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무엇인가요

중세교부철학 아무 책이나 펴도 악의 문제랑 삼체문제는 나옵니다

신학/종교 탭의 글들을 읽어보면 좋을 것 같음

그걸 설명할 수 있었으면 호교학자들이 종교를 아예 이성과 분리하자고 주장하지 않았을 것임

플란팅가같은 학자들은 '자유의지 변론'으로 설명함. 
특히 플란팅가는 신이 이 세계에 악을 포함시킬 적극적인 이유가 있다고까지 말함. 이건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했던 것처럼 '타락의 가능성은 있지만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가 있는 세계가 그렇지 않은 것보다 낫다'는 이유임. 예를 들면, 사람이 만용을 부려서 주식투자로 다 말아먹는 '악'이 있으니 용기를 없애버리자고 할 수는 없음. 즉 용기라는 도덕적 가치를 부정할 수 없는 것과 비슷함. 우리가 재미로 생명을 해칠 수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모든 '재미'를 다 없애버릴 수 없다고 비유할 수도 있음. 

물론 이에 대한 반론으로 '선 있는 자유의지' 얘기가 나올 수 있음. 자유의지는 있되 '선'을 추구하는 방향으로만 가도록 한계를 지을 수 있지 않냐는 것임. 도덕적 악이 굳이 하나의 옵션일 필요가 없어보인다는 것임. 

여기에 대해서 플란팅가는 그런 세계는 불가능하다고 얘기하려는 것 같음. 신의 전능함이 모든 논리적 불가능성까지 가능하게 하는 것은 아님을 예로 들면서, 신의 전지함이 미래의 모든 일을 안다는 것으로 가정할 때, 모든 존재자들의 자유의지까지 제한을 넣으면서 그렇게 '고정된 결정적 앎'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임. 좀 낭만적으로 얘기하면 '자신의 미래를 정하는 것은 각 존재자들에게 있다'라고 볼 수 있음. 아마 좀 풀어보자면, 신은 미래를 정해둔 것이 아니라 존재자들에게 맡겨두었고, 대신 각 존재자들이 선택한 것에 따라 정해지는 결과, 또는 미래나 말로(末路) 정도에 대해서는 '전지'하다고 말할 수 있을 거임. 즉 가능세계의 모든 것을 안다는 것이 진짜 '전지'하다는 뜻임. 물론 가능세계 중에 진짜 이룩할 현실세계를 알 수도 있음. 하지만 그것만으로 '전지'하다는 용법을 쓰는 건 별로 옴니사이언틱하지 않다 이거임. 게다가 내가 자비로운 신이라면 '저 새끼는 어차피 저럴 줄 알았어' 이것보다는 '너가 그런 선택할 가능성이 높지만 그럼에도 다른 선택을 하길 바란다'가 더 매력적이지 않을까 싶다. 

사실 전지함 같은 경우 우리의 기대와 다를 거임. 우리는 뭔가 로또 맞을 번호를 미리 아는 것처럼 정해진 미래를 정확히 아는 영역으로 가야 '전지'하다고 생각함.  그런데 플란팅가처럼 가능세계론으로 본다면 차라리 모든 가능세계를 전부 아는 것이 더 전지하다고 볼 수 있음. 즉 여러 미래의 가능한 사태가 가능세계처럼 펼쳐져 있고, 그 중에 벌어진 사건만 현실 세계일 뿐임. 그리고 그 사건을 만든 것은 신이 자유의지를 주었기에, 각 개체들의 선택에 따라 정해진 현실세계일 뿐임. 오히려 신은 현실세계가 될 수도 있었던 여러 가능세계를 알고 있었던 것임. 즉 어쩔 수 없이 플란팅가는 '통세계적 타락', '통세계적 악' 같은 것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함. 이미 우리의 현실세계가 악을 겪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물론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우리가 기대하는 정확한 미래에 대해서 확신을 주지 못하는 신을 굳이 따라야 하느냐는 것임. 그리고 이건 악의 문제에서도 언급되는 결론임. 당연히 여러 비판점들이 있긴 했음. 사실 플란팅가는 '신이 인간을 창조한다'보다도 '인간의 본성을 구현한다'라는 용법을 사용하는 것처럼 뭔가 플라톤주의적 실재론 비스무리한 용법을 사용함. 여기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결국 신이 창조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이 있어서 그냥 빌려온 거 아니냐~ 그런 식으로 비꼴 수 있음. 마치 에우티프론 딜레마랑 비슷함. 도덕적인 것은 신이 좋아서 좋은 것이 된 것인지? 아니면 원래 좋으니까 신도 덩달아 좋아하는 건지? 

