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나 쎈 뱀파이어 얀순이에게서 도망치는 스폰 얀붕이 - 11 - 얀데레 채널 (arca.live)

ㄴ여기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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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한 땅.


발푸르기스의 밤이 개최된, 사람뿐만이 아닌 들짐승들까지 망자들에 의해 도축되어 대지를 모욕하고 하늘을 뒤덮은 그 날 밤.


한 때는 작은 솔의 수도원이 있었던 이 땅과 숲은 그 이후로 부정한 기운으로 뒤덮여, 다른 곳보다도 더욱 흉포한 마수들이, 그리고 국경을 넘기 위해 이 곳을 지나는 불운한 모험가와 여행자를 노리는 도적들이 기승을 부렸다.


눈 앞에서 피가 섞인 더러운 침을 뚝뚝 흘리고 있는, 다른 곳에 서식하는 놈들보다 더욱 큰 놀들은 그런 부정한 영향을 받았을지도 모른다고 마리는 추측했다.


"으르르르르..."


한 손에 밀수꾼의 시체를 쥔 가장 큰 놀은 조잡한 대검으로 무장하고 있었지만, 나머지 두 놈은 맨손이었다.


아마 저 검도 불운한 여행자의 물건을 전리품으로 챙긴 것이리라.


놈들은 빈틈을 노리듯 주변을 살살 돌며 으르렁거렸지만 바로 그 둘에게 달려들지는 않았다.


세 남자의 몸뚱이로 배를 채운 놀들의 목적은 사냥이 아닌 방어인 모양이다.


그들의 영역에 발을 들인 침입자들에게 죽음으로써 경고를 내리려는 의도.


"제길..."


마리는 심각하게 중얼거렸다.


가히 3미터는 되어보이는 커다란 놀들을 소마법으로만 상대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범위가 큰 고위계 마법은 자칫 아이작이 휘말릴 수도 있었다.


게다가 방금 화살이 스쳐 지나간 팔도 그녀가 고위 마법을 쓰는 것을 방해했다.


마리는 힘이 점점 빠지는 오른팔을 움직이며 생각했다.


'이런 상태면 고위 진을 그릴 수가 없어.'


심각할 정도로 피가 흐르진 않았지만 위로 치켜 올리기가 힘들었다.


팔을 움켜쥐는 마리에게 아이작이 살며시 다가왔다.


"힘들어 보이는걸. 도와줄까?"


"뭘... 어떻게?"


마리의 물음에 아이작은 단검을 들고 미소지었다.


"당연히 네 대신 저 개새끼들을 죽여버리는 거지."


그의 단검날이 섬뜩하게 빛났다.


마리는 그와 잠시 눈을 맞추다 입을 열었다.


"...엄밀히 말해서, 놀이 속한 하이에나과는 개가 아니야."


"하! 농담할 기운도 있는 거 보니 마음이 따뜻해지는걸."


아이작은 코웃음을 치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대신 너한테 딱 하나만 부탁할게."


"뭔데?"


놀들이 천천히, 해와 달이 하늘을 돌듯이 그들의 주위를 맴돌았다.


그와 함께, 아이작이 말했다.


"팔 한 번만 핥게 해주라."


"응...... 뭐!?"


"크르르르!!"


그녀의 비명에 맞춰 놀들이 일제히 으르렁거렸고, 아이작은 화들짝 놀라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


'쉬이이잇! 소리 지르지 마! 자극해서 어쩌려고 그래?'


'너도 갑자기 무슨 헛소리야!? 왜 팔을...!'


속삭이며 소리를 지르던 마리는 순간 그녀의 팔에 흐르는 액체감을 느꼈다.


'...너 설마, 내 피를?'


'마법사들은 이해가 빠르다고 들었는데, 넌 좀 뭐랄까... 애매하네.'


뱀파이어는 마리를 비꼬며 살짝 입꼬리를 올렸고, 마리는 그 행동에 절로 입꼬리가 내려갔다.


'방금 도적 놈 둘을 죽이면서 느꼈어. 사람 피를 마시면 방금보다 저 놈들 따위는 금방 멱을 따 버릴 수 있을 거야.'


'확실해?'


아이작은 확신에 차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자.'


마리는 서스럼없이 팔을 내밀었고, 아이작은 잠시 그녀의 팔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뭐 해? 핥지 않고.'


