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의식중에, 상대의 감정 지능이나 인지 능력에 한계가 있음을 의심하는 것에 아주 능함. 그러한 요소들을 의식의 영역으로 끌어올려 보겠음.
폭력, 고성 방가, 조롱 등을 통해 불만 불평을 잠재우려 드는 경우
래디컬 페미니즘이니 SJW니, 심지어 그들과는 180도 달라 보이는 레드필 같은 경우도, 그 주장의 양극만 다르지, 공통적으로 감정 공감에 매우 목말라 있음. 상대가 무엇에 의해 불안을 느낄 법 한지는 말로 상대의 감정을 언급해서 공감해주거나, 심지어 상대에게 상대가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를 말해달라고 한 뒤, 논란이 있는 행동은 무시하거나 행동만 콕 집어주는 화술을 쓰면, 그들은 쉽게 조용해짐.
억압은 쉽지만 사랑은 어려움. 그러나 사랑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장기적 대책인걸.
회피나 방어를 통해 불만 불평을 잠재우려 드는 경우
신정론이 감정을 무시하는 역효과를 내는 이유라면 이유.
한 번에 말을 끝까지 듣지 못 하고, 중간에 내 말을 덮어씌우며 개입하는 경우
긴 대화를 적절히 끊는 것이랑은 다른 이야기.
슬프지만, 화자가 말을 잘게 잘게 끊어가면서 청자를 이끌어가야지 뭐.
상대가 내 감정, 내 처사에 대한 말을 해 주지 않거나, 심지어 내 불만을 듣고 웃어버리는 경우
웃음이란, 주어진 상황이 심각한 줄 알았으나, 아님을 나타낼 때 나오는 표현인 고로, 진심어린 불만 앞에서 웃으면 불만을 무시하는 효과로 이어짐
오버하는 공감 리액션을 통해 말을 섣불리 자르는 경우
자신이 상대 눈 앞에 있다는 것이 실시간으로 인식이 되고 있는지가 의심스러운 경우
트라우마가 있는 경우 정말로 실시간 인식 자체가 잘 안될 수 있음!
상대가 내가 한 말을 들었는지가 의심되는 경우
예를 들어, 내 주장을 언급하지 않고 내 말과 정면으로 반대되는 말을 하는 경우
상대가, 무언가 쉬임없이 말을 하기는 하는데, 자기 주장으로 인한 여파를 모두 궤뚫고 있는지가 의심스러울 경우
일단 상대가 자기 주장으로 인한 경우의 수를 자기도 모른다고 간주하고, 그를 바탕으로 상대의 인식 바깥에서 그에 대한 대처를 해서 해가 될 일은 없다고 봄.
상대가, 자기 말을 듣는 사람이 '알아서' 무언가 해 주기를 바라는 경우
'알아서' 자기 말을 좋게 들어주기 바람
'알아서' 특정 상황에 특정 행동을 해 주기 바람
공익을 외치면서, 정작 자기는 그로 인해 어떤 이득을 볼 지 언급을 하지 않는 경우
철학적으로는, 니체가 이에 대한 지적을 한 바 있음.
상대가, 타인의 특정 행동을 고의적, 선천적 '악', '불결함', '더러움' 등에 의한 것으로 섣불리 간주하고 몰아붙일 경우; 특히 타인이 '일부러', '자기를 엿 먹이기 위해' 그런다 생각하는 경우
예를 들어, 보수적 개신교가 남을 ‘함부로 판단’한다고 욕을 먹는데, 사실 따지고 보면 불안감에 시달리는 불쌍한 병자들이며, 우리는 약자에게 감정적으로 의지하지 않으려는 본능이 있음.
상대가 왠지 자신을 완벽하게, 무결하게 보이는 데에 집착하는 것 같은 경우
완벽한 인간은 곧 자신의 모든 결점에 대한 인식을 없앤 인간일 뿐
상대가 특정 가능성에 대해 무조건 "그럴 리 없다"고 섣불리 함축하는 경우
대책이 없다는 것을 인정한 뒤, 그에 대한 자문을 구하고, 판단하고, 실행할 능력이 없다는 뜻으로 봐도 됨.
가능성이 매우 낮으며, 그에 대한 근거를 대는 경우와는 다름
상대가 자기 의견을 강요하는 경우/공감받지 못 하는 것에 대해 불안해하는 경우
특히 지도자랍시고 앉아있는 사람이 이런 식이라면, 일처리가 안 되거나, 자기 감정을 자기가 공감할 줄 아는 비선 실세에 의해 비공식 사회 구도가 짜이거나.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나는 이렇게 알고 있다" 에서, "나는" 을 생략하고 섣불리 특정 견해가 이렇다 저렇다 밀어붙이는 경우
"나는"을 까먹는 화술이 어떤 문제가 되냐하면, 자기가 틀렸을 경우, 자기가 해 주기 싫은 경우 등 자기로 인한 책임감을 회피하는 과정에서 상대를 불편하게 만드는 화술임.
자기도 이득을 볼 수 있는 공익을 추구하는 대신, 자기만 이득을 볼 방법을 추구함.
자기도 이득을 볼 수 있는 공익은, 자신이 가진 특권을 잃어버렸을 경우에 대한 가장 확실한 대책임. 자기만 이득을 보는 방법은, 자신의 우연적인 특권에 의존하는 만큼, 자신의 특권을 잃어버리면 대책이 없음.
프로레슬링이나 I/T 업계 같은 분야의 노동인권이 현시창스러운 이유가 바로 이것: 업계의 톱스타들이 전부 “나만, 내 선에서, 고용주에게 특혜를 받으면 돼” 하는 생각을 하고 있음. 기량 저하나 불의의 사고로 인해, 밥줄은 밥줄대로 타격을 받고, 돈은 돈 대로 써버리거나 “투자”에 실패해서 축낸 상황에서 후회해 봤자 늦었지.
“악은 없고 선의 결핍”을 제목으로 검색해보면, 본인이 이와 관련해서 써 놓은 글들이 아주 많으니 검색도 ㄱㄱ.
그 외 유저 추가 의견 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