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나 쎈 뱀파이어 얀순이한테서 도망치는 스폰 얀붕이 2 - 얀데레 채널 (arca.live)

ㄴ여기서 이어짐


•••


아이작은 조심스럽게 '생각하는 방' 을 빠져나왔다.


월터의 불쾌하기 짝이 없는 갑옷 소리는 이제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약간 안도감이 들어 작게 한숨을 쉰 아이작은 발걸음을 재촉했다.


성의 '식량 창고'는 아이작이 매일 고문을 받는 곳과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스폰에게 사람의 피를 먹지 못하게 하는 제약을 걸고서는, 어째서 사람이나 사람 피가 가득한 식량 창고 앞에 스폰의 고문실을 차려 놓은 것인가.


아이작은 그에 대해 의구심을 품은 적이 있었지만, 그런 의문이 들 때마다 비참한 그의 처지를 조롱하기 위한 주인의 악취미라 결론내렸다.


30m도 떨어지지 않은 낡은 방.


바닥에는 검게 말라붙은 피가 몇 번을 걸레질을 해도 벗겨지지 않을 정도로 진득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풍겨오는, 싱그러운 살점의 냄새.


아이작의 입 안에 침이 고이는 게 느껴졌다.


이대로 당장 창고의 문을 열어, 저 팔팔한 먹잇감의 싱싱한 목덜미에 송곳니를 박아넣고 싶었다.


하지만 아이작은 그럴 수 없었다.


스폰에 대한 뱀파이어 로드의 명령은 절대적이다.


생각하는 동물의 피를 빨지 말 것.


마리아 폰 발데마르가 아이작에게 내린 규율 중 하나였다.


머릿속으로 아무리 피를 빨고 싶다고 외쳐 보아도, 본능적으로 사람의 피를 거부하게 되는 것이었다.


피를 빨고 싶어도 빨지 못하는 상황과 머릿속에 덧씌워진 뒤틀린 윤리관 탓에 아이작은 쌉쌀한 불쾌함을 느꼈다.


그 불쾌함을 떠안고 그는 무겁기 짝이 없는 철문을 열어 젖혔다.


끄그그그극.


무게감 있는 소리를 내며 철문이 열렸고, 그 안에서 손님을 노려보는 사나운 눈빛이 느껴졌다.


그가 궁정 마법사 자리를 빌미로 납치해 온 불쌍한 희생자였다.


피처럼 붉은 머리칼에 초원처럼 푸른 눈.


아이작보다는 작은 체격에, 작은 체격에 걸맞지 않는 두툼한 흉부가 인상적인 여자였다.


잔뜩 헝클어진 머릿속에 번뜩이는 눈은 마치 가문의 원수를 만난 듯이 빛났다.


"너...!"


"쉬쉬쉬잇..."


아이작은 먹잇감이 고함을 지르기 전에 빠르게 입을 틀어막았다.


"쉬잇, 문 닫기 전엔 조용히 하는 게 좋을 거야. 일찍 죽고 싶진 않잖아?"


그러나 먹잇감에게 그녀를 납치한 장본인을 믿기란 힘든 일이었다.


오히려 그녀는 입을 틀어막은 아이작의 손을 힘껏 깨물었다.


"끄읍...!!"


터져나오는 비명을 혀를 씹을 듯한 기세로 애써 틀어막은 아이작은 잔뜩 얼굴을 찌푸렸다.


그의 차가운 손가락에서 검은 피가 뚝뚝 떨어졌다.


물론, 먹잇감이 적대적으로 나올 것이라 예상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돌발스러운 행동으로 상황을 그르치는 것까지는, 아이작은 원치 않았다.


적어도 지금은.


'좋은 말로 넘어가긴 글렀군.'


아이작은 허리춤에서 재빠르게 단검을 꺼냈다.


눈 깜짝할 새에 목에 단검이 들이대진 여자는 크게 뜨인 눈으로 아이작을 바라보았다.


"하아, 경고하는데, 한 번만 더 그딴 짓거리 하면 멱을 따 버리겠어."


거친 숨과 함께 협박을 토해내며 아이작은 고통을 참았다.


