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약 1000년도 더 이전에, 세상엔 낮과 밤이라는 개념이 있었다.

 

해와 달이 서로의 역할을 다 하며 순환을 반복하던 어느 날, 최초의 뱀파이어들인 진조의 희생으로 완성된 마법이 영원한 밤을 불러일으키고 

 

그렇게 하늘엔 핏빛의 달이 고정되어 희미한 빛만이 어둠 사이를 흘러가게 되었다. 

 

그것은 인간에겐 저주요, 악몽이었지만, 밤의 장막에 숨어든 자들에겐 축복이며, 희망이었다. 

 

뱀파이어들은 태양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어지자, 다음엔 지배자가 되길 갈망했고, 인간들은 그 사태를 경계해 군을 일으켰다. 두 종족의 전쟁이 세기를 거쳐 이어졌고, 인간 국가들의 저항은 거세었지만, 끝내 패배했다.

 

승리한 뱀파이들은 귀족으로 군림해 자신들의 영지를 가꾸기에 이르렀고, 인간들은 식량으로 전락해 소나 말, 돼지를 기르듯 삶이 혀용된 거주구에 모여 포식을 두려워 하는 나날을 지세게 되니

 

이와 같은 역사를 거쳐 밤의 자손들의 시대가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교과서에는... 일단 이렇게 적혀 있었어.”

 

얌전한 여학생처럼, 엘리는 무릎을 끌어안은채 내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바깥 세상에 대해 어디부터 이야기를 해 줘야할지 고민한 끝에, 나는 그녀가 낮이 존재하던 시절 잠이 든 이상, 지금의 세상이 있게 된 경위부터 설명하는 것이 맞는 순서라 생각했다. 

 

과거에 대해서는 나 역시 정확히 모르기에, 교과서의 설명을 떠올려 그대로 말해주는 것 정도가 한계였지만... 역사에 대한 연구 활동은 금지되고 있기에 이 정도가 보편적으로 알려진 지식인 것도 사실이었다.

 

“그리고 지금의 세상은... 인간인 나로선 좋게 말 할 수는 없겠지.”

 

패전 이후의 세상은 뱀파이어에 맞게 재단되어, 가문의 장로들이 정한 규칙에 따라, 저마다 각기의 토지와 인간을 나누어 장원을 세운 후, 지금까지 군림하고 있다. 

 

마치 옛 시대의 인간 귀족들 같은, 이런 오래된 방식을 구태여 고수하는 이유는, 뱀파이어들이 극도로 보수적이고 전통을 중시하기에, 정확히는 인간이었던 시절의 관습과 문화에 특별히 집착하게 되어서 그렇다고들 말한다. 

 

전쟁의 주축이었던 장로들의 힘과 권위가 강하기에 개혁은 일어나지 않고, 더군다나 뱀파이어들은 영생에, 동족이 늘어나는 것도 달가워하지 않아 세대교체도 매우 드물다. 그야말로 ‘고인물’ 이라 요약할 수 있는게 뱀파이어의 사회였다.

 

“질문같은건 있어?”

 

나의 말에, 그녀는 고개를 양 옆으로 저었다. 뭐, 그럭저럭 이해하고 있는 거겠지? 

 

바깥세상에 대해 알려주겠다곤 했지만, 물음에 답하는 식이 아니라, 내가 먼저 주절대고 있는 것이라 쓸데없이 귀찮게 굴고 있는건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저거”

 

그러던 차에, 엘리가 어딘가를 향해 손가락 끝을 향했다. 시선을 따라가 보니, 대치하던 도중 겁에 질려 떨어트린 은색 리볼버 권총이 바닥에 고이 놓여 있었다.

 

“아, 이건 아버지의 물건이야. 그러고보니 아까는 미안...”

 

“알고 있어.”

 

“어라, 정말?”

 

나는 조금 놀랍다는 눈빛으로 총과 엘리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내, 별로 놀랄만한 일 까지는 아니라는데 생각이 미쳤다. 무기로서 총기류가 사용된 역사는 아주 길었기 때문이었다. 

 

“형태는 비슷해보여도, 아마 네가 아는 것과는 좀 다를거야. 이건 그럭저럭 멀쩡한 녀석이긴 하지만.” 

 

다만 전쟁 당시의 기술들은 대부분 소실되었고, 살아남은 기술들도 패전 이후 뱀파이어들이 집요하게 파헤쳐 없애버렸기에, 오늘날 나돌아다니는 물건들은 조잡한 것들이 대다수이긴 했다. 

 

군수공업은 기본적으로 제약이 가장 엄격한 분야다. 자동화 기계와 분업화를 적용한 공장은 종류를 불문하고 강한 통제와 감독을 받으며, 영지에 따라선 애초부터 금지인 경우도 적지 않다. 

 

위와 같은 이유로 총은 전적으로 수공업에 의존해 만들어질 수밖에 없으며, 그 외에도 위력의 제한, 장인에 대한 감시등등... 규제에 규제가 겹쳐 있는지라 무기 기술은 수 세기동안 답보하고 있는 형국이었다. 

