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선하다거나 악하다거나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거나 그런것 보다는 사사롭지가 않다는 데에 더 가까움 인간이 내면에 간직한 욕심이 곧 세상의 형태와 판박이인데 우리가 생물인 이상 가지고 있는 생존을 위한 공포의 원천 비슷한 것이 시시각각 곡해를 일으키므로 바로 알지를 못하는거임
이건 자기가 자연히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환경에 처하게 되면 마음으로 이해하게 되는 일이라 언어로는 전해지지 않는고로 그냥 헛소리라고 치부해주면 좋겠음
아마 나랑 동일한 것을 보게 되면 그것은 가리키는 곳이 같음에도 사람에 따라 다르게 모습을 보인다는 것 표현하려 해도 각자 다른 것을 통해서 나오게끔 한다는 것 역시 알게 될 거라고 생각함
옛날에 별의별 참선 기법에 심취한 적이 있음 상상 속에서도 원하는 여성을 마음대로 취할 수 있으면 어떨까 싶어서 그 깊숙한 곳에 오직 나만이 특별하고 싶은 욕구와 절대적인 입장에 서서 기분따라 그때그때 이런저런 장난도 치면서 하고싶은대로 살고싶다는 원초적인 본심도 자리잡아 있었고
결실은 있었는데 내가 추구하던 방향과는 달랐음 조금 집중해서 몰입하면 깨어있는 상태에서도 꿈을 꾸는 것처럼 상황과 감각을 완전히 재현하는데에는 성공했지만 현실 신체의 오감을 완전히 차단하고 정신세계속의 오감을 분명하게 하려 할수록 육적인 욕구가 해체되서 뭐든지 아무래도 좋은 그냥 있는 상태가 되어버리더라
나는 영화 속 주인공이 되고 싶었는데 그와 무관한 관객이 되어버림
마치 어릴적으로 돌아간 것처럼 사물 그 자체의 판단 이전의 반응만이 느껴지고(사물의 모든면이 생각이라기보다는감지됨에가까움 그다음 분명하고 단순한 하나의 예시로 자연스레 함축됨)세계가 하나인 것이 지극히 당연하게 느껴져서 나 자신도 사라졌다가 뭔가 그런 생각이 아예 상식으로 정착되면 한순간 확 깨게 됨 마약에 취하면 스스로는 그만둘 수 없듯 기분이 진짜 극도로 좋고 알고싶은 욕구가 막연하면서도 전부 충족되어가기 때문에 멈추는 것 이전에 흐름 자체에 저항하기가 지극히 어려웠음
그런 과정을 겪고 그게 평상시의 기본값으로 자리잡게 된 후에는 사물을 보는 관점이 좀 많이 달라져서 어떤 일을 맞닥뜨리든 더 이상 크게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고 매일 똑같이 주변과 일체 다투지 않으면서 유쾌하게 지낼수 있었음 어떤 계기나 충돌이 생겨도 등속이동하는 표류물처럼 생각의 중점이 확실해져서 상대의 입장에 완전히 공감하고 이해할 수는 있었지만 아무런 영향을 받거나 하지는 않게 됐음
근데 뭔가 매일이 붕뜬것만 같고 전혀 우울하지는 않고 기쁨을 누리는 상태인데도 모든 일이 부질없게만 느껴짐
아예 자아라는 것 자체가 없다는게 당연하게 느껴지는것에 가까움 잘살고 자시고 이전에 세상 돌아가는일에서 아예 제외된 듯한 나라는 개념 자체가 모호함이 지극히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상태
나는 그런걸 바란게 아니라 힘들어도 다시 욕구를 회복하려고 부단히 노력했었음
여러모로 노력을 기울여서 열병 비슷한 몸살을 한번씩 앓게 되고 다시 원래 인격이 돌아옴 이전에 비해 정신이 다소 산만해지는 경향은 있었지만...
