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라이브



이야기의 끝. 마지막에 용사가 물어왔다.


"아마, 그렇겠지. 이제 모두 끝났으니까."


약속된 엔딩이었다. 이 세계가 게임이라는 것은 진작에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착실히 쌓아나가서 끝냈다. 아주 좋은 이야기다.


불행한 이, 하나도 없고 모두가 행복하다. 이 보다 좋은 엔딩은 있을 수 없었다.


"그건 불합리하잖아요. 이제 겨우 행복해질 수 있는데. 여기서 끝이라니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하지만 너넨 아니잖아. 내가 보기엔, 끝이지만."


"....그런가요. 우리들은, 우리들을 행복하게 만든 사람도 잊고 멋대로 행복해지는거군요."


"그런 식으로 표현하지마. 원래대로 돌아가는거지."


"당신은 괜찮은건가요?"


"아, 뭐. 원래 내가 있던 곳도 아니니까."


내게는 돌아갈 현실이 있었다. 아쉽지만 그렇다. 이곳에서의 추억도, 사람들도 모두 평생 잊지 못하겠지. 이곳의 힘도, 마법도 모두 잃어버리겠지만....


"괜찮아. 그래도 너네들이 행복해질 수 있잖아?"


"....."


용사는 말이 없다.


해가 뜨고 있었다. 눈이 부셔온다. 이제, 이곳에서 보는 마지막 태양.


"잊어버리면, 괜찮아. 잊어버렸다는 것도 잊어버릴 테니까."


"당신은, 잊지 않는건가요?"


"글쎄? 의외로 금방 잊어버리겠지."


"....그건, 섭섭하네요."


"흥 뭐. 한편으로는 속 시원하네. 더 이상 힘든 일은 안해도 된다는거니까."


고생도 많이 했다. 죽을 고비도 많았다. 아니, 실제로 많이도 죽었지.


"....그렇군요. 우리들에게 돌아갈 장소가 있는 것처럼, 당신도 그런거겠죠."


"그런거지. 너도 금방 곧 좋은 사람 만나겠지. 왜, 저번에 그 사람."


"아, 그 사람이요. 네 뭐. 좋은 사람이긴 합니다만."


용사는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지금 그런 이야기를 해야겠나요."


"....."


나는 말 없이 용사를 꼭 껴안았다.


"흣..."


용사는 조금 놀란 기색이 있었지만, 나를 밀어내지는 않았다.


"그럼, 이러고 있을까."


"...네."


태양이 뜬다. 이제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시야가 흐려졌다.


게임의 엔딩은 기억하고 있었다. 아침해가 뜨고, 햇살이 비추는 가운데, 두 남녀는 입을 맞춘다. 그것이 정해진 엔딩. 수순을 따르기만 하면 그걸로 끝.


용사의 얼굴이 가까웠다. 숨결이 느껴진다. 색, 색 하고. 용사의 숨결이 결에 닿는다.


평생 잊지 못할 당신의 향기.


"절대 잊지 않을게."


"...."


용사가 눈을 감는다. 그리고, 나도 그 입술에 얼굴을 가까이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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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천장이라는 말을 쓰게 될줄은 몰랐다.


병원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눈을 떴다. 곁에 있던 여동생이 깜짝 놀라 의사를 호출하고 부모님도 부르고 난리도 아니었다.


며칠간에 걸친 검사를 통해서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판정 받아 조금 안정 후에 퇴원할 수 있게 되었다.


병원 생활이란 지독히도 심심했다.  나는 게임속에 있던 동안 가사상태였다고 한다. 식물인간상태나 다름 없다고 하니 깨어난게 기적이라나.


말만 들으면 참 흔하고 재미 없는 이야기다.


여동생이 갖다준 태블릿으로 유튜브나 때리고 있을 때 병실의 문이 대뜸 드르륵 하고 열렸다.


"잠깐만요! 함부로 들어가시면 안돼요!"


그런 간호사의 단말마가 들려온것 같았지만, 누군가는 내가 입원한 병실에 들어와 문을 닫고 잠가버렸다.


누군가가 돌아보았다.


순간 내가 헛것을 본다고 생각했다.


"어...?"


그렇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것은, 내게 말을 걸었으니까.


"꼴이 말이 아니네요."


"용사?"


"네. 여기에 왔어요."


"아니, 하지만.. 어떻게?"


기적이라도 일어났다? 그렇지만, 그런 형편 좋은 이야기가 갑자기 마구 일어나는 것도 이상하다. 그럴리 없는데.


"기적도 뭣도 아니에요. 당신이 전송된 것도 일종의 마법이었으니까."


마치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용사는 담담히 이야기했다.


"그 말은..."


"분석했어요. 당신을 잊기 전에. 그리고 따라했어요."


"뭐?"


"제 연산 능력을 아득히 뛰어넘었다고요. 갖고 있던 모든 크리스탈을 다 사용하고서야 간당간당했지요."


용사는 내게 다가왔다.


아, 맞다. 용사는 그랬다. 천재인 주제에 노력까지 하는 인재.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것은 반드시 얻어야 하는 욕심쟁이.


"그렇지만, 그럴 가치는 충분히 있었어요."


용사가 내 손을 꼭 잡는다.


허상이 아니다. 망상도 아니다. 그 손은 따뜻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여전히 잊지 않은 당신의 향기.


"어딜 멋대로 도망가고 그러나요? 절대 놓지 않아요."


나 역시, 용사의 손을 꼭 쥔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평생 놓지 말아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