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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스트. 547,813번째 녹음 시작.”



“명예퇴직이라는 행위는 w사의 특이점을 지키는 것에 합리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구석의 곰팡이를 보이지 않게 가리는 것처럼 언젠가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다름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 일례로...”



파우트스는 왼손에 쥐어져 있는 녹음기를 입에서 떼지 않은 채 피가 굳지도 않은 싱싱한 고깃덩어리들을 흝으며 말을 이었다.



“현재 파우스트가 존재하는 이 곳. ‘열차 섬’을 예시로 들 수 있다.”



“명예퇴직한 이들의 관으로 쓰였던 열차부터 폐기된 폐열차까지. 마치 대호수의 쓰레기들이 모인 쓰레기 섬 처럼.



“차원으로 던져진 물체들의 집합체를 파우스트는 ‘열차 섬’이라고 이름 붙혔다.”



파우스트는 그녀가 지은 ‘열차 섬’이라는 이름이 썩 마음에 들었는지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이유와 그 원리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지만... 여러가지 가설을 세울 수는 있었다.”



“하나. 차원으로 던져진 물체에서 에너지가 발생되어 인력을 발생시킨다.”



“하나. 열차 섬의 중앙에 인력을 발생시키는 무언가가 존재한다.”



“하나. 차원의 흐름. 즉, 대호수의 물 흐름처럼 차원 또한 흐름을 가지고 있다.”



“과거 파우스트의 16번째 녹음의 말을 인용하자면.”


“비가역적인 행동들이 가역적 현상으로 나타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 곳은 L사의 폐쇄된 지부처럼 크나큰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가령...”



파우스트는 가벼운 한 숨과 함께 땅에 떨어져 있는 푸른 빛의 창을 집으려 오른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녀는 순간적으로 자신의 팔이 지나치게 망가져 있었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피가 흐르지도 않고 굳지도 않아 살점에 붙어 있는, 지나치게 그로테스크하게 찢겨져 잘린 뼈의 단면이 드러나 형태만을 유지하고 있는 팔.



그녀는 감자를 돌려 깎은 것 같이 짓이겨진 직전인 이 팔을 수백 수천년간 이 팔을 잘라버릴까도 고민했지만 언제나 결론은 고민을 그만 두는 것이었다.



대신 녹음기를 쥐고 있던 손이 창을 향해 움직였다. 어느새 W사 마크가 새겨져있는 방탄 조끼에 꽃혀진 녹음기를 대신해 차가운 금속의 촉감이 그녀의 손에 아릿하게 새겨졌다.



그러고는 파우스트는 아직 살아 숨쉬고 있는 괴생명체의 머리를 향해 날을 찍어 내렸다. 머리가 반으로 갈라져 로스트 비프같은 단면을 보여주는 뇌가 드러났지만 여전히 뇌수와 피는 달라 붙어 있었다.



이번에는 창이 바닥에 짤그랑하는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녹음기는 다시 제 주인의 손에 쥐어져 버튼이 눌러졌고, 파우스트는 다시금 말을 이었다.



“명예 퇴직한 이들의 변이. 차원을 넘나드는 환상체. 혹은 그와 비슷한 존재들. 차원의 틈에서 휩쓸린 사람들. 고깃덩어리 등.”



“하지만 파우스트는 그것들의 존재보다도 더 위험한 것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이곳은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 노화. 허기. 갈증. 부패. 흐름 또한 마찬가지다. 그저 막연하게 초(炒)를 세고 분(分)을 세고 시(時)를 센다.”



“그렇게 파우트스가 센 시간은 547,813일. 1500년 8개월. 그 이하는 버림. 한 번의 녹음을 하루라고 가정 했을 때의 시간의 흐름이다.”



“흐르지 않는 것은 썩기 마련이다. 인간의 정신 또한 마모된다. 파우트스는... 아. 정정한다. 파우스트는 정확히 243,746일부터 몸의 이상을 발견했다.”



그녀는 아까 자르고자 했던 오른손을 보며 말했다.



“예전보다 녹음기에 대한 의존도가 증가했다. 여러가지 망상을 하기 시작했다. 망가진 팔을 잘라버리고 싶은 충동이 생겨났다. 나의 이름인 파우스트를 틀리는 횟수가 증가했다. ‘청소’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졌다. 그 이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그 이의 이름은 잊지 않았다.”



이상. 파우스트는 그렇게 읆조렸다.



“그는 명예 퇴직을 택했다. 파우스트는 그를 알고 있다. 그 이는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에 특화된 사람이다. 하지만 회사는 그에게 ‘청소’를 맡겼기에 잦은 피로감의 호소와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회피하기 위한 선택이라고 판단된다.”



“그렇게 그는 파우스트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사라졌다.”



녹음기를 쥔 그녀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그래서 파우스트는 그 이를 찾기 위해 명예 퇴직을 요청했다.”



“지금까지 수 많은 열차들을 옮겨 다녔다. 그 중에는 푸른 빛과 녹색 빛. 그리고 오렌지 색의 빛을 내 뿜는 열차도 있었지만, 들어가지는 않았다. 분명 그 이라면 가장 조용한 곳에서 눈을 감고 있을 것이다.”



“나는, 파우스트는.”



“그 이를 찾고 싶을 뿐.”



“파우트스. 녹음 종료.”



파우스트는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았다. 이제 다시 그녀는 그를 찾아 열차의 문을 열어 그를 찾을 것이었다. 한 사람분의 발자국과 그에 맞춰 끈적거리는 붉은 점액들이 찰박거렸다.



그녀는 등에 창을 매고서는 열차의 문을 힘겹게 열었다. 이번에는 아무것도 없는 보통의 객실이었다.



끈적거리는 근육덩어리들도 없었고 합장을 하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직원도 없었다. 



하지만 그곳의 한 구석에서 보랏빛이 힘을 잃어가는 듯 깜빡거렸다.



파우스트는 알 수 없는 두근거림을 느꼈다. 본능적인, 설명할 수 없는 직감이었다.



그녀는 바로 그곳으로 달려가 빛의 근원지를 바라보았다.



보랏빛에 얽혀 옅어진 검은 단발. 혈관 같은 줄기로 뭉친 덩어리들로 눈을 가리고 피가 묻어 비린내가 짙게 흩뿌려진 망토와 직원복. 그리고 깜빡거리며 점멸하는 보랏빛 단검.



만약 거울이 있다면 파우스트는 자신이 분명 처음 짓는 표정과 눈을 하고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이상. 그가 있었다. 그토록 찾아 해메던 그가.



손의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저어보기도 하고 망가진 손으로 흔들리는 손의 손목을 잡아보기도 했다.



분명 미쳐버려서 보이는 환상일꺼야. 뇌의 부하가 치민 탓에 보고 싶은 것을 보게 만드는 것임이 분명해. 파우스트는 그렇게 수십 번을 되뇌어 봤지만 그녀는 자신의 눈 앞의 것을 믿고 싶었다.



그래서 그녀는 왼 손을 뻗어 이상의 볼을 매만졌다. 실재한다. 그녀는 오랫만에 느껴보는 체온에 문득 눈물을 쏟을 뻔 했다. 그의 온도가 느껴진다. 그가 살아있다. 그 동안의 모든 것은 헛되지 않았다.



파우스트는 그런 감격들의 감정들을 잠깐 집어 넣기로 했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윗주머니에서 무전기를 꺼내 버튼을 누르고는 말했다.



“파우스트. 547,814번째 녹음 시작.”



“나는, 파우스트는...”



“그 이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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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 끝.


나머지 소재는 다음 기회에


못 써줘서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