

  그 말에 어쩐지 우쭐해진 그녀를 내버려두고 나는 꿈에서 겪은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녀와 이 이야기를 공유하고 싶기도 했지만, 말할수록 꿈이 점점 선명해지는 기분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여전히 불명이었다. 왜 이 이야기를 계속하고 싶은지에 대해선 감이 잡히는 데가 없었다. 그저 떠밀려가는 물 같이 그럴 수 있기 때문에 그러고 있을 뿐,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죽을 뻔했는데, 그 마족이 길가에 있었던 거야. 방금 살아난 참인데, 곧 죽을 것 같은 어린애를 어떻게 버리겠어? 그래서 줍고,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 주려고 했지."

  

  "그리고?"

  

  "그게 끝이야. 거기서 깼어. 같이 지내보니 딸 같아서 뭔가 더 해주고 싶었던 게 생기려던 참이었는데. 거기서 깼어."

  

  내 말을 듣고서 불을 향해 슬퍼 보이는 시선을 보낸 그녀는 돌연 모닥불 속에서 책을 꺼내 들고는, 그 제목을 볼 수 있도록 나를 향해 펼친 후 돌연 고개를 끄덕이며 입술을 뗐다. 내 눈동자가 미친 듯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녀가 모닥불 속에서 책을 꺼낸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분명 그녀는 그것이 이상하지 않을 수준의 마법을 부릴 수 있었으므로, 그러니 내가 놀란 것은 전적으로 책의 제목을 내가 이미 알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뒤틀린 사랑]

  

  " "당신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

  

  귓가에 울려 퍼진 그 짧은 한마디의 말에 들려온 목소리는 두 가지였다.

  

  어리고 앳되지만 무뚝뚝한 목소리와 밝고 활기찬 목소리. 그리고 나는 그 목소리의 주인공들을 전부, 빠짐없이 알고 있었다.

  

  눈앞에서 들려온 목소리의 주인인 그녀는 항상 내 앞에서 이렇게 활짝 웃고 있었다. 내가 무슨 말을 든던 즐겁다는 듯이 웃어 보였다. 웃지 못하는 시간이 아깝다는 듯, 언제나.

  

  심지어 내 눈앞에서 목이 떨어져 죽을 때에도, 내가 그 떨어진 목을 받고 울부짖었을 때에도. 나는 그녀를 향해 습관처럼 왼팔을 뻗으려다가 그렇지 못한다는 걸 깨닫고야 말았다.

  

  내 표정이 삽시간에 굳어 표정을 잃고 허탈함 속에 말라버린 웃음을 짓자, 그런 꼴을 못 봐주겠다는 듯 그녀가 내게 물어왔다. 어쩌면 나를 책망하기 위함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나는 그것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는 운명이 아니던가. 

  

  결국 나는 두려움 속에 그 물음에 직면하고야 말았다. 이 또한 나의 업보이리라.

  

  "그래서, 행복했어?"

  

  물어오는 그녀는 웃고 있었다. 더없이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 그렇기에 나 또한 웃는 얼굴로 죄악감에 눈물 흘리며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응. 너무 행복했어. 그래서 이런 꿈을 꾼 거야. 반가웠고 오랜만이었어. 이제 사라져."

  

  "너무 매정한 거 아니야? 말로만 그러니까 이런 꿈을 꾸지. 후후후…"

  

  내가 처음부터 어떻게 답할지 알고 있었을 것이 분명한 그녀는 허탈한 웃음을 흘리는 나에게 진심으로 웃어주었다. 그 웃음마저 내 죄악감을 간질였다.

  

  기꺼이 그 웃음을 놓치지 않기 위해, 귓가에서 들려오는 이명을 무시하고 눈을 부릅떠가며 당장 보이는 모습들 하나하나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타오르는 모닥불, 바람에 흔들리는 풀과 구름, 달빛 아래에서 웃는 그녀의 모습까지도. 

  

  그러나 그런 기대가 무색하게도, 눈앞의 풍경은 점점 무너져갔다. 변하지 않는 온기만이 내게 유일하게 남아있었다. 어떻게든 그 온기를 놓지 않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다시는 잃고 싶지 않았다. 도저히.