"내 말 똑똑히 들어. 우선, 믿기 힘들겠지만 난 널 구하러 여기 온 거야."


"읍읍!!"


여자는 무슨 헛소리냐고 말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문부터 닫고 하자고. 보초가 들이닥칠지 모를 일이잖아, 안 그래?"


여자는 불안한 시선으로 문을 바라보았다.


"내 말 믿는 게 좋을걸. 적어도 이 곳에 대해선 내가 너보다는 백 배는 더 잘 알 테니까."


둘은 말 없이 서로의 눈을 응시했다.


"알겠으면 고개 끄덕여."


먹잇감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아이작은 조심스럽게 손과 단검을 거두었다.


여자는 여전히 적대감 가득한 눈으로 아이작을 바라보고 있긴 했지만, 비명을 지르거나 고함을 칠 기색은 없어 보였다.


천천히 여자를 바라보며 뒷걸음질로 문에 다가간 아이작은 등을 기대어 천천히 문을 닫았다.


"후우."


"이게 무슨 짓이...!"


"쉬쉬잇."


문을 닫기 무섭게 여자의 입이 크게 벌어졌고, 그 움직임을 포착한 아이작은 날아가듯이 뛰쳐나가 그녀의 입을 막았다.


"말을 해도 된다고 했지 소리를 질러도 된다고 한 적은 없는데."


"음무무웃!"


"이렇게 융통성이 없어서야 원."


아이작은 너스레 떨듯 어깨를 으쓱이며 여자의 얼굴에서 손을 뗐다.


"그러니 남정네에 홀려서 뱀파이어 성에 잡혀 오지."


"뱀파이어...!?"


여자의 눈이 커다래졌다.


"너, 너 분명 발데마르 성에 데려가준다고..."


"그래. 약속은 지켰잖아, 안 그래?"


"후원자로 발데마르 백작을 소개시켜 준다고 했잖아...!"


"음흠."


경악에 찬 얼굴의 여자를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아이작은 과장 섞인 인사를 올렸다.


"위대한 뱀파이어 백작, 마리아 폰 발데마르의 고성에 오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눈물이 그렁그렁 찬 여자를 향해 아이작은 입을 삐죽 올리며 비꼬았다.


"맙소사, 진짜 몰랐던 거야? 여기 이렇게 피가 낭자하고, 이 해골 좀 봐. 일 주일 전에 뚫린 이빨 자국이 생생히 나 있는데 아직도 몰..."


짜악!


"하아, 하아..."


아이작은 얼얼한 뺨을 감쌌다.


숨을 거칠게 몰아쉬는 여자는 매섭게 쏘아붙였다.


"입 닥쳐, 더러운 피빨이 새끼야!"


"입을 다물면 어떻게 나갈지 이야기를 못 해주는데."


"적당히 하라고, 이 씨발 창년아!!"


여자의 다리가 위로 쑥 솟구치더니,


이내 엄청난 속도로 아이작을 향해 돌진했다.


차마 피할 겨를도 없이,


"꺼흑...!!"


아이작은 사타구니를 잡고 고꾸라졌다.


"일단... 꺼헉, 다리에 힘 풀려서 도망 못 칠 걱정은... 안 해도 되겠네."


들숨을 불규칙하게 마시며 아이작은 허리를 구부렸다.


"아무래도 우리 마법사 아가씨께선 직업을 잘못 골랐을지도 몰라."


"이 새끼...!"


"방금 죽을 뻔한 고통을 두 번 정도 맛봤으니까 서로 주고 받은 셈 치자고."


아직 고통이 가시지 않았지만 애써 태연한 얼굴로 아이작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여자는 그 얼굴을 보고 당장에라도 침을 뱉을 표정이었다.


"그렇게 인상 찌푸리지 말자고. 말했잖아? 살아서 나가려면 서로 손 잡아야 한다니까? 나 없이 여기서 나갈 수 있겠어?"


여전히 험상궂은 얼굴이지만, 적어도 방금보다는 누그러진 것이 보였다.