재촉하는 마리에게 아이작은 게슴츠레 눈을 떴다.


'너, 평소에는 부끄럼쟁이인 척 하더니 이상한 곳에서 저돌적이야.'


'뭐가 불만이야? 시간 없으니까 빨리.'


마리는 그녀의 실용적인 판단을 믿었고, 아이작의 푸념을 들어줄 여유 따위는 없었다.


놀들은 다리로 땅을 긁으며 언제라도 둘을 향해 달려들 채비를 마친 상태였다.


'그럼, 어디...'


아이작의 차가운 숨결이 마리의 팔에 닿았다.


그는 약간 근육이 붙어 있으면서도 보드라운 그녀의 팔을 잡고 혀를 살짝 내밀었다.


"으읏...!"


마리의 팔에서 가벼운 통증과 함께 한기가 느껴졌다.


그것도 잠시 뿐이었다.


상처에서 싸늘한 혀를 뗀 아이작의 입가에 피가 묻어났다.


맛을 음미하듯이 혀를 입 안으로 굴리던 아이작은,


"...음!"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았어..."


그는 사악하게 킬킬 웃으며 단검을 역수로 힘껏 쥐었다.


그리고 고개를 살짝 돌려 마리에게 말했다.


"고기를 좀 많이 먹어 봐. 감칠맛이 부족하잖아."


"...이...!"


마리의 항변 따위는 듣지 않은 채,


그는 가장 큰 놀을 향해 뛰어들었다.


"흡!"


마리는 놀 대장에게 달려드는 아이작의 솜씨를 보고 작은 감탄을 했다.


'빨라.'


그녀가 투기장에서 만난 난적들 중에는, 눈으로 따라잡기 힘든 속도로 움직여 그녀의 술식을 유린하던 도적이 있었다.


아이작의 속도는 그에 견줄 만 했다.


순식간에 놀의 목 앞까지 뛰어든 아이작은,


"크오오오!!"


눈 깜짝할 새에 입을 벌렸다 엄청난 기세로 다무는 놀 대장의 물기 공격을 몸을 비틀어 피했다.


그리고 그 추진력으로, 그는 놀의 코를 붙잡았다.


휘익ㅡ!


그대로 공중제비를 돌듯 회전해 놀의 등 뒤의 털을 붙잡은 아이작은,


"흐압!!"


써걱ㅡ!


그대로 놀의 뒷덜미에 단검을 꽃아 넣고 마구 흔들었다.


"캐애애액!!"


놀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아이작은 그 비명 소리에 맞춰 역수로 잡은 칼을 재빨리 가로로 비틀어 마물의 목을 그어버렸다.


불과 몇 초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키이이익...!"


목에서 뿜어져 나오는 엄청난 양의 피와 함께,


놀 대장의 커다란 몸뚱이가 쓰러졌다.


"후우!"


아이작은 기분 좋은 듯이 칼을 털어 피를 흩뿌리고 날카로운 눈빛을 뽐냈다.


"거 경동맥 한 번 더럽게 질기네."


다른 놀들은 아이작을 보고 뒷걸음질치며 으르렁거렸다.


대장이 단 몇 초만에 목이 그이는 모습을 보고 당황한 듯 했다.


"커다란 칼만 찼지, 별 거 없잖아?"


킥킥 웃으며 그는 놀 대장의 머리를 가볍게 걷어찼다.


마리는 흥미롭게 아이작의 전투를 관찰했다.


'강해.'


그는 숙련된 암살자처럼 깔끔하고 정확하게 적의 급소를 베어냈다.


많은 실전 경험이 있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일이었다.


마리는 문득, 아이작이 그녀에게 해 주었던 말을 떠올렸다.


'그리고 사람 죽인 걸로 따지면, 아마 너보다 3백 년은 더 오래 살았을 내가 더 많이 죽였을걸.'


'그래서인가.'


항상 취하던 경박하고 능글맞은 태도 때문인지, 그녀는 그의 강함에 높은 점수를 주지 않았다.


언제나 마리를 향해 저자세로 굽히고 들어오던 아이작이었지만, 돌이켜 보면 그는 힘을 숨기고 있었거나, 적어도 제약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니었을까.


마치 목줄을 풀고 쇄도할 준비를 마친 사냥개처럼.


마리가 그런 생각을 할 정도로 눈 앞의 곱상한 사내는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다른 놈들은 그대로 뒤꽁무니를 내밀고 도망치려 하는가 싶었지만,


"아우우우우ㅡ!!"