  

  삐이이―


  

  

  

  "염병할."

  

  타닥, 타닥.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타닥거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뭔가가 불타고 있는 건가.

  

  정신을 차리고 아래를 내려다보니 나는 난롯불에 직접 땔감이 되기 위한 한 발짝만을 남겨두고, 그 한 발을 더 내디딜지 막 고민하고 있던 참이었다. 자칫 잘못했으면 그대로 불타 재가 되고야 말았으리라.

  

  옷에 옮겨붙은 불씨를 털어내며 불을 바라봤다.

  

  분명 불과 가까이 있음에도, 눈앞이 어둡기만 하다.

  

  밤이란 원래 그렇다. 빛과 어둠이 교차하다가, 한쪽에 기울기를 반복한다. 내 밤은 그날 이후로 항상 어둠에 기울어있었다.

  

  보라, 지금마저도 저 창가에 내 얼굴이 비치지 않잖은가. 무언가 보이기라도 하면 차라리 다행이겠으나 사방에 널린 어둠투성이에서 보이는 것은 일렁이는 그림자뿐이요, 또한 내 죄악감이 형태를 갖춘 그림자뿐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내 삶의 그늘만이 내 눈에 보일 뿐이다. 그리고 나는 그곳에서 위안을 얻는다. 내가 행복을 누리면서도 그들을 잊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래, 이게 진짜 행복이 아니라면 무엇이겠나. 그들을 잊지는 않았으며 그들과 한 약속을 지켜가는 와중에 얻어낸 행복이다. 그들이 죽고 말아서 미처 누리지 못한 행복이다!

  

  "허억."

  

  그것을 의식하자 짧은 사색에 빠져들었던 정신이 무너지고 목을 졸린 듯 호흡이 가빠졌다.

  

  사방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무언가 억누를 것이 필요했다. 어딘가에 널려있을 술을 찾아 팔을 움직이려던 찰나 잠들어 누워 있는 어린 마족이 눈에 들어왔다.

  

  억지로 눈을 감고 잘 쉬어지지 않는 숨을 어떻게든 이어나갔다. 틀어막을 방법도 없이 너무 과분한 행복을 보내고 말았다. 그 결과가 이 모양 이 꼴인가 보군.

  

  환각에 환청. 그마저도 꿈으로 본 것이 전부긴 하지만 내 상태는 진단을 내릴 것도 없이 뻔했다. 당장이라도 웃으며 죽을 준비가 되어있는 상태겠지. 아니나 다를까, 입가에서 웃음이 흘러나왔다.

  

  애초에 죽지 않기 위해 술을 마셔왔지 않았나. 이래서 술을 마셔야 했건만. 하지만 지금, 어째서인지 술을 마시기보다도 차라리 모든 기억을 잊고 싶었다. 차라리 이대로 잊고 살면 마음이 편하기라도 할까.

  

  하지만 나 만큼은, 그래선 안된다.

  

  화르륵―

  

  정적을 깨는, 뭔가가 불에 타는듯한 소리. 머릿속을 울리는 죄악감을 뒤로하고 환영에서 들었던 또 다른 목소리의 주인을 돌아봤다.

  

  멀리 찾을 필요도 없이, 어린 마족은 어느샌가 내 옆에 풀썩 주저앉아 자그마한 몸을 불가를 향해 기울이고 있었다. 

  

  "깼나. 미안하군."

  

  온 머리를 잡아먹은 우울감을 도로 삼키며 입을 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물론 태연하게 책을 든 채 내 옆으로 착 붙듯이 다가온 어린 마족 탓은 아니었다. 아직 이 어린 마족을 탓할 정도로 영락하진 않았으니.

  

  하지만 언젠가는 그럴 일이 오고야 말겠지. 나는 속으로 호흡을 정돈하며 의문 섞인 시선을 보내오는 어린 마족의 새하얀 두 손과, 그 손에 들린 책을 바라봤다. 역시나.

  

  [뒤틀린 사랑]

  

  힐끗 바라본 책에는 그런 제목이 적혀있었다. 그에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내가 지은 웃음기를 흉내 내려 애써보는, 무표정한 소녀가 무심하게 내민 책을 건네받았다. 청승맞은 꿈이로군.