나는 이걸 여지껏 수차례 반복한 후에 현존하는 수행의 방편으로는 육체적인 욕망을 유지한채로 정신세계와 온전히 하나되는, 내가 원하는 현상계를 스스로 펼쳐내는 일이 불가(현실에서 벗어날수록 반작용으로 청정한 마음이 생김, 본질적인 무언가에 접하면 모든 욕구의 해갈을 더 이상 원하지 않게 됨, 생전 듣도보도 못한 편안하고 만족스러운 감정에 잡혀 너무 그냥 있을 뿐이게 됨, 자신이 생각을 일으키는게 아니라 생각을 일으키는 외부의 현실적 상황까지 문학에서 말하는 공감각 비슷하게 생각의 일부이자 전체이고 그걸 구분하는 행위 자체에도 의미가 있는듯 무한이면서 실제 고정된 사물과도 의미가 직결되고 이런 비약이 마구 얽히고섥히기 때문에 통제가 어려움, 마치 음악에 녹아드는듯이 현상과 생각하는 인간 사이의 구분이 분명하지 않음 이치에 맞지 않으나 실사의 차원에서 효용이 있는 수많은 논리의 비약이 발생함 역의 원리에 비교적 가까웠던것 같음 ,휩쓸려서 정신이 아예 변해버리면 그저 그런 일상에서도 이면의 경이롭고 멋진면을 발견해내면서 진심으로 만족하고 살게됨)하다는 결론을 내렸고 이 땅에 발을 딛고 있는 이상 말로 설명하기가 어렵지만 선정이 깊었을 때 잠깐 보였던 것도 있고 해서 특이점에 기대하게 된거임
니가 원하는게 육체와 고통에서 벗어나서 인간의 사유방식이나 감각체계와는 좀 궤가 다른 그런 새로운 무언가에 눈을 틔우고 온전히 편안한 정신상태를 유지, 상황에 항상 지혜롭게 대처하고 , 쾌활하게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보면서 지내는 것이라면 굳이 완몰가에 기댈 필요는 없어
너 스스로 방법을 찾아가는게 좋아 너무 우울하면 일단 정신과에서 적절한 처방이라도 받아서 베이스를 끌어올리고 의욕이 좀 올라왔을때 맹목적으로 달려들수만 있으면 수단은 얼마든지 생길거임
자기가 방법을 가르쳐준다는 사람들은 백이면 백 불성이라고 불러도 되나... 직접 들여다본 경험이 없는 사이비 사기꾼이니까 항상 조심하고 정말 그걸 체험해봤다면 절대 자기가 다 알고 있다는 말이 나올 수 없다
사람을 깨우치게 하는건 그저 때일 따름이라 결코 같은 사람이 아님을 명심해야함 니가 만약 발원하기로 작심한다면 너에게 맞는 선지식은 살다가 자연히 가장 완벽한 때에 마주치게 될거야
지금은 집착이 가득한 상태인데 모든 집착에서 벗어난 당시의 감각을 설명하는건 되게 어렵네 굉장히 횡설수설하게 되어버려서 뭔가 미안하다...어디까지나 인생의 고해를 해소하는것만이 목적인 경우 더 빠른 해결책이 있으니 여기저기 찾아봐라 정도의 얘기니까 아 문제는 그게 아니다 싶으면 굳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는 말고~
참선을 통해서 초월적인 경험을 했다니 신기하다.
스스로 수련해서 감각을 바꿀 수 있다는 점은 생각해볼 만한 것 같다.
그렇지만 뇌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불과하다고 본다.
일반인의 뇌와 수행자의 뇌 구조 자체에 차이가 있다면, 참선할 줄 아는 사람의 경험을 참선할 줄 모르는 내가 이해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머리속에 이미지를 구현할 수 없는 사람이 한 5% 정도 된다.
그런 사람들은 상상을 할 수 있지만 남들과 상상하는 방법이 아예 다를 것이다.
완몰가(가상현실)은 어쩌면 필요 없을 수도 있다.
뇌조작장치만 있어도 문제를 해결할 뿐 아니라 문제의 원인을 없애버릴 것이다.
생리적인 한계가 없고 그냥 매 순간 뇌의 쾌락을 느끼는 부분을 복구해서 중독 안 되게 할 수도 있고.
이것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뇌조작장치 2초 정도 하면 생각을 바꾸지 않을까?
