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이너, 걔 병문안 같이 갈래?"



스프링S 우승 이후로 며칠 후, 홀연히 파머는 그렇게 말을 걸어 왔다.



"갑자기? 아니 그나저나 네가 먼저?"



"트레이너가 자꾸 걔를 신경 쓰는 거 같은데, 그거 나한테는 좀 불쾌해. 그렇다고 혼자 간다면 계약 위반이잖아? 나도 때마침 걔한테 용건이 있어서 말이야."



"정말 괜찮겠어? 파머 너만 괜찮다면 한번 가고 싶긴 해. 여전히 마음이 좀 불편하네. 트레이너 한 이후로 저렇게 쓰러지는 장면은 처음 봐서 좀 계속 신경이 쓰여."



"난 괜찮아. 오히려 이거 때문에 트레이너가 다른 여자에게 정신 팔려 있는 꼴이 더 보기 힘들다고."






"와 주셔서 우선 고맙긴 하지만, 굳이 저한테 오실 필요가 있나요?  메지로 파머 씨도 그날에 우연히 컨디션 난조가 있었던 거죠. 저희 둘 다 최선을 다해 달렸고, 그에 따른 결과가 나온 거에요."



"그렇게 말해 주니 고맙네. 내가 트레이너 하면서 그런 장면을 처음 봐서 도저히 머릿속을 벗어나지 않더라. 이렇게 면죄부라도 얻으러 온 거지."



"...좋은 분이시네요, 메지로 파머 씨가 푹 빠져 있는 것도 이해가 가요."



"슬슬 뭐라도 먹을 시간인데, 밖에서 먹을 거라도 좀 사올까? 근처에 패스트푸드점이 있는 모양이던데."



"입맛이 좀 없긴 합니다만, 사오신다면 조금 얻어는 먹겠습니다."



"트레이너, 난 콜라 밀크셰이크로 바꿔 줘."



"알았어, 파머 너도 뭔가 용건이 있다 했었지? 나 없는 사이에 둘이 뭔가 대화라도 나눠 봐. 난 다녀온다?"



".....메지로 파머 씨, 뭐 때문에 그렇게 흥분한 거에요? 물론 그거를 바보같이 따라가다 자멸한 제가 물어보는 건 좀 변명 같지만, 누가 봐도 흥분한 모습 같아 보였어요. 마치... 좀 화난 모습 같았다 해야 할까요."



"아마 너랑 비슷할걸?"



"네?"



"네가 여기 입원한 이유랑 비슷할껄? 내가 한번 맞춰 볼까?



"너, 나 따라온다고 미친 듯이 체력을 써서, 마지막에 언덕을 오를 때는 거의 탈진 상태였잖아."



"그래도 어찌 저찌 젖 먹던 힘까지 짜내서, 두 자릿수 착순은 피했다. 까지는 맞을까?"



"그렇죠."



"네 몸은 완전 극한의 소모전 때문에, 무척이나 지쳐 있었겠지. 입이 벌어진 채로 숨을 계속 몰아 쉬었을 거야. 하지만 우마무스메는 몸이 많이 튼튼하잖아? 조금만 다리를 멈추고, 제자리에서 심호흡하면 아마 금방 호흡은 고르게 됐을 꺼야. "



"근데, 네 트레이너가 아마 관중석에서 지켜 보고 있었던 모양이야?"



"메지로 파머 씨, 그거 맞으니까 제발 더 이야기하지 말아 주세요. 제발."



"아마 트레이너가 제법 마음에 드는 모양이야? 그니까 실망스러운 레이스 때문에 트레이너 시선을 신경을 쓰게 됐고."



".... 물론 난 못 봤으니 자세한 건 어림짐작이겠지만, 아마 네 트레이너는 관중석에서 혼자 보러 온 건 아니었나 봐? 그것도...."



"........."



"더 말 안 한다? 내 이유도 비슷해. 전날에 비 많이 와서 잔디에 아예 구멍이 났잖아? 본마장에 들어와서 몸 푸는 중인데, 그거 메꾸려고 직원이 잔디 블록을 들고 오더라."



