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1,2편 내용 좆도없는 거 모아서 올림










각설하고 말하겠다. 내 여자친구는 얀데레다.


처음에는 으윽 뭐야 그 네다씹용어라며 뜻도 모르던 나였지만 지금은 그 단어야말로 정확한 표현이라 생각한다.


집착이 심하다. 내가 곁에 없으면 불안해한다. 손톱을 자주 깨문다. 등등.

진지하게 정신병원을 가봐야 하나 생각하던 나였지만 그녀만의 독특한 개성이라 생각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내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데다 내가 곁에 있으면 호전되는 증상이었기에 별 문제가 없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실 중요한 문제는 그런 사소한 것이 아니지만.

내 여자친구는 불치병 환자다.











내가 현 여자친구인 진아와 만난 건 2년 전 여름,한 종합병원에서였다.

그때의 나는 평범한 고등학생,그 자체였다.

반에 한 명씩은 꼭 있는 전형적인
'운동은 좋아하는데 수업 때마다 자는 애'.

그게 바로 나다.


하지만 이런 나에게 스스로는 만족하고 있었고 불안정한 미래에 대한 건 먼 훗날의 이야기라 스스로 치부해버리고 있었다.


여느때와 같이 책상에 늘어져 있던 그 때,선생님이 쩌렁쩌렁 말씀하셨다.


"자자,조용! 오늘은 말했던 대로 학교차원에서 봉사활동을 간다.
환자분들이 안정을 취하고 있으니까 조용히 하고!"


"쌤. 근데 저희 가서 뭐해요?"


"가서 보면 알아."






그 말대로였다. 30명이나 되는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가서 정말 뭔가를 할 수 있나? 라는 걱정이 무색하게 병원에는 할 일이 넘쳐났다.



"나는 애들 잘 본다. 하시는 학생들은 2층으로 김 간호사님 따라가 주시고요. 어르신들 말벗 해주실 분들은 저 따라오시면 됩니다! 그리고.."



마치 병사들을 배치하는 지휘관처럼 간호사분들은 우리를 이리저리 데려갔고 그 와중에 앞서 말한 조건들중 어디에도 포함되지 않는 내가 덩그러니 남았다.



"그리고 학생은....아,이름이 뭐에요?"


"김재현입니다."


"그래,그럼 재현 학생. 잠시만 기다려봐요."


"네."


간호사 한 분이 병실로 가시더니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는 듯한 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그러는 동안 나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잘하면 이대로 가만히 있다 갈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던 즈음 간호사가 다시 나와 나를 불렀다.


"재현 학생. 잠시만 와 볼래요?"


"아,네!"


나는 방금 전에 간호사가 들어간 그 병실문 앞에 섰다.




"안에 학생 또래 한 명이 있거든요? 그 애랑 말상대를 좀 해줬으면 좋겠어요."


"말상대요? 그냥 애기해주고 이러면 되는 거죠? 뭐 상담해주거나 위로하거나 이런 게 아니라?"


"맞다ㅡ절대 앞에서 나아질 거라느니,힘들겠다느니 이런 말 하면 안돼요."


"네?"


"하....이야기해보면 알 거에요. 일단 절대로 그런 이야기 하지 마세요! 아시겠죠?"



"네...네."



내 언질을 듣고 나서야 간호사는 안심했다는 듯 병실문을 열었다.



"진아야,들어가도 되겠니?"



"들어오세요."




부드러운 목소리가 병실에서 들려왔다. 나는 엉거주춤하게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병실에는 침대 하나만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그리고 그 침대에는 한 명의 소녀가 앉아있었다. 긴 흑발이 햇빛을 받아 찰랑거렸다.

청순한 미인,이라는 평가가 딱 어울림과 동시에 너무나도 가련한 느낌이 들었다.




"소개할게. 이 학생은 오늘 하루동안 말상대가 되어줄 김재현 학생, 그리고 이 쪽이 학생이 이야기해주면 되는 이진아양이야."



"안녕."



"어...어.....안녕."



"그럼 아줌마는 이만 나가볼게. 혹시라도 뭔 일 있으면 바로 벨 눌러야 한다! 진아든 재현 학생이든,꼭!"