일제히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흣!"


그는 작은 기합과 함께 몸을 숙이고,


촤악ㅡ!!


가볍고 민첩하게 놀들의 틈을 파고들어 미끄러졌다.


그의 목적지는 도적의 시체, 정확히는 그가 지니고 있던 검이었다.


아이작의 창백한 손이 단숨에 도적의 손에 쥐어졌던 검에 닿았다.


우득, 뼈마디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도적의 팔에서 검이 빠져나와 아이작의 손에 넘어갔고, 그는 즉시 기합을 내질렀다.


"으랴앗!!"


쐐애애액ㅡ!!


검이 화살처럼 날아갔다.


푸확!


"케헥!!"


검이 왼쪽에 서 있던 놀의 눈알에 박혔다.


눈구멍에서 솟구치는 피와 함께 놈은 털썩, 흙먼지를 일으키며 쓰러졌다.


"켁!"


남은 놀 한 마리가 목 막힌 소리를 냈다.


연이어 무리가 죽은 것에 적잖이 공포를 느낀 모양이었다.


"타앗!"


그 놈을 향해 아이작이 단검을 던졌다.


쐐액ㅡ!


방금 던진 검보다는 가볍지만 재빠르게 날아간 단검은,


"끼이잉...!!"


겁에 질려 끙끙대던 놀의 미간에 정확히 꽃혔다.


"케헥...!"


마지막 녀석 한 놈이 쓰러진 후, 흙먼지와 함께 일어난 아이작은 흙투성이가 된 옷을 가볍게 털었다.


"후우!"


피로 목욕을 한 꼴이 된 그는 되려 개운한 표정이었다.


"하아, 생각보다 더 몸이 가벼운데?"


아이작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마리를 향해 상쾌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어땠어?"


"...솔직히 좀 놀랐어."


마리는 솔직한 감상을 이야기했다.


"피 한 모금 마신 뱀파이어 스폰이 이렇게 강할 거라곤 생각도 못 했는데."


"그렇지? 나도 그래."


가볍게 몸을 푼 아이작은 천천히 마리를 향해 걸었다.


"이런 말 하긴 정말 싫지만, 아마 당주가 강해서 그런 거 아닐..."


"이그니스!!"


갑작스런 영창에 아이작은 화들짝 놀라 몸을 들썩였다.


마리의 손에서 불꽃이 피어올랐다. 작지만 사람의 얼굴은 충분히 덮고도 남을 크기였다.


화아아악ㅡ!!


"으아아악!!"


언데드의 대표적인 약점이 날아오는 것을 본 아이작은 비명을 지르며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화르륵ㅡ


화염은 아이작의 옆을 빠르게 스쳐 지나가,


"아우우우ㅡ!!"


등 뒤에서 아이작의 목덜미를 노리고 쇄도하던 놀의 얼굴을, 미간에 꽃힌 단검을 정확히 맞추었다.


"윽!?"


놀의 울음소리에 아이작은 뒤를 돌아보았고, 놈은 얼굴을 할퀴며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케헥, 케에엥!!"


몇 번의 울부짖음 끝에,


"크르르륵..."


놀의 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허억."


소스라치게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아이작은 숨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엄청난 기세로 마리에게 몸을 돌려 벼락같이 목소리를 높였다.


"무슨 빌어먹을 생각으로 화염 마법을 쓴 거야!? 내가, 바로 코 앞에, 있었잖아!!!"


마지막 세 어절에는 한 발짝씩 커다란 보폭으로 성큼 다가온 아이작에게 마리는 장난스럽게 대답했다.


"하마터면 죽을 뻔한 거 도와줬잖아, 감사 인사가 그거야?"


아이작은 언제고 음침한 기운을 내뿜던 눈 앞의 마법사가 이런 미소도 지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그의 얼굴에 화염살을 거의 맞출 뻔했다는 분노가 그 놀라움을 잠식시켰다.


"언데드에게 불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모르는 거야!? 그만한 크기가 잘못 튀기라도 하면 난 온몸에 불이 번진다고!!"


"하지만 햇빛은 잘만 버티잖아?"