"....근데 그 직원이 좀 악연이었어."



"적당히 잊고 뛰려고 했는데, 그날 따라 도저히 집중이 안 되더라. 2코너 때 그 메꾼 구간이 나오니까, 잊으려고 해도 머릿속에서 또 튀어나와 버리더라."



"그렇군요. 궁금증은 풀렸어요. 그나저나 저한테 이렇게 자세히 말해주실 필요는 없지 않았나요?



"맞아, 없지. 근데 말이야, 좀 동질감을 느꼈다고 해야 할까? 열심히 뛰고, 울고 웃으며,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고, 그 힘으로 뭔가 이뤄내고, 그걸로 뭔가 해볼려다.


이미 난 져버린 지 오래구나. 하고 모든 게 무너져 내리는 거 말이야."



마리넬레다는 아무렇지 않은 척 있으려고 했지만, 결국 뺨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저, 작년 여름에 엄청나게 일찍 데뷔했어요. 근데 의욕이 너무 앞서서, 왼쪽 발등에 조금 붓기가 있었는데, 무리하게 출주했다가 발등이 깨져서 뼛조각이 혈관을 찢어버렸어요."



"발목을 절단하네 마네 이야기까지 나왔어요.

다행히도 수술은 잘 풀렸지만, 아무리 적게 잡아도 9개월은 되는 부상.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원래 저를 맡아 주시던 트레이너도 정년퇴임 하셨단 말이죠? "



"나름의 평판도 괜찮은 조기 데뷔조에서, 이제는 미승리 탈출도 못한, 최소 전치 9개월짜리 목발 짚고 다니는 무소속 우마무스메가 된 거죠."



"근데 그런 분쇄기에 넣어 버린 지폐 같은 우마무스메를, 주워다가 9개월 동안 기워 붙인 사람이 제 트레이너에요."



"그렇게 소중하면,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이면 붙잡는 게 좋지 않을까?"



"트레이너 옆에 있는 여자가, 입 맞추는 거 봤어요. 근데, 트레이너도 싫지는 않았나 봐요. 빨리 떼지도 않았던 거 보면요. 서로 좋아하는 관계에, 제가 끼어들 자격 따위가 어디 있겠어요?"



"너는 트레이너 싫어해?"



"그럴 리 있나요."



"그러면 트레이너는 너를 싫어해?"



"........"



"조각난 지폐 같은 우마무스메를, 싫어하는데 9개월 동안 재활시켰겠어?"



"봐봐, 너랑 네 트레이너도 서로 좋아하잖아? 근데 네가 그 자리에 있으면 안 될 이유라도 있나?"



"그렇게 트레이너를 뺏어 오는 게 과연 트레이너를 위한 길일까요? 저는 트레이너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다른 사람에게 입맞춤을 받아도 트레이너가 행복하면... 트레이너. 행복... 아....."



마리넬레다는 점점 감정에 받쳐서 말하다, 결국은 눈물에 져버리고 말았다. 잠시 후 눈물을 좀 추스른 그녀는, 시뻘게져서 부은 눈가를 닦으며 다시 말했다.



"네, 솔직히 저도 트레이너를 붙잡고 싶어요. 제가 그 자리에 있고 싶어요. 하지만 제가 그래 버린다면, 트레이너의 행복을 깨 버리는 것 아닐까요?


저는 확실히 트레이너를 사랑하고 있어요. 


오히려 그러니까 트레이너가 불행해질 것 같은 행동을, 도저히 할 수가 없어요."



"괜찮아요. 이러면 불행해지는 건 저뿐인 거니까요. 아니에요. 불행하지도 않아요. 저는 트레이너한테 빛진 거니까요. 트레이너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계속 볼 수 있는 저라면, 아마 행복할 거에요.



그녀의 사랑은 확실히 깊었다. 트레이너를 차지하지 못하면 괴로울 것이라는 확신도 있다. 하지만 그것 이상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괴로워할 것 같은 행동을 볼 수 없다는 희생적인 사랑이었다. 

아마 정말 고귀한 사랑의 표본이라고도 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그러면 그때는 왜 고개를 저은 거야? '네' 트레이너라면서, 남이 채가는 건 안된다고, 그런 의미에서 고개를 저은 거 아니야?"