쾅-



병실의 문이 닫힌 이후 불편한 침묵이 흘렀다.




"난 불치병 환자야."




먼저 말문을 연 것은 진아였다.



"어?"



"병 이름도 제대로 알려진 게 없어. 그냥 천천히 쇠약해지다 그대로 땡. 치료법도 전혀 없고. 그냥 병실에서 계속해서 수액을 맞으며 보내는 거야."



"그러면...."



너무 불쌍하지 않느냐,란 말은 앞서 들었던 충고에 의해 그대로 말려들어갔다.


"그래도 나는 이 병실에서 불행하다 생각한 적은 없어. 가끔씩 외출도 해봤고.
그러니까 괜히 동정한다느니 아니면 낫기를 빈다느니 하는 속 빈 말은 하지 말아줘."




의외였다. 간호사나 말할 법한 희망없는말을 스스로 하다니.




"알겠어. 그런데 대화 상대가 나여도 괜찮아? 대화하는 건 진짜 자신없는데."



"상관없어. 아무 말도 못하고 우물쭈뮬하다 간 사람도 많은데 뭐. 게다가 내 또래 남자애랑 이야기하는 건 이게 처음이거든."


"왜?"


"강간당할까봐."



엄청난 이야기를 또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진아였다.



"전에 한 번 한 친척이 면회라고 와가지고는 성희롱 한 적이 있거든. 금방 끌려나가긴 했지만 그 이후로 남성 면회는 금지."



"그런데 나는 왜...."



"그 때는 이런 게 없었으니까."



진아는 손에서 자그마한 호출 벨을 꺼냈다.


"울리는 순간 병원 호출 및 경찰 출동. 효과는 확실해. 게다가..."



진아가 가리키는 곳에는 번뜩이며 존재감을 과시하는 cctv가 여러 대 있었다.



"만약 내게 대화말고 뭔 짓을 한다면 오늘 저녁은 유치장에서 먹게 해 줄 수 있어. 기사도 물론 잔뜩 낼 거고."



"....."




할 말을 순간 잃었다. 나보다 더 철저하게 사는 것 같은데.



"좋아하는 운동은 있어? 보통 남자애라면 이런 주제 좋아한다 그러던데."



"어어...축구랑 야구."



"하면 어떤 느낌이야?"



"어떤 느낌이냐니,그야 당연히 신나고 어....즐겁고...."



내 빈약한 어휘는 내가 생각하는 것을 담아내기에 부족했고 나는 바보처럼 어어 거리면서 적당한 표현을 생각중이었다.



"됐어됐어. 대충 어떤 느낌인지는 알겠으니까. 학교 생활은 어떤 느낌? 역시 막 선생님과 함께 공부하면 즐겁고 그래?"



"공부가 재미있다는 놈들은 내가 보기엔 나라에서 보낸 스파이야."



"응?"


"공부는 재미있다고 은근슬쩍 우리사이에 숨어들어서 나라의 충성스런 일꾼으로 세뇌시키는 거지.
확실하게 말할게.
선생님과 학교에서의 공부가 재미있다고 하는 놈들은 그런 경험이 없어."




"진짜? 그렇지만 다큐멘터리나 드라마에서는...."



"그것도 음모인 거지. 전부 기만책이니까 속아넘어가면 안 돼."




"응. 알겠어. 몰랐어...설마 콘탠츠에까지 그런 이념이 숨어있을 줄이야...조심해야겠어. 역시 실제 경험자랑 이야기하는게 최고네."



어? 이걸 진짜 받아들인다고?



"아니,농담이니까 그렇게 깊게 생각 안해도 돼."



"농담이라고? 그러면 학교 다큐멘터리같은 것도..."


"일부 과장된 면이 있기는 해도 대부분은 진짜야."




"어어.....그러니까 학교 생활은 즐겁다고?"



"그렇지."



"그러니까 학교 생활은 즐거운데 학교생활이 즐겁다는 건 국가의 프로파간다....으음...."



진아는 고갤 기울이며 내 발언을 정리하고 있었다.

얘,어쩌면 어리버리한 거 아니야? 