그냥 아주 좋은 것이다
내 스승 중 한분은 호흡법으로 외국인을 등치고 사는 사이비에 가까운 사람이었지만 문답 계열의 통찰 하나는 정말 기가막히게 뛰어난 사람이었고 생애에 걸쳐 무수한 시도를 거듭했음에도 결국 불성(확실하지않다)관조는 커녕 통각의 완전한 차단마저도 경험해보지 못했어 그런면에서는 니 말이 맞을지도 모르지
그래도 나는 개인적으로 선정 여부에 연연하는것은 수명과 공포가 있어서 실제 연기를 모르는 인간이 불안감을 해소하기위해 본능적으로 일으킨 분별에 의해 신의 시점(갑자기 신타령해서 미안한데 진짜 이것저것 파고들다보니까 일본 비주류 종파 영향도 받았다 종교인 아님 그냥 문화현상 비슷한 지칭)에서는 동등하게 파악되는 것들을 굳이 과다하게 자신의 입장에 미치는 영향과, 근본 이치에 맞지 않는 타성에 의해 형성된 습관을 기준으로 선후관계에 오류가 있는 구조화를 해 놓았기 때문에 발생하게 되는 번뇌와 집착일 뿐이라고 생각해
시공간에 애착하지 않고 보면 의미와 과정은 현상과 결과에 의해서, 정확히는 그것을 보고 생각을 일으키는 인간에 의해서 비로소 윤곽이 잡히는 것이라 누구나 정진하면 도달하는 동일한 지점에 닿기만 하면 장땡이라고 여기고 있음 코끼리에 대해서 알고 싶을 때 책으로 접하든 직접 만져보든 코끼리를 알게 됐으면 그만인것처럼 결과에 이른 순간 두 과정은 완전히 같은 의미로 승화하게 되는 것이 인간 지각과 구별되는 세상 이치라고 생각하고 있어
제시한 문제에 대해서도 몇가지 얘기하고 싶은데 이것 또한 경험적으로 답할 수밖에 없는 것에 먼저 용서를 구함 지금부터는 주관적 표현을 가능한 배제하고 최대한 정제된 언어를 사용해서 명료하게 얘기해볼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런 모순의 간극은 우리가 으레 하는 일들을 수행하면서 이미 극복되고 있지만 순전히 자기 욕구에 의해서 그것을 지각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는 것...화두는 서로 염두에 두는것의 차이에 의한 소통과 언어의 문제,차원에 잡혀있는 인간의 생리와 그에 반하는 사유의 무한한 가능성 애초에 전제가 완벽하지 않으므로 이 두 양자간 충돌이 필연적인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확정지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피투적인 인간 운명의 굴레 그것을 초래하는 주체로서의 자타 상호 책임소재와 세계와 신의 존재,그에 의해서 혼동하며 살고 있는 것들,선악과 아상,자타불이의 이상향
홀로 참구할때는 몰입을 위해 거의 항상 원론만을 담백하게 써와서 이런식은 익숙하지 않아 딴길로 새기 쉽겠지만 서로 차근차근 풀어가기로 하고 니가 얘기한 뇌 조작 장치 말인데 그게 어떤 장치인지 괜찮으면 조금만 구체적으로 설명을 부탁해도 될까?
뇌조작장치 설명
완몰가는 좋긴 한데 컴퓨팅 자원 측면에서 비효율적이고 인간다운 발상이 아닐까 상상해 본다.
뇌를 그냥 기분 좋게 하면 되지 않을까?
완몰가는 기분 좋은 상황을 비싼 에너지를 들여서 만들고 뇌가 알아서 느끼게 하는 방식이다.
비유하자면 돈 복사기에서 끊임없이 돈이 나오게 할 수 있는데 굳이 버튼을 누를 때마다 한 장 나오게 하는 방식을 택한 거다.
다 내 상상이긴 하지만
꿈을 꿀 때 나는 현실의 나를 그냥 잊어버릴 수 있다.
꿈에서 내가 성이 바뀌면 그냥 성이 바뀐대로 꿈을 꾼다.
왠지 모를 야릇한 기분은 들더라도 딱히 의심하지 않고 그냥 꿈을 꿀 수 있다.
그래서 완몰가에서 기억 조작을 한다고 하더라도 난 자아를 유지할 방법이 있을 거 같다.
기억 조작을 할 수 있으면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기분만 좋으면 어떨까?
