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 그간 잘 지냈어?"

웃기지도 않는 일이다.

21세기 한국에서, 총격전이라니.


"그쪽이야말로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네요."

"총부터 내려놓고 그런말하면 좋을텐데 말이야, 그치?"

"그러기엔 배신당한 전과가 너무 많아서요"

"내 부하들이 그쪽과는 다르게 충실해서 말이야~"

"겁이 많은거 아닐까요? 그쪽의 천박한 말투는 여전하네요."


참 하나부터 열까지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는 여자다.

애초에, 여자가 총들고 설칠때부터 기를 잡아놨어야했는데


"물건은?"

"물론 준비했죠. 그전에."


거래보다 중요한게 있었나?

그녀가 눈짓을 하자 일이 잘못 풀리고 있다는걸 깨달았다.


"거래 종료다, 쏴!"


당장 뒤에서 대기하고 있는 부하들에게 소리를 지르고 몸을 피한다.

처음부터 함정이였나?

내가 움직이자마자 상대쪽에서도 총을 쏘기 시작했다.


"하하하- 바닥에 튀는 불꽃에 따라 춤추는게 광대가 따로 앖네요!"

"너, 이 구역에서 이렇게 신뢰를 깨도 무사할거같아?"

"설마 제가 그정도 생각도 없었겠어요? 저는 누구랑 달라서."

"제길!"


짜여진 함정에 보기좋게 걸려들었다.

체면이 말이 아니다, 이대로 빠르게 후퇴해서 보복을..

아, 머리 뒤로 차가운 금속이 느껴진다.


"총을 버려라!"

아차..

"너희들의 보스가 죽어도 괜찮냐!"


내게 협박하는 목소리가 낯설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 협박범을 보니, 내게 총을 겨두고 있는 상대는.. 내 오른팔이였다.


"언제부터였지?"

"유감입니다."

"내가 못해준 기억은 없는거 같은데"

"싫증이 났을뿐. 그저 그런 이유입니다."

"그런것치곤 저런 여자 밑에 들어갈줄은 몰랐어."


"어머나, 결국 이 정도도 생각못하는 당신의 머리는 여기가 한계였던거겠죠."


짜증나는 여자.

어느새 소강상태에 접어든 총격전의 끝은 이쪽의 완패였다.

당연하지, 보스가 인질인데


"후후... 그럼 어떻게 죽고싶어요?"

"아직 죽기는 이른거같은데"

"얼마나 이 순간을 고대해왔는지 당신이 아실까요? 여자라고 무시받는 나날들, 밀수업체에서도 당신이 번번이 방해를 했었죠."

"경쟁상대를 도와주는 사람이 어디있나?"

"그러니 죽어주세요."


절체절명이다.

결국, 이 방법밖에는 없는건가..

어금니를 깨물어 칩을 깨문다.


"아, 진짜. 이건 쓰기 싫었는데."

"네?"

"그 얼빠진 얼굴을 보니 즐겁네."

"죽기 바로 전이니 실성한건가요?"

"야, 나 불사의 얀붕이야. 이 정도로 죽을거면 여기까지 못 왔어"

"네, 그럼 죽어주세요. 길었던 싸움의 마지막치고는 조금 허무하네요."


그녀의 총구가 나를 향하는 순간, 몸을 일으켜 그녀를 박는다.


"꺄악, 어디서 발악을!"

"아직은 이르다니까 그러네."


분명 신호를 보냈는데 오지 않는다.

한참 전에 심어논 칩이라 망가졌나 슬슬 불안해져가던 찰나, 밖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언니, 짭새 떴어요. 빨리 빨리!"


노란 머리의 갈색으로 피부를 태운 부하로 보이는 여자가 그녀를 일으켜 세운다.


"그럴리가, 애초에 여긴 사유지로 절대 못찾는.."


말을 하다 멈추더니 나를 째려본다.

그러게 누가 먼저 배신을 하래?