약간 핀트가 어긋난 듯한 듯 하면서도 진아와 나는 계속해서 대화를 이어나갔다. 노는 것을 좋아하고 가만히 있는 것을 제일 싫어했기에 금방 이야기할 거리가 떨어질 것이라 생각했으나 예상외로 진아는 내 이야기를 전부 재미있다는 듯이 받아주었다.



"그래서 내가 거기서 슛을 차기만 하면 됐는데 헛디뎌서....."



"꼴사납게 엎어진데다 팀은 그대로 역전패 당했다는 거잖아."



"말을 해도 꼭 그렇게......



"후후훗."




진아가 작게 웃었다. 별 의미없이 지은 미소라고는 해도 미인이 짓기만 하면 꽤나 다른 의미로 다가와서 나는 멍하니 그 얼굴을 바라봤다. 처음 봤을 때는 어수룩하기만 했지만 어떨 때 보면 이야기 중간중간에 이렇게 고혹적이기도 해서-


그리고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기를 몇 분 후 나를 안내해주었던 간호사가 다시 다가와 오늘 수고 많았다 말하며 나를 일으켜세워주었다.



"별 일은 없었죠?"



"네.제 이야기를 이렇게까지 잘 들어줄줄은 몰랐는데...."



내가 간호사에게 이야기한 것을 들었는지 진아가 대신 대답했다.



"나는 밖에 거의 못 나가니까. 나랑 정반대인 사람의 이야기는 즐겁거든. 오늘 만나서 반가웠어 재현아. 다시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겠네."



진아는 손을 살짝 흔들어주었다. 다시? 그 말에 내 사고회로는 미친듯이 폭주했다. 처음 본 여자애한테 무슨 미친 짓이냐고 할 수 있껬지만 내 마음 속에서는 오늘로 이 아이를 만나는 것은 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이 아니면 안돼!


내 머릿속 어딘가에서는 이건 미친 짓이라고 아우성을 치고 있었지만 그것을 미처 깨닫기도 전에 내 입에서 말이 튀어나왔다.




"그,그럼............혹시 괜찮으면 번호 알려줄 수 있어? 딱히 뭔가 이상한 생각하는 건 아니고 절대! 그냥 이야기하는 게 즐거워서 나도 이야기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그런...절대 이상한 거 아니야! 지,진짜야"



"........"



"아,아니. 그게 아니라. 하하하! 미안미안. 농담이었어. 미안해. 그럼 난 일단 가볼게. 진짜 미안-"



밀물같이 밀려오는 부끄러움에 나는 그만 횡설수설하며 어떻게든 내가 한 말을 수습하려 하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진아는 다시 한 번 피식 웃더니 손짓으로 나를 불렀다.


내가 쭈뼛거리며 진아 곁으로 다가가자 진아는 빠르게 자신의 휴대전화를 조작하더니 번호가 적힌 액정을 내게 보여주었다.



"이야기한 걸로 봐서 재현이 너는 꽤나 머리가 잘 굴러가는 것 같으니까. 이런 번호 하나 가지고 엄한 생각을 할 정도로 바보는 아닌 것 같아서서 주는 거야. 가끔씩 연락정도는 괜찮아. 만나러 와도 상관은 없고. 면회 허락은 받아야겠지만."


"어,응....."



나는 멍하니 그 번호를 휴대전화에 저장하고 쫓겨나듯 우리 반과 합류하고 멍하니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와서 휴대폰을 쳐다보다 진아가 알려준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뚜루루루-

뚜루루루-



통화 대기음만이 무정하게 울렸다. 그럼 그렇지.

그렇게 생각한 내가 전화를 끊으려는 순간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어,어어어?"


"여보세요?"


"나나나! 김재현!"


"아아. 한 번 진짜인가 해서 걸어본 거구나? 난 거짓말 안해. 그래서,혹시 따로 할 이야기 있어?"


"......아냐. 늦은 밤에 전화해서 미안해."


"그래. 그럼 다시."



진아는 그렇게만 말하고 쿨하게 전화를 바로 끊어버렸다.


뚜-

뚜-

뚜-



이거,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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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왠일이래. 진아야,네가 번호 주는 거 처음 아니니?"



재현이 나가고 간호사가 진아 옆에서 흐뭇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딱히 그런 건 아니에요. 그냥 지금까지 번호를 따려던 사람들 속내가 너무 뻔해서 그런 거지. 아주머니도 보셨죠? 제가 일부로 어수룩한 척 해도 저한테 딱히 껄떡대거나 하지 않는 거요."



