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부터.


늦은 저녁 퇴근해 집으로 돌아오면, 현관 바로 앞에 보란듯이 오나홀 하나가 굴러다니고 있다. 나 혼자 사는 집이고, 야동 정도는 검색하지만 자위기구는 거들떠 본 적 없는 내 입장으로선 익숙해졌더라도 당혹스럽기 그지없긴 하다.

아마도 또 이웃의 누군가가 친 장난이겠지. 입주자의 전원이 미혼자고 절반 이상이 몬무스다. 애초에 반쯤 결혼 장려를 위해 만들어진 미혼자 우대 원룸 맨션이라 다른 남성 입주자들도 이웃들의 유혹을 받는 모양이긴 하지만.


"이거는 뭐 과감한 건지, 소극적인 건지..."


결혼 상대를 찾는 목적인 만큼 유혹은 대담하더라도 정석적으로 이루어진다. 인사하는 겸 은근히 살결을 드러낸다던지, 이웃끼리의 정이라며 선물 공세를 한다던지, 외출할 때 자연스럽게 따라나가 데이트를 한다던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일단 자신의 방으로 불러들이고 본다던가...

실제로 그런 식으로 맺어진 이웃들은, 내가 직접 본 것만으로도 이미 손으로 셀 수 있는 수준을 넘었다. 잠깐 눈이 마주쳤다 싶으면 유혹하고, 유혹에 넘어갔다 싶으면 결혼까지 직행. 그렇게 해서 축의금을 받고 강제퇴거 아닌 강제퇴거를 당한 커플을, 1년 가까이 살면서 열 쌍 넘게 봐온 것이다. 최단 기록이 아마 입주 3일만에 였던가.

하지만 나한테 그런 유혹은 일절 없고, 며칠 전부터 누군가 몰래 갖다놓는 오나홀 하나가 전부. 아예 아무 관심도 못받는 것보단 낫다는 것이 남성으로서의 자존심이 뱉어낸 일말의 안도감이 있긴 했지만, 역시 빈집에 누군가 들어와 야릇한 물건을 두고 간다는 께름칙함이 내 심정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대체 누구지, 이런 걸 만들 사람이."


이 해프닝의 가장 기이한 점은 도저히 범인을 특정할 수 없다는 점이다. 여태까지 받은 오나홀 중에 기성품은 단 하나도 없었다. 슬라임의 젤리로 된 것, 파충류의 허물을 감은 것, 꿀과 밀랍을 뭉친 것, 푹신한 털뭉치를 주머니에 담은 것, 정교한 기계로 장기의 움직임을 재현한 것, 거미줄 같은 것으로 만든 고치 같은 것 등등...

마물의 소재를 재료로 한 성인용품이 상용화된 현 시대라지만, 어느 것 하나 기성품과 일치하는 것이 없었다. 오히려 몇몇은 오나홀로 써도 되나 싶을 정도로 엉성하게 만들어져 있어서, 그것들이 누군가의 수제품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알 수 없어진다. 만약 자신의 성적 매력을 남모르게 표현하고자 이런 거라면, 자신만이 만들 수 있는 소재를 이용할 게 분명할 것이다. 하지만 매번 다른 종족의 소재를 사용한 오나홀이 놓여있다는 것, 그것도 죄다 이 맨션의 거주자로부터 구할 수 있을 만한 소재로 만들어져 있다는 것은 추측에 대한 혼란을 가중시킬 뿐이었다.

설마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명이 벌인 짓인지. 아니면 유혹이라는 것은 그저 나의 확대해석일 뿐이고 실상은 질 나쁜 장난인 뿐인 것인지...


"오늘은... 우앗, 뭐야 이거."


평소처럼 오나홀을 집어든 나는 생각도 못한 감촉에 소스라쳤다. 반사적으로 내던져버린 축축하고 물컹한 그것의 한쪽에는, 매끄러운 촉수 다발이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리고 있었다.


"말미잘...인가?"


마음을 추스린 나는 다시 오나홀을 집어들었다. 아니, 말미잘을 집어들었다. 확실히 원통형이기도 하고 촉수가 나있는 쪽에 구멍이 있어 오나홀로 쓰려면야 쓸 수는 있겠다만...

이젠 오나홀조차 아닌거냐고. 아니, 그 이전에 살아있는 생물을 갖다놓으면 이건 진짜 어떻게 처리하라는 거지?


"하아, 못살겠다 진짜."


역시 나는 이런 장난이나 당할 매력없는 남자인걸까. "혹시 써봤니? 나의 XX로 만든..."이라며 유혹할 몬무스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 내가 바보인걸까.

일단 말미잘을 책상 한켠에 내려두고 컴퓨터의 전원을 켰다. 인터넷에 '말미잘 버리는 법'을 검색해봤지만 신통한 정보는 나오지 않았다. 그냥 적당히 잘라서 버려야 하나? 하지만 살아있는 걸 자르거나 하는 건 해본적이 없어서 영 불안한데.


"..."