 

그럼에도 총기의 소지 자체는 허용한다는 것이 장로회의 규칙이기에, 너나 할 것 없이 가정마다 한 정 정도는 구해다 놓는 경우가 일반적이지만.

 

“아무튼 대충 이래서, 총이라 해 봤자 이 시대엔 변변찮은 것들이 대부분이야. 왜 어설프게 소지하는건 허용해 줬는지 모르겠지만.”

 

위와 같은 내용들을 설명하면서도, 나 역시 그에 대해서 궁금증은 있었다. 뱀파이어들의 오만 같은 걸까? 그러고보면, 아버지가 생전 이런 설명을 해 준적이 있었다.

 

‘전쟁 이후에도 여전히 인간의 수는 많기에, 뱀파이어의 입장에선 반란의 가능성을 끝까지 간과할 수 없다. 이때 패배할 경우는 물론이고, 승리하더라도 인간의 수가 너무 줄어든다면 본인들 역시 곤란에 빠진다.’

 

‘그리고 유일한 자위 수단을 강제로 빼앗는 것은 큰 반발을 부른다. 결국 반란 위험을 감수하기보단 생산력과 위력을 제한해 실질적인 위협이 되지 못하게 한 다음, 소지 자체는 허용해 주어 적당히 안주하게끔 하는 것이 차선책이 된다.’ 

 

어릴 적에 들은 것이라 잘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이런 논지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나름 합당하고 생각하지만, 이것도 결국 하나의 가설이다. 진의는 장로들 정도나 알고 있겠지.

 

‘꼬르륵’

 

“아...”

 

기껏 신이 나서 잔뜩 설명하고 있던 차에, 배에서 음식을 달라고 아우성을 치는 소리를 냈다. 

 

그동안 도피 생활을 하느라 제대로된 음식은 거의 못 먹었으니 당연한 현상이었다. 하필 타이밍이 적절하지 못한 것이 문제이지만.

 

“미안한데, 혹시 여기 먹을만한게... 있을까?”

 

말을 하면서도 정말 이 다 쓰러져가는 성에 음식이, 애초에 입에 넣을만 한 거라도 있을지 내심 우려되었다. 엘리는 뱀파이어라 보통의 음식은 필요가 없고, 성에 식량이 있었다 해도 1000년 정도 방치되었다면 형체라도 남아 있을지부터 관건이다. 

 

“나는, 이 성의 원래 주인이 아니야. 그래서... 나도 잘....”

 

“그동안 살펴본 곳은 없는거야?”

 

“거의 이 방에만 있었어서...”

아무래도 이 은둔 외톨이형 뱀파이어에게 기대는건 어려워 보였다. 먹고 잘 필요도 없는 존재이니 만큼 대충 예상을 하긴 했지만... 

 

그럼 앞으로는 어떻해 해야 할지가 문제였다. 큰 소리는 펑펑 쳤지만, 먹을 것도 없이 지내는건 오기나 아집으로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숲에 나가서 사냥이라도 해 봐야 할까?

 

“잠깐... 잠깐만...”

 

나의 표정을 읽기라도 한 듯, 엘리는 적잖아 다급해보이는 모습이었다. 입을 우물거리며 고민을 하던 그녀는, 잠시 뒤에 무언가 결심한 표정으로 양 손을 모으고 눈을 감았다. 

 

무언가에 예민하게 집중하는 것만 같아 보였다. ‘마법이라도 쓰는 것일까?’ 하고 생각하던 차에, 아까와 같은 검은 기운들이 다시 생겨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공간을 나돌던 기운들이 짙어지는가 싶더니, 이번엔 엘리에게 드레스가 생길 때와 다르게, 눈 깜짝할 새 검은 영역이 사방으로 산개하며 사라졌다.

 

엘리는 여전히 같은 자세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다만 간헐적으로 눈가가 떨리는 모습에서, 무언가 쉽지 않은 작업을 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었다.

 

“...따라와.”

 

그대로 일 분 가량이 지났을까, 다시 눈을 뜬 그녀는 따라오라는 말과 동시에 어딘가로 걷기 시작했다. 

 

“어어... 찾은거야?”

 

그녀의 끄덕이는 뒤통수를 본 나는, 의아해하면서도 군말 없이 엘리의 뒤를 따라 붙었다. 

 

 

 

 

 

 

 

 

 

 

 

‘이렇게 보니, 기적이라고 밖엔 못 말하겠네.’

 

엘리를 따라 계단을 내려가며 처음 보게 된 것은, 어제의 내가 남긴 핏자국이었다. 

 

대부분은 검붉게 말라붙어 있었지만, 간혹 깊게 고여있는 것들은 여전히 차디찬 바닥에서 식어가며 나에게 그동안의 경험을 상키시켜 주었다. 

 

상처하나 없는 지금의 몸과 너무나 대비되어, 저것들이 자신의 정말 자신의 몸에서 나왔는지 휘화감이 들 정도였다. 그럼에도 저 흉측한 자국들은, 내가 얼마나 운 좋게 살아남았는지를 적나라하게 깨닫도록 했다.

