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가 입 밖으로 거낸 ‘아침’ 이라는 단어에, 나는 모든 신경이 쏠려버렸다. 

 

모르는 단어는 아니었다. 오히려 모를 수 없는 단어였다. 하지만... 

 

“아침이라면... 태양이 떠 있는 그 시간을 말 하는거야...?”

 

결코 진정으로는 알지 못하는, 장담컨대 살아있는 어떤 인간도 경험해 본 적이 없을 개념이었다.

 

‘끄덕’하고 돌아보지도 않은채 고갯짓을 한 그녀는, 내가 지금 얼마나 얼빠진 표정을 하고 있는지 모를 것이다. 

 

“그렇다면 넌, 그걸 직접 봤다고? 태양과 낮의 하늘을?”

 

또다시 ‘끄덕’하고 그녀의 턱이 움직였다. 역사에나 기록되어 있는 현상을, 대단한 일도 아니라는 듯이 경험했다 말하는 존재에게서, 나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감각을 느꼈다. 

 

하지만 동시에, 호기심의 감정들 역시 주체하기 힘들 만큼 분출되었다.

 

“태양... 태양은 어떻해 생겼어? 아침은? 정말 그때는 하늘이 파랬던 거야? 그리고 사람들은!?” 

 

밤하늘에 집중하고 있던 엘리의 양 어깨를 덮썩 붙잡은 나는, 떠오르는 말들을 속사포처럼 내뱉었다. 흥분한 탓에 혀가 꼬여 말이 수없이 헛나왔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아침, 낮, 태양... 수백년도 이전에 그저 존재했다고만 알려진, 너무나 오래되어 역사와 허구 사이 어딘가에 걸쳐 있는 시대. 

 

영생을 산다는 그 뱀파이어들마저 그 시대를 기억하는 이들은, 지금까지도 살아남거나 활동 중인 극소수의 장로들, 그 중에서도 특히 나이가 많은 몇 명에 불과할 정도라고 전해진다.

 

역사의 산증인인 그들이 없었다면, 거짓으로 치부되었을 시대를, 그 과거를 기억한다고 말하는 소녀가 바로 여기 있었다.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 미안.”

 

그렇게 한껏 들떠있었던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당황하는 엘리의 모습을 뒤늦게 알아채고 나서야 흥분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어깨를 붙잡고 있는 손에 힘을 풀면서, 나는 사과의 말을 연발했다. 

 

“아니...”

 

느리게 고개를 저은 그녀가, ‘괜찮아.’ 라며 말을 덧붙였다. 조금 놀란 눈치였지만, 기분이 상한 것 까진 아닌 듯 했다. 

 

잠시 뒤, 엘리가 다시 입을 열었다.

 

“태양...”

 

그러자 그 작은 입을 통해, 먼 과거의 자취들이 펼쳐졌다. 

 

“하늘의... 커다란 구슬, 빛나는 베일을 쓰고 있었어.” 

 

“아침의 색은 푸르고, 구름 곁에선 하얀 새들이 날아다녔어. 구름의 색도 함께 날아다니는 새의 깃털처럼... 하얀색...” 

 

처음엔 느릿한 속도로 나아가던 문장들이, 말을 엮어갈수록 또박한 음정과 그림같은 묘사로 가꾸어져 갔다. 얼핏 바라본 그녀의 눈은, 지금의 세상엔 없는 무언가를 응시하는 듯 했다. 

 

“비가 오고 갠 뒤엔, 일곱 갈래의 빛줄기가 무지개를 만들며 미소지었고.”

 

“운이 좋은 날엔, 천사의 고리같은 해무리를 볼 수 있었어.”

 

태양의 따스함, 해 떠 있는 숲의 초록빛, 맑은 호수의 수면, 저녁의 노을... 그것 말고도 많은 풍경과 감상들이, 엘리의 입을 통해 끝을 모르고 쏟아졌다.

 

그 모든 것들의 편린조차 사라진 세상의 주민인 나에게, 엘리가 전한 세상은 아련한 동화로 밖엔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그 아름다움을 아는 것에는, 설사 어휘들로만 루어진 빈약한 세상이라 해도 모자람이 없었다. 

 

그리고 그 섬세한 묘사들을 통해, 그녀가 과거의 세상을 얼마나 아름답게 느꼈는지도, 마찬가지로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무어라 말 하기 어려운 위화감 역시 존재했다.

 

“...”

 

그렇기에 이윽고 엘리의 목소리가 끊겼을 때, 나는 또다른 물음을 건낼 수 밖에 없었다.

 

“너는, 그 때 어떻해 살아갔어?”

 

잠시간의 침묵 후, 그녀의 답변이 들려왔다.

 

“...혼자였어. 계속.”