진아는 카메라를 눈으로 흘깃 가리켰다.



"물론이지. 처음에는 좀 거친 학생이면 어쩌나 했는데 완전 쑥맥이더만. 음...마치...."


"시골에서 서울로 막 올라온 것 같지 않았어요? 저는 이야기하면서 딱 그 생각 들던데."


"어머어머! 딱 그거다. 애가 좀 남자답긴 한데 바보같이 순진한 느낌?"


"뭐,번호는 일단 줬으니 그 다음에는 어떻게 나오나 보려고요."


"알겠어. 그런데 진아야,"



간호사는 진지한 얼굴로 진아를 마주보고 이야기했다.



"혹시나 일이 잘 된다 해도 절대 깊게 빠지거나 그런 건...."


"알아요,아주머니. 저도 그 정도 생각은 있다고요."


"그래. 진아가 나보다는 훨씬 똑똑하지. 그럼 아줌마는 일단 가본다?"


"네,수고하세요. 아,그런데 아줌마."


"응?"


"진짜로 학교생활은 국가의 선전이에요?"






어쩌면 재현의 생각이 일부는 맞지 않을까 생각하는 간호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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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동안 나는 계속해서 진아와 연락을 주고받았다. 대부분은 시답잖은 이야기였다. 오늘의 병원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재미있는 환자분들이 들어왔다는 등 진아가 먼저 나서서 이야기를 주도할 때도 있었지만 거의 대부분은 내가 먼저 연락하고 내가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처음 연락할 때가 제일 어렵다고 했던가,한 번 물꼬를 트기 시작하자 그 이후부터는 거리낌없이 통화할 수 있게 되었다.



"진짜로? 그렇게나 부자인거야?"


"나같은 고등학생 한 명한테 이렇게 대우해주는 걸 보면 알잖아. 나로서는 이런 쓸 데도 없는 돈이나 재산보다는 자유롭게 뛰어다닐 수 있는 네가 더 부러운데. 나는 기껏해야 병원 주변 편의점 정도말고 구경해본 적이 없으니까."


"그 정도로 병이 심한 거야?"


"아니,그런 건 아냐. 그냥...."


"그냥?"


"아무것도 아냐. 피곤한데 오늘 통화는 여기까지만 할게."



진아는 그 말만 하고서는 통화를 갑작스레 끊어버렸다. 뚜...뚜..하는 통화가 끊긴 소리만이 무정하게 내 방에 울렸다.

갑작스러운 일이긴 했지만 이미 진아에게 호감....아니,솔직히 말해서 눈이 돌아가 있던 나는 이런 일 가지고 진아에 대한 감정을 정리할 수 있을만큼 냉정하지도 못했다. 더불어 진아 또한 다음날 내게 먼저 전화를 걸어 사과하기도 했고.


학교에서의 일상 이후 잠깐 들리는 병원이 내 하루 일과 중 가장 즐거운 것이되었고 처음에는 나를 탐탁찮은 눈길로 처다보던 간호사 분도 내가 진짜 '이야기'만 한다는 것을 몇 번이나 확인한 후에는 나를 살갑게 맞아주셨다.



"늦었네."


"버스가 조금 밀려서 어쩔 수 없었어. 그것보다 오늘은 진짜 대박인 일이 하나 있었는데...."


"우리....."


"응. 뭔데?"


"할래?"


"어?"



갑자기 날라온 진아의 폭탄. 그것을 내가 어떻게 받을지 모르고 어버버 거리자 진아가 다시 한 번 말했다.



"나랑 섹스하는 거 어떻냐고? 어때? 뭣하면 만지는 것에서 멈춰도 상관없는데."


"아,아니....어...어...그게 무슨 소리야! 미쳤어?!"


"아니. 제정신으로 하는 이야기야. 어때?"



진아는 그렇게 말하며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 눈은 나를 마치 꿰뚫어보는 듯한 강한 빛을 띄고 나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마치 블랙홀처럼.