"비겁하군요! 겨우 목숨을 유지하려고 같은 팀도 뭐도 없이 다 팔아버려요?"

"나는 그쪽처럼 언니~ 언니~ 하면서 가족놀이를 하지는 않아서"

"이이이- 철수, 철수한다! 신속하게 나가.."


"모두 총 내려놓고 손 들어! SFO다!"


"얀순아, 어때? 영국의 중대범죄수사청은? 곧 인터폴이나 CIA도 올거야! 우리 데이트는 거기서 이어서 할까?"

"당신은 부하도 생각 안하시나요!!"

"전혀, 내가 먼저지. 뭔 부하야, 부하는."


"그러니까, 오른팔이나 되는 사람이 배신한거에요!"

"그래도 부하가 도망치게 도와주느라 꼼지락 꼼지락 잡힌 여자보다는 낫지."

"당신도 잡혀들어가면 무사하지 못할거에요!"

"그쪽도 마찬가지고."


"입 다물어! 당장 손 머리 위로 올려놔!"


"거 참 사나우신 양반들이네."

"아아.. 아버지, 저는.."

"어이쿠, 이제 아빠까지 나온거야? 가족놀이의 끝이네."

"너는 내가 꼭 죽일거야.."

"진짜, 이제는 말까지 놨다? 내가 니 몇년 선배.."


탕-


"입 다물라 했어!"


사고가 빠르게 회전했다.

어떻게 해야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지?

막상 저지르긴 했는데 방법이 없다.

좋게 생각하자. 죽는거보단 낫지 않는다?


"우리 진짜 좆된거 같은데."

"미쳤나봐, 진짜"


탕-


경찰도 슬슬 열받는거 같아서 알아서 사렸다.

그렇게 우리들은 태평양 가운데 악질 범죄범들만 모아두는 수용소로 가게 되었다.


"얀순아, 말 좀 해봐. 얀챈 수용소래, 처음들어보지 않냐?"

"..."

"태평양 한가운데라니. 캡틴 아메리카도 아니고"

"너 때문이잖아!!"

"하하, 화 좀 줄여야겠다. 그렇게 화만 가득하면 결혼도 못해"

"죽어!!"

"묶여있는 채로? 에베베-"

 

악을 쓰며 움찔거리는 모습을 보니 나도 같은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통쾌하다.

죽는것보다 나쁜건 없다고, 이렇게라도 연명해야하지 않겠는가?


실려가는 배는 참 조용히 움직였다.

거대한 지진과 파도를 빼면.


"야, 죽기 싫어서 자수한건데, 이딴 날씨에 움직이면 어쩌란거야!"

"조용히 좀 해!"

"너도 죽는다니까? 난동이라도 피워봐!"

"잡혀가는게 죽는거랑 다를게 뭐야!"


참으로 딱딱하고 고지식한 여자다.

역시 이럴땐 남자인 내가 행동을 해 줘야...


퍽-


어..?

기관장이 순찰봉으로 내 머리를 쎄게 쳤다.

이게 무슨 짓..

얀순이의 꼴사납다는 웃는 모습을 보며 정신을 잃었다.

그러고 보니 웃는 모습은 또 처음보네..

파도는 아직도 세차게 치고 있었다.


-----------


"정신이 좀 들어?"



"누구.."

 

이게 책에서나 보던 이세계 전생인가?

눈 앞에 여신이 환하게 웃으며 나의 안부를 묻는다.

반말을 하는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상관없다. 

새로운 인생의 시작이다!


"괜찮냐고"

"제가 원하는 능력은..."

"눈 뜨자마자 시덥잖은 소리 할 생각이면 차라리 죽어."


많이 들어본 목소리인데.. 누구지?

저렇게 틱틱대며 말하는 싸가지없는 여자는 한 명뿐인데.


"얀순이..?"

"그럼 내가 얀붕이겠어?"

"너 생김새가 많이 변했다?"

"기억안나?"


