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다른 생각을 존중하라-

이 원칙은 너무나 평화롭고 현명한 것으로 생각되지만

다름의 기준이 이미 다른 무언가를 주장하고자 하는 이에 의해 선점되어있다면 무상한 것이 됩니다.

다른 것들은 분명 가능하며 존재합니다 다만 다른 위치를 지닌 것과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정말 서로다른 것임이 확고한 것입니다.


이 글은 [안개 속을 가리키는 것과 같은 것] 게시물을 보고, 또 그 글이 쓰이기 이전에 쓰여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이는 논란있는 게시물을 보고 든 제 생각을 제시하는 글입니다.


인위적이고 개인적인 판단 기준들 사이에서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것이 마치 안개와 같은 모호성의 문제들 - 또는 어떻게 칼로 물줄기를 자를 수 있겠느냐는 것이겠지요.

선이 어떻게 영역을 분할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는 단지 수학의 추상적인 세계에서만 원활한 설명이 가능할 것이라 오해받고는 하지만 수학 스스로도 이를 대하는데 오랜 기간 골치를 앓았다는 것을 지적합시다. 수학은 어느샌가 '충분히 작다/크다' 고 하는 개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선이 영역을 둘로 나눈다는 것은 사실 '선으로 부터 충분히 떨어진 거리에서는 항상 어느 한곳에 있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 선 위의 한 점이 영역 중 한곳에 속하리라 그것 아니라 하는 것에는 무엇도 함의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충분한 거리라는 것은 언제든지 그것보다 덜 멀리 떨어진 다른 거리보다는 더 멀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계산하는 정신은 반드시 안개를 자기보다 한걸음 뒤에 둘 수 있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지칭대상들 즉 세상과 인지내외에 있는 온갖 범주들에 대해서도 같은 정신이 작동할 수 있느냐 묻는다면 그건 다른 어려운 문제가 될 지 우리는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AI가 이 분야의 가능한 개척된 한가지 길이겠네요. 

아무튼 저는 본문의 지칭의 모호성에 대한 자기모순을 한가지 지적하고 싶습니다:

태평양과 인도양의 경계가 정말로 무아몽중의 안개속에서나 존재하는 것이라면 우리가 태평양의 한 점에다 대고 여기가 태평양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이 현상 자체가 가능할 수 없습니다. 즉 우리의 생각속에 있는 이 어딘가-태평양 은 이미 있을 수 없어야 한다는 거지요. 모호성은 이미 우리가 지각하기 전에 일부 극복되어있는 것이죠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대답은 우리의 계산하는 정신 속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현실속 바다라고 하는 공간이 아무리 안개속에서 위치해있다한들 우리가 지칭하고자 하는 세계는 이미 충분히 그곳에서 떨어져 존재하고 있다는 말로 그리고 태평양의 한 점과 태평양 태평양-인도양의 경계선 어느 것이든 그러하다는 것이죠. 현실과 인지의 괴리라 하는 가장 독한 안개에서 충분히 떨어지면 이제 공간의 경계라고 하는 덜 강한 안개로 그리고 여기서 충분히 떨어지면 또 태평양의 한 지점이라는 안개 밖 위치로 나오게 된다는 말입니다. 언어는 그 자체로 모든 범주들의 연결자이자 경계로 기능한다고 볼 때 언어를 신비가 아닌 계산의 대상으로 삼기 시작하는한 우리는 언어의 안개가 아닌 현실과 지칭 각각의 대상들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실 속 축척과 지칭 간의 축척이 서로 다르다 한들 무엇이 걱정일까요 펜과 주판을 부여잡은 정신만 멀쩡하면 괜찮을테지요.

안개속에서 벗어나는 정신이 있다니 그렇다면 안개속에 여전히 머무는 정신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단지 스스로에게 충분하지 못했을 뿐입니다. 안개로 둘러싸여 자기 위치를 모른다고 해봤자 안개가 결국 자신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면 안개는 어느새 발뒤꿈치 뒤로 밀려나게 될 뿐인데 말이죠. 그렇다면 태평양을 인도양이라고 하는 사람에게는 이렇게 말해야합니다: 너는 어디를 보며 말하고 있는 것이냐 고 말이죠. 

왜 인도양을 보고 태평양이라 하는 사람을 생각이 다를 뿐이라고 인정해야합니까? 그들은 아직 현실과 추상의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들은 자기가 아직 중도에 섰다고 믿으나 언제나 발을 한 발 내딛으면 어딘가 위에 서있게 된다는 사실을 부정하거나 알고도 회피하고 있을 뿐입니다. 다름이 무차별하게 인정된다면 도대체 치와와와 머핀을 구별하는 기계를 왜 개발해야할 필요가 있었다는 것일까요? 이것으로써 무죄와 유죄를 가를 수 있는 기계도 개발되고 있는데 이또한 무용한 것인가요? 계산은 곧 계도입니다. 계산하지 않는 정신은 단지 게으르거나 비겁한것입니다. 이들에 대한 '다름'으로 부터의 지탄과 고소장은 지당하게 받들만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