다른 논의도 있음. 우리는 삼각형의 여러 양태를 알고 있음. 모두 다 아는 건 아니지만, 어떤 삼각형을 보게 되면 삼각형임을 인지함. 좋은 삼각형 같은 건 없음. 만약 있다면 둥근 삼각형처럼 논리적 모순 같은 것 아닐까 싶은데, 그건 삼각형의 정의에 어긋남. 하지만 인간은 여러 행위를 할 수 있고, 우리는 거기서 좋은 행위와 나쁜 행위, 선과 악을 구별함. 오히려 인간이 불가능한 행위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음. 초월자 입장에서는 오히려 모든 인간의 행위를 제한하는 것이 나쁜 것일 수도 있음. 

이상한 소리처럼 들리지만 우리는 어떤 행위에 대해서는 선과 악을 함부로 판단하지 말자~ 오히려 인간적인 것이 개입해서 망치는 경우를 여럿 보기도 함. 과거 육식동물들이 초식동물들을 잡아먹는 것이 나쁜 것이라 여겨서 육식동물들을 다 죽였을 때, 오히려 자연환경이 극심하게 파괴되는 경우도 있었음. 즉 초식동물들이 잡아먹히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었을 때의 결과라고 비유할 수도 있겠음. 

물론 이런 얘기들을 해봐야 이 논증이 완벽하게 성공적인 것은 아니라고 봄. 눈이 안 보이는 사람에게는 눈이 보이는 것이 좋을 것이고, 눈이 보이는 사람에게는 눈이 안 보이는 것이 나쁜 것일 수도 있음. 하지만 애초에 11차원의 시각을 볼 수 있는 사람에게는 그런 것이  좋고 나쁨의 의미조차 없을 수도 있음. 그렇다고 11차원의 시야를 모든 사람이 가지는 것이 '선'인지 알 수도 없음. 하지만 인간에게 유익함을 주지 못하는 방관자 신 같은 이런 초월적 존재에게 우리가 굳이 시간을 쏟아야 하는가? "왜 그를 신이라 불러야 하는가?"라는 건 여전한 이유임. 

하지만 애초에 윤리 자체가 그렇게 생겨먹었다고 본다. 윤리 연구자들도 가끔은 답이 없어서 '하늘이 보고 있지 않느냐!' 식으로 결론 짓는 거 보면 그게 결국 '신'을 얘기하는 거랑 뭐가 다른 가 싶음. 신 얘기처럼하면 비판 받으니까 말은 빙빙 돌리지만 결국 그게 그거다 싶다. 에피쿠로스가 말하는 행복도 결국 초월적인 면도 있고, 그의 쾌락주의도 결국 착각이라도 행복할 수 있으면 어떻게 되는가에 대해서는 소극적일 수밖에 없음. 여기서 '진실성있는 행복'이 좋다고 얘기하면 결국 플란팅가가 말하는 '통세계적 악'을 허용하지 못할 이유는 없는 거라고도 볼 수 있음. 왜냐하면 악이 있는 것도 '진실'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임. 경험기계 속 인간이 더 행복하더라도, 그것은 선택을 통제당한 행복에 가까울 것이고 경험기계 속 인간이 그걸 모를 지라도, 외부에서 보고 있는 우리는 그것이 꾸며진 행복이라고 생각하고 있음. 그것도 행복인데 왜 '선 있는 자유의지' 주지 않았음? 하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여러 설문 조사에 따르면 대다수는 아니었던 걸로 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