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섭이? 좋은 애긴 한데 그..남자로는 조금..”


내가 지금 무슨 이야기를 듣고 있는 걸까.


아무도 없는 강의실. 그 안에는 입학 할 때부터 짝사랑해왔던 유린이와

우리과는 물론이고 학교 전체에 잘생겼다고 소문이 난 2학년 선배가 있었고 유린이가 꺼낸 말에 유린이를 본 것에 반가워 문을 열려고 했던 내 손이 멈췄다.


그러나 그들은 얘기만 할 생각이 아니었나 보다. 서로를 껴안더니 급기야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


“아, 아….”


나는 작은 신음 소리를 내뱉은 채 못 볼 광경을 봤다는 듯이 눈을 감고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방금까지 붉게 올라온 그들의 얼굴이 금방 식으면서 강의실 문 쪽으로 시선이 옮겨졌다.


"누, 누구세요?"


유린이의 목소리가 나지막하게 들려왔다.

그제서야 나는 그들에게 내가 들켰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급히 얼굴을 가리며 건물 바깥으로 뛰어 나갔다.


“자, 잠시만!”


뒤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왔지만, 나는 듣고 싶지 않다는 듯이 귀를 막고는 발걸음 속도를 더 높였다.


그렇게 건물 밖으로 나오자 더욱이 잘 느껴졌다.


내 짝사랑이 또 끝났다는 것을.


ㅡㅡ


따릉.


“기섭씨 안녕하세요”


“어, 어? 아, 안녕하세요.”


첫사랑이 끝났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가망이 없다는 것도 그렇기에 그렇게 건물을 나왔을 때는 생각보다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 광경이 머릿속에서 벗어나질 않았고, 끝내서야 학교가 끝난 뒤 알바를 하는 편의점에서까지 상념을 떨쳐내지 못한 채 멍하니 있는 상태이다.


“무슨 일 있어요? 안색이 안 좋은데.”


상념이 표정에까지 드러난 걸까. 내 얼굴을 보며 지연씨가 걱정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 아니에요. 그냥 생각할 게 있어서.”


그런 지연씨의 행동은 내겐 부담스럽기만 했다. 애초에 만나는 시간도 이렇게 교체 할 때인 아주 짧은 시간인데 표정이 안 좋다고 걱정하는 건 나로서는 이해가 잘 되지 않는 행동이다.


그러니 빨리 인수인계를 한 뒤 재빨리 유니폼을 벗고 나갈려고 했다.


“아, 그러고 보니 기섭씨.”


“네, 네?”


뭐지? 갑자기 왜 나를 부르는 거지?


“조심히 들어가세요.”


혹시라도 무슨 잘못을 한 게 아닐까 라고 생각하며 노심초사하며 뒤에 올 지연씨의 말을 기다렸지만 그녀가 뱉은 짧은 문장은 허탈하면서도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아, 아..지연씨도..”


나는 어색히 지연씨에게 인사를 한 뒤 바깥으로 나오자 달이 보이기 시작했다.


“보자…내일은 공강이니까.”


평소라면 다음날 강의 때문에 집에 들어가자마자 씻고 자야하지만, 내일은 공강.


“게임이나 좀 하고 자자.”


좀 늦게까지 안 자도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ㅡㅡ


“헉!”


급히 이불을 걷어내며 일어난 나는 재빨리 냉장고를 열어 물통을 꺼내고는 컵에 따를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그대로 물통 안에 있는 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푸하…”


그렇게 몇 번의 목넘김이 있고 나니 그제서야 타들어갈 듯한 목마름이 가라앉았고 그제서야 시간을 볼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13:10]


아무리 늦게 잤다고 하지만 생각보다 너무 늦게 일어나버렸다.


아무래도 악몽을 꾼 게 한 몫 하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분명 어제 게임을 하다가 강의실에서 봤던 장면이 계속 떠올라, 생각한 것보다 이른 시간에 잠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그러한 상념은 꿈에서까지 쫓아왔고, 끝내 12시간 숙면이라는 내 인생 중 수면 기록이 새롭게 세워졌다.


“시발…”


가뜩이나 금쪽같은 휴일의 절반이 날아갔는데 꿈 속 내용까지 다시 생각이 나자 안 좋았던 기분이 더욱 안 좋아졌다.


“하…”


속에서부터 올라오는 짜증에 그대로 컴퓨터 책상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는 책상 위에 올려져 있는 핸드폰을 들어 화면을 바라봤다. 그러자 안에 보이는 것은 어색하게 웃고 있는 나와는 반대로 옆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유린이사진으로 되어 있는 배경화면이다.


그렇게 유린이의 얼굴을 보자 해서는 안될 생각이 떠올랐다.


‘연락이라도 해볼까..’


짝.


한순간이지만 내가 했던 생각에 자괴감이 올라와 스스로 내 뺨을 후려쳤다.


아무리 한심해도 그렇지 그렇게 말하는 걸 눈앞에서 봤으면서 전화해볼까라는 생각을 했다는 게 너무나도 한심했다.


그렇게 다시 몰려오는 현자타임.


“인생 좆같네 진짜.”


그러자 어렸을 적부터 들어왔던 말들이 생각이 난다.


중학교.


[으아앙~]


[야, 왜 애를 울려!]


고백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짝사랑했던 여자아이는 울었고, 그 여자아이와 친했던 다른 여자아이들이 나를 타박했다.


고등학교.


[아….미안한데 나 이미 남자친구 있어…그리고, 이제부터는 연락 안해줬으면 좋겠어.]


남자친구가 없다는 것을 이미 확인 한 뒤에 한 고백이지만 남자친구가 있다는 거짓말로 나를 거부했다.


“그때는 병신같이 좋은 연애 해라 이지랄 떨었었네.”


옛날 생각을 하니 허탈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래, 이미 익숙하지 않았던가. 여자애들에게 거부당하는 게 하루이틀도 아니고.


키도 작지 얼굴도 평균 이하지. 솔직히 기대하는 게 오히려 양심이 없는 행위였다.


“지연씨도 오히려 남자로 안 느껴지니까 살갑게 구는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부담스러운 지연씨의 행동이 오히려 납득이 갔다. 말 그대로 첫인상부터 아예 남자로 안 느껴지고 고백할 깜냥이 없다는 것도 느꼈으니 거리를 둘 필요를 못 느꼈던 거겠지.


하…


“자살 마렵네”

ㅡㅡ

참고로 중고딩 회상 구간은 내 학창시절 경험 각색한거라 진짜 제대로 몰입하면서 썼다 읽어줘서 고맙다


자살 마렵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