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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 has, as it were, become a kind of prosthetic God.

인간이란, 말하자면, 일종의 의수로 변모하였다.











1856년 5월 6일.

오스트리아 모라비아에 번개가 일었다.


폴란드와 우크라이나를 떠돌며 마침내는 오스트리아 땅까지 흘러든 

아슈케나지 유태인 부부 한 쌍 사이에서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그 탄생을 알렸다.


겨우 임대한 방에서 삶을 영위하고

토라 연구라는 복잡한 일을 그럴듯하게 수행하는 아버지가 있다고 해도 

돈은 그들 가족에게 항상 부족했고, 또 항상 떠돌이 생활을 촉발했던 거대한 매개체였던 셈이다.

결국 그들은 남들보다 일찍, 그 어딘가로 떠나야만 했다.


프라이베르크에서, 라이프치히로, 그리고 비엔나로.


잦은 이주 생활을 하며 지냈던 감수성 높은 소년 프로이트는

가는 곳마다 족족 우등 성적, 우등 졸업을 해내며

자신이 흔적을 남겼던 모든 곳에 프로이트 자신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이것은 비엔나에서도 마찬가지로 전개되었다.

원래부터 법학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프로이트는

어느 이유에서인지 갑자기 과학부로 전향, 그리고는 다시 의학부로 옮겨 그곳에 둥지를 틀게 된다.


수백 마리 수컷 뱀장어의 생식기,

그리고 척추의 유무를 척도로 하는 뇌의 비교,

또한 신경 조직에 대한 집요했던 탐구.


마침내 1882년, 프로이트는 비엔나 종합 병원에서 전설로 남을 경력을 시작한다.

내가 여태까지 소개한 여느 철학자들과도 마찬가지로,

프로이트도 의도하였든 의도치 않았든,

그가 살아가던 시대상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리고 프로이트의 이러한 도전은 절정에 다다른 한 시대의 심장부를 총탄보다 거세게 파고들었다.


1880년,

신경 생리학 부문의 명사였던 조세프 브로이어에게 환자 한 명이 찾아온다.

자신을 가명으로 안나 오Anna O 편의상(O) 라고 소개한 환자는 브로이어에게 자신의 기침과 환각 증세에 대하여 열띤 설명을 시작했다.

한참 동안 아버지를 간병하던 중 나타난 증세에 대해서 가열찬 열변을 토하던 안나 오를 지켜본 브로이어는 

그로부터 매일 O와 상담하며 그녀의 히스테리성 각종 증상을 유발시킨 원인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곧 O가 아버지를 간병하던 중 생긴 사소한 일탈을 너무나 크게 치부하였다는 사실이 드러났으며

이는 곧 O가 했던 모든 행동을 명쾌히 해명할 수 있는 직접적 단계로 변모하였다.

브로이어는 마침내 드러난 이 폭탄같은 계기를 놓치지 않았으며

마침내 브로이어는 O의 완치를 이루어냈다.


조세프 브로이어를 곧 정신분석학의 문을 열어젖힌 인물이자 시초로 평가한 프로이트는

안나 오의 사례를 '모범적' 사례이자 대표적인 사례로 전면부에 내세웠다.


이렇게 학문의 초석을 단단히 다진 프로이트는

곧 브로이어의 방법론을 계승하여 하나의 가설을 발표한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유혹 이론' 이라고 명명된 충격적인 내용의 논문이었다.


바로 성인 시절의 히스테리, 그리고 여러 정신병리적 증상들이 모두

어린 시절의 성적 학대와 그러한 일련의 경험들에 의해 오랜 기간 서서히 촉발된다는 내용의 가설이었다.

이 이론을 처음 발표할 때 까지만 해도 프로이트는 이 가설을 뒷받침하는 증거들이 대규모로 존재한다는 것을 확신하였는데,

그러나 어째서인지 프로이트는 얼마 후 이러한 가설을 '환상', '과대평가' 로 치부하며 자신의 이론을 스스로 반쯤 폐기 시켜버린다.


하나의 과격한 실패였지만,

프로이트는 이로써 더욱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을 퍼올리기 시작한다.

학문적 스승인 브로이어로부터 벗어나

무의식의 수레바퀴가 그에 의해 다시 힘차게 굴러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독일의 낭만주의 철학자 셸링이 그의 저서 <초월적 이상주의의 체계> 에서 처음으로 제창했고

무관심 속에서도 근근이 그 명맥을 이어 오던 무의식의 개념이 마침내 프로이트에 의하여 저 넓은 양지로 굴러갈 수 있게 되었다.


프로이트는 우선 자아ego, 즉 이성적 주체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설명한다.

프로이트가 절대적이고 이성적이로 여겨졌던 이성적 자아의 범위를 의식의 표면 위에 외로이 부유하는 빙산의 일부로 한정지었던 순간,

과거의 온 철학자들이 신성시해온 이성과 자아는 한 순간에 모두 녹으로 뒤덮인 셈이었다.


영원한 이성적 천국으로 인간을 조종해 가는 것처럼 보였던 확고부동했던 자아의 존재는 그 순간부터 죽었다.


자아는 이제 저 수면 밑에 고요히, 또한 활발하게 활동하던 무의식과 함께하게 되었다.


그러나 프로이트는 그저 부수기만 했던 것이 아니었다.


그는 이제 정신분석학이라는 이름 하에 자신에 의해 무너진 자아의 개념을 새로이 재구축하려 하고 있었다.








-2편: 프로이트, 그리고 융-



 이미지 출처: By Max Halberstadt - https://www.christies.com/lotfinder/lot_details.aspx?intObjectID=6116407, Public Domain,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64082854 By Karl Joseph Stieler - http://nibiryukov.narod.ru/nb_pinacoteca/nbe_pinacoteca_artists_s.htm, Public Domain,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3140017


자료 출처:  지그문트 프로이트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베르타 파펜하임 (Anna O)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프로이트의 유혹 이론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무의식-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지그문트 프로이트 - 나무위키 (namu.wiki) 

 프로이트, 지그문트 | 철학의 인터넷 백과 사전 (utm.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