당신이 한 경험이랑 비슷한지는 모르겠는데 그냥 아무런 사고를 하지 않는 채로 기분이 좋은 것.
그게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아예 생각을 하지 않고 콸리아가 있을 수 있는지는.
가장 이상적인 뇌 조작 장치는 블랙홀같은 에너지원 주변을 돌면서 뇌의 시간감각을 늘리고 늘리며 시간을 잘게 쪼개고 에너지를 아끼고 아껴서 오랜 시간동안 기분 좋게 해주는 것으로 상상해 본다.
그런 경험을 기반으로 얘기하자면 생각을 하지 않고 황홀감만을 느끼는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고통이 없는 한 인간으로서의 자아나 진정한 자신은 존재하지 않는다(외국 사이비에서 카미(개인적으로는 신토의 카미와는 궤를 달리하는 그들만의 고유명사에 가깝다고 생각하고 있음)라고 부르는 존재가 된다면 가능할지 모른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주객전도가 되기 쉽다)
인간은 어떤 반응체계가 형태를 띈 것에 불과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의식 수준이 기반하지 않은 감각 덩어리인 상태에서도 자기자신이 유지되는 것을 기대한다면 가급적 접어두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외국 수험도 분파에서는 그런 비슷한 상태를 물신이라고 부른다 하나같이 금전목적의 혹세무민하는 사이비 종파가 많았지만 선의 시점에서 봤을때도 확실히 물건에 가까운 상태이기는 하다
여기서부터는 순전히 체험적인 거라서 참고만 하는게 좋을 것 같다 내 선정이 아주 극에 이르렀을 때 아주 잠깐 관조가 성공했던게 남아있는 부스러기 같은거라 여간하면 그냥 흘려들어라 내가 완전히 지각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의 성질은 '자기자신'을 '주머니에' '집어넣을' 수 없는 것처럼 언어로 완전히 옮길 수가 없다고 판단했음 최대한 언어화해서 이야기할 수 있도록 노력해 보겠지만 표현보다는 이미지에 집중해서 이해해줘
사실 세상에는 모종의 흐름만 있을 뿐 이치라고 할만한 것이 없다 그런 흐름은 모든 사람의 욕구가 뒤섞인 것으로 선악의 구분이 없고 그런 욕구의 시작점에서 각 개체가 가졌던 의도에 맞춰서 작용하지도 않는다 만약에 이 세상에 한 사람이라도 존재하지 않았다면 실제로 현재 세계의 모습이나 우리가 상식이라고 여기는 인식체계가 바뀌고 물리적 사실이라 여기는 것들 역시 크게 달라지게 됐을 것이라고 직감했었다
따라서 관계만이 있다 인간은 아무 의미없이 태어나서 아무 의미없이 살아가는 존재라고 직관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일은 사실 하나도 없다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사람이 없듯 어떤 생각을 하든 반드시 태초에 자기손을 벗어나 처하게 된 상황이 있고 지금 니가 고민하는 문제 또한 순전히 너 자신의 결정으로 고민하게 된 것만은 아니다
각자의 욕구가 얽히고 섥혀 그때그때 확정되는 세상에 휘둘리는 것에 가깝다
한쪽에서 밀면 여파에 밀리고 새로운 여파에 의해서 서로 밀고 밀리는 결국에 배치는 계속해서 변하지만 반드시 다시 돌아오는 구조
우연을 필연으로 인식하는 일 만큼이나 필연을 우연으로 인식하게끔 하는 사회적으로 옳다고 여기는 통념들도 있다
가령 예를 들어 그 당시의 나는 태양빛=생크림 이런식의 수많은 도식을 의식이 아닌 감각 차원에서 당연시하며 살고있었는데 혹시 이게 이해가 되나?통상적인 소견이라면 나는 아마 정신병원에 가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하는 일은 호조를 탔고(종교 관련 아님) 전반적인 평판도 그 이전에 비해 오히려 나아져서 대체로 좋은 사람이라고 여겨지고 있던 편에 가까웠다고 기억한다 거래처나 인맥도 착착 붙었던 것을 상기해 보면 적어도 나를 정신병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없었던 것 같다