  

  어린 마족을 데리고 시장을 돌아다니며 밖을 돌아다닌 지 어언 이틀, 나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어린 마족이 가진 마법에 대한 중대한 결함 하나를 깨달았다.

  

  "그래, 아직 읽고 쓰진 못하겠나."

  

  "응."

  

  "그런가. 네 마법에는 뭔가 결함이 하나씩 있는 것 같군. 모습을 바꾸는 마법은 한눈을 팔면 풀리더니, 언어를 이해하는 마법은 말하는 것이 한계라. 읽고 쓰는 건 학습하는 수밖에 없겠군."

  

  "응. 그럴게. 당신이 그렇다면 그게 맞는 방법일 테니까. 그리고, 당신 때문에 일어난 게 아니니까 신경 쓸 필요 없어."

  

  차가워진 말투와 그에 담긴 뜻에 곧바로 들려오는 소리를 향해 집중을 기울여보았으나, 수상한 소리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어린 마족의 말에도 불구하고 들려오는 것은 일상적인 대화 수준의 수군거림과 무언가가 타는듯한 소리뿐.

  

  의아해하기에 앞서 어린 마족이 무의식적으로 마법을 사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쪽을 빤히 쳐다보는 눈을 마주 봤다. 그러나 그 눈동자에도 마법을 쓴 기색도 엿보이지 않았다.

  

  다만, 마주 본 그 눈은 명백히 얼어붙어 있었다. 

  

  빛을 마구잡이로 집어삼키려는 칠흑 같은 녹색 눈동자가, 내가 아닌 어딘가를 향해 경계의 시선을 보이는 것이 살갗 위로 느껴졌다.

  

  분명 평소와 같이 그저 눈을 뜨고 바라보고 있을 뿐인 무심한 표정이었으나, 분위기가 달라져 있었다. 뭔가 달라졌다. 하지만, 뭐가 달라졌단 말인가.

  

  난로의 불길도 얼어붙을 것 같이 한기 섞인 분위기 속에서, 서서히 어린 마족의 입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당신이 누군가와 대화하는 것 같아서 일어났어. 그 누군가 때문에 일어났어. 당신 탓이 아니야."

  

  왜인지 더 냉담해진 듯한 목소리에 이미 판단을 마친 머리와 몸이 반응하려 하기 전, 당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려는 몸을 간신히 멈춰 세웠다. 진정해야 한다.

  

  지금 어린 마족은 내가 누군가와 대화한 것 같아서, 그 누군가를 경계하여 일어났다고 말하고 있었다. 표정을 죽여가며, 흰색 머리를 보름달의 달빛으로 물들이면서까지.

  

  나는 어린 마족이 품은 적의에 새삼스레 반응을 보이기 전, 오색의 색채가 반짝였다가 사라진 창문 너머를 훑어봤다. 하지만 그곳에는 다시, 그림자를 제외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방금, 내가 무슨 말을 들었더라.

  

  몸을 긴장시킨 채로 시간이 속절없이 흘러갔다. 마족이 총채를 잃은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는 가운데, 홀로 시간을 죽여가며 눈을 몇 번이고 감았다 뜨길 반복하면서 생각을 정돈했다.

  

  타닥, 타닥― 

  

  화르륵.

  

  뭔가가 타오르는 소리.

  

  삐이이―

  

  환청.

  

  후후후…

  

  그녀의 웃음 소리.

  

  고심 끝에 나는 부정을 택했다.

  

  그럴 리가 없다.

  

  "닥쳐."

  

  내가 본 것이 꿈이 아닐 리가 없다.

  

  "닥쳐. 난 누군가와 대화를 한 적이 없다."


  내가 꿈을 꾼 게 아니라 그녀의 모습을, 환영으로 직접 봤을 리가 없다. 심지어는 대화까지 했을 리가 없다. 모두 어린 마족이 지어낸 말임이 틀림없었다. 그편이 논리적으로도 타당하지 않던가.

  

  잠깐 사이에 졸며 내뱉은 잠꼬대를 잘못 들었을 것이다. 지금 당장은 인간을 죽이려 하지 않는다 해도, 결국은 마족이다. 그렇다면 내가 내뱉은 잠꼬대를 토대로, 누군가와 대화했다고 착각한 뒤 적의를 피워 올리는 것은 당연하리라.