여자에게 가장 듣기 싫은 말 베스트 1위. 기억 안나?

아무리 내가 짐승남이라 해도 저런 여자를 덥치진 않은거 같은데..

그러고보니 묘하게 얼굴이 빨간거 같고..

나한테 반했나?


"우선 책임은 질 생각이 없다."

"눈 뜨자마자 쓰레기 같은 소리만 지껄이는게 사고로 항문이랑 입 위치가 바꼈나? 왜 똥만 뱉지?"


음. 장난은 이쯤하자.

고개를 젓고는 주위를 살핀다.

일단 몸에 붙어있는 바닷모래들. 저 너머로 보이는 나무들.


"섬인가?"

"조그마한."


미리 일어나서 주위를 둘러봤나보다.

나를 깨운 이유도 알아봐야해


"나머지는?"


말없이 고개를 까닥거리는 그녀를 따라 고개를 돌려보니 해안가에 난파된 우리가 탔던 배와 시체들이 즐비해있었다.


"살아남은건 우리뿐?"

"아쉽게도. 한 명이라도 살아있었으면 너부터 죽였을텐데."

"여긴 어디야?"

"몰라. 무인도인것만 확실해. 작아서 금방 한바퀴 돌았고."

"겨우 돈 몇푼때문에 이게 무슨 꼬라지냐"

"그것도 원수랑 붙어있고 말이지."


당장 할 수 있는게 없어 바닥에 철펄 주저 앉는다.


"사회적 지위든, 돈이든 쓸모없는 곳으로 떨어졌구만.."

"너처럼 놀기 좋아하는 양아치에겐 최악의 장소네"

"마지막에 아빠나 찾는 파파걸보단 낫지."


은근쓸쩍 내 옆에 앉아 자기 무릎에 얼굴을 박고는 말을 한다.

의외로 외로움이 많은 성격인가? 

그래서 목숨이 오가는 곳에서도 가족놀이를 했는지도..


".. 아빠는 부산 통이였어."

"헐, 그 부산고래? 유치한 별명 가지고도 대단한 작자였지.. 아니, 나 니 과거 듣는다 한적 없는데 멋대로 회상이야!"

"그치? 아빠는 대단했는데, 아들이 없었어"

"그니까 안듣는다니까?"


"그런 아빠를 만족시키고자 울산에서 구역을 잡고 시작했는데, 하필 거기는 이미 유명한 조직이 이미 있더라"

"내가 좀 유명하긴 했지."

"유명한것 치고는 내부에 문제가 많아서 쉽게 속일 수 있었어. 완벽한 계획이였는데.."

"완벽한 계획 속 완벽한 사람 이라는 변수가 있었지."


"생각보다 더욱 무식해서 자폭을 할 줄 이야..."

"과거 회상하는 척하면서 놀리는 거지? 그렇지?"

"음. 확실히 말하니 조금은 응어리가 풀리네!"

"멋대로 말하고 멋대로 풀리지마!"


"그렇게 태클만 걸면 목 상해."

"너 진짜 일부로 그러는거야?"

"꺄하하하. 설마 라이벌이랑 이런 대화나 나눌 줄 이야"

"너 참 이상한 성격인거 같아."


회상을 시작할때만 해도 어두웠던 표정이 조금은 풀린 것 같다.

그녀는 마피아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상처받기 쉽고, 감정적인 여자.


"여기서 나가면, 일 그만둬라."

"뭐?"

"내가 니 조직원들 데려가주마. 물론 그 전보다 좋은 대우는 약속하지."

"갑자기 왜 그런 말을 해?"


"너는 여기랑 어울리지 않아."

"..."

"아빠의 기대? 그런게 뭔 상관이냐, 멋대로 사는 인생. 즐기다 가야지. 하고 싶은걸 해"

"넌 아무것도 몰라"

"물론 살아돌아가는게 먼저겠지만!"


그렇게 둘의 무인도 생활이 시작됐다.