 

‘올라올 때도 얼핏 느꼈지만, 정말 크긴 한걸.’

 

다음으로 눈에 들어온 것은, 역시 이 성의 전경이었다.

 

어제는 몸과 정신을 붙잡고 있는것만 해도 벅차서 여유롭게 둘러볼 틈이 없었지만, 차분히 살펴볼 기회가 생기자 여러 가지 부분들이 눈에 띄었다. 

 

우선은 규모와 형태, 몹시 큰 성이라는 것 자체는 어렴풋이 느끼고는 있었다. 그런데 드러난 실상은 내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였다.

 

엘리를 따라 걷는 동안 복도의 갈림길을 수도 없이 마주쳤고, 벽면엔 크고작은 방들이 빼곡했다. 크기도 했지만, 구조역시 아주 복잡했다. 적어도 내가 태어나서 본 구조물 중에선 이 정도의 규모를 본 적이 없다.

 

그러나 단순한 규모 만으로는 이 공간에 대해 온전히 설명할 수 없다. 

 

긴 복도와 갈림길, 그 사이와 사이에 기사의 갑주들이 성의 수호자처럼 일정 간격을 두고 나란히 배치되어 있었다. 반면 맞은편 벽면에는 장검과 도끼창, 철퇴등의 냉병기와 문장이 새겨진 방패들이 특유의 배치에 따라 걸려져 있었다.

 

그저 독특한 장식이라 치고 흘겨 넘어갈 수도 있지만, 나는 가벼이 생각할 수 없었다. 무구들의 상태가 너무나 온전했기 때문이다. 1000년이 넘도록 방치되어 있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말 새 것처럼 말끔한 수준은 아니고, 군데군데 녹이 슬거나 금이 간 부분은 있었지만, 유물 수준으로 극심하게 변형되었다 할 만한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구체적으로는 ‘좀 오래된 장비’ 수준을 모두 벗어나지 않았다.

 

그런가 하면 무너진 벽 너머로 성을 둘러싼 두터운 성곽도 발견 할 수 있었다. 층을 내려오면서 달빛에 비친 석재 벽을 바라보니, 어중간한 시간은 너끈하게 버텨낼 듯 두께가 매우 두터웠다. 군데군데 상층부가 조금 무너지긴 했지만, 마찬가지로 양호하다 할 만한 상태였다.

 

종합했을 때, 이 성은 단순한 성이라기보단 마법적 작용이 가미된 요새에 더욱 가까운 인상이었다.

 

‘여러모로 신기... 엇.’

 

내부를 둘러보는데 한창 열중하고 있던 나는, 앞서 걷던 엘리가 발걸음을 멈춘 것을 미처 보지 못했다. 뒤는 더 볼 것도 없이, 나는 엘리의 등과 그대로 부딪혀 버렸다.

 

엘리와의 몸집 차이가 나다보니, 나는 조금 놀란 선에서 그쳤다. 이는 반대로 말하면, 엘리는 제 몸집보다 큰 무언가에 배후로 충격을 받았다는 것이 된다.

 

부딪힌 여파에 당장이라도 넘어질 듯, 비틀거리는 모습의 엘리가 보였다. 나는 재빠르게 몸을 날렸다.

 

“큰일 날 뻔 했네... 괜찮아?”

 

다행이게도, 급격히 기울어져 가는 엘리의 몸을 가까스로 붙잡을 수 있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엘리...?”

 

그런데 엘리에게서 돌아오는 말이 없었다. 혹시 다친 곳이 있나? 무리하게 균형을 잡으려다 발목 같은곳을 삐었을 지도 모른다. 자세히 보니 귀도 빨간 것이, 일단 멀쩡한 상태는 아닌 것 같았다. 

 

“괜찮아...? 엘리? 엘리!”

 

기다려도 여전히 답변이 없어, 나는 품 안의 엘리를 이리저리 흔들었다. 설마 기절이라도 한 건... 

 

 

 

 

 

 

 

 

 

 

 

“히끅...!”

 

“어.”

 

환청을 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게, 어쩔 수 없지 않나. 얼마 봐 오진 않았지만, 지금까지 본 엘리의 이미지... 같은 것이랑은 전혀 딴판인 의성어였다.

 

어떻해 된 것인지 눈만 똘망하게 뜨고 있던 나는, 아주 뒤늦게야 사태 파악을 할 수 있었다.

 

“괜찮... 으니까 놓아 줄래?”

 

그리고 말을 마침과 동시에

 

“히끅!” 

 

아까와 같은, 지극히 인상적인 소리가 다시 한 번 퍼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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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전혀, 의도한게 아닌데, 쓰다 보니 일반 장르소설이 되어 버린것 같다. 전개 속도를 높여야 하나 싶은데 쓰다 보면 엿가락처럼 됨...


읽다가 요상하거나, 답답하거나, 아무튼 뭔가 피드백이 있다면 고이 받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