"같은 우마무스메가 채 가는 건 안 되고, 히토미미가 채 가는 건 된다는 뜻일까?"



"그, 그렇지만 그 사람이 아마 저보다는 더 트레이너를..."



"네가 그 히토미미보다, 트레이너를 행복하게 해 줄 자신이 없다는 거야?"



물론 이 말은 우마무스메에게 기본적으로 내제된 경쟁심을 부추기고, 그녀 안의 흑심을 자극하는 궤변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안에서 무언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네가 정말 그 여자보다 트레이너에게 덜 헌신적인 거야?"



"메지로 파머 씨, 그만하셔도 돼요. 저를 위로해 주시려고 하는 말인 건 알지만..."



"그렇다면 네 사랑이 그 여자보다 부족한 걸까?"



"......."



"좀 속물같이 들릴 수도 있지만, 네가 아마 그 여자보다 돈도 더 잘 벌걸? 부상이 충분히 아물고, 몸이 완성된다면 중상 트로피를 딸 수 있을지도 몰라. 그러면 평생 벌 돈은 생각보다 금방 번다고? 혹시 모르지? 운도 좋다면 g1 위너가 될지도?"



"아마 평범하게 생겼겠지? 그렇게 특출나게 못생기진 않겠지만, 아마 뭐, 대단하게 예쁘지도 않을 거야."



"네? 갑자기 왜..?"



"그렇지?"



파머는 마리넬레다의 눈을 주시하며 강하게 물었다.



"......."



마리넬레다는 시선을 피하며 대답하지 않았지만, 파머는 대답을 들은 것으로 생각하고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넌 어때? 제법 먹어주는 거 같은데, 흔하지는 않은 회색털에  다리도 길고, 가슴도 좀 있네!

아니, 애초에 볼품없는 그저 그런 생김새였으면, 내가 목을 붙잡을 필요도 못 느끼지 않았겠지?"



"아, 미안. 이런 걸로 농담하는 건 좀 부적절하네. 사과할게."




"너무 오래 기다렸지? 감자튀김이 다 떨어져서 새로 튀긴다고 영 오래 걸렸다나 봐. 둘은 걸즈 토크에라도 열중이었나?"



그때 때마침 트레이너가 구수한 기름 향기를 풍기며 돌아왔다. 



"아니 근데, 얘는 또 눈이 퉁퉁 부어 있냐? 파머야, 설마 또 건든 건 아니지?"



"파머 트레이너 씨, 그러지 마세요. 파머 씨는 저를 생각해서 조언해 주고 계셨어요. 제가 좀... 개인적으로 심란한 일이 생겨서요."



"설마 내가 얘를 해코지 해 보겠다고 같이 오자고 했겠어? 그렇게 보다니 슬프네 트레이너. 훌쩍!"



"연기가 너무 허접한 거 아니야? 상대를 몽땅 속이는 도주는 잘 하더니만, 이거는 왜 이래?"



"트레이너, 잘 받아친다? 자자, 식겠다. 먹자고! 열심히 울더만, 이제는 좀 배고프지?"



배고픈 말딸만큼 무서운 게 없다고 했던가. 마리넬레다는 가녀린 몸에 어울리지 않게 햄버거를 세입 만에 지워 버렸다.



"... 병원에서는 밥 안 주니?"



"죄송해요. 슬슬 저녁 나올 때긴 하는데, 음식들이 영 싱거워서 입맛에 좀 안 맞더라고요."



길쭉하고 축축한 봉투에 가득 차 있었던 감자튀김도 어느샌가 절반 넘게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잠시 후 감자튀김이 바닥이 드러나기 시작해 봉투 바닥이 들썩거릴 때 즈음, 파머는 트레이너에게 눈짓을 보냈다.



"네, 여보세요? 지금 당장요? 그렇다면... 일단 알겠습니다."



트레이너는 급하게 밖에서 전화를 받고 들어왔다. 물론 없는 번호에다 전화를 건 것이었지만 말이다.



