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도록 생각하여 짧은 결론을 내리기를,

‘나는 왜 살아야 하는가?’ 와 ‘행복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결합시켜,

’나는 살아야 하기에 살고, 살기 위해 행복하여야 한다.‘ 라는 어느정도의 결론을 내렸습니다.


결국 죽고싶지는 않으니까 사는거고, 죽고싶다는 마음이 생존본능을 이겨내지 않도록 유지하기 위해 행복이라는 현상이 필요하다고 받아들인것입니다.


사는건 그냥 사는거죠. 거기엔 목적도 없고 의지도 없습니다. 단지 사는겁니다. 그러나 죽는것엔 본능적인 두려움이 있습니다. 우린 그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여러 버팀목을 만들었고, 그 버팀목들은 본질적으로 행복이라 불리는 것들입니다.


그리하여 말하기를, ’행복하기 위해 사는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행복하여야 한다‘ 라고 합니다.

훗날 알기를 카뮈의 시지프 신화가 꼭 이런 이야기더군요.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적어도 제가 알기로 카뮈의 ‘삶에 대한 사랑’ 이란,


어짜피 인생은 부조리하고 부정적이니까,

어떤 그 영원회귀적 생에 있어 모든 순간이 행복이라고 마음짓는다면, 그렇진 못하더라도 중간중간 그렇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면,

그걸로 된거 아닐까?


제가 알기론 그걸 실천한게 위버멘쉬입니다.

모든 운명을 사랑하라, 그 말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