 

엘리가 과거에 관해 이야기할 때, 그녀는 자연이 만들어내는 풍경에 대해서만 묘사할 뿐이었다. 

 

다시말해 그녀의 말 속에서 사람의 모습은, 단 한마디조차 나오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 부분에서, 나는 모종의 어색함을 느낀 것이다. 

 

“혼자였다는건...?”

 

“잠들기 이전에, 이곳에서... 1000년 정도.”

 

그리고 이어진 의문을 해소한 끝에는, 상상 이상의 고독이 있었다. 

 

‘1000년을... 이런 곳에서 아무도 없이?’

 

뱀파이어의 시간 관념, 사고방식, 가치관 같은 것들은 인간과 현격한 차이가 있다고 자주 들은 적이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1000년이라면, 뱀파이어들의 원로인 장로들이 살아왔다는 시간마과 버금가는 수준이다. 

 

저 말이 사실이라면, 어지간한 뱀파이어들조차 가늠 할 수 없을 세월의 나날들을, 무너져가는 성에서 홀로 지내왔다고...?












 

‘아니야... 내가 무슨 생각을.’

 

나는 속에서 끓어오르던 어느 감정을 억눌렀다. 동정심을 같은걸 가질 이유는 없다.

 

그만한 세월을 살았다는 것 자체가 거짓일지 모르고, 애시당초 뱀파이어에게 그런 감정을 보내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이다. 

 

뱀파이어는 인간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저것도 분명 ‘시간이 썩어나니 한 번 눌러앉아 봐야겠다.’ 정도의 유흥같은 것이겠지. 결국 피를 갈망하는 괴물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눈 앞의 소녀가 언뜻 무해해 보인다 해도, 그 사실이 달라지는건... 없을 거다.

 

“이름... 내 이름... 엘리.”

 

“엘리... 좋은 이름이네.”

 

“응.”

 

-꾸욱

 

주먹을 쥐자, 손톱이 손바닥에 눌리며 고통이 느껴졌다. 

 

저 무언가를 놓아버린 초연함과 무표정함. 그리고 아까 전 스치듯 지어보인 미소가 저 말이 거짓이 아님을, 그동안의 시간이 새긴 외로움이 내면에 스며들어 있음을 알리는 것만 같았다. 

 

정말로 별것 아닌, 작은 웃음. 그것이 머릿속에서 맴돌며 내 마음을 혼란스럽게 했다. 

 

“참견일지 모르겠지만... 앞으로는?”

 

“잠시 세상을 바라보다, 다시 잠에 들거야.”

 

소녀는 조금의 고민도 없이 그리 말했다. 그에 대해 나는 무어라 할 말을 찾지 못했다.

 

“너도, 돌아갈 거라면...”

 

나를 똑바로 응시하며, 엘리가 입을 움직였다. ‘돌아갈 거라면’ 그 뒤에 무슨 말이 나올지, 더 듣지 않아도 충분히 알아챌 수 있었다.

 

그녀에게 있어 셀 수도 없이 많았을, 이 스쳐가는 인연에, 끝을 고하려 하는 것을. 

 

“지금 돌아-”

 

“이 성에, 마법이 걸려 있다고 했지?”

 

거기에 대하여 나는, 떼를 써 보기로 결정했다. 

 

인간의 어리석음과 치기가 빚어낸... 다분히 감정적인 결정을.

 

“어...? 응.”

 

“외부인은 여길 볼 수도, 들어올 수도 없다고 했나? 내가 들어오긴 했지만.”

 

“아마도... 힘이 약해져서일 거야. 지난 밤동안 다시 걸어 놓았어.”

 

지난 밤이라면, 내가 기절한 사이 마법을 다시 걸은건가. 시간이 지나 약해것이라 해도, 이 장소에 성이 있다는걸 오늘까지 알지 못했으니 아주 강력한 마법임은 틀림없겠지.

 

“염치없지만, 부탁이 하나 있어.”

 

그렇다면... 이건 충분히 좋은 선택지가 될지 모른다.

 

“나는 쫓기고 있는 몸이거든, 그래서 아주 조금만... 여기서 몸을 숨겨도 될까?”

 

“대신이라긴 뭣 하지만... 말동무 정도는 해 줄 수 있어. 바깥 세상도 궁금할 거 아냐?”

 

어디서 온건지 모를, 심지어 어딘가에 쫓기고 있다고 하는 낯선 인간이, 이곳에 눌러 앉겠답시고 건넨 제안. 

 

상대의 입장에서 딱 그 정도인, 조금만 생각해도 어이가 없을 일이지만, 공교롭게도 말을 꾸며내거나 교묘히 숨기는 재주는 없다. 

 

어설프게 할 바에야 차라리 당당하게, 그대로 드러내 보이자는 생각이었다. 

 

“아...”