"미안해 마리넬레다 양, URA 사람들이 우리 좀 보자고 하네. 좀 더 머무르다 갈 생각이었는데 미안해."



"보니까 다 먹어도 간에 기별도 안 가겠네. 자, 내 감자튀김이랑 햄버거도 먹어."



"나는 아직 손도 못 댔구만. 음료 빨대도 못 꼽았어. 자, 파머, 우리는 이만 나가자."



"굳이 주실 필요까지는 없는데 감사합니다."



"아, 나는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어. 트레이너는 먼저 가도 돼. 엘리베이터 버튼 좀 눌러 줘."



"아직도 할 말이 남았어? 일단 알았어."



여닫이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왜 아까 그런 소리 했는지는 알겠지? 잘 생각해 봐, 지금 정말로 행복한지, 앞으로도 쭉 행복할지."



파머의 눈의 초점이 없어지며 마리넬레다의 눈을 응시했다. 마리넬레다는 시선을 피하려고 했지만, 파머의 눈에서 느껴지는 묘한 감정이 마리넬레다가 피하질 못하게 만들었다.



"나는 지금 행복하다고, 손에 들고 있는 이 트로피가 말해 준다고, 트레이너는 내 좋은 '스승' 이었다고, 그렇게 생각할 건 아니지? 이 승리의 잔에 행복을 가득 채우자고, 나는 행복한 우마무스메니까."



"이제 아무리 행복을 부어도, 부어도 채워지질 않아. 점점 초조하고 공허한 갈증이 생기지. 머지않아 알게 돼. 내가 왜 그걸 포기했을까?


나는 패배자의 잔에 바닷물이나 채워서 퍼 마시고 있었던 거지. 그걸 안 순간, 머지않아 한 우마무스메의 이야기는 막을 내리는 거야."


"너는 잔에 바닷물을 담는 우마무스메가 되지 않길 바래."



그 말을 들은 순간, 그녀의 안에서 꿈틀거리고 있던, 겨우겨우 이성이라는 끈으로 묶어 둔 씨앗이 갈라지고 있었다. 어, 나 왜 이런 걸로 묶어 뒀었지? 이런 줄 끊어버리자. 



....그렇게 검은 씨앗에서 싹이 텄다.



마리넬레다, 궁금한 건 도저히 못 참을 수가 없는 회색 털의 우마무스메, 그리고 바닷물을 설탕물이라고 생각하면서 마시려고 했던 우마무스메는, 물을 남김없이 쏟아 버렸다.


그리고 다시 돌아왔다. 무모한 우마무스메로.



아, 왜 이제 알았을까요. 결국, 그를 그렇게 사랑하면서도, 제대로 표현조차 안 해서야 안 하느니만 못하죠. 트레이너, 제가 너무 받기만 했었죠? 이제 제가 드릴께요. 마음껏 받아 주세요. 마음껏 받으시고, 저는 트레이너가 받는 것만 봐도, 아니아니, 그래서는 안돼죠. 이제 서로 마음껏 주고받는 거에요! 서로 푹 빠지는 거에요! 그렇다면 분명 트레이너도... 행복하실 거니까요!



"...뭔가 굉장히 상쾌해진 기분이네요. 고마워요, 파머 씨. 오히려 맛없는 밥이나 주는 병원보다 저를 더 잘 고쳐 주신 것 같네요."



"그나저나, 저한테 이 정도로 신경 써 주신 이유를 물어봐도 괜찮을까요? 처음에는 좀 악연이었잖아요."



"별 이유 아니야. 그저.... 누가 생각나서 말이야."



"근데 너, 나카야마는 최악의 코스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뛰면서도 용케 9착이나 했었다?"



"사실 경기 전에도 저한테 잘 맞지 않았다고는 생각했어요. 사츠키상은 머릿속에서 지워야겠네요."



"다음 행선지는 조금 쉬고 아오바상일려나? 더비에서는 복병으로 만나지 않길 바라야겠네."



"그럼요, 복병이 아니라, 대본명으로 만나게 될 거니까요."



"하하. 내 트레이너한테 들이대던 때처럼 다시 무모해졌네, 마냥 보기 싫지만은 않은걸."



