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헤라/지뢰계 채널

몇년 전의 일이다.


학교를 그만뒀다. 별 거 아닌 이유다. 매일매일 나를 바라보는 시선들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며, 그나마 할 줄 알았던 공부도 더는 손에 잡히지 않았다.


"아."


모의고사. 잡고있던 펜이 연체동물처럼 흐물 거리는 시점에서, 나는 교무실로 찾아가 자퇴서를 작성했다.


그렇게 나는 학교를 나왔다.


"할 게 없네."


세 달이 지나자, 할 게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동안 집에서 만화를 보고 게임을 하고 소설을 읽었다. 그렇게 하고싶었던 것들이었는데. 막상 마음껏 해도 허기가 채워지지 않았다.


지독한 허기였다. 무얼해도 채워지지 않고. 무엇으로 채워야 할 지도 모르겠는.


그래서 나는 여자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저기..."


센터를 찾았다.

이 나라에는 자퇴 청소년을 위한 시설이 존재했다. 비행을 막기위해 무료 교육과 놀이공간을 제공해주는. 사회 부적응자들을 묶어 놓기 위한 짬통.


몇 달을 다닌 결과 학교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다른게 있다면 모든 활동의 참여가 자율이란 것과, 그 어떤 강제적인 관계도 강요하지 않는 다는 것. 어떻게 보면 무리에 적응 못한 녀석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안전하고 편리한 곳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것을 싫어했다.


'이건...이래선 마치 내가 쓰레기 같잖아.'


노골적으로 보이는 배려 시스템.

배려를 받는 사람은 약자였다. 자극하지 않으려는 인테리어도. 지나치게 편안함을 추구하는 공간과 선생님들도. 모두 내 위치를 그대로 나타내고 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다. 나는 알아버리고 말았다.


나라는 사람은 집단을 원한다는 걸.

이 곳에서는, 집단이 존재할 수 없다는 걸.


으레 그렇다. 자율성이 없는 공간에서 동고동락하며 생기는 동질감이 이곳에는 없었다. '너'와 '나'는 있었지만 '우리'가 없는 곳. 그곳이 여기였다.


나는 한 동안 센터를 나가지 않았다. 그리고 거리를 돌았다. 


서울. 부산. 대구. 대전. 큰 도시를 돌고 보았다. 도시는 외로웠으며 어느곳 하나 내가 가질 수 있는 공간이 없는 것 같았다.


그렇기에 나는 다시 집에 틀어 박혔다. 집에서는 부모님이 매일 싸우고, 나는 침묵했다. 정신적으로 힘들다는 면죄부는 내 침묵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엄마가 집을 나갔다.


'...'


식탁이 바뀌었다.


 아버지는 밥을 하지 않았다. 요리는 모두 내 역할이었다. 할 게 없던 나는 그것에 전념했다.


 내가 요리를 꽤 잘하게 되자. 어머니가 집으로 돌아왔다. 우리는 다시 따뜻한 밥을 먹게 됐다.


그리고 어머니는 다시 집을 나섰다.


 '엄마. 엄마. 엄마.'


내 매일은 동네를 돌아다니며 엄마를 찾는 일이 됐다.


어째설까. 어머니가 없으니 집이 고요해지고 평화로워졌음에도, 집안일 따위 나도 할 수 있는 일이었음에도 엄마가 없으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엄마는, 어느 카페에 앉아 있었다. 나는 엄마를 붙잡기 위해 말했다.


"돌아오지 않으면 죽을거야."


파격적인 말이었다. 나는 나를 인질로 삼았다. 손에는 커터칼이 있었다.


"해 봐."


어머니는 강수로 나왔다. 잔인하게 들렸다. 순간 가슴이 내려앉는 것 같았지만, 그런 슬픈 감정보다도 어머니에게 내가 할수 있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결코 거짓이 아니란 걸. 나는 진심이란 걸.


선으로 그어서, 증명했다.


"...!"


어머니는 내 손을 부여잡고 칼을 뺏었다.


그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팔에는 자흔이 남았지만, 나는 전보다 이게 나은 것이라 생각했다.


그거면 됐다고.


*


시간이 흘렀다.


많은, 너무 많은 대화가 흘러가고 집은 다시 평화로워졌다.


더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싸우는 일이 없어졌다. 내 손에는 자흔이 몇개 더 생겨났지만, 자신들의 싸움이 피붙이의 손목에 기록되는 꼴을 보고 싶지 않은 듯 했다.


잔인하고 강제적이었다. 나는 나를 인질로 삼았다.


그래도 나는 그것에 사랑을 느꼈다. 적어도 나 만큼은 생각해서 그런다는 걸. 자신들의 감정을 주체할 수 없을 뿐이란 걸 이해했다.


그 사실을 깨닫자, 나는 다시 센터에 가기로 했다.


사랑이. 하고 싶었다.


'ㅡ 누구지?'


오랜만에 드른 센터에는, 못 보던 여자아이가 있었다.

한국에서 보기 드문 양갈래 머리. 프릴이 달린 옷. 유아틱한 가방과 니삭스. 


구석에는 하트무늬로 장식된 핑크색 캐리어가 있었다. 나는 그 아이에게 인사했다.


"못 보던 얼굴이네?"


아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


대신. 나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운 것 같은 자국이 보였다. 순간, 내가 눈치가 없었나 싶었지만 그것이 화장임을 깨닫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나는 그 눈동자에 집어삼켜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생기가 하나도 없는ㅡ서클렌즈로 확대된 거대한 검은자가, 내 입을 틀어 막아 버린 것 같았다.


하지만 이겨내고 싶었다. 분명 사연이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동질감이 들었고, 나 또한 사무치게 외로웠기에.


"뭐하고 있어?"


아이는 말 없이 보고있던 책을 들었다.


[검정고시 30일 완성]


"어? 잠깐 봐봐."


나는 책을 뺏어 훑었다. 검정 고시는 내가 자퇴하고 얼마지나지 않아 만점을 받은 시험이었다. 그리 어려운 시험이 아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아이의 책은 대부분 백지였다.


"음...내가 알려줄 수 있을 것 같은데...아."


신나서 말을 꺼내던 중, 나는 내가 뭔가 잘못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경계심이 있는 아이였다. 그런아이의 책을 빼앗고 제 자랑을 했으니 분명 날카로운 눈총을 보내리라. 그렇게 생각하며 바라본 아이의 눈에는.


"...우와." 


놀랍게도. 생기가 돋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