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화]


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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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 수기]
















[3527년 7월 5일]


창 밖엔 끝없이 깊고 어두운 우주 속에....

고요히 별들만이 반짝이고 있다.



그리고 이 고요한 공간에 홀로 항해하는 함선이 있다.

그리고 그 안에 내가 있다.



너무나 조용해서 함선에서 무겁게 울려퍼지는 기계음만이 감돌고 있다.

나는 그렇게 고요한 함선의 함교에서 오랜만에 여유를 느끼며 차를 마시고 있다.

네레이드와 세이렌은 내 앞에 있는 항해사 좌석에서 함선의 각종 기능을 조종하고 있다.



부사령관....아니... 이제는 독립스파르탄부대인 크림슨의 사령관인 그이와 오르카 자매들은 방금 전 어떤 행성에 착륙해서 전투를 벌이고 돌아와 쉬고 있다.  



나는 이곳에 와 정신차려보니 어느덧 작은 호위함의 함장이 되었다.

뭐... 이쪽 세계의 인류 기준으로 호위함이라고 하지만 실은 길이 400m가 넘는 초대형 함선이다.

워낙 이 세계의 전함들이 적당히 커야 말이지. 어떤 전함은 5km가 넘으니...



부사령관과의 재회는 사실 좋지 않았다.

아니, 사실은 좋았다. 

부사령관이 살아있음에 대한 기쁨과 다시 만난 반가움이 느껴졌다.



하지만 동시에 부사령관에 대한 끝없는 원망이 앞서 느껴졌던 좋은 감정을 덮어버렸다.

대체 어디로 사라지다 이제서야 나타났는가...

왜 더 빨리 우리를 구할 수는 없었는가...

나를 포함한 살아남은 자매들이 부사령관을 향해 한목소리로 오열했으나 부사령관은 그저 미안하다는 말 뿐이었다.











부사령관은 그저 무미건조한 회색의 전투복과 헬멧 안에서 표정을 숨긴 채 힘없이 사과를 할 뿐이었다.






그 이후 모두가 조금씩 마음을 진정시키고 그간 부사령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어보기로 했다.



사연인 즉슨, 부사령관은 사실 우리가 살던 세계의 사람이 아니었다.

정확히는 평행우주? 뭐라고 하던데... 아무튼 또 다른 세계의 인류라고 했다.

과학이 극도로 발달하고 여러 외계종족의 기술을 흡수하여 발전에 발전을 거듭한 결과 은하계의 절반을 차지한 인류말이다.

그리고 부사령관은 사실 스파르탄이라고 하는 초인 전투부대에서 휘하 화력팀을 지휘하던 사람이라고 했다.



처음엔 스파르탄이라고 하여 AGS스파르탄을 말하는 건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다.

이곳 인류는 일련의 선발과정을 통해 인원을 뽑고 그들의 신체를 강화하여 외계종족과의 전투에 투입한다고 했다.



아무튼 부사령관은 그런 초인전사 중 한명이었고 숱하게 전장을 구른 베테랑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것도 우주를 누비며 미지의 외계종족들을 도륙내는...



나는 그에게 물었다.

어째서 우리가 사는 세계로 왔는지.



부사령관은 이곳의 인류가 고대종족... 그러니까 인류를 포함한 현재의 외계종족보다 훨씬 이전에 발전한 종족이 남긴 기술 중 평행우주에 관련된 기술을 우연히 발견했다고 했다.

본래는 다른 우주의 에너지까지 끌어다 쓰는 기술이라고 했지만 인류는 연구 끝에 그것에서 더 나아가 아예 다른 우주로 넘어갈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냈다.

 


아무튼 이곳의 인류는 곧바로 또다른 우주에 자신들과 같은 인류가 있는지부터 파악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를 발견했다.

문명수준은 자신들보다 훨씬 뒤떨어지고, 그것마저 왠 기계생명체들한테 점령당해 멸망했고, 극소수의 생존자집단이 근근히 저항하는 모습을 말이다.



그래서 부사령관이 온 것이었다. 

우리쪽 지구에 무슨 일이 벌어졌고, 왜 그런 일이 벌어졌고, 남은 인류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파악하기 위해서.



원래라면 딱 그렇게만 하고 부사령관은 돌아갔어야 했다.

하지만 부사령관은 스스로의 정의에 부합하기 위해 조금 더 우리쪽 지구에 남기로 정했고 그렇게 우리를 도와 저항군의 세력확장을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물론 원래 인류에서 하는 것처럼 초인적인 전투력으로 철충들을 쓸어버리는 건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우리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능력을 숨긴 거겠지...)



하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서 터졌다. 부사령관의 인류쪽에서 외계세력의 봉기가 일어났다고 했다.

과거 인류와 외계종족간의 전쟁에서 패배한 어느 외계종족 잔당들이 암암리에 세력을 규합하고 봉기를 일으켰다고 했다.

봉기가 워낙 기습적이고 피해규모도 너무나 커서 부사령관 또한 다급히 소집되어 봉기 진압에 나서게 되었다고 했다.

너무나 긴급한 상황이라 우리에게 작별인사도 못하고 아무도 모르게 홀연히 사라진 것이 이것 때문이었다.












하지만 인류의 예상과는 달리 외계잔당들의 봉기는 쉽사리 진압되지 않았고 여기저기서 사상자가 속출했다고 했다.

결국 인류는 다른 외계동맹세력과의 합의로 어떠한 우주병기를 가동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그 병기 때문에 부사령관은 우리에게 돌아오지 못했다.








인류는 봉기한 잔당세력들 앞으로 어떤 고리모양의 우주구조물을 배치한 후 곧바로 그것을 가동했다.

그리고 그 구조물에서 발사되는 파장이 잔당들을 덮쳤고 잔당들은 파장에 맞자마자 그들이 딛고 있던 행성과 함께 원자단위로 분해되었다.



그리고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부사령관의 우주와 우리쪽 우주를 이어주는 게이트가 있었는데 하필이면 링 구조물이 발사한 파장 사정거리에 아슬아슬하게 닿아 같이 파괴되었다는 것이다. 구조물과 게이트 간 거리가 무려 5광년이었는데도 사정거리가 닿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돌아오지 못한 것이었다.

그리고 겨우겨우 게이트를 복구하여 다시 우리쪽 우주로 와보니 지구는 박살이 나있었고, 그나마 생존이 확인되어 포트에 몸을 맡기고 우주에 떠 있는 우리를 발견하고는 부랴부랴 구조를 했던 것이었다.



사연을 들은 우리는 이제서야 부사령관의 심정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부사령관은 자책하고 있었다. 자신의 능력이 정말로 필요한 이들에게 행해지지 않았음에 죄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 부사령관의 감정이 우리에게도 느껴지자 네레이드가 먼저 부사령관을 안아줬다.

그리고 너나 할 것 없이 우리 모두 그를 안아줬다.



나는 그에게 이제부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보자고 제언했다.

그 말은 들은 그는 그저 고개만을 끄덕이고는,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걱정하지 않았다. 

이제는 부사령관의 능력과 진심, 그리고 강인한 의지를 알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