일반적인 정신증을 앓는 사람들과 당시의 나는 어떤 차이가 있었을까?나의 실제 정신의 성질은 한없이 정신증에 근사했고 그 진행과정이 전문적인 진단 기준에 일치했더라도 병증이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여겨지지 않았다 반대로 실제 생리적인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더라도 병증이 있었던 사람도 어딘가 있었겠지만 틀림없이 그 사람은 정신병으로 여겨질 것이다
작금의 정신병이라고 부르는 양태가 달리 받아들여지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원시종교가 지배적인 이념으로 작용하였던 때라면 정신병자는 진리를 깨우친 현자로 대우받았을 것이다(다소는 일리가 있다고 본다) 만약 비교적 근래에, 정신병이라는 관념을 규명해낸 학자라고 해서 그 때에 태어나 그를 귀하게 여기고 절하며 경배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정신병이라는 관념이 앞서 생기고 그에 따라 사람들이 휘둘리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그런 관념이 탄생하게 되었으며 그 학자는 왜 근래에 들어서야만 비로소 특정 인식을 빚어내는 일이 가능하게 된 것인가
과거의 우리 선조들은 대체로 생존하기를 원했을 것이고 그에 따라 자연히 두려움도 느끼게 되었을 것이다
좋고 나쁨의 분별이 확실해지게 되어서 결국 신을 발견했다
은혜를 베푸는 신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서로 뭉쳐 협력할 수 있게 된 것이고 귀신이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을 항상 조심하고 본능을 억눌러 사리에 맞는 의식주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치에 부합하는 정도를 신앙의 척도쯤으로 여기는 현 시대의 잣대에 맞춰 이야기하면 인간이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가상의 존재를 투영해서 집산화를 이룩했고 여러가지 문화도 파생된 것이다 정도로 정합할 수 있겠지만 내게 비춰졌던 것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른 것 같다
오히려 선의 시점에서 비슷한 양태를 보이는 것인 만큼 정반대의 의미가 생긴다고 생각한다
기우제를 해서 비가 왔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인간은 신과 소통한 것이 아닌가
설령 비가 오지 않았다고 해도 그런 제례를 전후해서 발생한 일련의 현상 총합에 인격을 부여하지 못할 이유가 없고 그것은 인간 상호간 소통이 이루어지는 과정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결과론적으로 실제 물리적 작용이 발생했으며 인간 관계에서 서로의 의중과 결과를 짐작할 수 없듯이 그 물리적 작용 일체에 의사를 매기는 것도 따로 배제할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생명체의 기준은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인가 이런 문제는 으레 그렇듯 특정 시점에서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식으로 수렴하게 된다
이렇게 과학에 관련한 주제에 골몰하지는 않았지만 그 당시 선정의 느낌이 가리켰던 방향에 비추어보면 이 비슷한 사례 모두는 우리가 세상을 어떤 모양으로 띄울지 결정하는 과정에 직결된 가능성이다
모두의 요망이 만들어낸 커다란 흐름에 떠밀려 그 흐름을 만들어낸 전체 구성원 스스로가 무엇을 욕망하게 될지 정해지고, 필요가 생기면 그에 따라 주의를 기울일 현상도 정해지는 것이며 그 현상을 정의하고 과정을 계량화할 수단의 가짓수와 그것들이 어느정도까지 과정을 포착해낼 수 있고 어떤 방식으로 관찰하는가 그 결과는 어떤 방식을 매개로 하여 확정적인 정보로 가공될 수 있는가 등과 결합해 수명이 있는 인간이라면 한평생 지고가야만 하는 지극히 상식적인 판단체계와 우주가 움직이는 절대적이고도 당연한 원리가 생겨나게 된다