......


"인터넷에서 봤는데 집은 그렇게 짓는게 아니라니까!"

"그놈의 인터넷! 아까는 불 지핀다더니 2시간동안 나뭇가지나 비벼댔잖아!"

"한번만 믿어봐, 응? 아, 그치! 너네 가족! 그.. 노란 머리 걔! 걔를 걸고 맹새할게!"

"남의 가족을 멋대로 걸고 넘어지지 마!"


"깐깐하내 정말. 이래서 시집은 가겠어?"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 과일이나 캐 와!"

"네이~ 네이~"


벌써 일주일째다.

이런 생활을 단 한번도 해본적 없는 둘이서 조난 생활을 이어가니 잘 될리가 없었다.

나뭇잎으로 지은 집은 비가 오면 무너지고, 벌레는 너무 많으며 동물이 안보인다.

다행히 식수와 과일은 풍부해 연명을 하고는 있지만, 슬슬 고기 금단증상이 와 가끔 얀순이가 고기로 보인다.

이건 얀순이도 마찬가지인듯, 가끔 나를 깨물고는 모른척하는게 한 대 쥐어박고 싶다.


그래도 역시 시간이 약이라는걸까? 

날 혐오하다시피하던 얀순이도, 어느새 내 주변에서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외로움을 참 많이 타는 여자다.


"어때? 배는 보여?"

"아니"

"너 또 딴 생각하고 있었지?"



웃으며 내 어깨를 치는 그녀를 보고는 역시 그녀는 양지에서 웃으며 보내는게 낫다는 생각을 하였다.


"돌아가면.. "

"할거야. 내 가족이니까"

".."

"특별히, 너라면 연합은 맺어줄 수 있어."

"어울리지 않아"

"너답지 않게 왠 진지야, 우리의 관계는 어차피 이 섬을 나가면 끝! 애초에 적색수배범이 누굴 걱정하고 그러나"

"너는, 아니잖아."

"너랑 같이 잡혀온거면 끝난거지"

"그거라면..!"

"됐어, 수배가 아니더라도 생각 없으니까. 남의 일에 신경 꺼"


그렇다. 내가 왜 신경을 쓰고 있지?

내 모토가 '막 살되, 확실히 즐기자.' 아닌가? 

이렇게 신경을 쓰는건 나와 맞지 않아.


"생각해보니 섬을 나갈 방법이 있는거 같아"

"뭐?"

"다시한번 경찰을 부르는거 어때? 내 입에 칩있다."

"영화대사처럼 말해도 이상하거든? 애초에 경찰을 피해 여기까지 왔는데, 또 부르자하면.. 어? 저기! 저기 배!! 배!"


갑자기 그녀가 방방 뛰며 소리지르는걸 보고는 고개를 돌리니 지평선 너머로 배 한척이 보였다.


"신기루 아니야! 빨리, 소리쳐!"

날 밀며 환하게 웃는 그녀.


"빨리! 빨리! 여기요! 사람있어요!!"


이런 절박한 상황에도, 그녀의 웃음을 마피아 생활을 하며 본 적이 없다는 생각을 하였다.


-----------


"어영부영 돌아올 수 있었네."

"그러게 말이다."

"야, 얀붕아"

"왜"


다행히 배는 우리를 발견하였고, 한국으로 어찌저찌 돌아올 수 있었다.

처음 총격전을 했던 장소에서 이번엔 부하도 없이 둘만이 얘기를 하였다.

씨익 웃어보이던 그녀는 뒤를 돌아 손가락을 하늘로 찌르며 소리질렀다.



"울산은 내가 접수한다! 단! 접수가 끝나면 너는 특별히 부하로 맡아주지!"

"크크큭.. 나 불사의 얀붕이를 제치고 울산을 먹을 수 있을거 같나?"

"너는 좀 중2병적인 면을 고쳐라. 우리아빠도 부산고래라니 그러는데 불사의 얀붕이가 뭐냐. 그럼 나는 불사를 이길 여자다!"


