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바로 사후세계. 의외로 칸트는 영혼불멸의 사후세계를 인정했습니다. 그것은 인간 도덕성의 문제 때문입니다.

아래의 글은 코단샤의 <민속과 종교(民俗と宗教)> 시리즈 중 고라이 시게루 선생님의 저서 <일본인의 사생관(日本人の死生観)>의 일부를 제가 읽고 번역한 것입니다. 본래 제목 그대로 일본인의 사생관을 다루는 민속학 서적입니다만, 칸트의 사후세계를 나름대로 잘 설명하고 있는 듯 하여 가져왔습니다. 충분히 감안하고 열람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후 세계가 있는가, 그런 질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니’ 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흔하지요. 하지만 그러한 사후 세계를 부정하는 대답은 근현대 일본인의 체면과도 같은 것이어서, 정말 대부분의 사람들은 속으로는 생각을 다시금 곰씹으며 ‘그런가?’ 라는 찝찝함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것은 육친을 잃은 경험이 있는 사람일수록 더욱 정도가 심하여, 그러한 사람들이 현재 같은 것은 무상하여 전혀 의미가 없다는 교리에 매혹되어 근처의 큰 절 따위를 찾고는 합니다. 도대체 이러한 이중성은 어디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일까요?


사실은 이와 같이 영혼과 사후의 세계라는 것은 ‘보이지 않으니까 없는거야’ 라고 생각하는 한편, ‘그래도 역시 안심할 수 없다’ 는 두 가지의 양면성이 충돌하는 것이 결국 인간이라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사후 세계를 묻는 질문은 결국 ‘인간이란 무엇인가’, ‘삶이란 무엇인가’ 따위와 같은 근본적인 의문을 던지고 있는 것입니다.


삶과 죽음이라는 것은 그림자와도 같습니다. 완전히 반대라고 생각되는 두 가지의 개념은, 사실 어떠한 것보다도 가까이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그림을 조금이라도 공부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림자가 빛으로 인해 생겨난다는 사실을 곧바로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삶이라는 것 또한 죽음에 직면하여 그 느낌을 직접 실감해 본 사람이 아니라면 그 중요성을 완전히 깨닫기는 힘들지요. 따라서 사후 세계를 생각하는 것은 삶을 이해함과 동시에 인생의 의의를 찾아가는 소중한 시간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닙니다.


고대인의 관점에서, 사후 세계는 현 세계의 연장선으로서, 동시에 현 세계에서 이겨내야 할 역경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곧 살아가며 선을 행한 사람은 죽음 이후에 행복해지고, 나쁜 짓을 한 사람은 죽음 이후에 불행해질 것이라는 단순한 논리입니다. 죽음 이후와 현 세계의 인과 관계는 결국 도덕적 규범, 혹은 법도 따위를 생성하는 데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러한 법도를 어긴 제제로서 등장한 것이 바로 ‘지옥’ 이라는 것입니다.


근세에 이르러 인과율은 ‘권선징악’이라는 형태로 변모하였고, 현 세계에서 저지른 악행은 똑같이 현 세계에서 되갚아 주어야 하며, 현 세계에서의 선행은 똑같이 현 세계에서 행복이라는 형태로 보답받을 것이라는 의미가 되었습니다. 지금까지도 의리와 인정을 강조하는 로쿄쿠(浪曲)나 코단(講談)과 같은 대중문학, 대중 문예 따위는 여전히 권선징악 없이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권선징악의 형태는 민중들의 정의감을 자극하기는 하지만, 실생활에 적용하여 보면 그리 달갑지만은 않은 것도 현실입니다. 이를 어찌 하면 좋을까요.


우리는 좀처럼 악한 사람은 출세하고 선한 사람은 그렇지 못하는 슬픈 현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곧 민중의 정의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사후 세계까지 연장되는 권선징악의 세계, 그러니까 인과응보가 필요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만약 그러한 것이 없다면 세상은 기만이나 니힐리즘 따위의 부끄러운 것으로 넘쳐나겠지요. 이러한 도덕과 행복의 불일치를 ‘실천이성의 이율배반’ 이라고 하여, 이러한 이율배반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영혼의 불멸’, 곧 사후 세계라는 것이 없어서는 안된다는 주장을 한 철학자가 바로 칸트입니다.


근대 사상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 귀에 들리지 않는 것, 손에 잡히지 않는 것, 그 외 감각적으로 인식할 수 없는 것은 결국 존재하지 않는 셈이 됩니다. 즉 영혼, 내세, 그리고 신과 같은 것은 절대 존재하지 않는다는 과학주의적 관점 속에서 달 여행마저 가능하게 만드는 현대의 물질문명이 꽃을 피웠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근대 사상을 이끈 칸트 또한 도덕이 곧 사회 질서라고 보아 인류의 자유와 평화를 보장받기 위해서는, 과학적 상식을 통째로 부정하는 영혼과 사후의 세계 따위가 존재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칸트는 근대적인 과학주의의 물결 속에서 사후 세계가 존재한다고 명확히 하는 한편, 그것은 ‘마땅히 존재해야만 한다’ 고 제창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수준의 사후 세계의 ‘갈구’ 는 칸트 철학의 약점이자 모순점으로 지적되어 오기도 했습니다만, 서민들은 그것을 실제로 존재한다고 판단하여 죽은 이의 명복을 비는 불교적인 공양이나 추선 따위를 시행하였고, 그러한 목소리를 무당을 통해 듣고자 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서민들은 칸트와 같이 번거롭게 돌려 말하는 방식을 택하기보다는 단순히 직관적으로 사후 세계의 존재를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