"그래서 어떡할래? 뒈지더라도 일단 여기서 나가려고 발버둥쳐 볼 거야, 아니면 여기서 도축될 때까지 손가락이나 쪽쪽 빨고 있을 거야?"


하지만 그녀도 결국 어쩔 수 없이 협력해야 한다는 처지를 깨달은 것인지, 어느 정도 적대감을 거두고 그에게 물었다.


"어떻게 할 생각인데?"


"그 전에... 미안, 이름이 뭐였지?"


"...마리."


여자는 씹어 뱉듯이 통성명을 했다.


"아, 맞아. 이상하게 이름이 영 안 외워진다니까."


아이작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네 소지품 중에, 텔레포트 스크롤이 있었지?"


"그걸 어떻게 알아?"


마리는 의심에 찬 얼굴로 물었다.


"당연히 네 가방을 뒤져 봤으니까."


아이작의 말에 마리는 입을 살짝 벌렸다.


"너무 당당해서 뭐라 할 말이 없다."


잠시 그렇게 입을 벌리고 있던 마리는 그 말과 함께 입을 다물었다.


아이작은 단검으로 그림을 그리듯 바닥에 선을 그으며 설명했다.


"아마 스크롤은 한 층 위의 서재에 있을 거야. 책이나 스크롤 같은 건 전부 거기서 보관하니까."


"이만한 규모의 성에 있는 서재면, 안에 경비가 있을 거 아냐?"


"서재에 있는 멍청한 놈은 걱정 안 해도 돼. 문제는 이 감방 통로를 돌아다니는 해골들이지."


아이작은 단검을 톡톡 두드렸다.


"이 놈들은 마리아의 명령대로만 움직이는 놈들이야. 이성이 없지. 설득도 못해. 걸리는 즉시 목이 날아갈 거야."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데?"


"마법사라면 생각을 해 봐."


아이작은 천천히, 그리고 비꼬는 의도가 명백하게 검지로 머리를 두들겼다.


"은신 마법 정도는 쓸 수 있을 거 아냐. 아니면 위장 마법이라던가."


"마... 마법?"


"그래."


아이작은 머뭇거리는 마리의 얼굴을 보았다.


그리고 불현듯 불안감이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설마..."


빠르게 눈을 깜빡이는 마리의 입이 열렸다.


"나, 나는 원소 마법사라서..."


그녀는 어두운 얼굴로 답했다.


"은신 마법이나 위장 마법은 쓸 줄 몰라."


아이작은 머리가 하얘지는 것을 느꼈다.


"돌아가시겠네 진짜."


하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물론 일직선 도로에서 구불구불한 외탈길로 돌아가는 방법이지만.


"일단 나가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아이작을 마리는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뭐? 밖엔 보초가 있다며?"


"저런! 기초적인 투명 마법도 못 쓰는 마법사께서는 걸어다니는 해골이 너무너무 무서운가 봐요, 어떻게 하죠?"


마법사는 이를 빠드득 갈며 벌떡 일어났다.


"앞장서."


하얗게 질릴 정도로 꽉 쥔 작은 주먹에 파란 핏줄이 봉긋 솟아오른 것을 보고 아이작은 입맛을 다셨다.


"좋아."


•••


마리아는 서랍 안에서 신중하게 물건을 골랐다.


그녀의 스폰이 만족할 정도로, 하지만 너무 과하지는 않게.


마치 사막에서 한참 갈증에 시달리다 물 한 방울로 혀를 적시게 된 사람처럼,


간절하게, 애타게, 이걸 줄 수 있는 건 오직 너의 주인 뿐이라는 사실이 뼛속 깊이 각인되도록.


마리아는 작은 바늘이 달린 스포이드 하나를 꺼냈다.


엄지보다도 작은 사이즈의 유리병은 주사기도 겸하는 것으로 보였다.


"후후, 오랜만에 인간 피를 맛보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비에 젖은 강아지처럼 그녀를 바라보는 아이작의 모습.


그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그녀의 차가운 피가 달궈지는 것이 느껴졌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마리아는 그녀의 방을 나서 천천히 넓고 음침한 복도를 걸었다.






다음화에서 얀순이가 기화냉동법 쓰면서 존나강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