 자칫하다가는 그대로 그 안으로 빠져들 만큼 그 눈은 아름다웠다. 조금이라면,진아 말대로 섹x까지는 아니더라도 살짝 몸을 만지는 정도라면 어쩌면......



".....우와아아아악!"



나는 비명을 지르며 방에서 빠져나갔다. 나는 아직 미치지 않았다고 스스로를 타이르며 계속해서 달렸다.



"마하반야....."



미친듯이 달리고 계속해서 달렸다. 스스로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마음속 어딘가에서 아쉬움이 피어오를 것만 같았고 진아에 대해서 내가 가지고 있는 어렴풋한 감정을 그런 육욕으로 채우고 싶지 않아서 그냥 계속 미친듯이 달렸다.



"흐억....헉....흐에엑...."



더 이상은 못 달리겠다 싶을만큼 달리고 나서 무릎을 부여잡고 숨을 고르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여기 어디지?"



대충 일직선으로 계속해서 달렸다고는 생각하는데 지나치게 달리다 보니 길을 잃은 것 같다. 휴대전화를 꺼내서 현 위치를 확인하려 했으나 데이터도 다 써버린지라 길찾기 서비스도 무리다. 음....주변에 와이파이 되는 곳 없나? 아무래도 오늘 집에 일찍 들어가긴 틀린 것 같다.




"도망쳤네....후훗."


나는 작게 웃었다. 재현이가 가까이 다가올 때는 혹시나 했지만 역시 재현이는 재현이였다. 정희 아줌마와 처음 이야기했을 때 나눴던 첫 소감처럼 재현이는 너무나도 순박했다.



"어머,진아야. 재현이는 또 왜 저렇게 뛰쳐나갔대니? 혹시 무슨 일 생긴거야?!"


"아니에요,아줌마. 제가 살짝 놀려줬더니 그대로 달아나더라고요."


"장난이라니,설마 너 또.....하아,내가 말을 말지."


"언제나 미안해요."


"미안해 하는 건 재현이한테나 하렴. 시간을 보니 오늘 여기로 다시 오긴 틀린 것 같은데. 그건 그렇고 처음 아니니?"


"다른 때보다 이런 걸 한 게 빨라서 이번에는 혹시나 했는데 놀라운 반응이더라고요. 아예 거절하거나 하지 말라 하는 반응 정도는 생각했지만 스스로 그렇게 먼저 도망치는 건 처음 봤어요. 아,다시 생각하니까 또 웃기네...푸흡."


"바른 아이같던데."


"곧 달라질 거에요,곧."


"......아직도 남자가 싫니?"


"싫은 게 아니라 믿을 수 없는 거죠. 뭐,지금 이 정도 시험쯤이야 통과한 사람도 몇 명 있으니까요. 아직까지는 몰라요. 어차피 남자는 전부...."



띠리리리리리-


내 전화가 시끄럽게 울렸다. 나는 혹시나 모를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전화를 스피커폰으로 돌렸다. 전화를 받자마자 재현이의 우물쭈물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어,진아야. 나 재현인데. 그게....어....혹시"


"농담이었어. 돌아와도 뭐라 안할 테니까 걱정말고...."


"아니,그게 아니라 길을 잃어서 말인데...혹시 데이터 좀 보내줄 수 있냐고. 그...같은 통신사니까 아마 될 것 같은데...내가 길을 잃었는데 길찾기가 안 되서.부모님한테 말하면 안되는데...."


"....."


"데,데이터는 내가 다음달에 들어오면 바로 줄 테니까!"


".......그래. 지금 보낼게."


"정말 고마워! 그럼 내일 보자!  배터리도 지금 간당간당해서 계속 통화는 힘들 것 같아. 와이파이 찾느라 이리저리 돌아다녔거든. 미안,끊을게!"




재현이는 그 말만 남기고는 정말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전화를 끊은 적은 많았지만 내 쪽에서 먼저 전화가 끊긴 경우는 처음이었다. 시끄러운 통화음만이 병실을 채우고 있었다. 형언할 수 없는 당혹감과 모욕감이 내 몸을 채워나갔다. 그야 분명히 내가 이상한 말을 한 거긴 하지만



"진아야,뭣하면 내가 대신 보내줄까?"


"됐어요!"






쓰고나니 어째 짧다. 그래도 쓸거임 히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