"잘 살아라."

"너도"

"이번엔 배신하지 말고"

"그건 너가 먼저 시작했잖아."


잠시 티격태격하던 우리는 말을 멈추곤, 서로의 얼굴을 보고 한참을 웃었다.

전에 이 장소에선 서로를 죽이다 못했는데, 이렇게 둘이서 같은 장소에 있을줄이야.


"넌 역시 어울리지 않아. 빠르게 접수하고 강제 은퇴시켜줄게."

"그러기엔 내가 책임져야할 사람이 많아서"

"가족 놀이도 그만두고"

"우리 아빠 앞에서는 꼼짝도 못할게"

"누가 부산통 앞에서 혓바닥을 굴리겠냐?"

"그것도 그래 크큭"


"진짜 간다?"

"그래. 비록 내 오른팔은 네 편을 들다 죽어버렸지만"

"내 오른팔도 잡혀갔는걸?"

"퉁?"

"퉁은 무슨 퉁, 내 동생 빼내오면 한번 더 만나줄 용의는 있고."

"누가 너랑 만나고 싶냐, 참나."


".. 아빠한테 가보려고"

"끝까지 말 많네, 진짜."

"돌아올게. 울산으로."

"그녀와의 재회는 최악이었다..."

"크큭.. 안녕"


그래, 기대하지 않고 기대할게.

너라면, 이 세계와 어울리지 않는 너라면 어쩌면 이 곳을 통일할 수 았을지도 모르니까.


----------


그리고 정말로, 그녀와의 재회는 최악이었다.


보고를 하러 온 부하에게 재떨이를 집어던진다.

유리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부하가 움츠라들지만, 상관없이 소리지른다.


"다시 한번 말해봐라! 뭐라고?"

"그, 그게.. 얀순이님의 조직이 반 궤멸.. 이유는 조직의 수장의 직접적인 숙청이라고.."


그럴리가. 그녀가 어째서?

가족같은 부하 한 명 한 명을 소개하며 웃던 그녀가 생각난다.

장난삼아 누구 하나를 건드리면 성내던 그녀가.


"보..보스.."

"뭐냐"

"상대 조직이 궤멸되면 저.. 좋은거 아닙니까?"


부하의 말에 마음이 급속도로 식는다.

맞다. 맞지. 

라이벌이 주는건데.

하지만, 왜 이렇게 답답한거지?


"노는 애들, 아니다 일하던 애들도 반 합쳐서 시급히 통합해라. 잔류 인원들 전부 데리고 오도록. 정중하게 해라. 정중하게"

"예!"


기합이 잔뜩 든 부하가 나가는 걸 한눈으로 훑고는 옷을 입는다.

역시 나는 내가 하고 싶은걸 해야해.

목표는 부산이다.


..........



"이렇게 바로 만나줄지 몰랐는데?"


부산에 도착하기 무섭게, 검은 차량이 나를 감싸 하나의 카페로 데려갔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카페 속, 혼자서 커피를 마시던 얀순이가 앉아있었다.


"할말만 빠르게 끝내고 돌아가"

"이야~ 차갑다 차가워"

".. 난 할 말 없어"


"그렇게 말 많던 여자가 이상해, 그치?"

"..."

"그래, 계속 침묵해봐. 대강 조사는 끝났으니"

"!!"

"야, 나도 보스다. 임마. 그정도도 모를까봐?"

"하지마"


"아빠가 조직을 관두라해서 죽이는 '척'을 하고는 조직을 와해. 살아남은 애들은 나한테 붙으라 명령했다며? 눈물이 다난다. 엉???"

"..."

"참나, 니가 말하던 가족이 겨우 그정도였냐? 이렇게 버릴거면 애정은 왜 준건데!!"


화가 난다.

이유? 모른다.

그냥 가만히 내 앞에 앉아있는 저 여자에게 화가 난다.