자꾸만, 촉수를 꿈틀거리고 있는 말미잘을 향해 시선이 간다. 물 속에 있는 것도 아닌데, 마치 물결에 흔들리듯 천천히 몸을 흔들며 촉수를 열심히 움직이는 그 모습은 기괴하기도 했지만... 어딘가, 꼴리는 느낌이 있었다.

그러고보니 오나홀을 잔뜩 받기는 했지만 전부 쓰지도 않고 버렸었지. 이것도 선물이라고 친다면, 역시 그냥 버렸던 것은 무례한 반응이었을까?


"뭐, 한 번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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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말미잘을 오나홀 삼아서 자위를 했다고요?"

"네."

"그리고 사정할 쯤에 촉수에 쏘여서, 독에 온몸이 마비되었다..."

"......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나를 진찰하고 있는 바포메트에게 대답했다. 지금 내 표정은 누가 봐도 세계에서 제일 쪽팔림과 절망감으로 가득 차있을 것이다.

생전 하지도 않던 짓을 저지른 결과, 나는 훌륭하게도 함정에 걸려 이런 꼴이 되고 말았다. 절정과 동시에 말미잘에 쏘인 내가 꼴사나운 비명을 질렀고, 그 비명을 들은 이웃의 몬무스들이 바로 쓰러진 나를 발견해 병원으로 이송해준 것은 불행인지 다행인지...

독의 영향이었는지, 병원에 실려가는 동안에도 멈추지 않고 사정하고 있던 모습을 맨션에 사는 모두에게 보인 것은 확실하게 최악의 불행이지만.

심지어 지금 나를 진찰하는 글레일리아 사바트의 마녀마저 병원일로 바빠서 여태 얼굴을 마주한 적이 없었을 뿐, 같은 원룸에 사는 이웃이었다. 그것도 내 바로 옆집. 치료만 끝나면 바로 이사갈 준비부터 해야겠군, 시발.


"대단한 독은 아니니까 한 10분쯤 있으면 자체적으로 해독이 될거에요. 오빠 정도의 체력이라면."

"하아, 그렇습니까."

"뭐, 사정이 멈추지 않는 부작용은 예상하지 못했던 거지만 말이죠."

"아, 그 얘기는 하지 말아주세요. 다시 생각만 해도 죽고 싶어지니... 네?"


무심결에 그냥 넘어갈 뻔한 말에, 나는 화들짝 놀라 그녀를 바라보았다.


"제가 만든 마비약이니까, 효과 정도는 확실히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거든요. 설마 그게 말미잘의 무해한 독이랑 상승효과를 일으켜서 오빠를 그렇게 만들 줄은 몰랐고. 일단 그 부분에 대해선 사과할게요."

"아니, 잠깐만요.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에요?"


실마리가 풀려가는 것을 알면서도, 당혹스러움에 머릿속이 어지러워져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니, 뇌가 이해하려는 것을 거부하고 있었다.

마비된 몸을 어떻게든 움직여보려고 움찔대는 사이, 마녀는 여태까지 무언가를 적고 있던 종이를 뜯어내 공중으로 날렸다. 진찰 내용이 적히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그것은 마법적인 검은 불꽃으로 타오르면서, 그 잿가루가 그녀의 위로 인분처럼 내려앉았다.


"저는 항상 병원에서 일하느라 바쁘니깐요. 얼굴도 보기 힘든 남자한테 추파를 던질 여유는 당연히 없었고.

할 수 있는 건 다른 마물들이 손대지 못하게 으름장 놓는 정도? 그것도 건물주가 같은 사바트의 키키모라님이라 대신 해줘서 가능했던 거죠.

근데 며칠 전에, 발상의 전환이라는 것을 경험했어요. 내가 만나러 갈 수 없으면, 나를 만나러 오게 만들면 된다고.

그래서 만든 거에요. 마비독을 살짝 첨가한 오나홀을. 오빠의 취향에 대해서도 파악해볼 겸 해서 말이죠."


그녀가 입고 있는 백의가, 검게 물들어간다. 그리고, 의복이라 하기 어려운 이형으로 변해간다.


"뭐, 약간의 사고가 있긴 했지만. 목적은 제대로 달성 했네요. 설마 오빠가 그런 취향일 줄은 몰랐지만..."


꿈틀거리는 촉수로 된 옷을 걸친 그녀의 얼굴엔, 아까까지의 이지적인 의사로서의 표정 대신, 사바트의 일원으로서의 음란한 표정이 떠오르고 있었다.


"자 그럼 10분 동안 사죄의 의미로, 오빠 취향에 맞춘 촉수 플레이를 해드릴게요♥"


아아, 나는 철저하게 그녀의 '장난'에 가지고 놀아졌구나.

아아, 나는 넘어가선 안될 악동의 '유혹'에 넘어가고 말았구나.

어린 소녀의 육체가 질척이는 촉수들과 함께 내 몸 위에 겹쳐지는 것을 느끼며,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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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은 글레일리아(의료) 사바트에 속해있지만, 크로페를(흑염소) 사바트에도 어울릴만한 성격을 지니고 있는 마녀쨩이라는 뒷설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