  

  그러나 곧 내 논리는 어린 마족에게 박살 났다. 내가 절대로 반박할 수 없는 방향으로. 나는 그에 만족했으나 곧 절망했다. 어째서.

  

  "대화를 하지 않은 정도라면, 마법이라면 대화하지 않아도 의사를 주고받을 수 있어. 그렇다면, 그래서 비틀거렸던 거야? 마법에 당해서? 혹시, 내 동족이 아직 근처에 있는 거야?"

  

  나마저도 내 논리가 허점투성이란걸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을 내뱉을 준비를 마친 것이었으므로. 밀려오는 두통에 머리를 감싸며 중얼거렸다.

  

  "닥쳐…"

  

  어린 마족의 말로부터 내가 난롯가에 앉아 중얼거리는 모습, 불현듯 일어나 난로를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가는 모습들이 단편선처럼 연이어 나타났다. 그래, 확실히 그런 움직임이라면 꿈이 아닌 편이 자연스럽겠지. 

  

  하지만 그래선 안됐다. 나는 꿈에서만 그녀를 봐야 했고, 깊은 잠에 들었을 때만 그들을 생각해야만 했다. 그게 최소한의 도리이며 속죄가 아니던가.

  

  삐이이―


  예고 없이 환청이 들려왔다.

  

  어지럼증과 두통이 동시에 아가리를 쩍 벌리며 내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머리가 복잡하다.

  

  불쾌감이 느껴졌다. 근본적인 불쾌감이.

  

  오로지 방금까지 환각과 대화를 하고 있던 나에게. 방금까지 죽은 연인과 대화하고 있던 나에게. 그 모습들을 보고서 불쾌감을 느꼈다. 그럴 권리가 어디 있다고, 그런 환각을 보고 다닌단 말인가.

  

  뭔가 정신을 안정시킬 것이 필요했다. 나는 술을 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주변을 살폈다. 술이 필요했다. 어린 마족이 내 옆에서 걱정어린 시선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왜 나를, 그런 눈으로 보고 있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고작 며칠 동안 도시에 데리고 다녔다고, 그동안 사람 하나 죽이지 않았다고 안심하며 마족에게 정이라도 들이고 싶었나? 병신같은 놈!

  

  삐이이―!

  

  마음속 깊숙한 죄악감에서 잉태된 생각을 자각한 일순간, 온 세상이 괴성을 지르며 목을 조여왔고 동시에 칼끝처럼 날카롭게 찔러 들어왔다.

  

  당황하면서도 끝끝내 갑작스럽게 조여진 목과 두통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해 고통에 비명 지르듯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닥쳐!"

  

  핏발 선 내 눈이 어린 마족을 노려보았다. 지금 당장은 무슨 말이건 제정신으로 들을 자신이 없었다. 행동을 통제할 여력은 당연히 없었다.

  

  내 눈길을 느낀 소녀는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어린 몸을 미약하게나마 떨기까지 하고 있었다. 호흡마저 굼뜨다. 숨긴다고 숨겨본 건가. 그사이 나는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다. 시답잖은 죄책감이 느껴졌다.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하고 순식간에 벙어리가 되어버린 어린 마족은, 약간이나마 겁에 질린 듯 계속해서 몸을 떨고 있었다. 머지않아 정신을 차린 나는 그것이 연기일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묵묵히 어린 마족을 바라보다가 어깨 위로 손을 올려 토닥였다.

  

  이틀간 쌓은 신뢰덕인지, 소녀는 손길을 피하는 일 없이, 오히려 손이 닿자마자 자신의 몸을 앞으로 밀어트려 내 어깨를 끌어안았다. 그 몸을 쳐낼 이유는 없었다.

  

  품에 안긴 어린 마족을 향해 무감정한 시선을 보내길 잠시, 차가우면서도 아주 조금이나마 물기 섞인 목소리가 귀에 닿을 듯 가까이 들려왔다.

  

  창문 너머 배경처럼 깔린 불이 타오르는 소리와 함께.