"그럼 앞으로 잘 해봐, 둘 다 말이야."








"트레이너어!!! 미안해! 말이 조금 길어졌지? 이제 우리도 뭐 먹으러 가자고, 냉우동 어때?"



"오 냉우동, 생각지도 못했는데 딱 이거다! 하고 오네. 좋다 좋아."



"근데 파머야. 궁금해서 하는 말인데, 걔가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렇게 기운이 없었던 거야?"



"개인사야 개인사, 말해줄 수 있는 데까지만 말해 주자면, 트레이너와의 관계에서 갈등을 좀 느꼈나 봐."



"아이고, 싸웠는데 화해를 아직 못 한 모양이구만."



"그래도 다행이야. 어느 정도 실마리를 찾은 것 같아. 다시 기운이 생긴 거 같아."



"그건 다행이네, 파머 너 역시 남의 말 들어 주는 거에는 재능이 있는 거 같다? 근데 걔 달리는 어떤 거 같아? 오늘은 좀 시원찮던데."


"사츠키상은 단념하고 아오바상으로 간다는 모양이야. 아마 더비에 집중하겠다는 거겠지."



"그래? 어때, 더비에서도 이길 수 있겠어? 우리 '메지로의 최고 걸작' 파머 양?"



저번에는 메지로의 내놓은 자식이었는데, 어쩌다 걸작이 된 걸까? 그래도, 트레이너도 계속 바라봐 주는 건, 싫지는 않은걸.



"진다고 생각하고 뛰는 우마무스메가 어디 있겠어? 근데 걔 스피드는 생각보다 훨씬 좋아 보여, 아마 파워가 필요한 나카야마는 썩 맞지 않았던 거겠지. 아마 도쿄라면, 힘을 모으고 있다가 튀어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오, 그러면 아오바상은 이길지도 모른다?"



"웬지 그런 느낌이네, 예전에 크게 다친 적이 있어서 아직 몸이 다 올라오지는 않은 느낌이야. 아오바상까지는 넉넉하니까, 몸을 완전 빡빡하게 깎아 온다면?"



"아, 그러고 보니 걔랑 걔 트레이너랑 금방 풀릴 거 같다고 했지? 의외로 그렇게 화해하고 더 좋게 가는 때도 있으니까, 정신적으로도 많이 좋아질지도 모르겠네."



"자자, 이제 우동 시켜야지 트레이너? 사이드 새우튀김은 내가 사 줄게."









트레이너


저 최근에 마음이 좀 심란했는데 이제 좀 정리가 된 거 같아요


차후 레이스에 대해서 의논할 것이 있어요


지금 병실로 와 주실 수 있나요



그 이후로 며칠 동안 기운이 없어서 걱정됐는데, 기운을 차렸다는 모양이라 참 다행이다.



솔직히 내 탓이라고 많이 자책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아마 말 못할 고충에 그녀도 심적으로도 힘든 것이 많았겠지. 



그래도 비가 온 땅이 더 다져진다고 하지 않던가. 이번 기회에 좀 깊게 이야기해 보고, 레이스 계획도 재정비할 수 있다면 좋겠어.



"트레이너, 오셨나요!"



"기운이 넘쳐 보여서 다행이네, 마리넬레다."



활력이 넘쳐 보이는 건 정말 다행이다! 근데... 얘가 이렇게 활발했었나?



굳이 따지면 좀 내향적이라고 느낀 내 담당이었지만, 지금 그녀의 꼬리는 소리가 붕붕 하고 날 정도로 빙빙 돌고 있다.



"혹시 가족에게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거니? 그동안 너무 우울해 보이는 모습이 차마 못 보겠더라고."



"아... 네! 가족 관련이었는데, 이제는 괜찮아요! 해결 방법을 찾아서!"



"그렇다면 정말 다행이네."



"트레이너, 우선 덜 중요한 이야기 먼저 할까요? 물론 이것도 중요하지만요."



"나카야마는 제 적성에 맞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트레이너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역시 그런가? 나도 좀 긴가민가했는데, 아마 너마저도 그렇게 생각한다면 사츠키상은 깔끔하게 넘기는 편이 좋겠네."