"그래, 계속 입 다물고 말하지마! 뭐? 결혼을 해야하니 조신한 여자가 되라고? 참나, 아빠가 그렇게 무섭냐?"

"너가 뭘 알아!"

"어이쿠야, 이제야 언성을 높혀주시네. 내가 이 자리에서 나가는 순간 부산과 울산은 전쟁이다."

"너 지금 무슨 말을 한 줄 알아?"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뒤에 있던 양복들이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당장 취소해, 빨리!"

"헹, 그러고는 못 사는 성격인지라."

"왜 이러는거야? 난 너랑.. 아무 사이도 아니잖아!"

"동업자? 아니면 같이 살아남았던 사람?"

"제발, 여기서 멈춰. 더 이상 가면 그때는..."


"더 이상 갈 수야 있겠는가?"


그녀의 말이 끝나기 전에 한 말이 카페에 울렸다.


"아빠.."


거대한 풍채를 가진 중년의 남자.

그래, 이 남자야 말로 대한민국 뒷세계의 거물.

정재계 모두가 엎드리는 존재.


"젊은이가 패기와 객기를 구분하지 못하는구만"


식은땀이 흐른다.

경찰에 잡혀갈때도, 배신당했을때도 이처럼 긴장되지 않았다.

그때처럼 나에게 위험을 주는 존재도 없는데.


"갑자기 꿀 먹을 벙어리가 됐군? 참 잘도 말하더니만.."

"고래.."

"솔직히 난 자네를 매우 높게 쳐주고 있네. 그 나이에 울산을 먹을 줄이야. 어떤가? 이 기회에 그냥 머리를 박고 내 밑으로 들어오는건?"


예전의 나라면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더 위로 올라갈 수 있는 가장 단단한 연줄.

그치만, 그 옆에서 울먹거리는 얀순이가 눈에 밟혀, 도저히 수락을 할 수 없었다.


"제 대답은..."


주머니에 든 총을 만지작 거린다.


'음! 확실히 말하니 조금은 응어리가 풀리네!'

'특별히, 너라면 연합은 맺어줄 수 있어'

'울산은 내가 접수한다! 단! 접수가 끝나면 너는 특별히 부하로 맡아주지!'


웃음이 나온다. 내가 정에 움직일 줄이야.

총을 꺼내어 그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긴다.


"거절입니다!"



총알이 나가는 화약의 냄새와 함께 가슴에 뜨거운 액체가 흐른다.

내 총알은 그에게.. 


닿지 못했다.


"어리석군. 아쉬운 남자야."


곧장 흥미를 잃었다는 듯, 방향을 돌려 떠나는 그 남자를 나는 눈으로 쫓을 수 밖에 없었다.


"아, 안돼!!"


카랑카랑한 소리가 귓가를 울렸지만 차마 응답할 수 없었다.


"이건 아니잖아, 정신차려봐, 응? 응? 제발!!"


눈이 사르르 감겼다.


------------


슬로우모션처럼 장면이 지나간다.


"제 대답은 거절입니다!"


얀붕이가 어느새 총을 꺼내 발포하지만, 아빠에게 닿기는 커녕 그에게 박히는 총알에 쓰러져버렸다.


"딸아. 알아서 처리해라. 묻어버리든, 바다에 던지든."


모든 흥미를 잃었다는 듯이 나가는 아버지.

아빠가 나가자 참았던 감정을 분출한다.


바보같은 남자. 왜, 나는 울산 전부를 그에게 넘겼는데.

왜 이런 바보같은 선택을 한거야.


빨리, 빨리 치료해야해.

여기는 전부 아빠의 눈이다. 그를 데리고 빠르게 울산으로 간다.

병원은 안돼. 

그를 업고, 그의 조직에 들어가 치료를 지시한다.


사후처리를 잘해놓은듯, 내 부하들도 잘 적응해 있었다.

"언니!!"

