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신념이 무엇인가가 아니라, 개인이 그 신념을 유지하는 방식이 무엇인가가 그 개인을 자유사상가로 만든다. 만일 그가 어렸을 때 연장자가 그것이 옳다고 일러주었기 때문에 그것을 믿는다거나, 그가 그 신념을 버렸을 때 불행하기 때문에 그것을 믿는다면, 그의 생각은 자유롭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가 숙고한 끝에 확인 가능한 모든 가능한 근거들을 살펴보고 그것을 믿는다면, 그 결론이 아무리 이상해 보이든지 간에, 그때 그의 생각은 자유로운 것이다....


-버트런드 러셀, 《자유사상의 가치》





위대한 정신들은 회의주의자이다. 정신의 강력함에서, 정신의 힘과 힘의 넘침에서 나오는 자유는 회의를 통해 입증된다. 확신하는 인간은 가치와 무가치의 문제에서 근본적인 것 전부를 전혀 고려하지 못한다. 확신은 감옥이다. 확신은 충분히 넓게 보지 않고, 발 아래를 보지 않는다. 위대한 것을 원하고, 그것을 위한 수단을 원하는 정신은 필연적으로 회의주의자다. 온갖 종류의 확신으로부터의 자유는 자유롭게 볼 수 있는 강한 힘에 속한다.


대다수 사람들에게 그들을 묶고 고정시키는 외부의 규정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생각해보면, 그리고 강압이나 좀더 고차적인 의미에서의 노예제가 어떻게 해서 의지박약의 인간을 번성시키는 유일하고도 궁극적인 조건인지에 대해 생각해보면 확신이라는 것이, 믿음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게 된다. 확신하는 인간에게 확신은 그를 지탱해주는 기둥이다. 많은 것을 보지 않고, 그 어느 것에도 공평하지 않고, 철저히 편파적이며, 모든 가치를 고정적이고 자기에게 필요한 시각으로 보는 것 ㅡ 이것만이 확신하는 인간 종류를 존재하게 해주는 유일한 조건이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 그는 진실한 인간의 반대이자 적대자이고ㅡ진리의 반대이자 적대자이다.


믿는 자는 '참'과 '거짓'이라는 문제에 대한 양심을 자기 마음대로 가질 수 없는 법이다. 이때 정직하면, 그는 즉시 몰락해버릴 것이다. 확신하는 자의 시각의 병적 제약성은 그를 광신자로 만든다ㅡ사보나롤라, 루터, 루소, 로베스피에르,생시몽처럼ㅡ강하고 자유롭게 된 정신의 반대 유형으로 만든다. 하지만 이런 병든 정신들, 이런 개념의 간질병자의 거창한 태도는 많은 대중에게 효력을 발휘한다. 광신자들은 그림처럼 아릅답게 보인다. 인간은 근거를 듣느니보다 제스처 보기를 더 좋아한다.


-프리드리히 니체, 『안티크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