"역시 트레이너와 저는 마음이 잘 맞네요! 그럼 다음 레이스는 푹 쉬고, 있는 힘껏 준비해서 아오바상 어때요? 거기에서 꼭 이겨서, 더비로 가는 거에요!"



"오, 아오바상->더비 루트인가? 근데 g2라 수준이 좀 높지 않나? 아오바상 징크스도 있는데, 다른 트라이얼들을 고르지 않아도 괜찮겠어?"



"괜찮아요! 아마 직선이 길고 속도가 잘 나오는 도쿄는 저랑 잘 맞지 않을까 싶네요! 이번에는 물론 페이스 문제도 있지만, 역시 가장 큰 문제는 제가 파워가 부족했던 것! 스피드만으로 승부할 수 있는 도쿄라면, 분명 괜찮지 않을까요?"



"오, 나름의 생각 많이 했네? 좋아, 그러면 한동안은 몸을 푹 쉬고, 아오바상을 향해서 전력으로 달리자고!"



"좋아요! 트레이너! 그리고 이제 더 중요한 이야기를 한번 해 볼까요?"



레이스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나? 해야 할 중요한 이야기라도 있는 걸까?



"트레이너, 잠시 귀 좀 빌려 주시겠어요? 혹시 남이 듣기라도 한다면, 같은 이야기라서요."



"앵? 그렇게 중요한 이야기라고? 자, 귀에다 대고 말할 정도라니..."



"트레이너는, 저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내 자랑스러운 담당이지, 바로 은퇴하고도 이상하지 않은 부상을 당하고도, 당당하게 달리는 정신력 강한 우마무스메. 그게 너인 것 같아."



"좋네요! 그렇게 생각해 주신다니 정말 고마워요 트레이너! 그렇다면... 






한 사람의 여자로써,

 

우마무스메 마리넬레다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등골이 오싹해지는 느낌이 몰려왔다.



"갑자기 왜 그래 마리넬레다? 넌 내 소중한 담당이야, 하지만 아직 어린 것도 맞아. 지금 당장은 날 좋아하는 것처럼 느껴질지는 몰라도..."



"역시, 트레이너는 교제하는 분이 계신 모양이네요. 그때, 저 봤어요. 어떤 분과 진하게 입 맞추는 거. 좋으셨나봐요?"



갑자기 마리넬레다가 몸을 세워서 내 어깨를 팔로 감싸기 시작했다.



"트레이너, 산산조각이 난 저를, 기워 붙여 주신 분. 그때 이후로 알았어요. 나, 이 사람 아니면 안 되겠다. 하고요.

저는 기회조차 없는 걸까요? 아니, 저라면 안되는 걸까요?"



"제가 그 여자보다 더 행복하게 해 드릴 수도 있어요. 아시잖아요? 제가 돈도, 명예도 다 드릴 수 있어요. 

아마 제가 더 예쁘기도 할 걸요? 트레이너도 이왕이면 미인이 좋잖아요? 저, 흔하지도 않은 아시게 우마무스메라고요?"



"....미안해, 마리넬레다, 네 마음을 받아 주긴 어려울 거 같아."



그러자 마리넬레다는 목을 축 내리고,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알았어요, 트레이너. 저도 제 마음을 한번 말해 보고 싶었어요. 평생 입 밖으로 꺼내 보지도 못하고, 미련을 버리지도 못하고 사는 건 정말... 그러면 안 될 거라고, 말이라도 한번 해 보자고. 그렇게 생각했어요."



"트레이너, 이제 가셔도 좋아요. 레이스 이야기도 끝났고, 제 이야기도 끝났잖아요?"



"교제하는 여성 분도 있잖아요? 그분한테 가 보세요."



"미안해, 마리넬레다. 널 기쁘게 해줄 답변은 못한 모양이야."



"아니에요. 어? 넥타이가 축 내려갔어요, 트레이너. 잠깐만 가까이 와보시겠어요? 제가 바로 해 드릴게요."