  

  타닥, 타닥―

  

  "당신이 걱정돼서 그랬어. 당신이 걱정돼서, 그리고 날 두고 떠나진 않을까 싶어서… 그래서, 미안해요. 미안해요… 버리지 말아주세요…"

  

  어린 마족의 말에 멍하니 시선을 돌려 창문을 바라봤다. 창문에 비친 풍경 속의 달이 밝다. 밤하늘이 있고 별이 노래하는 가운데 구름이 흐른다. 파란 바람이 소리를 들고 와 감쪽같이 사라진다. 그 아래로는 세상이 온통 붉다.

  

  어두운 방 안, 창문을 통해 바깥에서 들어오는 총천연색의 빛무리와 난로에서 흘러나오는 주홍색의 별 무리가 흩어지는 밤. 

  

  나는 그토록 찬란한 오색의 빛깔을 본 기억이 가물가물하여 잊고 살아왔다. 반면 창문 속에는 또 다른 풍경이 있었다. 외팔이가 새하얀 소녀를 안은 채 이쪽을 흘깃 쳐다보는 풍경이었다.

  

  왜 지금 그런 풍경들을 보게 되었을까. 바람이 한번 불 때마다 창문 너머의 빛깔들은 흔들리기 마련이었다. 불어오는 바람과 어둠 앞에서 불빛들은 촛불처럼 가느다랗다.

  

  그러나 타오를 것이 있는 한, 불은 쉽게 꺼지지 않는다. 나는 창문을 거쳐 들어오는 바람 속에서 어린 마족을 마주 끌어안고, 호흡을 골라 솟아오르려는 알 수 없는 감정을 가라앉히며 말했다.

  

  "둘만 있을 땐 내 앞에서 연기 할 필요 없다고 했을 텐데. 미안하다는 건 진심이 맞나?"

  

  말을 마친 지 얼마 되지 않아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멎자마자,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와 함께 아까와는 달리 진정 무표정한 얼굴이 드러났다.

  

  "응. 아마 그럴 거라 생각해."

  

  "그렇다면 짐을 챙기고 일어나라. 불이 났다. 누가 질렀건, 탈출할 기회야."

  

  창문 너머로 엿보이던 오색의 빛깔은 웬만큼 큰불이 아니고서야 쉽게 볼 수 없는 것이었다. 바람만이 드나들 수 있도록 잠가둔 창문을 열어젖히고 연기가 피어오르는 방향을 찾아 눈을 돌렸다. 화재다.

  

  불을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나. 오히려 거리는 비정상적으로 조용했다. 애초에 엮이기도 싫다는 듯, 시궁창을 향한 혐오감을 숨기지 않으려는 것처럼. 딱히 책망할 것도 없이 이쪽에겐 호재다.

  

  시궁창을 향해 외팔이 하나와 아이 하나가 달려간다고 해도 잠시 머뭇거리기만 할 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을 테니. 그들은 전적으로 방관하리라. 한시도 잊은 적 없던 계획의 신호탄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타오르기 시작한 불이었다.

  

  한편으로 이 불은 곧 어린 마족이 내게 물은 말의 대답이기도 했다. 내가 죽인 마족 외에도 시궁창에 마족이 더 있었으니 불이 저렇게 크게 옮겨붙은 거겠지.

  

  미친 교회 놈들 같으니. 저건 정화라는 명목을 내세우기 전에 명백히 방화이지 않은가.

  

  삐이이―

  

  교회를 생각하자 찾아온 환각과 환청을 거부하지 않으며 창문 밖으로 떨어졌다. 내게 미소 지었던 그녀와 두통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바닥을 구르며 착지하고 소리 없이 눈을 크게 뜬 채 떨어지는 마족을 껴안았다.

  

  무서움을 느낀 건지 꼭 붙어 떨어지지 않으려는 어린 마족을 떨어트려 놓고, 우리는 어둠 속에서 환하게 빛나는 불길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탈출의 때가 왔노라.




수정전 분량이 있어서,,, 다음화는 오래 걸리지 않을 예정읾,,,
그리고 시리즈 기능 써봤는대,,, 이게 잘 되는진 몰?겠읆,,,
오탈자 지적 언제나 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