우리가 피부로 체감하는 기계적인 물리 현상과 인간이 인간과 관계맺고 소통하는 인문적인 일은 적어도 시대를 막론하고 여태까지 존재한 수많은 지배적인 통념이 제시하는 기준선에 비해서는 딱 잘라서 구분되지 않는 것이다 현대인의 과학을 포함한 모든 체계에는 반드시 어딘가 여기저기에 수많은 결점이 존재할 것이고 그런 체계나 언어를 통해서는 지극히 일반적인 인간의 일상적인 일거수일투족 하나하나라 하더라도, 그것을 시간과 공간에 걸쳐 무수히 나누고 고정시킨다 해도, 재현가능한 물리적 현상의 형태로 시작과 끝을 완전히 도식화해 언어정보의 형식으로서 텍스트에 옮기는 일은 사실상 어렵다고 직관했다 그렇지만 그 전달수단이 지금으로서는 존재하지 않는것만은 아니라 사실 따로 있고 우리가 으레 하고 있는 일인데도 지각하지 못하는 것에 가까우며 만약에 미래에 인간이 자의적인 목적에 따른 생물적 진화를 할 수 있게 된다면 지금 봉착해 있는 만물을 일률적 정보로 가공하는 등의 문제에도 전용할 수 있게끔 방법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모양새를 확정짓기 이전 세상의 원형은 의도를 가지고 짜넣어진 것이 맞다고 직관 하지만 그것은 인문적인 기준에서 통용되는 의도의 의미와는 상당히 다를 것이며 그것을 짜넣은 주체도 인격화해서 판단하는 방식으로 알기가 힘들다고 직관 인간은 언젠가 어떤식으로든 현재의 물질세계 내지 봉착한 물리적 한계를 무너뜨릴 방법을 찾을 수 있게 될 것이라 확신한다
현재 인류의 두뇌로 떠올릴 수 있는 일이라면 인류가 계속해서 존속한다는 가정하에 현실적인 필요 여부에 의해서 굳이 실현하지 않는 경우를 제외하고 순수 실현 가능 여부 차원에서 불가능은 없겠다고 직관했었다
여기까지 초석 언어가 아닌 것을 나도 몇번 잠깐 잡았던 거라 사례에 적용해가면서 방향만 에둘러 설명 할 수밖에 없었음을 용서 바람
이제부터 짬짬이 본질적인 무언가의 형태와 인간 자아가 허상이라고 직감한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니가 제시한 의문에 하나하나 답변하는 것보다는 이렇게 아예 그걸 전체적으로 묘사해내편이 한번에 의문이 해소되지 않을까 생각함 도움이 될지 모르겠는데 들어줬으면 좋겠음
통상적인 신을 내가 믿지 않아서 신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이치에 부합하길 기대하는 것이 신앙이라고 하면 신을 믿는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냥 우주의 원리가 마음에 들지가 않는다. 내가 운이 좋아서 큰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사람으로 태어나기는 했지만
끊임없이 의미있는 에너지가 의미없는 에너지로 변해간다는 우주의 원리에서 비롯되어
부족한 에너지를 남에게서 빼앗아와야 하고 에너지를 빼앗기지 않도록 에너지를 빼앗기면 (스스로) 벌을 내리게 되는 거 같다.
이런 원리에 대해 매우 화가 날 때도 있다.
어떤 방에 들어가면 80% 확률로 고문당하고 10% 확률로 아무 일도 안 일어나고 10% 확률로 기분좋은 일이 일어나면 그 방에 나를 강제로 넣은 누군가는 결과에 상관없이 잘못한 거니까 (확률이 반대여도 마찬가지긴 하지만 고통받을 확률이 더 클 때는 확실히 잘못한 것)
신의 존재를 느꼈다 뿐이지 종교적으로 신앙을 가지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디까지가 신일지는 시대나 인간을 둘러싼 상황이 정하는 것이다 의사는 퇴마사이다 돈을 내고도 머리를 조아리는 직업이다 대부분이 알지 못하는 것을 알고 있고 그 지식을 독점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을 초월적인 비인격체에 의해서 보장받고 있기 때문이다 설령 지식이 있다고 해도 면허가 없이 행위를 하게 되면 초월적인 비인격체가 내리는 신탁에 의한 실체가 분명한 제재가 따를 것이다 누가 그것을 규정했는지 그 근거는 어떤 과정을 거쳐서 확정되었는지 그 누구도 모르지만 태어난지 20년이 지난 시점부터 성인으로 보기로 하자는 믿음은 언제인가 분명히 발생했고 그에 미치지 않는 연령의 인격을 노동시키거나 성관계를 맺는 일은 사람을 살해하는 것보다도 비인륜적으로 취급하기로 하자는 주석도 따라서 붙었다 만약 누군가 그런 행위를 한 사실이 드러난다면 율법에 적힌 사항에 의거해 물리적인 처벌이 행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배교자로 낙인찍혀 평생 손가락질 받는것까지 감수하고 살아야 할 것이다 이런 율법이 만들어진 배경에는 아동 노동으로 