"아! 햇빛하고 불 사이엔 명확한 원소적 차이가 있습죠, 마법사 나으리? 서늘한 가을 아침에 숲 사이로 산뜻이 내려오는, 천상 어딘가에서 반짝이는 뜨거운 별에서부터 오는 포근한 햇살하고, 눈 앞에서 이글거리면서 날아오는 화염살 사이에는!?!?"


금방이라도 마리의 목을 물어뜯을 것처럼 날카로운 송곳니를 보인 아이작은 크게 한숨을 쉬곤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다음 번에 또 그 짓거리를 하려면, 말이라도 해. 아니면 최소한 불 말고 딴 걸 쓰던가."


"미안. 나는 원소 마법 중에서도 불 마법이 특기라서."


하지만 여전히 가늘게 뜬 눈으로 마리에게 불만의 눈초리를 보내는 아이작에게, 그녀는 당한 것을 갚아 주었다는 약간의 만족감을 누그러뜨리고 그를 위로했다.


"...다음부턴 조심할게."


"어머, 꼭 그러길 바래. 우리의 든든한 동료애가 고작 마법 불덩어리 하나로 망가지는 꼴은 보기 싫으니까."


마지막까지 비꼬는 것을 잊지 않은 아이작은 연신 투덜거리며 방해를 받아 하지 못했던 소일거리를 마무리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하아... 자, 우리 친구들의 깜짝 상자 안에는 뭐가 있을까..."


끼익.


나무 상자가 소리를 내며 열렸고, 그 안에 있던 것은 아이작에게 살짝 실망감을 안겨 주었다.


"뭐야, 돈이 아니잖아."


그렇다고 마리에게 만족감을 줄 만한 물건들도 아니었다.


"별 거 없잖아?"


"별 거는 맞지."


아이작은 상자 안에 들어 있던 옷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칠색조 깃털로 장식한 산양털 모자, 북부산 벨벳으로 만든 튜닉, 코카트리스 가죽을 무두질해서 만든 부츠... 지리상 남쪽인 제국에서는 구할 수 없는 것들이야. 밀수할 만한 물건들이네."


돈이 아니라는 사실이 아이작에게 실망감을 주긴 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쓸모 없는 물건은 아니었다.


"마침 잘 됐네. 여기 있는 것들로 갈아 입자."


"응? 나도?"


그녀에게 옷을 건네는 아이작에게 마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국경 검문소에서 그 꼬질꼬질한 옷 입고 검문을 받으려고? 그런 부랑자같은 꼴로는 경비병들이 바로 수배 전단서부터 살펴 볼걸."


"윽."


마리는 그제서야 땀과 피로 끈적해진 셔츠와, 흙바닥에 쓸리고 그을음이 번져 너덜너덜해진 바지를 재점검할 수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지금 당장?"


"검문소 코앞에서 갈아 입게?"


"아니, 그게 아니라..."


아이작은 우물대는 마리의 의도를 눈치챘다.


"저런, 걱정하지 말아요, 아가씨. 아가씨의 존귀하신 옥체를 제 두 눈에 담는 일은 없을 테니까요."


"으으..."


부끄러움을 참고 옷을 받아든 마리에게 아이작이 말했다.


"나한테 다 계획이 있으니 걱정 말라고."


아이작의 입에서 사악한 미소가 피어 올랐다.


그의 손에 끼워진 작은 반지가 반응하듯 빛났다.


•••


"아이작..."


마리아의 송곳니가 불꽃을 튀겨냈다.


그가 또 사람의 피를 마셨다.


스폰이 규율을 어기면, 그 행동은 정신과 영혼의 연결을 통해 군주에게 전달된다.


그리고 그 불경한 행동은 또 한 번 마리아를 미치게 만들었다.


"또 그 년의 피를...!!"


그녀는 머리카락을 쥐어뜯을 듯이 붙잡고 험악하게 몸을 부들거렸다.


"허억, 허억... 후우."


마리아는 폭발할 것 같은 진노를 겨우 진정시켰다.


물론 그녀의 스폰이 도망치며 외간 여자의 피를 빠는 것은 영혼이 깎여나가는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표면상의 직위인 백작 직무를 소홀히 할 수는 없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말을 달려 그들을 쫓는 데스 나이트의 소식을 기다리는 일뿐이었다.


"흐윽, 흑..."


비참한 처지에 그녀는 다시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성 어디에서도 그녀의 슬픔과 고독을 눈치챌 사람은 없었다.





다음화에 얀순이가 레이즈 데드 쓰면서 존나강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