달려오는 부하들을 신경쓰지도 못한채, 한 손으로 그를 잡으며 기도하고 기도했다.


아버지가 말한 맞선 상대.

결혼이라는 현실을 처음 마주했다.

가끔가다 얀분이가 장난삼아 말했지만, 딱히 신경은 안썼다.


부산에서 가장 큰 호텔의 옥상을 통채로 빌린 상대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회사 사장의 사촌이였다.

나이차도 16살이나 나는 아저씨.

결국 내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아버지는 날 그저 상품으로 본 것이였다.


밥을 먹는 내내 내 외모를 칭찬하며 자신이 얼마나 잘난지 소개하는 그 남자를 보며 나는 얀붕이를 생각하였다.


경박하고 중2병 걸린 남자.

사실은 생각이 깊고 사소한 것에 신경을 쓰는 남자.

나를 아버지의 딸이 아닌, 온전한 나로 봐준 남자.

나에게는 양지에서 웃는게 어울리다고 해준 남자.


눈 앞의 이 남자가 역겨워 견딜 수가 없었다.


사실은 싫었다. 마피아를 계속 하는 것이.

험악한 남성들의 세계에 들어가는 것이.


사실은 싫었다. 섬을 탈출하는 것이. 

그 곳에서는 아무런 걱정없이 살 수 있었으니까.


사실은 싫었다. 조직을 해체하는 것이.

오로지 나로 존재하며, 내 가족이 있는 곳이니까.


싫어. 싫어. 싫어. 싫어. 싫어. 싫어.

모든 것이 실증이 난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에게 조종당하는 인형. 거부할 수 없다.

그때였다. 얀붕이가 부산으로 찾아온건.

나를 설득하는 그에게 몇번이고 좋다고, 함께 도망가자고 하고 싶었다.


돌아온 결과는 내 앞에 누워있는 얀붕이뿐.


얀붕아, 내 마음을 일찍 눈치채지 못해서 미안해.

나도 이런 감정은 처음이라.

다시 네게로 돌아올게, 조금만 기다려줘야해?



옷 매무새를 가다듬고, 얀붕이에게 키스를 한다.

얀붕이에게 묻은 피가 얼굴에 흐르지만, 신경쓰지 않는다.


"꼭.. 돌아올게"


그때는 다시는 너를 놓치지 않을거야.

아무곳에도 못 가게 내 옆에 너를 붙여놓을거야.

나를 떠나지 말아줘.


-----------


"정신이 좀 들어?"

"...."

"눈만 꿈뻑 꿈뻑 하지 말고"

"데자뷰?"


나 분명 이 상황 어디서 본거 같은데


와락-


그녀가 내게 안겨온다.

그치, 얀순이가 내게 안기는건 항상... 에?


"뭐뭐뭐, 뭐야!!"

"다행이다.. 다행이야.."


흐느껴우는 여자를 내칠정도로 나는 못나지 않았다.


"그보다 갑자기 왠 장발? 어느새 그렇게 길렀어?"


사람의 머리가 저렇게 빨리 자랄 수 없지 않나? 분명 나는 카페에서 얀순이를 만났고, 그녀의 아빠가 와서 총을..


"아!!!! 나 총 맞았는데!!"


윗도리를 벗어 몸을 본다.

수술 자국이 있는 몸.

언제 이렇게 고친거야.


"일어나자마자 갑자기 그러면 조금 부끄러운데.. 눈 뜨고는  첫날이야?"

"좀 낯설다, 너. 누구야"

"얀붕아, 나 내 마음을 깨달았어!"


아직 상황도 잘 모르겠는데 자꾸 옆에서 이상한 소리나 지껄인다.

섬에서 깨어난 나를 본 얀순이의 기분이 이런거였을까?


"얀붕아, 나도 널 너무 사랑해!"

"나도?"

"눈치채지 못해서 미안해, 앞으로 쭉- 같이 있자?"

"아니아니아니, 나는 그런 마음 없었는데?"

"어?"