 

외마디 목소리를 내며 엘리가 눈을 깜빡거렸다. 완전히 처음 목격하는, 크게 당황한 것 같은 표정. 

 

그 상태로 엘리는 양손을 모아 오므리거나, 나를 바라보던 고개를 숙였다, 다시 들어올렸다 하며 한동안 우물쭈물거렸다. 그 모습은 드물게도, 정말 한명의 작은 소녀처럼 보이기도 했다. 

 

내 시선을 느낀 그녀가 움찔거리더니, 그대로 등을 돌렸다. 무심코 피식- 하는 작은 웃음이 나왔다. 엘리가 보지 못한게 다행이었다. 

 

“...”

 

“...”

 

“...없어.” 

 

“응...?”

 

그대로 엘리의 작은 등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던 차, 얼핏 자그마한 음성이 들려왔다.

 

“상관없어, 여기... 있어도.”

 

조마조마하던 나는, 그 말에 화색을 지으며 답했다.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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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 

 

심장이 뛰었다. 

 

소년에게서 기쁨에 찬 대답을 듣게 되자, 명백하게 그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박동하는 심장을 마지막으로 느껴본 적이 언제인지조차, 이제는 거의 기억하지 못했다.

 

‘무엇 때문에 심장이 뛰었었지?’ 처음 떠올린 것은 공포였다. 

 

누군가에게 쫓기는, 피와 살이 튀며 냉혹하고 저주담긴 말들이 오가던 순간에서, 미친 듯이 뛰던 심장의 감각. 

 

아니야, 아니었다. 구체적인건 모르지만, 그런 것과는 확실히 다른 이유로, 다른 동력을 받아 심장이 뛰고 있다. 

 

속이 답답하고, 한편으로 간질거리도 하다. 몸에서는 열이 오르고, 웬지모르게 뒤를 돌아 다시 얼굴을 마주하기 꺼려졌다. 

 

전혀 이유를 종잡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한가지 확실한 것은...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왠지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오늘만 해도 2번째. 마지막으로 웃어본 기억도 희미하기는 매한가지였다.

 

무한한 시간을 견뎌온 끝에 다소나마 목을 축이는 기분, 그래서일까

 

“너는... 내가 무섭지 않아?”

 

그동안에 상상조차 하지 못한 것을, 무심코 소망하게 돼 버린다.

 

“아...”

 

저 외마디 소리엔 무슨 감정이 담겨 있을까. 망설임? 잘 못 생각했다는 후회?

 

아니면 어처구니 없을 만큼 긴 세월을 살아온, 존재해서는 안 될 괴물에 대한 혐오?

 

“솔직히 말하면... 여전히 널 믿는건 어려워.”

 

잘근거리며 입술을 짓씹었다. 저 뒤에 무슨 말이 나올까? 혐오와 저주가 섞인 말을 듣는건 이미 익숙해져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와서 왜?

 

두려웠다. 등 뒤에 소년에게 거부당하는 것이.

 

“그렇지만, 나한테 넌 은인이야. 네가 가만히 놔 두기만 했어도 난 죽었을 걸? 아니지, 분명히 죽었어. 그 뒤로 날 먹으려 들지도 않았고.”

 

하지만 예상을 깨고 들어온, 그 말들이 너무나 따뜻해서. 

 

“결국 이런저런걸 제치고 나면, 난 단순히 좋은 사람을 운 좋게 만났을 뿐인거야. 요컨대...” 

 

헛 된 기대일 뿐이라고, 결국 배신당할 뿐이라며 말리려드는 이성마저도, 모조리 억눌러져 버린다. 

 

“무섭지 않아. 네가 어떤 존재든, 엘리는 엘리인걸?” 

 

“그렇, 구나...”

 

무너져가는 성과 같이 쇠락하고, 영략하고, 달관하며, 식어만 가던 어느 괴물의 내면에, 아주 희미하고 미약한, 그럼에도 명백한 빛이 스며드는 순간이었다. 

 

 

 

 

 

 

 

 

 

 

 

 

‘...놓치고 싶지 않아.’

 

그렇다면 그 빛을... 어떻해 놓칠 수 있겠는가? 

 

빛이 생겨났다면, 쌍둥이 형제인 그림자 역시 나타나기 마련이다.

 

마음 속 기저에서 혀를 낼름거리는, 어둡고 끈적한 감정이 고개를 들며, 자신도 모르게 내면을 잠식해가고 있었다. 

 

“좀 낯간지러운 말인가... 그것 말고도 네가 내 동앗줄이 될 것 같다는 이유도 있기는 해. 저기, 듣고 있어?”

 

그 뒤의 말은, 거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소녀의 눈이 순간적으로 검붉은 안광을 발했지만, 둘 중 누구도, 그것을 눈치챈 이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