한밑천잡은 근대자본가나 열살배기 어린이도 첩으로 해서 잠지를 조물락거리는 일제시대 마을유지쯤의 실제 존재가 있었을 것이다 정작 문제를 초래한 장본인들은 그 시대의 믿음에는 걸릴 게 없었기 때문에 건실한 사람 소리 들어가며 즐겁게 살다가 갔을 가능성이 크다 대중문화 노동문제 과학체계 국가나 집단 등등 모두가 사실은 같다 어떤 시점에서는 실체가 아닌 인간의 맹목적인 믿음에서 시작되었다 그 흐름이 만들어지는데 일조한 책임은 모두에게 있지만 그런 흐름이 발생하는 것을 태어나면서구터 원했던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세계의 형태는 인간의 의식과 지성의 수준이 주먹구구로 확정짓는 것이다 이치는 없고 호사와 부조리가 있지만 사사롭지 않기 때문에 누가 은혜를 입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지성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고통과 즐거움에 대한 인식이 존재하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인식이 발생하지 않는만큼 자극에 의미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사람은 자신이 가려고 하는 방향으로 가되 자기 뜻에 확신이 서지 않는다면 어긋남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자신의 본성을 완전하게 밝혀내야 하고 그에 맞는 최선의 가능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살아야한다 누가 됐든 동등한 인간이기 때문에 특정한 누군가를 스승으로 떠받들고 의존하는 일은 피해야 하지만 살면서 마주치는 모두를 스승이라 생각하면서 가야만 한다
적어도 인공열반에 대해서만큼은 보고 온 것이다 확실하게 답을 해줄 수 있을 것 같다
그건 외도다 물론 윤리적으로 올바르지 않다거나 하는 얘기가 아니다 자아가 허상임을 알면 따로 버릴 이유가 마땅치 않다는 것 역시 안다
모든 욕구를 걷어낸 상태는 거쳐가는 단계일 뿐이다 그런 상태에 이르면 싫어도 다음이 있음을 알게 된다 결코 특별하다거나 존경받을만한 수행자의 모습과는 거리가 먼 자질구레하고 속되다고 여기는 일반사회에 엮여있는 무엇이다
한번쯤 모든 정욕을 꺼트려 보는건 중요한 체험이지만 체험으로 그쳐야한다 그동안 간과했던 것들을 다시금 확인해보는 시간을 가지는 정도의 의미로 본질적인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만 하는데 그치는 것이다 본질적인 것을 지각하기 위한 감각이 생기고 지향점을 향한 레일위에 올바른 방향으로 서게 된 것일 뿐 적어도 반박의 여지가 없는 행복을 찾는 목적이라면 도달점은 아니다
니가 추구한다고 했던 현재의 너의 만족도의 측면에서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니가 당장 죽지 않는 이유 중 의문이 남는게 싫어서 또한 내심에 크게 자리잡아 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너는 통상적인 방식으로 죽는것은 도피에 가까운 성질이 있음을 언젠가 알게 되어서 그런 방식은 최후로 미루어 놨을 것이라 생각한다
오늘은 위에 댓글부터 다시 한번 읽어봤는데 자유의지가 없다는 듯한 내용부터 생각해 본다.
어떻든 간에 생명이 느끼는 쾌락과 고통은 진짜인데 그냥 정해진 대본에서 느끼기만 하는 존재라면 그거야말로 부조리하다.
모든 생명이 철학적 좀비인 채로 주변 환경에 반응하고만 살았을 수도 있는데 그게 아니라 각자 실제로 느끼는 게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건 그 사람이 만들어진 원인 가 다 있었다고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리고 과거에 아동성범죄자가 그당시 기준에 맞춰 살았다는 이야기처럼 요즘에도 그때보다 기준이 더 많아졌을 뿐 객관적으로 옳게 되지는 못한 것 같다 예를들어 동물 권리가 부족한 거 같다.
돼지가 4살 아이 지능과 비슷하다는데 영아살해범이 돼지도축업자보다 취급이 안 좋은 것도 인간끼리 정한 규칙에 불과한 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