그녀는 침울한 얼굴로, 그렇게 넥타이를 올려 주려고 했었다. 정말 마음씨는 좋단 말이야.

















분명 그랬을 텐데.









순식간에, 내 넥타이를 잡고 있던 마리넬레다는 내 오금을 걸어 날 자신 쪽으로 내동댕이쳤다. 



"잠만.... 뭔!"



우마무스메의 완력으로 던져졌으니 평범한 인간이 제대로 반응할 리 없지. 난 순식간에 베개에 얼굴이 쳐박혀 버렸다. 



그리고 한 인영이 내 몸 위로 올라왔다.



"트레이너, 그동안 제가 너무 받기만 하고, 트레이너는 당연한 일이라면서 만류하기만 하시고. 제가 돌려 드리려니까 피하기만 하시네요."



"물론 자꾸 그러시니까 제가 좋아하게 되는 것도... 당연하잖아요?"



"트레이너, 아직 스승의 날은 좀 이르지만, 오늘 밤은 마음껏, 트레이너에게 받은 은혜를 갚아 드릴게요."



"아, 오늘 밤이라... 아니에요. 앞으로도 쭉! 펴엉생..! 트레이너가 주신 것을 저도 돌려 드릴게요! 그러면, 분명 트레이너도! 정말 기쁘실 거에요!"



"그러니까.... 트레이너도 제가 드리는 만큼, 기쁘다. 행복하다 하고 많이 말씀해 주세요? 그게 저한테 있어서 최고의 답례니까요!"



"마리넬레다...! 야!"



트레이너는 힘껏 몸부림쳤지만, 초점이 사라진 자신의 담당의 눈을 보고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트레이너, 이런 곳까지 굳이 양복 입고 오실 필요는 없는데... 결혼식 예행연습인가요? 그러기에는 제가 드레스가 없네요! 아쉽긴 하지만, 불편한데 벗어버리죠! 제가 도와드릴게요!"



그런 말을 하면서, 무모한 우마무스메는 외투와 셔츠를, 순식간에 트레이너의 살갗이 적나라하게 보이게끔 찢어 버렸다.



"여기요! 간호사! 여기 좀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트레이너, 트레이너가 원하신다면 꼭 싫다는 건 아니지만, 처음인데 그런 플레이는 좀 부끄럽네요!"



트레이너는 인생에 이렇게 큰 목소리를 낸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크게 소리쳤다. 

분명 상식적인 대처였다. 그렇게 큰 목소리가, 보통 들리지 않을 리 없으니까.



하지만 무모한 우마무스메는 참 운이 좋았다.



하필 터프 위에서 쓰러져서, URA 지정 병원으로 실려간 것도. 



하필 그날의 메인 중상 레이스에서 쓰러져서, 기자들이 꼬이는 게 귀찮은 URA가 최고층의 개인 병실에 입원시킨 것도.



특종에 미친 기자들이 병원에 도청기를 설치했던 파문 때문에, 제일 입원료가 비싼 개인 병실부터 강력한 보안, 방음 공사를 했던 것도. 



하필 기운을 차린 것 보고, 이제 퇴원까지 들여다 볼 필요는 없겠지. 하고 안심한 간호사도.



아랫층에서는 백색소음과 구분되지 않을, 밖에서 취객이 소리 지르는 것처럼 들리는 소리는 한 시간쯤 이어져서야 사그라졌다.








다음 날, 마리넬레다 진영은 사츠키상 출주는 포기하고, 아오바상을 목표로 재조정을 노린다고 발표했다. 


사츠키상에 등록은 가능하나, 추첨을 거쳐야 함으로 불확실함에 걸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여전히 마리넬레다 진영은 예전과 다를 바 없다고 여겼다. 실제로도 체질이 강한 편은 아니니, 조심하는 것도 이해는 간다-라는 식으로 말이다.



적어도 그때까지는 그렇게 보였다.








원래는 라이벌 느낌의 오리지널 말딸을 넣을 마음은 없었는데, 예상한 것보다 편수가 훨씬 길어질 느낌이라 넣었음.

대충 회색머리 아가씨 느낌의 외모로 생각해 주시면 될 듯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