갑자기 무슨 말인가 싶었다.

나는 동업자로서 그녀가 마음에 안들어 날뛴거지 딱히 그녀에게 연애의 감정이라고는 없다.

눈 앞에는 그녀의 멍한 얼굴만이 있었다.

뭔가 말을 하려는 듯한데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 그런 모습.


"일어나자마 차버린게 됐네.. 뭐, 미안하다. 내가 워낙 잘나야지. 병문안 고맙다, 가볼게? 장발 잘 어울린다."


그녀의 어깨를 툭툭 치고는 환자복을 가다듬고 밖으로 나간다.


"씨발.."


씨발? 내가 잘못 들었나?



"얘들아, 쟤 잡아서 내 앞으로 옮겨라."


뒤에서 얀순이가 담배를 물더니 다리를 꼬고는 누구에게 외쳤다.

그리고 오는건.. 내 부하들?


"요! 건강했었냐? 너네 또 나 나았다고 와준거야? 이거 감동인데?"


이상하게도 부하들은 나를 무시하고는 내 양팔을 붙잡았다.


"야 누가 보스 몸에 함부로 손 대냐?"


부하들은 대꾸도 하지 않고 얀순이 앞에 나를 끌고 갔다.


"아니 뭐하는 짓거리야!"


갓 일어났지만, 화가 나 소리를 질렀다.

잠깐 누운 사이에 무슨 위계질서가 엉망이 돼있어?


"야. 얀붕아."


얀순이가 나를 부른다.


"왜, 또. 짜증나니깐 조용히해봐. 차인 마음은 알겠는.."

"얀붕이 새끼야."

"아 진짜, 너까지.."


짝-


어? 뺨을 맞았다.


"너 지금 뭐하는.."


짝-


"이게 미쳤.."


짝-


"아, 그만해! 아파!"


짝-


"원하는게 뭔데!"


그제야 그녀의 손이 멈췄다.

미쳐버린건가? 전과의 갭이 너무 크다.

부하들 앞에서 쪽팔린다. 힘이 안돌아와 반항을 못했다.


"나는 얀붕이도 나를 좋아하는지 알았지. 헷갈리게 왜 그렇게 행동해?"

"내가 잘난걸 어쩌라고."

"근데, 생각해보니 상관없을거 같더라고."

"아까부터 알 수 없는 소리만 하냐"

"5년이야 얀붕아."

"뭔 5년?"

"너가 잠든지"


그러고보니 그녀의 머리가 많이 자라있었다.

조금 분위기도 어두워진거 같고..


"그동안 무슨일이 있었는지 설명해줄까? 먼저 조직부터 얘기해줄게? 내가 아버지를 이기고 전국 통일을 했어."

"엉?"

"그니깐, 대한민국의 뒷세계는 내가 먹었다고"

"그럼 나는? 내가 설 자리는!!"

"몰라, 그리고 얀붕이 조직도 내가 흡수했어"


너무 쌩뚱맞은 얘기다. 어떻게 5년만에..

그래서 부하들이..


"그리고 우리 사이에 대해서 좀 얘기해봐야할거 같아."

"나는 너가 보스라고 해도 딱히 마음은.."

"그치만 우리 아이도 있는걸?"


그녀의 뒷말에 말문이 막혀버렸다.

아이라니? 난 결혼은 커녕 관계도..


"아! 우리 결혼도 했고, 자는 사이에 내가 힘 좀 썼어. 앞으로는 얀붕이가 좀 써줘야해?"


이건 꿈이다. 내 파란만장할 미래가 저런 사이코에게 잡힐리 없어


"야. 씨발. 대답하라고"


"요,욕은 왜 해..."


이상하게 움츠라든다. 왜 이렇게 무섭지?


"하, 벗어. 넌 좀 맛 좀 봐야해"


기절하기 전과 너무나 다른 그녀의 모습에 나는 저항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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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종합 : https://arca.live/b/yandere/207587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